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하고 있는 미국이 국제적인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중동전쟁을 추진하는 것은 '새로운 중동(New Middle East)' 개념과 목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중동(New Middle East)'이라는 용어는 2006년 6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이스라엘 텔 아비브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거대 중동(Greater Middle East)'의 대체 개념으로 제기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중동 구상'은 단순히 '거대 중동 구상'의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의 민주화와 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한 '거대 중동'을 제안했지만 이 구상은 실패로 끝났다. '새로운 중동 구상'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에너지 전쟁을 추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등장했다.
다시 쓰는 중동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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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12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레바논 전쟁에서 부시 미 대통령은 '새로운 중동을 위한 기회'라고 주장하면서 중동사태는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지만 중동의 보다 큰 변화를 위한 기회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레바논의 비극을 '새로운 중동의 탄생을 위한 불가피한 산고'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레바논 희생자가 1400 여명에 이르렀고 레바논의 사회기반시설이 초토화된 비극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중동'을 언급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레바논 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의 본격적인 '새로운 중동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목적은 레바논의 정권교체와 친이스라엘 정부의 수립에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번 전쟁은 송유관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제2의 중동이라고 불리는 카스피해 석유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카스피해에서 지중해로 연결되는 BTC(바쿠~트빌리시~세이한) 송유관이 작년 5월 개통되었다. 이것은 아제르바이잔 해역의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그루지야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항구인 세이한까지 나른다는 것이다. 터키와 이스라엘은 작년 6월 BTC 송유관을 확장시켜 시리아와 레바논 영토를 경유하는 송유관 건설, 즉 세이한에서 이스라엘 항구 아슈켈론(ashkelon)까지 송유관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침공에서 시리아와 이란을 겨냥하여 지역전으로 확대시키려는 의도는 이 사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01년 미국의 국가에너지 전략보고서는 미국의 에너지 및 경제적 안보는 국내 및 국제 에너지 공급 뿐만 아니라 무역 파트너들의 에너지 공급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까지 미국은 석유수입량을 50% 이상 늘려야 한다. 따라서 미국은 걸프지역으로부터 석유 수입량을 늘려야 하고 카스피해 연안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수입지역을 다변화시켜야 한다. 석유에 관한 이해관계는 미국의 무역파트너의 관심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중국 및 인도와의 경쟁관계에서 우위를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은 에너지를 통한 미국의 패권 전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에너지 패권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목적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제거 및 탈레반 정권의 전복이었지만 사실상 송유관 전쟁을 의미한다. 2000년 12월 미국의 '에너지 정보현황자료'에 따르면 "에너지 측면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중요성은 중앙아시아에서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수송로로서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은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중앙아시아의 자원을 아시아 시장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수송로이다.
미국의 에너지 전략은 페르시아만에서 카스피해로 연결되고 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중동지도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포함하는 확대된 중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터키의 삼각 동맹
미국, 이스라엘 및 터키의 삼각 동맹은 '새로운 중동 구상'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터키의 군사 동맹은 1992년 이후 지역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고 1996년 2월 군사훈련 및 협조협정을 맺었다. 여기에서 지역안보의 위협대상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의미한다. 양국의 군사 동맹은 흑해에서 시리아-터키 국경선으로 연결되는 동지중해를 포괄하고 있으며 전략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1998년 이후 미국, 이스라엘, 터키 해군은 동지중해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2006년 7월 6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압둘라 굴 터키 외무장관은 워싱턴에서 '공동 비전 협정'에 서명하면서 삼각 동맹을 재확인했다. 이 협정은 미국과 터키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중동, 흑해, 코카서스, 중앙아시아에서 터키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이는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터키의 전략적·군사적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협정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기 1주일 전에 체결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이란선제공격설이 나오는 가운데 터키와 이스라엘의 입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만약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터키와 이스라엘은 주요 동맹국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미국의 은밀한 '이란 공격'은 이미 시작됐다
부시 미 대통령은 1월 23일 새해 연두교서에서 미국의 주적을 수니파와 시아파 극단주의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그는 "최근 미국에게 적대적이고 중동을 지배하려는 시아파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란을 공식적으로 거론했다. 이에 앞서 부시 미 대통령은 1월 10일 미군 2만 명을 이라크에 증파하는 '신이라크전략'을 TV 연설을 통해 발표했다. 이 전략은 사실상 이란을 겨냥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려는 진짜 목적은 이란의 자원과 전략적 중요성에 있고 이는 미국의 에너지 패권전략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란은 석유매장량 세계 5위이고 천연가스 매장량은 러시아에 이어서 세계 2위이며 페르시아만과 카스피해를 연결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이란은 카스피해 자원을 유럽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송로이다. 이란은 미국의 공격에 대항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론을 제기하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의 에너지 생명선'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더 나아가 이란은 러시아에게 가스 OPEC을 제안했고 만약 이 기구가 창설되면 세계에너지 시장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서구 언론들은 이른바 4월 위기론, 즉 미국의 선제 이란 공격설을 잇따라 보도하면서 전쟁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이란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미국은 작년 국방부 산하에 딕 체니 부통령의 딸인 엘리자베스 체니를 책임자로 하는 '이란·시리아 작전그룹'((ISOG)을 설치했고 미 육·해·공군과 해병대는 '이란해방작전'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CIA는 과거 소련의 아프간 점령 당시 아프간 반군을 지원한 것처럼 이란의 반체제운동을 통해 내전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서쪽에서는 쿠르드족, 북서쪽에서는 아제리족, 남동쪽에는 발루치족의 종족단체를 통해 이란과 저강도전쟁을 벌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반정부조직은 무자헤딘 할크(MEK)이다.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이 조직은 2004년부터 미 국무부의 테러단체 리스트에서 제외되었고 미군의 지원 아래 특별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쿠르디스탄의 자유생명당(PJAK)은 1997년 쿠르드노동당(PKK)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조직은 쿠르드족 국가 건설을 주장하면서 쿠르드족 지역을 중심으로 반정부 투쟁을 하고 있다. 준달라(Jundallah; 신의 군대)는 시스탄-발루치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순니파 조직이다. 이 조직은 지난 2월 15일 혁명수비대 수송차량을 공격해 11명을 살해했다.
또한 이란은 대표적인 반미국가로 미국의 중동질서 재편을 반대하고 있다. 이란은 시아파 연대(이라크-헤즈볼라)와 반미 전선(시리아)을 통해 친미 수니파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란은 작년 12월 자국 보유 외환을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바꾸고 석유 판매대금 등 모든 외환거래를 유로화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란의 이 조치가 산유국으로 확산될 경우 미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의 '새로운 중동 구상'은 에너지 패권전략에서 비롯되었다. 이 구상이 미국의 의도대로 실현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또다른 중동의 비극이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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