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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 먼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UCC의 개념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 발전해온 것인지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민경배: UCC는 User Created Contents라 하여 이용자가 창작한다는 의미입니다만, 이용자가 직접 생산하여 인터넷에 올리는 현상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지식검색 등 텍스트 기반의 UCC부터 오마이뉴스, 싸이월드 등 여러 사이트에 항상 존재했습니다.
UCC가 최근에 각광받는 이유는, 첫째, 동영상이라는 새로운 기반 때문입니다. 동영상의 파급력 때문에 UCC 자체를 동영상만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 정도입니다. 둘째, 최근 UCC라는 명칭은 상업적 동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터넷 상의 여러 수익모델 중 이용자들이 만든 글이나 사진을 실어주는 것은 충성도 높은 회원을 붙잡아두기 위한 매개였는데, 이용자들이 만든 콘텐츠 자체에서 수익원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직 사고파는 개념까지는 아닙니다만, 최근 미디어에 UCC를 활용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기면서 UCC 기반으로 자사 사이트에 올라온 콘텐츠를 다른 매체에 제공하기도 하고, 신문에서 블로그 기사에 지면을 할당하기 시작하면서 콘텐츠에 대한 점유권을 확보하는 등의 방법으로 상품적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UCC에 지적재산권을 부여하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수익도 이용자와 포털 회사가 분배하는 모델을 개발 중입니다. 포털 입장에서는 힘 안들이고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어 매력적입니다. 개발 비용이나 시장 경쟁력에 대한 부담 없이 공간만 만들면 이용자가 채워주고, 그 중 한 두 개만 대중적인 반응을 얻으면 사이트 가치가 급상승하는 매력적인 상품입니다.
윤성이: 정치적 관점에서 보아도 UCC는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텍스트나 패러디 형식으로 많이 있었고, 2002년 대선 때에도 동영상 홍보물이 많았습니다. 물론 선거캠프에서 만들기는 했지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바 있습니다. 순수 UCC들 중에서도 2004년에 정동영씨의 노인폄하 발언이 떠돈 적도 있고,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최근에 유난히 주목 받는 이유는 UCC 제작 환경이 많이 좋아져서 쉽게 동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되었고, 업로드 프로그램도 이용이 수월해지는 등의 환경적 변화로 크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근: UCC의 특성상 제작기술과 소프트웨어에 익숙한 20~30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40대 이후의 이용자가 생산하는 비율이 높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정치와 관련해서도 세대별 집중도가 정치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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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배: 뉴미디어는 항상 젊은 층부터 시작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확대됩니다. 핸드폰 사진도 몇 년 전까지는 40대 이상에게는 어색했었지만 어느새 확장되고 있습니다. 동영상도 아직 10~20대 중심이지만 30대로 확산되고 있고, 40대 확산도 요원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정에서 캠코더 촬영은 주로 30, 40대 가장들이 많이 합니다. 찍는 기술은 문제가 아닌데 편집 등 가공 과정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지요. 이제 마우스 몇 번만으로 편집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편리성이 향상되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윤성이: 작년에 사이버공간의 이념성향을 조사해보았는데요. 2002년 대선 후 주로 젊은 층, 진보세력이 사이버공간을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수의 대반격'이라 할 만큼 보수층의 장악력이 높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점유율이 높아졌고, 설문조사 결과 덧글을 다는 비율도 40, 50대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올 3월에 대선후보 팬클럽조사를 해보았는데요, 회원 구성도 현실 세계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나이 많은 분이 많은 박근혜씨 팬클럽은 온라인에서도 40, 50대가 많았습니다. 선거 등 정치적 목적이 있다면 중장년층도 얼마든지 활동하는, 보편화된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UCC 초기단계라 젊은 층 위주이지만, 선거와 같은 목적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면 40, 50대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입니다.
한국과 해외 UCC의 현황
이근: 현황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UCC가 미국과 한국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한국의 UCC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은 아직 정치적 UCC는 거의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보수와 진보 진영이 서로 공격하는 메시지를 담은 UCC가 많은데, 한국이 그런 UCC가 별로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경배: UCC는 인터넷이 보편화된 국가라면 어디나 있는 현상입니다. 유튜브(YouTube)도 미국 사이트라 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콘텐츠도 많이 올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UCC라 하고 외국은 보통 UGC(User Generated Contents)라 합니다.
한국 네티즌들은 예전부터 보아온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언론에서만 최근에 UCC를 부각시키면서 호들갑을 떠는 경향이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로 'You'를 선정하는 등 최근 들어 UCC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오히려 조금씩 관심이 흐려진 반면, 외국에서는 이제서야 가치를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이런 부분은 확실히 앞서 있습니다. 일본을 보아도 한국보다 많이 떨어집니다. 일본도 사이트가 많지만, 일본 사람들은 자기 표출에 대한 거부감이 강합니다. UCC는 직간접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인데, 일본은 그런 정서가 약하기 때문에 호응이 약한 듯합니다.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UCC가 나오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을 보면, 한국에서 동영상 기반의 정치 UCC가 있다 하더라도 아직 정치홍보영상일 뿐이라고 봅니다. 이용자들이 솔직하게 만든 동영상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지지자 또는 대선 캠프에서 의도하여 만든 것들입니다. 한국 인터넷 문화가 전반적으로 상당히 공격적이고 네거티브한 표현이 넘치는 데 비해 정치동영상 중에 네거티브가 안 나오는 이유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긍정적인 내용만 만들 뿐, 순수한 의미의 정치동영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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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 미국도 2006년 중간선거 때부터 정치동영상이 많이 나왔습니다. 우리도 하반기에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진짜 정치 UCC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오히려 너무 많을 것을 우려해서 선관위나 정당들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미국 중간선거를 봐도 그렇지만, UCC가 정치적 메시지, 즉 이슈나 정책에 대한 토론거리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별로 없고, 단순히 고발하는 내용 또는 흥미위주의 내용에 치우칠 수 있습니다. 선거문화와 참여문화의 질적 향상을 고려할 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긍정적 작용을 해 줄 모델이 필요한데, 업계에서 상업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비해, 정계에서는 지지자 동원 노력을 하는 수준이고 정치문화 발전을 위한 투자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근: UCC 자체가 아직은 정치적 영향력은 많지 않더라도, 한국의 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영향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UCC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십니까? 조중동과 같은 기존 대형 미디어들의 위상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요. UCC가 논리보다는 감성적 측면이 많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민경배: 가장 큰 변화는 미디어권력의 이전입니다. 사례로, 판도라 TV에 여중생 폭행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 과거 같으면 언론사나 경찰서에 제보했을 내용이 고발영상으로 상업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왔고, 그것이 여론을 만들어냈습니다. 판도라 TV라는 사이트가 언론매체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또, 그 여파가 커진 후 경찰이 수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네티즌들이 어느 학교 누구라는 인적사항을 다 알아내는 경찰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고발동영상도 UCC였고, 그 인물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것도 UCC입니다. UCC가 언론, 경찰의 영역을 뚫고 들어가 순발력있게 역할을 한 것입니다. 앞으로 사회기관들의 역할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기존 대형 언론들에게는 상당히 큰 충격이 됩니다. 지금 대형 언론들은 UCC와 대선에 관해서 초점을 잘못 맞추고 있습니다. 대부분 동영상에 담긴 특정 후보의 우호적이거나 부정적인 모습이 네티즌 표심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그게 본질은 아닙니다. UCC의 영향력을 고민한다면, 궁극적으로 의제가 설정되고 확산되는 과정이 UCC를 기반으로 네티즌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에너지와 역동성이 기존 언론보다 더 커지고 있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자꾸 특정 후보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하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윤성이: 미디어권력의 분산을 달리 이야기하면 의제설정권의 이전입니다. 기존 언론, 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의제설정권이 많은 부분 네티즌에게 옮겨갔습니다. UCC로 인하여 의제설정권의 분산이 가속될 것입니다. 파급효과가 큰 온라인 공간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그것이 기존 기관들에 파급되는 것입니다. 온라인에서 게이트키핑(정보통제, 선택)을 하고, 이것을 기존 언론이 받아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고, 정부의 정책도 온라인에서 의견수렴이 시작되어 정책을 바꾸는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을 논할 때 의제설정권이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데, 이것이 분산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큰 변화입니다.
UCC의 부정적 측면을 이야기할 때 감성정치, 포퓰리즘을 언급하곤 합니다. 지난 총선, 대선 때도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정치가 원래 목적했던 공론의 장으로서의 기능은 별로 하지 못하고 부작용만 현실화된 상황으로, 온라인 공간의 정화기능 운운하면서 안이하게 대처한 것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자기정화 기능이 분명 작용하고 있습니다. 황우석 사건을 보면, 시작도 온라인이었지만 마무리도 온라인에서 되었고, 브리태니커보다 위키피디아가 오히려 더 정확한 경우가 많다고도 합니다. 자체 정화기능은 분명 작동하고 있으며, 문제점을 해소할 길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선거와 관련해서는 그 시기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네거티브 UCC를 우려하는데, 선거 일정을 생각하면 사실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정화기능이 작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선거기간의 경우 그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UCC의 정치적 영향과 메커니즘
이근: 정치적 영향으로 넘어가서, UCC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흔히 말하는 몰카도 UCC의 일종인데,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는 불안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더욱 불안한 삶이 될 수도 있지 않을지요?
또 다른 측면에서, 에디터의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용자들이 마음대로 만들더라도, 판도라 TV 등에 에디터의 힘이 작동하고 있다면, 권력과 참여의 분산이 이상적 형태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민경배: '개똥녀 사건' 같은 경우 UCC가 외신에까지 보도된 바 있고, 그 단어가 영영사전에 등재됐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공중질서를 위반한 수준의 일은 비일비재한 것이고 뉴스거리조차 아닌 것인데, 누군가 찍어 올려서 국제적인 뉴스가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뉴스가치가 사회적 중요도로 매겨졌지만, 이제는 콘텐츠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에 의해 가치가 부여되는 상황입니다. 선거과정에서도 충분히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특정후보의 스쳐 지나갈 만한 행위가 편집을 통해 부각되어, 사실을 왜곡할 위험성이 분명 있습니다. 사생활 침해, 감시, 사실의 왜곡 등의 위험요소들이 도사리게 되었습니다. 인권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윤성이: 에디터의 힘이 작용하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보통 동원이론과 강화이론으로 나누어서, 동원이론은 새로운 권력기제들이 생겨나 기존 권력질서를 변화시킨다고 보고 있고, 강화이론은 결국 기존 정치권력을 더 강화시킨다고 합니다. 일단 동원이론에서 말하는 현상이 많고 의제설정권이 분산,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네티즌의 자발적 움직임만으로 온라인 공간의 권력구조가 재편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넷 초창기라면 참여자도 소수여서 이상적인 공간이 될 수 있었겠지만, 공간이 확산되고 온라인상의 권력에 대한 인식이 강해지면서, 현실공간의 권력과 맞물리게 되었습니다.
사이버공간에서도 새로운 권력구조가 만들어져서,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생산자는 전문가집단이고, 네티즌은 소비자에 치우친 상황입니다. 포탈의 권력이 정치권력화되어 간다는 비판이 있는데, 은연중에 사이버공간에서 만들어진 권력질서가 소수에 집중되기도 합니다. 정보유통을 포탈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정치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정보 중 어떤 정보에 접근하느냐가 중요한데, 유통구조를 소수 포탈이 장악하여 그 정보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권력구조가 일반 네티즌에까지 분산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민경배: 포탈과 UCC의 관계는 한국의 UCC 문화의 왜곡을 보여줍니다. UCC는 웹 2.0이라는 새로운 나무 둥지에서 파생된 하나의 줄기입니다. 웹 2.0의 기본적인 개념은 공유, 개방, 분산의 원리인데, 지금 한국의 포탈구조는 웹 2.0과 정 반대의 원리에 의해 작동되고 있습니다. 포탈은 상당히 중앙집중적이고, 폐쇄적이며 네티즌을 포탈 안에 가둬두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웹 2.0이라는 나무의 한 줄기인 UCC를 가장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고 하는 자기모순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엄밀한 의미의 UCC가 아니라 포탈의 UCC라는 희한한 형태로 가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네티즌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네티즌이 소스를 제공하고 포탈의 에디터가 선택하여 올리는 것으로, 에디터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포탈 중심적인 체제가 UCC까지 흡수하면서 권력을 공고화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의 경우 하루 방문자가 천만이 넘는다 하고, 우리나라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절반의 초기화면이 네이버라고 합니다. 접속하면 제일 먼저 네이버를 보고, 거기 올라와있는 정보를 봅니다. 한국의 인터넷은 분산매체가 아니라 TV나 신문보다 더 거대한 대중매체가 된 셈입니다. 1~2천만 명이 네이버가 선정하는 똑같은 기사를 접하고, 선정된 검색어나 정보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물론 포탈은 그 정체성을 언론보다는 기업에 두고 있어서, 정파적 성향을 띠지 않고 중립성을 고수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사진 하나 올려도 후보들의 사진이 다 나오도록 편집하는 등 기계적인 중립에 신경을 씁니다.
한국 정치와 대선에서 UCC의 의미
이근: 그렇다면 UCC와 이번 대선과의 관계를 볼 때,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고 보십니까?
윤성이: 언론이 UCC의 영향력을 과대포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2002년 노사모의 경험에 대입하여 UCC가 대통령을 만든다는 식의 보도가 많은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과 2007년은 환경이 다릅니다. 2002년은 노무현 후보가 온라인에서 절대강자였고 그 이점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후보가 엄청나게 투자를 합니다. UCC 등 인터넷 매체가 선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겠지만, 특정후보에 대한 유, 불리를 따지면 한쪽에 집중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 2002년 노사모의 성공은 인터넷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원과 의사소통에 인터넷을 이용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였습니다. 지역주의 타파, 정치개혁 등 메시지가 공감을 얻은 것입니다. 그 메시지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것이지, 단순히 인터넷 때문은 아닙니다. 이번에도 UCC 활용방법보다는 어떤 메시지를 보낼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특정 후보가 메시지를 제시했을 때 포탈이나 다른 매체, 또는 언론에서 그것을 확산시킬 수는 있지만, 어떤 메시지를 받고 안 받는 것까지 포탈이나 언론이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론이 밑바탕이 되어야 메시지로서 힘을 얻는 것이지, 인터넷이나 일반 언론이 결정한다고 하여 의제로 설정되지는 않습니다. 정보유통구조, 또는 포탈의 권력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경배: 2002년의 경험에 대해서 지금 정치권은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첫째, 노무현 후보가 인터넷을 잘 이용해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네티즌들이 노무현을 선택한 것이고, 그 이유는 당시 개혁성향의 젊은 네티즌들이 바라는 요구와 정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가장 잘 맞았던 노무현 후보를 네티즌들이 선택한 것입니다. 인터넷만 잘 활용하면 네티즌이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둘째, 2002년에는 네티즌들의 시대적 요구가 있었고, 그 매체가 인터넷이었으며, 그들의 새로운 요구가 기성세대의 요구를 이긴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네티즌들 사이에도 뚜렷한 시대적 요구가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정 후보에 대한 호불호 수준일 뿐, 지도자상이나 정책적 요구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구도가 바뀔 수 없습니다. 역전이 있으려면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어야 하고, 그런 전선 형성의 핵심은 메시지입니다. 메시지가 네티즌의 여론을 타면서 가능성을 제시해야 하는데, 아직 대중이 갈망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블로그(blog)의 잠재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2년에도 포탈의 지배력은 꽤 컸지만 대선여론에는 별 영향이 없었고, 변방의 군소매체들에서 의견수렴과 폭발이 있었습니다. 그 역할을 이번에는 블로그가 할 가능성이 큽니다. 2002년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여론이 몰렸습니다만, 지금 게시판은 악성덧글과 광고로 기능을 상실했고, 담론 형성 기능은 블로그로 바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블로그 메타사이트인 올블로그(allblog)에 가보면,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이 자동으로 올블로그에 올라가고 공론장이 형성됩니다. 개헌논의 때에도 의견과 덧글로 토론이 붙었고, 지금 FTA가 화제입니다. 아직 정치적 담론의 비중은 낮고 IT나 문화 쪽이 많지만, 대선 같은 정치적 이슈가 나온다면 크게 확장될 것입니다. 과거 게시판 기반의 정치적 행동단위가 카페 등 커뮤니티 기반으로, 다시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 네트워크 기반으로 가고 있습니다. 블로그 같은 네트워크는 정치집단으로서 큰 폭발력을 가질 수 있으므로, 포탈과는 전혀 다른 영역으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포털 안에 있는 블로그를 이용하기 때문에 사실 블로거들에게는 주목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최근 정동영씨가 포탈서비스가 아니라 설치형 블로그에 속하는 티스토리블로그를 개설하여 포탈 영역 밖의 선도적인 네티즌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블로그는 텍스트, 사진, 유튜브 동영상 스크랩까지 기능이 다양하고 개혁적 성향이 많습니다. 포탈이 의제설정을 많이 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행동은 블로그 기반의 폭발력을 가진 단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UCC와 대선에 대한 평가 및 전망
이근: UCC와 대선, 정치 관련해서 전망이나, 추가하실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윤성이: 이번 대선은 2002년 보다 인터넷 선거 수준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블로그로 바뀌고 있다고 하셨는데, 노사모 시절 사이버 공동체가 형성되어 공론장 역할을 했지만, 블로그가 당시 게시판의 상호작용성의 수준에 이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봅니다. 개인 단위 정치참여로 바뀌어가는 중인데, 아직 시기가 많이 남은 탓도 있겠지만 정치나 선거 관련 공론의 장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UCC의 부작용 대처 방안에 있어서, 지금은 직접적인 대처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단속이나 실명제 등 직접적 대응을 하는데, 방향이 좀 잘못되지 않았나 합니다. 부작용과 긍정적 측면은 항상 공존하고 있는데, 긍정적 측면을 키우지 않고 문제만 해결하려 하니 전체적인 수준의 발전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정치적 메시지가 대두하지 않는 이상 네거티브 선거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의 UCC, 인터넷 선거전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대선처럼 메시지를 담은 전선이 형성된다면 그것을 중심으로 공론의 장이 형성됩니다. 메시지가 없는 상황이면 UCC는 부정적으로 활용되기 쉬우므로, 메시지를 만들고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결국 좋은 방향의 상승작용을 위해서는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민경배: 사례를 하나 소개하면, (2006년 미국 중간선거 당시) 번스 의원의 낮잠 동영상이 나왔을 때에는 그 의원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부시 대통령이 의회연설을 할 때 맥케인 의원이 조는 모습이 찍혀서 유포되었는데, 반응이 완전 반대였습니다. (부시의) 연설이 오죽 지루했으면 졸았겠느냐는 반응이 나온 것입니다. 민주당 의원이 조는 영상을 올렸던 네티즌은 그 의원을 겨냥했을 수도 있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네티즌들의 반응에는 사회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자유의지가 작용합니다. 특정 장면만 부각해서 찍어도, 정치사회적 반응은 연출의도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UCC가 의도적으로 기획 제작되어도, 여론화 과정에서 순수한 UCC 메커니즘이 다시 작동합니다. 여전히 정치적, 감성적 조작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집단 지성과 맞물린 역동적 과정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윤성이: 미국 중간선거에서 마카카(macaca) 동영상 하나 때문에 조지 앨런 후보가 탈락했다는 주장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이미 지지율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고 있었고, 승리한 상대진영도 그 UCC 덕분이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조지 앨런 후보 측에서 상대방에 대해 도덕성 공격 등 네거티브 선거전략을 쓴 것이 오히려 지지율에 악영향을 끼친 측면이 큽니다. UCC 하나로 선거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민경배: UCC 문화의 형성과정에서 가장 큰 위협은 '신뢰'입니다. UCC가 의미 있는 공론장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정보를 중심으로 한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신뢰가 존재해야 하는데, 네티즌 스스로 그것을 훼손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하철 가짜 결혼식 사건부터, 개풍녀, 여중생 성폭행 동영상 등 조작으로 드러난 소위 '낚시성 동영상'이 많아서, 양치기소년 효과가 일어나 좀처럼 믿지 못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차후 정치동영상이 나온다 해도, 순수 UCC라 하더라도 믿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불신감이 커져서 기본적인 신뢰를 잃게 된다면 심각합니다. 언론사조차 속아서 추후에 정정보도를 하는 등, 신뢰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근: UCC와 정치에 관한 많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는 배긍찬 교수(외교안보연구원)과 박사명 교수(강원대학교)를 모시고 '동남아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가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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