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누적 승객 1억명 돌파는 개통 이후 3년 21일 만의 기록으로, 이는 일본 신간선의 3년 3개월17일, 프랑스 TGV 지중해선의 5년보다 앞서는 것이다. 또 KTX는 개통 첫해인 2004년 1988만 명이던 이용객 수가 2005년 3237만 명, 2006년 3649만 명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한국철도공사는 누적 이용객 1억 명 돌파를 계기로 21세기 한국의 교통정책은 철도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역설하고 있다. 세계적인 환경,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고 철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철도는 대중 광역교통수단, 나아가 대륙으로 뻗어가는 확장성으로 갈수록 주목받고 있다는 것.
<프레시안>은 '철도 르네상스'를 견인하는 KTX 개통 3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철도산업의 현주소와 미래, 급격히 변화하는 철도문화를 조명하는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KTX 3주년 특집기획>은 4월 말과 5월 말 두 차례씩 총 4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지난 2004년 4월1일 KTX가 개통된 지 3년여 만인 21일 누적 이용객이 1억 명을 돌파했다. 국민 1인당 2번 이상을 탄 셈이다. 1일 이용객도 개통 초기 7만 명대에서 1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에 따라 올해 KTX의 연매출은 1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KTX는 개통 이후 새마을호보다 비싼 요금에 역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이 적어 상당 기간 이용객이 예상보다 적었다. 정부에서는 KTX 개통 전에 1일 이용객 14만 명을 기대했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정시성'과 '안전성' 그리고 역 주변 지역과의 연계수단이 보강되면서 KTX 사업이 제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철도공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최근 우리나라 교통정책의 축이 도로 중심에서 철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단순히 KTX 사업이 성과를 올리고 있어서 나온 큰소리가 아니다. 북한, 중국과 러시아, 나아가 유럽까지 연결되는 대륙철도 시대를 대비하자는 큰 그림에서만 철도 산업 육성론이 제기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환경과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경제적 타당성도 문제가 없다. 한 나라 안으로 국한해 보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라면 광역 교통망이 철도 중심으로 이뤄져도 투자 대비 수익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교통정책이 환경, 에너지 위기의 주범으로 불리는 도로 중심으로 되어있는 것은 매우 기형적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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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는 1980년대 이후 심한 교통정체, 환경오염 그리고 높은 에너지가격으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로 교통정책은 공급위주에서 수요억제위주로 바뀌었고, 혼잡요금, 주행세 부과 등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유럽 등 철도 선진국에서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지속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철도의 자립기반을 구축하는 등 '철도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친환경성이 뛰어난 철도의 부흥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승용차의 지속적 증가로 에너지 소비 및 대기오염 증가 등 환경이 크게 훼손되고 있고, 도로 위주의 수송체계로는 교토의정서에 의한 이산화탄소(CO2)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도 이런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사장은 "유럽과 일본의 경우 도로 대 철도 부문 투자 비율이 1 대 2 수준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5 대 1 수준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면서 "광역 대중교통 수단인 철도가 발달해야 국민들의 이동권과 거주지 선택권,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다는 의미에서 철도 발전은 사회민주화의 척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고속철도는 승용차를 능가하는 속도 경쟁력을 바탕으로 21세기에 도로 위주의 교통정책을 지난 19세기 때처럼 철도 위주의 교통정책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새로운 변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세계 최초로 고속열차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철도의 우위를 입증하는 자료가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신간선 철도의 경우 1인을 1km 운송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소비량에서, 철도를 100으로 할 경우 항공은 427, 버스는 183, 자동차는 613으로 철도가 자동차의 1/6에 불과하다.
또 1인을 1km 수송할 때 이산화탄소배출량을 보면 신간선을 100으로 할 경우 항공기는 500, 버스는 317, 자가용 승용차는 750으로 신간선이 승용차의 1/7.5 정도이다.
이용객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측면에서도 철도가 우위를 보이는 거리 범위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교통경제학에 따르면 철도의 경우 여행시간이 3시간 이내 여행거리 700km 이내에서는 항공과 도로에 비해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KTX, 중장거리 대표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잡아
KTX가 속도 경쟁에서 승용차는 물론 항공 등 다른 교통수단에 앞서 있다는 것은 지난 3년간 통계로도 확인된다.
400km 권역에 속하는 항공 수요가 상당 부분 고속열차로 전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KTX가 중장거리(300~400km대)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분석한 분담률 조사에 따르면, 중·장거리 국내 대중교통시장(서울-대구, 서울-부산)에서 KTX 수송분담률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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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구, 서울-부산의 경우 항공과 고속버스 이용객이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KTX의 분담률은 50%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2006년 1~10월까지의 서울-부산간 KTX 분담률은 60%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는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KTX의 사업적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일까. 만일 그렇다면 철도 위주의 교통정책을 위해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어렵지 않을까.
이에 대해 철도공사는 KTX 운영에 따른 영업 수지 자체가 적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철도공사는 운영사업의 주체일 뿐인데, 교통기반시설에 대한 부채까지 대폭 떠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방창훈 철도공사 여객마케팅팀장은 "KTX 사업에 들어간 12조 원 중 4조5000억 원을 부채로 떠안고,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선로사용료로 연간 약 5,500억 원을 내다보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철도공사는 교통기반시설에 대한 원리금 부담으로 부채가 누적되는 악순환을 벗어나는 방안을 놓고 정부와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철도 시설에 대한 부채 문제와 철도공사의 경영합리화만 '철도 르네상스'를 실현하기 위해 해결되어야 할 과제는 아니다. 철도가 시민들의 대표적인 대중 교통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활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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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서 KTX는 새마을호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KTX가 새마을호 이전까지와 확연히 다른 점은 속도 뿐만이 아닌 것이다. KTX는 역을 중심으로 하는 교통문화를 급격히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KTX 거점 역에 맞게 신축된 서울역과 용산역은 백화점과 대형할인점,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면서 소위 '유비쿼터스'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지방 거점 역으로는 대전역이 대표적이다. 대전은 KTX 개통으로 서울에서 50분만에 도달할 수 있게 되면서 시간거리로는 '서울시 대전구'라고 할 만한 곳이 되었다.
역사에 사무용 빌딩 역할을 하는 공간까지 마련되면서 기업의 각종 세미나가 '서울시 대전구 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방창훈 여객마케팅팀장은 "예전에는 전사적인 회의를 한 번 하려면 지방에서는 본사가 있는 서울에 가기 위해 1박2일 출장을 가야 했지만, 이제는 당일 업무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속철도가 정차하는 도시는 반나절 생활권으로 변모, 국토 공간의 거리감마저 재편되고 있다. KTX 거점 역은 유동인구가 급증하면서 역세권 개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KTX는 대전과 천안처럼 서울에서 1시간 이내에 불과한 지역에서는 통근, 통학하는 교통수단으로 갈수록 각광을 받고 있다. KTX의 요금이 새마을호에 비해 비싸 통근, 통학비가 만만치 않지만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부담과 정기권 할인 폭을 생각하면 비용 대비 경쟁력이 있다.
통근, 통학 이용객들 대부분이 KTX가 '움직이는 사무실' '사색공간과 독서실 기능'까지 겸비하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한다.
운행 최고속도가 300km를 넘나 들어도 속도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숙한 승차감을 유지하기 때문에 열차 안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책을 보는 등 기본적인 업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이동통신 등 IT 기술 발달과 결합해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열차 이용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승차권 발매 방식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데, 온라인 자가발권시스템으로 가정에서 인터넷을 통해 예약, 결제 후 개인 프린터로 인쇄하던 시스템인 '홈티켓' 을 시작으로, 지난 2005년 10월부터 'e-티켓' 서비스가 시행 중이다.
'e-티켓'은 특수한 IC 칩이 내장된 KTX 패밀리카드와 휴대폰을 가진 고객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예약 등 승차권 정보를 미리 저장해 별도의 티켓 발행이 필요 없게 하는 시스템이다.
지난해 9월부터는 첨단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e-티켓 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휴대폰 SMS(문자메시지)'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
SMS 서비스는 예매 열차와 좌석정보 등을 휴대폰으로 전송받아 사용하는 신개념의 승차권으로, 문자 메시지에 고유일련번호가 포함돼 있어 승차권의 진위확인이 가능하며 취소, 반환 정보로도 활용될 수 있다.
철도공사는 이 시스템이 정착될 경우 고객의 승차권 구입 및 이용시간 절약 등 철도이용 편익증대와 역 창구 혼잡 완화, 업무량 감소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MS서비스는 지난해 12월 1만6,000 여건의 발매매수를 기록한 뒤 올해 들어 매달 4만 건 이상을 기록,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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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를 관광상품으로 연계시키는 마케팅 활동도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호남선 목포역에서는 제주도 카페리호와 연계된 '크루즈 상품'이 각광을 받고 있으며, 부산에서 일본 후쿠오카를 연결하는 크루즈 상품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항공 요금이 크게 오르면서 KTX-크루즈 연계 상품들은 30% 이상 저렴한 가격 경쟁력으로 예약이 힘들 정도의 인기를 끌고 있다.
오는 7월이면 영화 객실까지 등장한다. 승차권 운임 이외에 7,000원의 영화 관람료를 별도로 지불하면 영화를 보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마저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KTX의 '정시성'과 '안전성'이 확립되면서 특히 명절 때는 독보적인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명절 때면 각종 교통사고가 더욱 빈번한 도로에 비해, 철도는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을 정도로 안전성을 과시한 것은 물론, 부산까지 3시간 이내에 도착하는 정시성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국제철도연맹(UIC)과 공동으로 제1회 아시아철도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세계철도차량컨퍼런스(제9회)를 처음으로 한국에 유치하며 역량을 과시한 이철 사장이 KTX를 중심으로 한 '철도 부흥'의 초석깔기 작업을 내년까지 예정된 임기 내에 어떻게 마무리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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