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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북아 중시 외교'에서 탈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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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 '동북아 중시 외교'에서 탈피 중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67> 일본 참의원선거 전망

아베정권의 참패가 예상되는 오는 29일 참의원선거 이후 일본 정세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미래전략연구원의 일본 전문가들은 지난 주 가진 좌담을 통해 이번 선거 결과 아베정권이 물러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아베내각 철범 이후 야심차게 추진해 왔던 개헌 등 안보분야에서의 근본적 변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이들 전문가들은 최근 일본의 외교방향과 관련해 한국, 중국 등 동북아 중시의 외교에서 탈피해 인도, 호주, 중앙아시아 등 동북아 역외 지역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포위하는 형태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중국 등과의 동북아지역협력을 강조하는 세력은 진보적 학자와 재계 일부 등 소수파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유의해 볼 대목이다.

이들은 또 아베정권의 대북강경정책은 정권 탄생의 속성상 변화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진단했으며,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역사문제, 안보문제 등 장기적 과제와 경제협력 등 단기 과제는 분리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좌담은 지난 19일 미래연 사무실에서 최태욱 한림대 교수의 사회로 김웅희(인하대). 남기정(국민대), 이근(서울대, 미래연 원장) 교수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편집자

1. 참의원선거 전망과 이후 일본 정세
▲ ⓒ미래전략연구원

최태욱:7월 29일에 예정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할 경우, 민주당의 영향력이 커지고 정책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설명해 주십시오.

김웅희: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는 연금기록 문제와 교육 문제 등 생활 관련 문제가 주된 이슈입니다. 당초 헌법문제나 외교문제 등 아베내각의 우선과제가 이슈화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워낙 아베 내각 지지율이 저조하다 보니 현안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자민당이 참패할 경우, 아베내각이 헌법개정이나 구조개혁 노선에 박차를 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안문제 해결 쪽으로 정책의 중심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태욱:그렇다면 고이즈미 내각 출범 이후 지난 6년간 진행돼온 구조개혁은 주춤하게 되는 것입니까?

김웅희: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구조개혁 노선을 견지하겠다는 입장표명을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구조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낮출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격차사회의 왜곡문제 해결에 힘을 기울이면서 기존의 구조개혁 노선을 온건하게 가져갈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또한 아베 내각은 기존 자민당의 이익유도형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베내각의 성격에 비추어 보아도 구조개혁 강도가 낮추어질 수 있는데다, 선거조차 질 경우 그 쪽에 신경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최태욱:선거 결과가 결국 정권교체로까지 연결될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김웅희: 참의원선거는 중의원선거 정도의 무게가 없고, 포스트 아베의 리더십 구도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정권교체나 수상교체까지는 안 갈 것이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 ⓒ미래전략연구원

남기정: 과거 참의원선거 결과로 인해 자민당 총재를 사임했던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89년에 리크루트 사건의 역풍 속에서 소비세 도입에 대한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던 오노 내각이 사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98년 하시모토 수상이 참의원 선거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89년의 패배 이후로 자민당은 한 번도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 이후를 참의원의 시대라고 하기도 하며, 참의원 선거가 수상의 리더십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지금 자민당의 하시모토 정권기의 최저 지지율을 갱신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당내에서는 아베 책임론이 일고 있습니다. 아오키 미키오 자민당 참의원위원장은 공명당과의 연립 과반수 확보를 위한 목표 의석수를 51로 상정하기도 합니다만, 여론의 역풍 속에서 당내 일각에서는 45석 확보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고, 이를 전후로 승패라인을 설정하여 사임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습니다. 40석이 안 된다면 사임은 확실시되며, 40~45사이면 내분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46, 47석 정도면일단 정권은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아베 이후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될 경우, 일단 아소 다로 외상이 최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 외에 다니가키 전 재무상과 후쿠다 야스오가 대안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후쿠다의 경우 대 중국 외교를 우려하는 재계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도 합니다만 당내 소장파 의원의 지지를 못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방위상으로 기용된 고이케 유리코 이름도 나옵니다. 그러나 아베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꾸준히 고이즈미의 재등장 시나리오가 나오는 걸로 보아, 자민당은 인재난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태욱:오자와나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남기정: 오자와가 최근 인터뷰한 것을 보면, 이번 선거를 최고 최후의 기회라 하며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습니다. 승리한다면 정계개편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동안 자민당이 이념적으로 불분명했었는데 오히려 선명해지고 있다며, 같은 보수라도 자민당은 전통회귀적이며 폐쇄적인 만큼 민주당을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보수로 만들어 양대 진영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최태욱: 대외정책 쪽은 어떻겠습니까?

남기정: 안보외교와 관련해서 아베 내각은 출범 직후부터 일본정치를 개헌 정국으로 이끌고 가려는 생각을 분명히 해 왔습니다만, 워낙 지지율이 떨어져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는 섣불리 쟁점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선거의 초점을 '생활일신'이라 하여 국민생활문제에 두고 있습니다. 선거 결과가 아베의 패배라면 당분간 외교문제는 꺼내기 쉽지 않고, 신중한 행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외교 측면에서 분란을 일으켜서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웅희: 대외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추진할 수 있는 부분은 경제협력 분야로, 이념적 성향에서 벗어난 부분입니다. 한일 FTA 재개, 미일 FTA 추진 등을 통해 조심스럽게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념적 문제나 외교,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기정: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의 태도는 2004~2005년만 해도 60~70% 퍼센트까지 지지율이 올랐었으나, 아베 정권 등장 후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과반을 겨우 웃돌았다는 수치도 있습니다. 이는 개헌론이 구체화하면 국민들은 긴장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섣불리 개헌 논의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 일본의 격차사회 문제와 정치경제적 의미

최태욱: 두 번째 문제로, 일본에서는 현재 격차사회가 핫 이슈입니다.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으며 현 일본 정부의 해법은 무엇인지, 다른 정당이나 시민사회의 반응은 어떤 지 등이 궁금합니다.
▲ ⓒ미래전략연구원

김웅희: 격차사회라 할 때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지역 간 격차, 계층 간 격차도 있지만 비정규직, 일본 용어로 프리타(free-arbeiter의 신조어)의 문제가 큽니다. 비정규직이 1600만에 이르고 있고 전 고용자의 3분 1을 초과하는 규모입니다. 90년대 후반 이후부터 나타난 문제인데, 고이즈미의 매몰찬 구조개혁의 부산물이라는 견해와, 고이즈미 개혁보다는 장기불황이 지속되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고이즈미 때에는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고이즈미 정권은 이 문제를 경쟁체제 진입 과정의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인식하여, 격차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를 시정하려는 소득재분배는 특정집단이 다른 집단을 등쳐먹는 행위라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고이즈미 정권 후반 아베 관방장관 재임 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재(再)챌린지(도전) 추진회의라 하는 관방장관 간담회를 만들었습니다. 아베 내각 성립 후 수상의 자문기관으로 격상되어 격차를 시정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고, 올 예산에 격차시정을 위한 예산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단순 재분배의 차원이 아니라, 일본이 새로운 사회로 진입한 만큼 복선화(複線化) 사회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구조적 개혁을 통한 지원보다는 사람을 보고 지원하는 접근법으로, 학습과 생활의 방식이 공존하는 복선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2천억 엔 정도의 예산을 편성했고, 구체적으로 프리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시책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다음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 세 번째로 복선화 사회 실현을 위한 제도개선입니다.

이에 대한 야당 반응은 냉랭합니다. 특히 재분배를 중시하는 공산당의 경우, 고이즈미 뒤를 이은 아베내각에서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일본의 사회적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그런 정책으로 면죄부를 얻으려 하지 말라는 근본적 비판을 합니다. 민주당은 격차 사회가 고이즈미 내각의 최대 실패라고 비난하며 정책의 실효성을 의문시하고 있고, 선거에서 중산층의 회복을 내걸고 있습니다.

최태욱: 1996년 전체 근로자의 20%를 조금 넘던 일본의 비정규직이 2006년에는 33%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김웅희: 최근에 시민사회가 이에 대해 체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슈 자체가 묻혀있기 때문입니다.

남기정: 경제가 회복되면서 취업률이 회복되는 등 생활이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3. F-22 도입 등 군사대국화 경향

최태욱: 세 번째는 외교안보문제입니다. 일본의 F-22 도입가능성에 대해 우리 정부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북한 관계에서도 일본의 군사대국화 문제는 매우 큽니다.

남기정: 일본의 명분은 중국의 군사대국화와 북한 문제 등입니다. 특히 고이즈미 정권기부터 전수방위의 영역을 벗어나는 군비강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연계하여 첩보위성을 쏘아 올렸고, 이지스함을 추가로 건조하고 있고, 이미 배치된 이지스함에는 요격 미사일도 탑재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F-15를 대체하는 차세대 전투기로 F-22를 지목하여 조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F-22 도입이 논의된 것은 중국의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오면서였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그 도입은 전수방위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는 것으로 공중급유기를 이미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군사활동의 범위를 확대하려 하고 있으며, 이미 전수방위를 위한 군사력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F-22에 한해 말하자면 현재 조사를 의뢰하여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미 의회조사국에서는 이것이 부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술유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집단자위권 행사에 제한이 있는 한, 일본이 F-22를 도입한다고 해도 주일 미군과 연계하여 훈련하거나 작전을 수행할 때에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일본이 중국과 북한을 핑계로 군사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최태욱: 미국과의 안보적 일체관계는 확실한 것이었는데, 참의원 선거와 관련하여 향후 대외정책에 큰 변화가 없다면 미국에 대한 극편향 정책에도 별 변화가 없는 것입니까?

남기정: 안보측면에서 미일동맹은 계속 강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도 동아시아에서 일본만을 파트너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위안부 결의안에서 보듯이 주변국가와 마찰을 일으키는 일본이 부담스럽다는 판단에서 역사문제에서 일본을 견제하고 있고, 최근의 6자회담을 보더라도 일본과의 관계가 썩 매끄럽지만은 않습니다. 2.13 합의 이후에 미국과 북한의 직접대화가 실현되면서 일본이 고립되어 가는 형국을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아베의 외교적 퍼포먼스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아베의 방미가 고이즈미의 방미와 달리, 일단 타이밍을 놓쳐서 아베 정권이 미국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골프회동과 같은 철없는 발상으로 이라크문제에 골몰하는 부시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등 약간의 불편한 관계가 있다고도 합니다.

주목할 점은, 90년대의 대미 자주라는 것이 동아시아를 무대로 일본이 어떻게 위상을 정립하고 미국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생존을 모색하느냐는 의미가 있었다면, 지금은 동아시아를 뛰어넘어 호주, 인도, 파키스탄까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앙아시아까지도 일본이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일본은 현재 중국과 한국을 에워싸는 형태의 아시아를 구상하고 있는 듯하며, 이는 같은 아시아 구상이라도 90년대와는 다른 측면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4. 동아시아공동체와 대북한 관계

최태욱: 기왕 말이 나왔으니 일본의 동아시아 정책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처음에는 일본도 ASEAN+3 틀에 동의했죠. 그러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출범 과정에서 일본의 주도로 호주, 뉴질랜드, 인도가 신규 참여하게 되면서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대의를 잃게 한 것이 아니냐며 일본의 의도를 의심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최근 일본이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까지 자신의 '지역 구상' 범주로 여기고 있다면, 이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기조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닌지요?

남기정: 고이즈미 정권기의 중앙아시아 정책을 보면서, 특이하고 새로운 외교 방향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소 외상이 인도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아베도 이미 취임 전에 인도를 방문하는 등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원교근공(遠交近攻)'외교의 추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정책이 내부적으로 수정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웅희: 동아시아정책이 경제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이 분야에 있어서는 고이즈미, 아베 내각을 거치면서 ASEAN+3 틀 내에서의 한중일 협력이나 네트워크라는 발상이 많이 희석된 듯합니다. 아사히 신문에서 일본의 신전략이라 하여 연재한 사설이 있는데, 일본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서 한중일 네트워크가 비어있고, 그 방향성을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공동체는 무역, 기술, 투자의 관점에서 동남아와의 관계로 시작한 것이었고, 통화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으로 확대되고 최근에는 인도나 호주까지 외연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주도권문제 때문에 EAS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최태욱: 고이즈미-아베 라인만 그런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민당 내 다른 파벌이나 지도자 그룹, 그리고 민주당 등에서는 여전히 동아시아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까?

남기정: 다니가키나 후쿠다의 경우 중국을 중시하고 있고, 가토, 야마사키 등도 '아시아 외교안보비전 연구회'를 결성하여 자민당 현 주류와 차별화한 대아시아 외교를 구상하는 등 중국과 한국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최근 자민당 내에서 파벌정치가 전반적으로 약화되는 가운데 유일하게 모리파(현 마치무라파)만이 득세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이즈미, 아베의 지정학적 구상이 자민당의 중심적 목소리로 공유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태욱: 일본의 동아시아공동체 범주에 대한 학계나 재계, 시민단체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남기정: 재계만 해도 동아시아, 특히 중국시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대중 외교를 중시하며 동아시아의 지경학적 연계를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가 곧바로 동아시아공동체의 구체화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학계에서도 동아시아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그룹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동북아의 한중일 3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룹은 소수라고 생각됩니다. 동북아에 대한 관심은 이른바 학계에서도 진보, 혁신 계열이라 불리는 그룹에서 표명되고 있는데, 일본 전체에서 보면 학계에서도 소수이고 일반적으로는 그 현실성에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한국에서 볼 때는 이들의 주장이 반가운 만큼 크게 비칠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결코 주류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ASEAN+3에 대한 논의도 최근에는 많이 약해진 느낌입니다.

김웅희: 동아시아공동체 논의를 보면, 지역적으로 외연이 확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야에서도 전통적인 외교, 안보 등의 비중이 줄고 농업, 환경, 에너지 등 비전통적 분야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타납니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에도 ASEAN+3의 틀 내에서가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양자관계 또는 일본, 중국, 미국의 3자관계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최태욱: 여기서 잠깐 아까 놓쳤던 북일관계 문제로 되돌아가겠습니다. 6자회담에서도 그렇고 최근 북한 관련 외교안보 논의에서 일종의 '일본 소외 현상'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일본도 이런 현실 변화를 감안하여 대북한 정책을 변화시키지 않겠습니까?

남기정: 아베 정권으로서는 어렵다고 봅니다. 아베 정권은 일본인납치와 핵개발 문제를 쟁점화하고 이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여 등장한 정권인데, 지금도 아베는 참의원 선거의 후보지원 유세 때마다 납치문제를 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선 납치문제 해결, 후 국교정상화라는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북일관계가 진전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북한이 전략적 선택을 하여 획기적인 해법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북미직접대화와 남북화해 국면이 지속되는 한 북한이 이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또한 대북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일본에서는 북한에 대한 간접적 지원조차 쉽게 말하기 힘든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요코타 메구미씨의 딸 김혜경씨와 메구미씨의 부모가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가 상징적으로 해결될 수 있으며, 일본의 납치가족이 포함된 진상조사단을 북한이 받아들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납치문제를 이슈화하는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일본 외무성 안에는 초조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개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고이즈미 정권기처럼 수면 하에서 접촉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고이즈미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이용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여, 평양선언을 주도한 다나카 히토시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에서도 다나카 라인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아베 정권에서는 유화정책을 주장하는 노선이 사라진 상태여서, 현재로서는 물밑작업을 해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본 여론의 논조도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문제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입니다. 그러한 해석의 배경에는 납치문제를 제쳐 두고 진행되는 6자회담에 대한 서운함이 배어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문제를 둘러싼 한국정부의 낙관적인 해석과는 달리 일본의 매스컴들이 비관적으로 전망했던 문제들이 실제로 해결하는 데 많은 난관에 부딪혔던 것도 사실입니다. BDA 문제에서도 그랬듯이, 한국에서 볼 때 낙관했던 문제가 일본 매스컴의 우려와 지적대로 장기화했던 것을 생각하면, 특히 대북교섭의 기술적인 문제에서는 일본의 시각을 한국에서도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5. 한일관계와 한국의 대일정책

최태욱: 마지막으로, 한일관계입니다. 두 분 교수님들께서 이 관계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을 짚어주셨으면 합니다.

김웅희: 한일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과거사 문제와 헌법개정 관련 일본의 재무장입니다. 그러나 아베 내각에서 그런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나올 가능성은 내각 출범 당시에 비해 많이 약화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한일 양국에 있어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하해서, 당분간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상태가 이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협력이고, 한일 FTA가 다시 한일관계의 현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일 FTA가 중단된 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담당자도 바뀌어서, 어떤 모습으로 언제 시작될지가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예전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농업문제였는데 그것도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남기정: 역사와 안보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단기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문제는 물론이고, 일본의 외교안보정책이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히 역사문제는 문자 그대로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문제인 만큼, 이를 둘러싼 마찰과 갈등은 앞으로 쉽게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해소'해 나갈 문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참의원 선거에서 곤경에 처한 아베 정권이 수세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는 한일관계는 약간의 기회가 생겼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 전술적 마인드가 양국의 외교 당사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의 차기 정권으로서는 역사문제와 현안문제를 분리시키는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역사문제를해결해야만 현안의 협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현상적으로 많은 갈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한일관계는 상당히 성숙해 있어서 이미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협력 분야에서는 보다 긴밀한 협력을 하고, 역사문제는 그것대로 차분히 풀어가야 할 숙제로서 안고 가는 이원화된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김웅희: 아베 수상의 '주장하는 외교'와 과거사 문제에서 각박한 외교전도 불사하겠다는 청와대의 대응 기조를 비교해 보면, 서로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일관계에서 과거사문제는 장기적인 문제이고 다원적인 차원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인데, 비슷한 강경한 입장이 서로 부딪힐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선거정국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참여정부의 임기가 마무리되고 있어, 당분간 현안문제가 강도 높은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은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남기정: 코스 요리에서 한정식으로 바뀌었다는 비유로 정리해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특히 노무현 정권 후반기에는 한일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 역사문제 해결 없이 협력은 없다는 태도로 임했는데, 이는 차례차례 나오는 요리를 하나씩 맛본다는 접근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일관계는 많은 이슈들이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라와 있고, 같이 해결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생각됩니다. 차례로 풀어간다는 접근법에서, 한정식처럼 여러 가지를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는 접근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기타 질문

이근: 일본식 경영, 고용 관행 등의 변화가 궁금합니다.

김웅희: 일본식 경영의 두 가지 특징이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입니다. 그러나 90년대를 거치면서 그 관행들도 많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종신고용은 비정규직, 프리타의 증가로 인해 실태적 차원에서 그 특징이 많이 약화되는 상황입니다. 연공서열도 성과주의의 도입으로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도요타의 경우는 물론 여러 가지 개혁을 추구하고 있지만 본질적 부분에서 일본식 경영을 고수하면서 성과를 낸 성공사례입니다. 물론 그와 달리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서 성공한 사례도 있고, 실패한 사례도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시스템은 특정 시스템이 우월하다기보다는 복합형에 가깝고, 다양한 시도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분야별로 생산방식의 특징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산업은 전통적인 수직적 네트워크 방식으로 생산하는 분야이고, 컴퓨터산업은 생산의 모듈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본식 방식이 적실성을 상실한 분야입니다. 산업 분야별 구분이 필요합니다. 반도체나 가전 등의 분야에서는 일본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근: 일본 모델을 한국에 적용할 만한 부분을 생각할 때, 우리는 전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 된다고 하는데 반해서 일본은 영어를 잘하지 않아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잘 해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김웅희: 일본도 영어를 중시하지만 우리보다 실용적 접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영어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 역할을 담당하고, 그렇지 않은 분야에서는 모국어로 치밀한 조정을 행하는 것이 비즈니스에 있어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분업구조가 확실하고, 자체시장이 커서 내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영어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남기정: 일본 모델과 관련한 논의에서 라이브도어의 성공과 좌절의 경위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IT회사로 출발해 일본적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승승장구하던 회사가 일본적 관행을 무시한 공격적 합병매수를 시도하다가 좌절하는 과정을 통해, 일본인들은 전통적 일본형 시스템의 견고함을 재발견하고 그에 안주하면서 경기회복과 더불어 자신감까지도 회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최태욱: 좋은 대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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