프레시안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연재를 시작하면서 자기소개를 겸해서 인사드릴까 합니다.
저는 1973년 요미우리신문사에 입사해서 30년간 기자로서 취재ㆍ편집ㆍ보도 활동을 하다가 2003년 말, 정년을 5년 앞두고 요미우리신문사를 퇴사, 현재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퇴사의 계기는 2002년 가을의 북일정상회담에 관한 일본언론의 보도에 대해서 일본의 진보적 매체인 <슈칸깅요비(週刊金曜日)>를 통해 "납치 일색의 보도로 일본측의 침략책임 은폐" 등의 비판을 계속했고, 이에 대해 요미우리신문사가 회사 외부의 압력에 의해 2003년 2월 저의 기자직을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미우리신문사에 입사한 직후부터 저 자신이 '신문기자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 고민하면서 취재보도에 임해 왔습니다.
언론인은 본래 시민의 인권을 수호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반대여서, 일본의 매스미디어는 경찰정보를 넙죽넙죽 받아먹으면서 체포된 사람은 곧 범인이라고 단정하고, 흥미 본위로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사건ㆍ사고 보도로 시민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나는 인권침해를 하기 위해 기자가 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보도의 양태를 바꿔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계속해 왔던 저는 보도피해(매스미디어에 의한 인권침해)를 없애기 위해 발족된 시민과 기자의 네트워크 '인권과 보도ㆍ연락회'에 참여해 그 총무로서 신문사 내외의 보도 개혁과 보도피해자 지원 등의 일을 해 왔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저는 회사 외부의 미디어를 통해 매스미디어 전체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기사와 논문 등을 발표하게 됐습니다.
'인권과 보도ㆍ연락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 온 보도 피해자의 피해 실태와 원인, 이에 대한 매스미디어의 대응, 보도 피해를 구실로 한 정부와 자민당의 보도법 규제의 움직임, 이런 것들을 <슈칸깅요비>, 월간 <쯔꾸루(創)>, 그리고 그 외의 양심적 매체를 통해 알려 왔습니다.
이러한 보도피해 문제를 다루면서 제가 통감한 것은 경찰정보에 의존한 사건보도에 의해 많은 신문기자들이 언론인으로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권력을 의심한다'는 관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경찰과 검찰, 정치가와 관료, 대기업 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권력정보'에 대해 기자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고 넙죽넙죽 받아먹어 그대로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독자들에게 문제의 본질을 전달해주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권력의 정보조작'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저널리즘정신'의 쇠퇴에 의해 일본의 언론계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대정익찬보도'를 연상케 하는 '체제익찬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2001년 '9.11사건' 후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고이즈미 정권의 전쟁 가담, 2002년 '9.17' 북일정상회담 이후의 '북한 때리기', 2003년 이라크전쟁과 자위대 파병을 둘러싼 보도에서 매스미디어의 '체제익찬화'는 이제 '저널리즘의 종말'이라고 해도 좋을 상황으로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보도(체제옹호적 보도)에 힘입어 '유사법제'라는 이름의 '전쟁국가' 만들기가 착착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헌법을 위반한 자위대의 전장 파견, 즉 이라크 파병이 강행됐습니다.
또 2001년 취임 이래 '9조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고이즈미 총리는 자위군을 창설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할 '개헌'을 더욱 급속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9.11 중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된 의원 중 '9조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은 72.1%에 이르며, 개헌 절차를 정할 국민투표법안 심의를 위한 '헌법조사특별위원회'가 중의원에 설치됐습니다.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전쟁포기ㆍ전력불보유를 세계에 약속했던 일본의 평화헌법은 이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1997년 8월부터 <슈칸깅요비>의 '인권과 미디어'란에 격주로 보도검증(언론비평)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건보도의 인권침해가 주요한 주제였지만, 2001년 이후로는 일본의 침략전쟁ㆍ식민지지배와 전쟁책임, 개헌 움직임, 미국의 아프간ㆍ이라크 침략전쟁과 이에 가담한 고이즈미 정권 등을 둘러싼 보도에 대해 글을 쓰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침략ㆍ전쟁이야말로 최대의 인권침해이기 때문입니다.
저에 대한 '기자직 박탈'도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누구보다도 '언론의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할 언론기관이 외부의 압력에 굴복해 기자 개인의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일본 언론의 상황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기자직을 빼앗긴 저는 30년간 근무했던 요미우리신문사를 떠나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번에 <프레시안>에 저의 칼럼을 연재하게 된 것은 일본의 패전, 즉 아시아의 광복 60주년을 맞아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함께 참가했던 한국 언론인 출신의 일본 유학생 이홍천씨(전 기자협회보 편집차장)가 <슈칸깅요비>에 연재 중인 저의 칼럼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고 제안한 겁니다.
"일본 언론인의 눈으로 본 일본 사회와 미디어의 현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이홍천씨의 권유에 마음이 움직여 <프레시안>에의 전재를 받아들였습니다.
<슈칸깅요비> 연재 칼럼은 일본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주제에 따라서는 한국 독자들의 감각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독자들의 양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슈칸깅요비> 칼럼과는 별도로 한국 독자들만을 위한 칼럼을 월 1회 쓰기로 했습니다. 이 칼럼들은 일본 언론을 둘러싼 과제를 '개헌' '전쟁책임' '보도의 자유' '보도피해' 등의 주제로 나누어 그때그때 현실상황의 흐름에 맞춰 수 회의 시리즈 형태로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슈칸깅요비> 칼럼의 번역을 맡아주실 이홍천씨, 그리고 <프레시안>의 편집담당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필자 소개**
야마구치 마사노리(山口正紀)
1949년 오사카 출생. 1973년 오사카시립대 경제학부 졸업, 요미우리신문사 입사. 지방지국 근무 후 도쿄 본사의 지방부, 부인부, 생활정보부, 정보조사부, 데이터베이스부 등을 거쳐 2003년 말 퇴사. 그 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로 활동. '인권과 보도.연락회' 총무. 신문노련 저널리스트트레이닝센터(JTC) 상담역
주요 저서: '뉴스의 허구 미디어의 진실-현장에서 생각한 '90-'99 보도검증' '미디어가 시민의 적이 되다-사요나라 요미우리신문' 등.
<번역: 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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