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준익 | 출연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이준기, 장항선, 유해진 | 제작 이글픽쳐스 | 제공/배급 시네마서비스 | 등급 15세 관람가 | 시간 119분 | 2005년
잘 짜여진 드라마는 좀처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과감한 물량투입과 거대한 스펙터클이 가슴 뻥 뚫리는 쾌감을 안겨준다면 등장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며 느끼는 저릿한 감정은 드라마의 숙명이자 열정이다. 게다가 그 장르가 비극이라면 명치 끝은 아려오게 마련이다. 〈왕의 남자〉는 그런 의미에서 매혹적이다. 펄펄 신명 나는 기운을 내뿜다가 어느 순간 하염없는 아련함을 남겨놓는다.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 광대 장생(감우성)은 여성적 매력을 간직한 공길(이준기)과 보다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온다. 타고난 재주로 놀이패를 이끌게 된 장생은 연산(정진영)과 그의 애첩 녹수(강성연)을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저자거리의 명물이 되지만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에 압송된다. 왕을 모시는 내시 처선(장항선)에 의해 궁궐에서 놀이판을 벌이게 된 장생패거리는 왕의 웃음을 이끌어내며 궁중광대로 자리한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들이 놀이판을 벌일 때마다 신하들은 떼로 죽어나가고 곱상한 외모로 양반들의 노리개 역할을 하던 공길은 왕의 부름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녹수의 자리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김태웅의 연극 〈이(爾)〉를 스크린에 옮긴 이준익 감독은 전작 〈황산벌〉에서의 해학을 광대에게 이입하며 정통사극의 긴장과 풍자 사이를 교묘히 줄타기한다. 알려진 역사를 다시 한번 비틀고 최고 권력자 왕과 미천한 광대를 대비시키며 희롱과 조롱을 반복하는 연출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낳는다.
김태웅의 연극에서 연산군의 총애를 받는 공길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녹수와 암투를 벌인다면 영화의 공길은 동성애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광대의 우두머리 장생을 정면에 내세워 연산군의 폭정과 권력을 향한 암투를 제3자의 눈으로 지켜보게 한다. 덧붙여 공길과 장생의 우정을 넘어선 듯한 애절한 감정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과 맞물리며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고 있다.
〈왕의 남자〉를 도드라지게 하는 또 다른 매력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차갑고 이지적인 캐릭터로 기억되던 감우성은 광대의 능청스러움과 끼를 폭발시키며 신인 이준기의 여성성을 도드라지게 하고 묵직한 무게감의 소유자 장항선은 늘 그렇듯 극의 중심을 잡으며 모자란 듯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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