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07년 5월 14일 오후 4~6시
- 장소: 미래전략연구원
- 사회: 이근 교수(미래연 원장,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 참석: 김흥종 박사(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팀장), 최진우 교수(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 한국에서 유럽의 위치와 중요성
이근: 먼저 한국에서 유럽이 점하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유럽이 중요한 지역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의 인식은 어떠하며 무엇이 왜 중요한 지 평가해주십시오.
김흥종: 유럽이 한국에서 저평가되어 왔다고 하는데, 경제적으로는 저평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 미국과 일본의 절대적인 위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럽과는 교류가 적었습니다. 유럽으로의 수출과 투자는 90년대까지도 별 수준이 아니었고, 90년대 후반부터 대유럽 수출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가품부터 점점 확대되어, 2005년에 처음으로 대미 수출을 넘어섰고, 2006년에는 유럽이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 제2의 무역대상이 되었습니다.
투자 측면을 보면, 90년대 초까지는 일본의 대한국 투자가 가장 많고, 그 이후 미국이었다가 외환위기 이후 유럽국가들이 우리나라에 활발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누적규모로 볼 때 405억 불로 현재 1위입니다. 우리의 EU에 대한 투자도 94억 불로, 이 역시 굉장히 높은 수준입니다. 교역과 투자의 양으로 볼 때 EU는 이미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관광 등 인적 교류도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9.11 사태 이후 유럽으로의 여행은 더 늘었습니다.
유럽은 한국의 제2 교역상대…대한국 투자, 미국 일본보다 많아
최진우: 관광지로서의 호감도는 유럽이 제일 크고, 다음이 미국, 동남아인 듯합니다. 한국 사회에 유럽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중요성이 커졌음에도 아직 이를 잘 모르고, 외교적으로 주변 4국의 중요성만 강조하는데다 유럽하고는 정치적 현안이 걸린 문제도 없어서, 경제적 상호의존에 비해 정치 사회적 협력관계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다만, DJ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이나 북한문제에 있어 유럽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2000년 ASEM회의 때 DJ가 유럽 정상들에게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촉구했고, 그 후 많은 유럽 국가들과 유럽연합(EU)이 북한과 수교했습니다. 당시 대북정책에 있어서의 이견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있을 때였으므로 유럽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고 그 기대감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EU는 동북아 정세나 한반도의 상황에 대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역량도 없거니와 그럴 용의도 없는 터라 아무래도 우리의 외교적 관심사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근: 한국은 경제, 정치, 사회 전반에서 미국에서 생산되는 담론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유럽에도 학문적 담론이나 경제 모델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미국적 논의가 주를 이루고 유럽의 패러다임은 잘 논의되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흥종: 미국적 담론만 소비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미셸 푸코 등 유럽 사람들의 생각이 직접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 상태에서, 이를 미국식으로 해석하고 분석한 담론이 우리나라에 수입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말한 내용이 미국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이미 지식의 수입국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만, 과거와 같은 지식수출국의 위상은 현저히 떨어져 있습니다.
최진우: 미국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우리 학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미국적 관점을 가지고 유럽을 보는 담론이 훨씬 지배적입니다. 유럽연구의 패턴을 보면 미국 유학파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려 하는데, 유럽에서 공부하신 분들은 역사적 접근방법을 활용하거나 심층적 사례연구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아, 서로 언어가 맞지 않아 불편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보다 활발한 대화를 통해 서로가 가진 장점을 수용해 연구의 질적 향상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흥종: 문제점도 있지만, 장점도 많습니다. 예컨대 디드로를 연구한다고 할 때, 프랑스에서는 디드로의 세계에서 헤매게 되지만, 미국에서는 현대 영어로 명쾌하게 정리되고, 다양한 의견도 접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해석을 한 후 현지에서 심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지식생산자로서의 유럽과 미국의 차이를 생각할 때, 유럽에서 유학하신 한국 분들을 보면 사변적, 역사학적 어프로치가 많으나 그것이 유럽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도 미국과 비슷한 접근이 많고, 영국의 경우 그런 방식이 자신들의 본류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유럽에 가시는 분들이 주로 사변적인 경향을 가진 분들이어서 한국에서 받아들이는 유럽의 지적 지도가 왜곡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진우: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국가에서 그들의 지식을 직수입한다고 해도 언어적 장벽 때문에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는 주로 영어 구사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서 유럽 쪽 언어를 배우는 데 대해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유럽 쪽 연구물을 직접 소화하지 못한 채 미국에서 영어로 걸러진 후 받아들이는 상황입니다.
한국 인지도, 동구권 제외하면 아직은 미미
이근: 그렇다면 유럽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느 정도 된다고 보십니까? 아무래도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나 지리적 요소가 작용하는 측면이 있을 듯합니다.
김흥종: 최근 관심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예전 EU 보고서에서는 대외관계를 생각할 때 주변의 중동국가들이 우선이고, 카스피해를 지나 ACP국가들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비슷한 수준에 러시아나 CIS가 있고, 동아시아는 없었습니다. 일본은 동아시아가 아니고 따로 고려합니다. 93년에 아시아 전략보고서를 제작하고 아시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나 인도와 ASEAN 위주였습니다. 중국은 최근에 급부상한 대상이고, ASEAN은 과거 식민지였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아프리카 짐바브웨보다도 관심이 떨어졌었는데, 최근 북한 및 경제관계 때문에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유럽도 아시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점차 동아시아에서 EU 존재 부각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최진우: 동구권에서는 한국의 인지도가 높은 편입니다. 대우, 삼성, 엘지 등이 진출해 있어 한국을 금방 압니다. 그렇지만 서유럽 쪽은 사정이 다릅니다. 2001년 여름 유럽에 가 있는 동안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현지 사람들에게 제 국적을 추측해보라고 하면, 먼저 일본 아니냐고 하다가 아니라고 하면 중국이냐고 묻습니다. 그래도 아니라고 하면서 다음으로 내심 한국이냐고 물으리라는 기대를 했는데, 사람들의 다음 질문은 "그러면 도대체 어디냐"였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 사람들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았던 거지요. 그러던 것이 2002년에 갔더니 어딜 가나 월드컵의 영향으로 한국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3, 4년에 가니 또 모릅니다. 월드컵이 단기적으로 인지도를 높였지만, 그것을 이어갈 수 있는 이벤트나 조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또 동구권을 제외하면 인지도가 바닥이 아닐까 합니다.
2. 유럽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트랜드 (프랑스 대선, 유럽연합의 현주소)
이근: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최근 유럽을 규정하는 트렌드를 짚어보았으면 합니다. 전체를 관통하는 트렌드는 어렵겠지만, 개별 국가를 포함하여 경제, 사회 또는 정책의 주요 트렌드를 소개해주십시오.
김흥종: 2000년 리스본 아젠다가 나왔을 때 유럽을 2010년까지 지식기반의 통합되고 경쟁력 있는 사회로 만들자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2004년 네덜란드의 윔 콕 전 수상이 EU에서 요청받아 2005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2010년까지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평가하고, 경쟁력 향상을 먼저 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윔 콕 전 수상은 94년 네덜란드 수상이 되었고, 그 전 노사정 연정 때 노동계 대표였던 사람이지만, 결국 우파적 시각을 담은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아직 2010년까지 목표대로 경쟁력 있는 사회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좌파든 우파든 현재보다는 우파적 경향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입니다. 영국 집권당(노동당)도 좌파지만 우파적 성향이고,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럽 우선회, 판단 일러…신자유주의화는 절대 아냐
이근: 한국에서는 유럽이 점차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평가해 주시지요.
최진우: 지금 전체적으로 우파로 간다고 하지만, 성향은 시기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전체적인 트렌드를 잡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지난 20년 동안 유럽이 오른쪽으로 계속 가고 있는가의 여부는 딱 잘라 얘기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만 하더라도 80~90년대에 우파가 집권했다가 다시 좌파로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유럽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사적 흐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기조를 이룬다고 가정할 때 많이 사용하는 측정 지표는 GDP 대비 공공지출인데, 80년대 이후 계속 높아져 왔습니다. 유럽의 공무원 숫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작은 정부론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2000년대 초반에 들어와 GDP 대비 공공부문 지출이 OECD 국가들에서 거의 일제히 꺾이고 있습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80% 정도가 2000년대 초반에 줄어들었습니다. 이 트랜드가 계속 갈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20년간 공공지출의 변화로 볼 때 신자유주의화가 우리 생각처럼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르코지나 메르켈이 등장했으나, 제도의 관성과 기존 이익집단의 존재로 트렌드가 확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지난 20년이 신자유주의화의 일방적 진행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최근에 와서는 그러면 유럽이 전반적으로 우파로 바뀌고 있느냐, 그것도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작년에 이탈리아에서는 좌파가 집권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모두 박빙의 차로 집권을 합니다. 이탈리아 프로디 총리도 아슬아슬하게 이겼고, 독일의 기민당도 그랬고, 이번에 사르코지도 53 대 47이어서, 반드시 우파의 아젠다가 승리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선거는 이른바 '종합예술'이라 선거를 아젠다의 선택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김흥종: 유럽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사회보장이나 사회통합 등 유럽적 가치에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파적 성향도 우리의 생각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주당 35시간 노동을 시행하고 있는데, 사르코지의 우파적 개혁이란 35시간 이상 노동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어 있는 부분을 가능하게 해 주는 정도를 말하는 것으로, 한국의 인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또 기업이 주당 35시간 노동을 준수하면서 노사 합의 하에 일별 노동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를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던 부분을 고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다, 미국식으로 간다고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유럽의 우파조차도 우리보다는 좌측에 있어"
이근: 유럽의 좌파 헤게모니가 한국의 생각보다 더욱 공고하게 제도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아도, 유럽보다 한국경제가 훨씬 유연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요?
김흥종: 한국은 고용 노동자에 대한 EPL(Employment Protection Legislation: 고용보호규제) 지수가 영국, 미국과 프랑스의 중간 정도에 있습니다. 한국이 영국보다도 상당히 고용보호가 잘되는 나라인 셈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최저임금수준이 굉장히 낮습니다. 즉 조직(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호에 있어서는 상당히 선진적이지만, 노동시장의 이분성이 굉장히 심한 것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입니다. 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는 좀 유연하게, 그렇지 않은 노동자는 좀 더 보호해야 합니다.
이근: 한국에서 좌, 우파라 하면 분배와 성장, 반미와 친미 등으로 가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기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이 미국식의 신자유주의를 지향하기 전에 유럽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최진우: 유럽에서도 미국에 대한 인식은 변수로 작용하며, 성장과 분배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무게중심을 생각할 때 유럽은 애당초 상당히 분배 쪽으로 가 있는 상태에서 좌우를 구분하고 있어, 유럽의 우파조차도 우리보다는 전체적으로 좌측으로 가 있는 셈입니다.
김흥종: 한국이 미국식을 지향하더라도 사회보장제도 등을 도입하면서 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선택이 필요한 사안도 있습니다. 노동시장에서의 교육제도(재교육)와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미국에는 없고 유럽에 있는 것입니다. 미국식의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면 그런 정책은 필요 없다고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별다른 논의 없이 이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보다는 높은 수준인데 노무현 정부가 더욱 유럽 방식으로 간다고 표명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제도에서 유럽 수준 전 단계에 미국이 위치해 있으므로 그 방향을 지향하면 거쳐 가게 된다고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복지국가, 좌파만의 전유물 아냐…유럽 우파도 복지철학 갖고 있어
최진우: 복지국가를 좌파만의 아젠다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처음 복지국가의 단초가 된 것은 빅토리아 시대 구빈법(Poor Law)이었고, 본격적인 복지국가와 노동자 보호는 비스마르크 시기 맑시스트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왔습니다. 독일 기민당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복지 프로그램이 발달하는 등, 유럽 우파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체적 복지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좌파와 프로그램상의 차이는 있지만 공감대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 복지국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우리에게는 유럽의 좌, 우가 실제와는 다르게 우리의 잣대 속에서 잘못 인식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김흥종: 그러나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참여정부 들어 유럽에서 사회보장제도를 많이 도입했습니다. DJ 때 기초생활보호법을 도입할 때만 해도 대상자가 많지 않았는데, 제도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많이 늘었습니다. 어느 제도나 처음에는 대상자가 적지만, 점점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계속 도입만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국가별로 우파의 성향도 조금씩 다른데, 프랑스 우파는 드골리스트(국가주의)이고, 영국 우파는 과거 친유럽, 신자유주의적 전통이었다가 대처 이후 반유럽, 반EU 성향을 띠어 왔습니다. 오히려 좌파가 친유럽, 친EU가 되었는데, 못사는 지역에 EU 펀드가 들어가면서 EU의 이미지가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영국 우파는 반유럽적이고 구태의연한 이미지였다가, 최근 캐머런이라는 젊은 당수가 들어서면서 빅토리아 시대 자선(charity) 정신 등을 되살려 과거로 회귀, 득세할 전망을 보이고 있습니다. 독일 우파는 프랑스처럼 국가주의로 갈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가 알스톰의 외국 합병을 막는 등 국가주의적 경향을 많이 보여 왔으나, 독일 우파는 종교적 자비를 내세우는 방식을 고수합니다. 친유럽적, 유럽통합에 대한 전형적인 자세를 가진 미지근한 우파입니다.
이근: 좌우가 서로 균형을 맞추어 정책을 바꾸어간다는 면에서 상당히 안정된 구조가 아닌가 합니다. EU(유럽통합)과 관련한 사회적 트렌드로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최진우: EU 수준의 관심사로는,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 설정이고, 대내적으로는 유럽 내 국가나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가 표출되고 있습니다. 먼저 유럽 내 다양한 민족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공존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또 주로 이슬람권과 동구권으로부터 유입되어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부유하는 계층이 되면서 문제가 야기되고 있습니다. 이민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사르코지 당선에 반대한 일부의 시위라든지, 작년 프랑스에서 경찰에 쫓기다 감전되어 죽은 청년에 관련한 대규모 폭동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도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대외적 문제는 이라크전 이후 미국과의 관계 설정입니다. 냉전 종식 후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긴장관계가 표면화되고 심화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김흥종: 이민 문제는 상당히 심각합니다. 미국은 지금도 이민국가로서 이민으로 성장동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유럽국가들은 국민국가를 형성한 역사가 있고, 근대국가 형성 후 고착된 체제이기 때문에 이민은 불편한 현상이 됩니다. 대단히 예민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사르코지가 득세한 것도 하급 백인 노동자, 자영업자, 하급 공무원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지금까지는 가장 관대한 이민정책을 써 왔습니다. 이민은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것이고, 사회통합을 위한 대단히 어려운 과제가 될 것입니다.
미국, 이라크전쟁 이후 유럽의 유용성 새삼 느껴
이근: 사르코지도 헝가리 이민자 출신인데 강한 이민정책을 쓰는 것은 특이합니다. 결국 이민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라 예민한 듯합니다.
미국과의 관계는 논점이 무엇인지요? 9.11 당시 미국에서도 올드(old) 유럽과 뉴(new) 유럽을 구분하기 시작했는데, EU에서는 대미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최진우: 9.11 직후 유럽은 미국을 굉장히 지지했었습니다. NATO 규약 제5조의 집단방위체제 가동을 위해 유럽 국가들이 모여서 결의하려고 했었는데, 미국이 시큰둥하게 나오는 바람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유럽이 끼어들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고 생각했는지 호의를 물리쳤던 것입니다. 그래도 유럽이 아프간까지는 미국과 같이 갔습니다만 이라크에서 갈라서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라크 문제를 두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의 외교정책결정자들 간에 감정이 많이 상한 상태가 돼버려 당분간은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로버트 케이건이 얘기했던 것처럼 '화성에서 온 미국'과 '금성에서 온 유럽' 사이에 세계관, 가치관, 이해관계에서 모두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미국과 유럽 사이에 존재하던 인적 네트워크가 많이 손상된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미국도 이라크 전쟁을 하면서 유럽의 지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수행하는 외교정책이 정당성의 문제로 말미암아서 여러 어려움들을 겪었기 때문에 유럽의 유용성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도 국제무대에서 슈퍼파워인 미국에게 소외됨으로써 겪어야 했던 불편함이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당분간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경주될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길게 보면 사이가 봉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유럽적인 외교의 정체성을 개발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유럽이 규범적(normative) 파워를 가지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차별화된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미국은 일방주의적이고 무력에 의존하지만, 유럽은 다자적 틀 속에서 무력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미루어 놓는, 다른 형태의 파워를 추구한다는 식입니다. 물론 유럽방위안보정책이라 하여 자체적 군사력을 가지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래도 무게중심은 소프트파워 쪽에 많이 가 있고, 앞으로 미국과 방법론에 있어 갈등 양상이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근: 언론 보도에서 사르코지는 친미적 태도를 취할 것이라 하는데, 블레어는 미국과 너무 가까워서 인기가 떨어진 사례입니다. 프랑스의 대미정책은 무엇이며 친미란 어떤 의미입니까?
김흥종: 블레어는 미국을 너무 가까이해서 손해를 보았습니다. 후계자로 지목되는 고든 브라운도 대미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겠지만 오버액션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르코지는 미국과 가깝게 지내면서,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에서 프랑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려 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 후 유럽국가들은 중동에서 독자적 파워가 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르코지도 현실주의자이므로 중동정책에 있어서는 미국에 가까이 갈 것입니다.
최진우: 영국 이야기를 좀 하면, 블레어는 윤리적(ethical) 외교정책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노동당 당수로서 영국의 수상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블레어 집권 이후 국제문제에 영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 건수가 2차대전 이후 블레어 집권 전까지 영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 건수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많습니다. 윤리적 외교정책이라 하면서 군사력을 더 사용한 셈이고, 그 사례가 이라크였습니다. 그렇지만 블레어의 정책에는 진정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우선 미국을 설득하려 했는데 그게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고, 어차피 미국의 군사행동을 말리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한다면, 그래도 미국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함께 행동하는 것이 미국에 대한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더 가짐으로써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여지를 갖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블레어가 인기를 잃은 이유는 정보를 은폐, 왜곡했다는 것인데, 만약 명분이 정당했다고 판명되었다면 그렇게까지 인기를 잃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집권 초기부터 윤리적 명분을 내세웠고, 코소보에도 별 이해관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명분을 내세워 들어갔었습니다. 이러한 윤리적 외교정책도 미국의 이익기반 정책과는 약간 다른, 영국의 규범적 파워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근: 그러면 유럽통합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워낙 큰 주제입니다만, 최근 유럽통합 관련 이슈 중에서 한국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김흥종: 경제 관련하여, EU가 작년 10월에 신 통상정책을 발표하였습니다. European Commission이 만들어서 11월에 이사회의 승인을 얻었는데, 내용이 마치 USTR 보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세계에서 유럽의 수출이 잘 되도록 시장접근을 최대화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다자간 협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양자 관계에서도 시장개방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와 양자관계를 할 수는 없으므로 대상기준을 정했습니다. 첫째, 시장장벽을 줄여서 유럽이 효과를 보게 될 대상. 둘째, 다른 나라와 양자관계가 많아서 무역전환효과로 인해 유럽이 피해볼 우려가 있는 국가. 셋째, 양자관계를 통해 효과를 볼 수 있는 나라입니다. 첫 번째가 MERCOSUR, 한국, ASEAN 등이고, 두 번째가 GCC(Gulf Cooperation Council), 인도 등입니다. 한국은 시장접근을 요구할 대상으로, 협상할 때 한국정부처럼 양쪽에 이익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이 이익을 올려야 함을 내놓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피터 만델슨(Peter Mandelson)이라는 영국 출신 통상장관(Trade Commissioner)이 취임하여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고,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시장개방을 요구할 계획을 내놓고 있습니다. EU에도 DG Trade에 USTR에 상응하는 조직이 있고, 슈퍼 301조에 해당하는 TBR (무역장벽규정) 등이 있습니다.
이근: 유럽헌법이나, EU확대 등 보다 심화된 이슈 중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최진우: 한국 학생들은 유럽통합을 왜 하는지, 정말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현실주의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유럽통합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짚어내기는 힘들지만, 많은 발전과 성과가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유럽연합이 삐걱거리는 것을 볼 때마다 조금 있으면 해산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하기도 하는데, 쉽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조밀하게 제도화되어 굴러가는 중이며, 헌법조약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조정을 거쳐 결국 될 것으로 봅니다. 헌법조약이 프랑스에서 부결된 이유가 '폴리쉬 플러머(Polish Plumber)'로 대표되는, 이민자로 인한 실업률 증가였습니다. 그러나 노동력 이동에 따른 실업률 증가는 그다지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오해로 인한 측면이 크고 정치 게임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EU는 27개국으로 확대되었고 통합도 심화될 것입니다만, 헌법조약이 체결된다고 해서 한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간 협약의 성격이 크므로 하나의 국가형태로 나아가는 도약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미국처럼 하나의 국가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으며,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 것입니다.
김흥종: 유럽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가 서비스 시장입니다. 폴리쉬 플러머로 대표되는 서비스시장 통합은 거의 진척이 없습니다. 금융 등 대다수 서비스는 아직 국가별로 그대로 있고 각각 감독기구가 있습니다. 인력 서비스도 노력에 비해 개방이 안 되고 있습니다. 폴란드 배관공이 프랑스에 와서 프랑스 배관공과 똑같이 보수를 받아야 한다면 누가 쓰겠습니까? 인력 이동이 수월하게 되려면 싼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게 가능해야 하는데, 임금을 동일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좌파의 주장입니다. 우파는 싼 임금도 허용하자고 합니다. 서비스의 자유이동이 되려면 임금의 10분의 1을 받는다고 해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원칙적으로 폴란드 배관공이 프랑스에 와서 수임료를 똑같이 많이 받고, 질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부가가치세(VAT)도 다르고, 과세를 하는 곳도 달라서 서비스 이동이 어렵습니다. EU 내에서 원칙을 정해서 소비국에 돈을 내기로 했지만, 한국 같은 제3국에 적용할 때는 또 문제입니다. 기업이 한국에서 세금을 내고 갔는데 소비국에서 또 내야 하는 것입니다. 헌법 같은 거대담론이 아니더라도, 과세기준 등 경제 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논의할 부분이 많습니다.
이근: 공동안보정책과 관련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최진우: 공동안보정책은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 계기가 99년 코소보 전쟁입니다. 93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하면서 CFSP(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가 유럽연합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서 'uncommon foreign policy'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99년 코소보 사태도 NATO라고는 했지만 결국 미국 군사력이 들어가서 해결했고, 5% 정도만 유럽 군사력이었던 것에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99년 블레어 수상과 시라크 대통령이 생 말로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 동안 영국은 철저히 대서양주의에 입각해서 미국 주도의 NATO 중심으로 유럽 안보를 구상했으나, 생 말로에서 프랑스의 유럽주의를 일부 수용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이 개입할 용의가 없을 때 독자적으로 안보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인식한 것입니다.
2000년 쾰른 정상회담에서 신속대응군 창설을 합의했고, 2003년에 ESDP(European Security and Defence Policy)가 나왔습니다. 재정 사정(EU는 유럽 전체 GDP의 1.2% 정도 내에서만 예산을 운용할 수 있게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체적인 방위비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상 통일된 체계를 갖춘 방위시스템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국가간 협력체계는 상당히 진전했다고 봅니다. CFSP가 미국처럼 군사력이 뒷받침된 것은 아니지만, 규범적 파워로서 공동의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은 상당할 것입니다.
3. 한-EU FTA 협상의 진행
이근: 한-EU FTA의 주요 쟁점은 무엇이며, 협상의 진전 속도와 효과 등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미 FTA와 비교해 본다면 어떻습니까?
김흥종: 한-EU FTA 1차 협상이 끝났습니다. 1차 협상 끝나고 나니, 미국처럼 스트레스 받지 않고 농산물과 투자제도 등 뺄 것은 다 빼고 상품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서비스는 개방할 것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안 하는 포지티브(positive) 리스트로 가자는 것이 EU의 주장인데, 오히려 우리나라가 안 할 것만 명시하고 다 개방하자는 네거티브(negative) 리스트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항상 포지티브 리스트를 해 왔는데, 한국이 네거티브로 하자 하니 당황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포지티브로 가겠지만 전략적으로 네거티브 리스트를 제시한 것이고, 한미 때 네거티브로 했기 때문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EU가 네거티브를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한미 FTA 상황과는 많이 다릅니다.
유럽은 관세 수준이 높습니다. 일본은 평균 3.1%, 미국 3.7% 인데 유럽은 4.2%이므로 철폐할 경우 효과가 큽니다. 게다가 우리가 많이 파는 상품의 관세가 높은 상황(자동차 10%, 영상기기 14% 등)이어서, 그런 품목에 대한 관세가 낮아지면 우리의 수출 여지가 더 많아져서 이익도 많고, 규모도 클 것입니다. 예민한 문제가 몇 가지 있었으나, 법률시장 개방 등은 이미 미국과 타결하면서 가이드라인이 생겨서 협상하기는 수월해졌습니다. 예민한 분야가 줄어들고 남은 분야도 많이 해결되어서 빨리 진척되고 있습니다. EU에서 회원국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올해 안에 3~4번 또는 내년 초까지 진행하면 성사될 것으로 봅니다.
이근: EU에서 포지티브 리스트를 적용해서 개방하고자 하는 분야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김흥종: 금융, 법률, 회계, 운수 창고업 등에 포지티브 리스트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법률의 경우 한미 FTA 때 5년 안에 개방하는 것으로 해놓아서 동일하게 하기로 되었습니다. 금융은 몇 가지 이슈가 있는데, 보험의 경우 영국이 매우 강력합니다만, 미국과 할 때 국경간 거래를 허용했기 때문에 EU에도 개방하면 국내시장에서 경쟁이 격화되고, 우리에게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우리 측에서는 서비스 관련해서 간호사 등 인적 교류를 위한 자격인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상호인증을 아직 역내에서만 하고 있어서 확실하지 않습니다.
상품 중 가공농산물인 치즈, 요구르트, 전지분유, 분유가루 등 유제품을 개방하라 하는데, 국내 업체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냉동 닭고기, 냉동 고등어, 냉동 돼지고기 등도 논의되고 있는데 양돈협회가 반대합니다. 돼지고기 국내 자체 공급은 20% 정도이고 이미 80%가 외국에서 들어오고 있는데, 칠레 FTA 이후 칠레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정부의 생각은 한-EU FTA해서 돼지고기를 개방해도 칠레로 넘어간 부분만 돌아가고 국내 업계의 피해는 없다고 보지만 양돈협회의 주장은 다릅니다. 와인은 미국의 경우와 같이 즉시 철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검역과 쇠고기 관련 문제는 EU측에서 논외로 하자고 했습니다.
이근: 통상절차법 관련하여 원래 공청회 등 절차가 있는데 한-EU FTA는 어떻습니까?
김흥종: 한-EU FTA 관련하여 2004년부터 연구해 왔고, 2006년 들어와서 11월에 공청회, 12월 초에 관련협회들의 의견을 듣는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 전에 6월과 8월에 일반 기업 및 학계와 관련 세미나도 하고, 장관회의에서 FTA 논의를 했습니다. 2007년 들어 EU측에서 협상을 제기했습니다. 통상절차법을 준수했고 절차적 정당성은 완벽합니다.
이근: 언론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EU FTA가 한미 FTA에 비해 너무 순조롭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김흥종: 한미 관계와 다르게 한-EU FTA는 보다 순수하게 경제적 사안으로 인식해서 경제적 측면만 따져서 하고 있습니다. 한미의 경우는 대통령이 나서야 할 정도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많았지만, 한-EU는 그에 비해 전통적인 경제적 관계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반대가 나오는 이슈도 있습니다. 물 산업과 공공 서비스에 관한 의견이 있습니다. 에비앙과 같은 유럽의 초거대 물 기업들의 수출에 대한 관세철폐 요구가 있어서, 국내 생수산업이 타격을 입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상하수도를 민영화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유럽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민영화하지 않고 있는데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라고 요구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우체국 서비스, 택배시장을 개방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영화 요구를 우려하기도 합니다.
4. 한국의 대 유럽 정책의 전망과 과제
이근: 마지막으로, 한국의 대 EU정책에 관련한 문제점과 개선책이 있다면 말씀을 해주십시오. 유럽을 강조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최진우: 물론 유럽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적으로 중요한 파트너이고, 유럽에서 한국의 인지도가 낮아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2000년대 초반에 북한문제에 대하여 유럽을 미국에 대한 대안적 선택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걱정스럽습니다. 유럽은 절대 미국을 대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 유럽에 대한 기대가 충족시켜주지 못할 정도로 높아지거나, 미국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형성될까 걱정됩니다. 물론 유럽이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대안이 된다는 것은 성급한 생각입니다.
북한문제에 대하여 유럽의 태도는 미국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북한인권 문제나 우라늄 관련 제재에 대하여 가장 앞장서서 엄격하게 나오는 곳도 유럽입니다. 미국과 맥을 같이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대안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김흥종: 경제 관련해서는, 한국이 발전할수록 유럽과 많이 만나게 되고 교류가 확대됩니다. 일본 같은 나라가 유럽과 미국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미국에 대하여 최우선의 전략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경제나 사회, 문화교류에 있어서는 유럽과 접촉이 활발합니다. 한국도 미국이나 주변국과 중요한 사안이 많더라도, 유럽을 경원시하기보다는 인적, 문화적 교류, 기후 협약, 에너지 등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주제로 많이 만나야 합니다. 그런 측면이 아직 부족하고 유럽의 중요성이 저평가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더 많은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좋습니다. 주변국이나 미국의 중요성을 대체할 성질은 아니지만, 앞으로 산업협력도 많아지고, 보다 긴밀한 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봅니다.
이근: 다른 국가와 유럽 중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국가들에 유럽을 더 집어넣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유럽과 직접적 교류를 늘리는 계기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추가하실 내용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김흥종: 유럽적 가치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사회보장을 유럽처럼 할 수도 없고, 다만 한국 사회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가치를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가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유럽이 European Identity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처럼 가벼운 형태로 시작하여 확대, 심화하는 그 과정을 벤치마킹하여 한국의 독자적인, 동아시아에서의 가치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진우: 유럽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국제정치 협력의 파트너로서의 유럽이 있고, 또 하나는 모델로서의 유럽이 있습니다. 다자주의 틀 속에서나 양자관계 속에서의 경제협력이나 외교협력 파트너로 유럽이 갖는 의미가 있고, 이른바 지역통합의 사례로서나 사회통합 모델로서 유럽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유럽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가 시도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도 민주주의와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유럽이 다양한 실험실로서 예시를 보여주는 의미도 크다고 봅니다.
이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