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Dubai!
최근 국내 정·관·재계 고위급 인사들의 두바이 방문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 방문자들의 이름값이 주는 중량감도 적지 않다. 게다가 지난 9일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두바이 방문이 보도되면서 두바이가 국내 대선행보와 전략의 한 축으로 작용할 계기가 마련되었다.
국내 유력 인사들이 앞다투어 두바이를 방문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이유에서다. 우선 '천지개벽'으로 표현될 만큼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두바이의 실체와 성장방식에 대한 벤치마킹(Bench Marking)이고 다음으로 두바이 성장을 주도하는 베일에 가려진 실력자 '셰이크 무하마드 븐 라시드 알 마크툼'(58) 리더십의 노하우(Know-How) 습득이다.
특히 지난 2006년 10월 두바이를 전격 방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창조적 경영을 위해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의 리더십을 배워라"는 엄명은 삼성 그룹의 차원을 넘어 국내 정·재계에 두바이 방문 붐을 조성하는 직·간접적 촉매제가 되었다.
그러나 두바이 지도자의 리더십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실례로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6년 5월 호에서 셰이크 무하마드를 '세계를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인사 100인'에 포함시킴으로써 그를 두바이의 부족장이 아닌 세계적 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현대 리더십의 모델'로까지 묘사되는 셰이크 무하마드 리더십의 실제는 무엇인가?
현대의 CEO 리더십과 아랍전통 부족장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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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s have no limits, Go further"
셰이크 무하마드가 두바이의 미래 발전계획 구상을 선언하며 내건 대국민 모토이다. 이 짧은 문구 안에 그의 통치 철학이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꿈의 실현'이다.
두바이에서는 꿈을 꾸면 곧 현실이 된다. 열사(熱砂)의 땅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고, 해저 20m에 위치한 호텔 방에 누워 걸프해의 심해를 감상하고, 원격으로 조정되는 로봇 기수가 이끄는 낙타들의 경주를 관람할 수 있다. 또한 해상에서는 야자수와 세계 지도를 본 딴 인공섬이 펼쳐지고 불모의 땅 지상에서는 각양각색의 외관을 한 300여 고층 건물들의 마천루 쇼가 공연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그는 그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일찍이 그는 2011년 두바이 경제의 석유의존도를 0%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물류, 관광, 레져, 쇼핑, IT 산업 등 중동지역에서 전례 없는 역발상적 투자전략을 구사하여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블루오션(Blue Ocean) 전략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신뢰 있는 미래 비전 제시와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불도저식의 과감한 실천력 등은 흡사 신세대 CEO라 불리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MS의 빌 게이츠를 연상시킨다. 셰이크 무하마드 자신이 인정하듯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두바이 그룹의 CEO'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정치논리, 이슬람교리, 문화전통에 앞서 경제성장을 최우선에 놓는 이른바 '실사구시'의 신봉자이다. 이런 그를 두고 '개발독재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
그러나 셰이크 무하마드의 리더십의 진면목은 그가 바로 전통적인 아랍 지도자의 리더십 덕목을 겸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가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원천이다. 중세 아랍인들은 다음 3가지 일에 축제를 열고 크게 축하했다. 부족 내 시인(詩人)의 탄생, 사내아이의 탄생, 그리고 준마(駿馬)의 탄생이다. 이것은 곧 당시 지도자가 갖추어야 될 3대 덕목 지, 덕, 체의 상징이다.
아랍 유목민들의 전통사고에 따르면 "시인은 부족의 성자, 평화의 지침, 전쟁의 왕자로서 부족민의 모든 것을 그와 의논해왔다." 시인이야말로 부족 최고의 지식인이자 타 부족과의 전쟁 시 용감하게 적군들 앞에 서서 온갖 비방과 모욕을 시로 표현하여 그들을 물리치는 전사였다. 따라서 시인에 대한 아랍인들의 신봉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일까, 셰이크 무하마드는 여행 중에 항상 시집을 가까이에 두며 국정에 지친 심신을 시 읽기로 다스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두바이의 최고 지도자이기 이전에 이미 여러 편의 시를 발표한 시인이다. 따라서 두바이사람들은 그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원천이 바로 시적 감각과 감수성이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둘째, 아랍인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사막의 유목민에게 보내 순수 아랍어와 아랍인의 행동양식을 교육받도록 하였다. 아랍어 교육은 시인이 되기 위한 필수 교육과정이었고 아랍인의 행동양식이란 바로 관대와 청렴 즉 도덕과 윤리 교육과정이었다. 특히 관대와 청렴은 지도가가 갖추어야 할 최대 덕목 중 하나로서 여겨졌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불시 시찰과 잠행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정부기관을 불시에 방문하여 공무원들의 근무태도를 직접 확인하고 그들에게 부패척결과 청렴성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잠행을 통해 불쑥 대중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일반 시민들에게 자상한 지도자로 존경받는다.
셋째, 아랍인들은 검은 색의 아랍 토종마를 용맹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약 4,000필에 달하는 말을 소유하고 있으며 국제승마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한 두바이 승마계의 대표주자이다. 준마 위에서 칼을 뽑아들고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대중들의 뇌리에 과거 용맹무쌍한 아랍 부족장과 오버랩 되면서 오늘날 두바이의 번영을 가져다 준 소위 '두바이 사단'의 맹장으로 추인하게끔 만든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 다른 아랍 지도자들도 이러한 전통적인 지도자적 덕목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사담 후세인을 비롯한 현대 아랍의 독재자들은 예외 없이 자신들이 문학가임을 자처하고 시와 소설을 발표하였다. 한편 요르단의 전·현직 국왕인 후세인 국왕과 압둘라 국왕은 경호원 없이 일반 차량을 타고 시내를 순시하고 일반인들과 대화하며, 병원과 국가기관 등 대민 서비스 기관을 불시에 방문하여 그들에게 올바른 근무수칙을 강조하기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도하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카타르의 왕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흑마를 타고 가파른 성화대로 내달았던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셰이크 무하마드의 전통적 지도자 상 또한 만들어진 홍보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전략이든 실제이든 간에 이러한 리더십이 대중의 지지 기반을 탄탄히 하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셰이크 무하마드 리더십의 한계 : "낙타 고기를 먹는 자, 낙타의 습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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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크 무하마드의 리더십은 현대인 특히 지도급 인사들에게 중요하다. 한마디로 배울 점이 버릴 점보다 많다. 그의 상상력, 추진력, 판단력 등 최고의 지도자 갖추어야 할 덕목을 예외 없이 갖추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의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 곧바로 적용 될 수 있을까? 셰이크 무하마드 리더십의 한계는 무엇인가?
첫째, 셰이크 무하마드는 인구 120만 명인 도시국가의 지도자이다. 그나마 120만 명 중 자국인은 25%에 불과하고 나머지 75%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30-40만 명을 상대로 한 그의 리더십이 과연 4900만 명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의 리더십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셰이크 무하마드는 두바이의 최고 지도자로 임명되기 전 싱가포르 기적을 이루어낸 지도자 '리콴유'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의 유수한 지도자들 가운데 대국의 지도자가 아닌 도시국가의 지도자를 선택하였다. 그것은 두바이가 싱가포르의 환경과 조건이 흡사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처음부터 그가 자신의 통치 범위를 아랍에미리트 전체가 아닌 두바이로(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연방을 구성하는 7개 국가 중 하나임) 한정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리더십은 글로벌하기보다 오히려 작은 집단과 공동체 또는 도시 국가와 같은 협소한 지역과 범위의 국가에 어울린다.
둘째, 셰이크 무하마드의 리더십은 군주의 리더십이다. 셰이크란 원래 유목 아랍부족의 수장을 의미한다. 셰이크는 통상 부족 내 원로들 가운데 덕망이 가장 높은 사람이 부족회의를 거쳐 선출된다. 셰이크는 말 그대로 부족의 최고 원로이나 실제로는 오늘날의 외교, 내무, 군사, 사법을 총괄하는 부족 내 최고의 실권자이다. 게다가 일단 부족의 셰이크로 선출된 자에게 나머지 소단위의 부족과 가문(family)들은 그에게 복종서약(Bay'ah)을 이행하여 그의 명령에 무조건적인 절대순종을 맹세한다.
셰이크 무하마드도 과거 부족장 즉 셰이크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는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부통령이자 총리이며 게다가 종신직이다. 또한 연방 최고위원 중 한 명으로서 입법, 사법, 군사 등 대부분의 주요 인사에 대한 임명 및 해임권을 가진다. 사실상 아부다비 셰이크와 함께 아랍에미리트의 모든 권력기관을 장악한 절대 권력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제 분야에 있어서도 두바이국제금융센터의 최고 책임자이자 최대 투자 회사인 두바이홀딩스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따라서 셰이크 무하마드의 결정 사안이 하위조직에 즉각 전달되고 일사불란하게 추진되는 데는 그의 개인적인 리더십의 발휘와 함께 그가 절대 군주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체제와 경제 환경은 두바이의 그것과 너무나 상이하다. 대부분의 경우 지도자의 결정이 -그것이 정부기관이든 개인 기업이든 간에- 즉시 실행되지 못한다. 정부의 경우, 입법과 사법기관의 적절한 견제와 동의가 필요하며 기업의 경우 이사회의 결의를 기다려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절차들이 종종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으나 그렇다고 군주제 아래에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셋째, 셰이크 무하마드의 리더십에 대한 최종 평가는 아직 시기상조이다. 셰이크 무하마드가 두바이의 최고 지도자로 임명된 것은 2006년 1월이다. 두바이 최고 수장으로서 그의 통치기간은 이제 1년 남짓이다. 물론 1996년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 줄곧 그가 두바이의 숨은 실력자이며 '21세기 두바이 경제개발계획'의 기획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숨은 실력자로서의 역할 수행과 최고 수장으로서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검증은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15년 간 두바이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셰이크 무하마드의 맏형이자 전임 두바이 지도자였던 셰이크 알 마크툼의 역할과 업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두바이 경제의 거품론, 외국자본과 아부다비 오일 달러에 과도한 의존성, 제3세계 노동자들의 인권유린 등의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그의 리더십에 대한 섣부른 평가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그가 지금까지 추진했던 개발 일변도의 개혁보다 최고 지도자로서 그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가 더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런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했을 때 그는 두바이 지도자로서 아니 더 나아가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마침 한국 경제계 원로들의 모임인 IBC포럼이 두바이 방문 이후 셰이크 무하마드의 창조적 지도력과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 그리고 기업의 투자를 위한 최고의 환경 제공 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만 한국과는 정치체제, 사회구조, 재원조달 방식에 큰 차이가 있어 두바이의 발전방식을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중세 아랍의 저명한 역사가 이븐 칼둔은 일찍이 "낙타 고기를 먹는 자, 낙타의 습성을 가진다."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신토불이'론이다. 미래 학자들은 21세기의 경제를 이윤을 쫓아 기업 간 또는 국가 간 이동과 이합집산이 빠르게 진행되는 신유목민의 사회라고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우리 경제계에서 앞서가는 일본과 뒤쫓는 중국의 사이에 낀 '샌드위치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경제개발의 속도전이 제기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셰이크 무하마드의 유목민식의 리더십이 보다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맞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셰이크 무하마드의 무한한 상상력과 과감한 추진력은 배우되 철저한 검증을 통해 버릴 것은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개발독재의 시대를 마감한 지 오래다. 한 사람의 리더십에 의해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가 좌지우지 되는 것은 우리의 시대와 환경에 맞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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