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저녁 '생명과 평화의 땅, 평택을 지키는 국민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대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사옥 앞에서 열린 이 촛불문화제에는 전날 행사 때보다 두 배 이상 되는 3000명 가까운 시민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근처 서울광장에서 열린 '하이 서울 페스티발'에서 쏘아올리는 폭죽 소리와 왕왕 울려대는 공연 음악 소리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경찰은 이들을 경찰차로 둘러싸 지나는 시민들이 촛불 문화제를 보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저녁 8시 반이 지나자 "문화제가 아닌 불법집회로 간주하겠다"며 "즉각 해산하라"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 사옥 앞의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은 손에 초를 들고 차분한 모습으로 자리를 밤 10시 반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러한 촛불집회의 모습은 현재 경찰과 군 병력의 감시 아래 출입이 통제된 대추리의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현재 대추리에서는 경찰들이 대추리 입구를 막고 있고, 군인들은 철조망을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며 30명 규모의 사복 체포조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이 힘이 없어 땅이 다 국방부에 넘어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날 광화문에서 촛불 문화제가 열리는 시각, 평택 팽성읍 대추리 평화공원에서도 평택 주민들의 촛불집회가 있었다. 이날 문화제에서는 양 쪽의 촛불 문화제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두 촛불집회가 함께 하는 공동 행사로 진행했다. 무대 옆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촛불을 들고 모여 앉은 대추리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문화제 사회를 맡은 조영신 전 민족음악인협회 사무처장은 "대추리 어르신들께 힘을 드리기 위해 함성 부탁한다"고 말했고, 이 말이 끝나자 마자 광화문에는 큰 함성 소리가 울려퍼졌다. 인터넷 화면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본 대추리 할머니들은 환한 얼굴로 촛불을 높이 들어 화답했고, 이 장면은 다시 광화문의 인터넷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이날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대추리 주민 방효태 할아버지는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개사한 '평택은 우리 땅' 노래를 부르고 "주민들이 힘이 없어서 땅이 다 국방부에 넘어갔다,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방효태 할아버지는 "흐르는 바닷물을 막아 하나하나 일궈낸 아름다운 평야 285만 평을 나라가 강제로 자기네 땅이라고 해버리고는 밤낮으로 내놓으라고 주인의 목을 죄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제 70, 80 노인이 대부분이고, 우리는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곳에서 살다 죽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더구나 그 소중한 땅을 전쟁기지로 쓴다 하니 더더욱 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살인마 전두환'을 외치며 스타로 뜬 노무현 변호사가 이럴수가"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은 "민주노총 간부들도 이번 평택 투쟁으로 많이 구속됐다"면서 "노동자들이 새로운 결의를 모아 평택 미군기지 투쟁의 선봉에 서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당직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4일 대추 초등학교 지붕에 올라가서 철조망 건너 이쪽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미군들을 보니까 그들은 주인, 한국정부는 마름, 평택농민들은 소작인이 맞더라"고 토로했다.
천 의원은 "4년전 월드컵과 지방선거에 묻혔던 효순이 미선이 싸움을 기억하자"면서 "이제 또 촛불을 들고 싸움터에 나서 생명과 평화를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연행자 중에는 5.31 지방선거 후보자와 선거 사무장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면서 "민주노동당은 옥중 선거 투쟁을 각오하고 싸우기로 했다"고 밝혀 많은 박수를 받았다.
김용한 민주노동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광주 청문회에서 '살인마 전두환'을 외치며 스타로 떠오른 노무현 변호사가 이제는 평택 주민들의 대추분교를 언론과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처형했다"면서 "노무현 정부를 용서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김종철 서울시장 후보는 미군에 의한 여중생 성추행 사건 당시 10만 명의 주민을 이끌고 미군기지를 둘러싼 오키나와 지사와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며 "노무현은 박정희, 전두환의 맥을 잇고 있다"고 비난했다.
"우리의 투쟁은 매일 계속될 것"
이날 문화제 장소 곳곳에는 군인들과 경찰들의 폭력 만행을 고발하는 사진전과 1인 시위가 있었다. 또 문화제에서는 4일과 5일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슬라이드 공연과 평택 투쟁 동영상, 편지글 낭독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어졌다.
또 현재 고공농성 중인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메시지도 전달됐다.
이 하이스코 노동자는 문화제 사회자와의 공개 전화통화에서 "미군기지 확장반대를 위해 나선 동지 여러분께 (현장에 가지 못해서) 미안하고 죄송하다"면서 "정몽구 회장이 온갖 편법을 동원해 엄청난 사재를 축적하고 있을 때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뼈 빠지게 일했고, 우리가 120미터 타워크레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현대차 자본이 노동자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후 8시 반이 지나자 무대 뒤편 경찰 차량에서 "불법집회를 해산하라"는 방송이 시작됐다. 원래 문화제로 집회 허가를 내주었는데 노래 공연은 하지 않고 규탄 발언이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이어진 노래 공연에는 가수 손병휘, 오지총, 필리핀에서 온 활동가 제이슨 산티아노 등이 나왔다. 산티아노가 '아침이슬'을 유창하게 부르자 사람들은 귀에 익은 음악에 맞춰 촛불을 흔들며 따라불렀다.
참가자들은 밤 9시 반경 집회 자리를 정리하고 '청와대로 산보가자'며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려 했다. 경찰은 광화문 지하철역 입구에서 소화기를 뿌리는 등 참가자들을 막았다.
좁은 길목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자칫 대형 압사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양쪽 다 큰 부상자는 없었다. 참가자들은 "평택 연행자를 석방하라" "국방부 장관 퇴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한시간 가량 경찰과 대치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우리의 투쟁은 매일 계속될 것'임을 강조하며 밤 10시 반이 넘어 자진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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