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오늘부터 (사) 한국중동아프리카연구원(원장 하병주 부산외대 교수)과 함께 분쟁의 땅, 중동지역의 실상을 심층 분석하는 '중동포럼'을 주 1회 연재한다.
세계 최대의 에너지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민주주의의 결여와 외세의 개입으로 수십년째 착취와 내분에 시달리고 있는 중동지역의 실상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2004년 김선일 씨가 이라크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윤장호 하사가 아프간에서 목숨을 잃었듯이 우리 역시 중동지역의 분쟁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에너지 안보와 교역 측면에서도 중동지역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지적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서는 현실적 과제다.
한국중동아프리카연구원(KIMA: Korea Institute of the Middle East & Africa)는 1966년에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의 정치, 경제, 문화 및 사회사정을 연구해 우리나라의 대외 관계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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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8일, 하마스와 파타는 팔레스타인 통합 정부 구성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압둘 아지즈가 후원한 '메카 협정(The Mecca Agreement)'에 서명했다. '메카 협정'은 2006년 3월 하마스가 단독 내각을 구성한 직후 시작된 파타와 하마스 간의 유혈 투쟁과, 이스라엘을 비롯한 미국, 유럽 등의 대 팔레스타인 봉쇄 정책 등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통합 정부는 하마스, 파타, 제3의 길, 대안,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DFLP), 팔레스타인 선도당 등 6개의 주요 정당 출신들과 무소속 출신 등 25명이 연합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출범했다.
하마스는 총리를 비롯한 교육, 종교, 사법, 농업, 여성 장관 등 12개, 파타는 부총리를 비롯한 보건, 죄수 업무, 노동, 교통, 산업 장관 등 6개를 차지했다. 그밖에 재무 장관은 제3의 길, 외무 장관, 내무 장관, 관광 장관은 무소속, 공보 장관은 팔레스타인 선도당, 문화 장관은 대안, 사회 장관은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이 각각 차지했다. 이로써 연합 내각은 주요 정당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은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내각 구성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지난번 하마스 내각과는 달리 이번 내각에서 예루살렘 장관은 각료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다. 동예루살렘 주권 문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점 중의 하나다. 앞으로 통합 정부의 예루살렘 문제 처리 방식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 유혈 내분은 3월 17일 팔레스타인 통합정부가 업무를 시작한 이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3월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 동안 가자에서 하마스와 파타가 교전하면서, 팔레스타인 주민 4명이 살해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팔레스타인 통합 정부 출범과 관계없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경제 봉쇄 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대는 21일에 서안 북부 나블루스와 라말라에 침입해 팔레스타인 주민 2명을 살해했고, 23일과 24일에도 가자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공격해 여러 명이 총상을 입었다. 날마다 발생하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팔레스타인 주민 살해, 부상, 체포, 구금을 동반한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통합정부가 출범한 지난 일주일 동안에도, 팔레스타인의 유혈 내분과 이스라엘 군대의 팔레스타인 주민 공격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3월 17일 팔레스타인 통합 정부 내각의 비준에 앞서, 파타 출신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와 하마스 출신 총리 이스마엘 하니야가 의회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각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모든 형태의 폭력 행사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스라엘 감옥에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이, 작년 6월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억류된 이스라엘 군인 길라트 살리트의 석방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압바스의 주장들은 현재 이스라엘과 미국이 팔레스타인 통합정부에게 요구하는 바로 그 내용들이며, 미국을 비롯한 유엔, 러시아, 유럽연합으로 구성된 4자(Quartet)가 주도한 2003년 로드맵의 원칙과 일치한다. 로드맵은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투쟁을 중지시켜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하니야 총리는 작년 6월 이후 40여 명의 팔레스타인 의회 의원들과 정치인들을 구금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먼저 비난했다. 그는 '이 지역의 안보를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은 이스라엘 군사점령의 종결이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1967년 전쟁 이전의 경계를 국경으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등을 위해 통합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확언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니야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항거하는 모든 형태의 저항은 국제법과 일치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라고 되풀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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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야 총리의 주장은 연합 내각을 구성한 모든 정당들이 합의한 '팔레스타인 통합정부 프로그램' 내용과 일치한다.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를 협력 상대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압바스와는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통합 정부는 4자가 합의한 원칙들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도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국제법과 일치한다'고 명시한 팔레스타인 통합 정부 프로그램과 하니야의 의회 연설이 4자가 이미 합의한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면서 통합 정부 프로그램의 변경을 요구했다.
통합정부 프로그램은 이미 2002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제안했고, 아랍연맹 수뇌 회의가 채택한 '아랍 평화 계획(The Arab Peace Plan)'과 기본 내용은 같다. 이 계획은 '이스라엘에게 1967년 이후 점령하고 있는 모든 영토로부터의 철군,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의 인정, 1967년 6월 4일 이후 이스라엘 점령지 전역에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요구하면서, 이에 대한 대가로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이스라엘과 정상적인 관계를 수립할 것'을 명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요구를 즉각 거부햤다.
'아랍 평화 계획'을 대체하면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2년 6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책으로, '독립적이며 생존 가능하고 민주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제시했다. 곧 이어 미국을 비롯한 유엔, 러시아, 유럽연합으로 구성되는 4자가 부시의 제안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이제 세계 미디어에서 '아랍 평화 계획'은 사라졌고, '부시 제안'만이 요란하게 선전되고 있다.
부시 제안은 200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합의한 '로드맵'으로 구체화됐다. 로드맵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무장 공격을 완전히 중단할 것, 이스라엘에게는 2000년 9월 28일 이전 경계로 철군할 것'을 각각 요구했다. 결국 이것은 2000년 9월 28일의 경계로의 철군을 요구함으로써, 1967년 이후의 점령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권을 승인했다. 현재 이스라엘은 이 4자 안을 팔레스타인 통합정부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통합정부 프로그램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통합정부에게 '이스라엘의 존재를 승인하고, 폭력을 포기하며, 과거에 체결된 협정들을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미 유엔을 비롯한 세계열강들이 인정하는 주권 국가이며, 주변 아랍 국가들과 국경을 획정하고 있는 아라비아 반도 최강의 군사 대국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는 주권도 없고, 국경도 없고, 군대도 없고, 군사 점령된 영토에 존재하는, 힘없는 자치정부다. 2007년 3월 현재 서안 전역에 첨단 장비를 갖춘 528개의 검문소가 있고, 455개의 이동 검문소가 있다. 이들 검문소에서는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위협적인 태도로 팔레스타인인들의 통행을 지시한다. 지난해 통행 장애로 병원에 도착하지 못한 61명의 임산부가 도로 상에서 아기를 낳았으며 36명의 신생아들이 죽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존재하지만, 자치 지역은 사실상 없다.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는 '이스라엘 국가 영역을 제외한 1967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 점령지, 즉 전 팔레스타인 영토의 22%인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한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나머지 78%의 땅에 이미 수립된 '이스라엘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1967년 이후 점령된 영토 22%에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철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통합정부가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고, 무력투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오래 계속돼 온 지루한 선전을 전 세계를 향해 되풀이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점령지에서 점령촌과 분리 장벽 등을 건설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실체를 확장하고 견고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이스라엘의 책략이다.
3월 28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아랍연맹 수뇌회의가 개최된다. 이 회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의제로 올릴 것이고, 2002년에 3월에 결의했던 '아랍 평화계획'을 확인하고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를 지지한다는 선언을 할 것이다. 2002년 2월과 3월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가 이스라엘 탱크부대 공격을 받아 무너지고, 야세르 아라파트가 무너진 청사 한 구석방에 갇혀 있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때맞추어 개최된 아랍 정상회의가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을 막아줄 것을 원했고, 세계인들은 이 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이 회의는 '아랍 평화 계획'을 선언적으로 채택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정치 이념이 다른 여러 정당들로 구성된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는 내부의 논쟁점들에서 쉽게 불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26일에도 가자에서는 파타와 하마스의 유혈 내분으로 5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총상을 입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가자와 서안 여러 도시를 공격하고 수 십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체포했다. 2002년 행위로 미루어 볼 때, 28일 개최되는 아랍 연맹 회의가 통합정부에 얼마나 어떻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확실한 구심점이 없는 통합정부가 과연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사) 한국중동아프리카연구원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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