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극장가에 흥행 대작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미 개봉된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비롯해 곧 선보일 〈킹콩〉이 있으며, 그 뒤를 〈게이샤의 추억〉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잇는다. 미국 극장가에선 현재 〈오만과 편견〉과 〈브로크백 마운튼〉같은 작품들도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상영되고 있다. 이들 작품 중 〈킹콩〉을 제외한 4편이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설과 영화 중 어떤 쪽이 더 나을까. 소설과 영화는 별개의 매체이며, 각색은 제2의 창작이라지만 독자와 관객의 입장에서는 궁금한 점이다. 마침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베스트셀러 책과 영화를 비교한 기사를 최근 게재해 관심을 끈다. 영화담당 기자와 평론가들이 책과 영화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 분석한 뒤, 어떤 쪽이 더 좋은지 판정을 내렸다. 물론 개인 취향에 따라 판정결과는 달라지겠지만, 이 기사를 통해 베스트셀러의 영화화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 게이샤의 추억 ( 아서 골든 원작/ 롭 마셜 감독)**
일본의 가장 은밀한 집단인 게이샤 사회와 문화를 외국인이 이해하거나 소설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러나 일본 문화와 역사에 정통한 미국 작가 아서 골든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후인 1930~4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사유리란 여성을 통해 일본에서도 사라져가기 시작한 게이샤 문화를 훌륭하게 되살려냈다.
소설이 국제적으로 대성공하자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판권을 구입했다. 당초 직접 연출까지 맡을 예정이었던 스필버그는 결국 〈시카고〉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신예 롭 마셜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기고 자신은 제작자 역할만 맡았다. 영화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무려 7년이 지난 후에야 영화가 완성된 것은 그만큼 제작과정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수차례의 수정을 거쳐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만 5년. 스파이크 존스, 킴벌리 피어스 등 숱한 감독들이 물망에 올라갔다가 사라졌고, 장만옥이 캐스팅됐다가 촬영개시를 기다리다 지쳐 중도 포기하는 등 캐스팅에서도 난항이 이어졌다.
롭 마셜 연출, 장쯔이, 공리, 양자경 등 게이샤 3인방 캐스팅이 이뤄진 후에도 문제는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미국 감독과 중국 배우들이 게이샤란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 배경과 소재는 일본이되 대사는 영어이인데에다 촬영도 캘리포니아에서 이뤄진 것 등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판정 결론은 영화가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타임'의 평론가들은 수십 년에 걸친 러브스토리를 깔끔하게 정리한 연출, 안무가 출신 감독답게 배우들의 움직임을 마치 무용처럼 정교하게 표현해낸 점, 현란한 기모노 등 탁월한 비주얼 등은 문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화만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달 29일 도쿄 첫 시사회 이후, 중국에서는 게이샤를 연기한 장쯔이 등 중국 여배우들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국 여배우 중 주연급 출연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자존심 상한다', '게이샤 문화를 할리우드식으로 왜곡했다'는 등의 비난도 나오고 있다.)
***▲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C S 루이스 원작/ 앤드류 애덤스 감독)**
'나니아 연대기'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함께 20세기 영국 판타지 소설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총 7편으로 이뤄진 소설 중 가장 인기 있는 두 번째 편인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영화화의 첫 테이프를 끊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시골별장에 피난온 루시 등 4남매가 숨바꼭질을 하던 중 옷장을 통해 신비의 나라 나니아로 들어가 겪는 모험이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제작진의 가장 큰 부담은 수십 년 동안 사랑받아 온 클래식이란 것과 원작의 강한 기독교주의 성향. 또 원작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온갖 캐릭터들을 살리기 위해 1억5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제작비였다. 영화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소설에 비해 많이 약화돼 있으나, 미국과 영국 교회에서는 벌써부터 이 영화보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서 종교논쟁마저 불거져 나오고 있다.
'타임'의 평가는 소설의 승리다. 영화가 런던폭격 장면 등 상실과 폭력이란 어두운 문제들을 잘 표현해낸 것은 사실이지만 원작소설의 철학적 미묘함, 미스터리, 파워, 매력을 담아내는 데는 한계를 나타냈다는 지적이다.
***▲ 해리포터와 불의 잔 (조앤 롤링 원작 / 마이크 뉴웰 감독)**
'해리포터' 시리즈의 4번째 작품. 이 작품의 영화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문장 하나하나를 줄줄이 외울 정도로 해리포터에 미쳐 있는 팬들.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스티븐 글로브스가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에만 2년이 걸렸다.
그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해리포터 각색이 내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며 "무엇을 넣을까가 아니라 어떤 장면을 뺄까를 결정하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734쪽이나 되는 소설 내용을 2시간으로 축약하는 것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격이었다고나 할까.
'타임'의 판정은 그러나 영화의 승리였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등으로 잘 알려진 영국 감독 마이크 뉴웰이 만든 이번 영화가 시리즈 중 가장 암울하면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원작 / 조 라이트 감독)**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오만과 편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딱 두 가지다. 열렬히 좋아하거나, 혹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연애담이란 불평.
고전소설이라면 무조건 선생님이 내주는 독서숙제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이 점이 영화제작자들의 최대 난제. '오만과 편견'은 콜린 퍼스가 다아시 역을 맡았던 BBC TV 드라마 시리즈까지 합쳐 스크린에 옮겨진 게 이번까지 합쳐 세 번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책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로 볼 만큼 봤다는 이야기다.
이번 작품은 최근 주가급성장 중인 키라 나이틀리를 엘리자베스로 캐스팅, 기존 작품들에 비해 훨씬 더 로맨틱한 면을 새롭게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타임'의 판결은 역시 책. 위트 있는 영국식 대화표현의 맛, 18세기 영국 사회의 물질주의와 허영심 등에 대한 미묘한 뉘앙스 등은 소설을 통해서만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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