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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쇼를 하라, 쇼!"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68> 남북정상회담과 미디어게임

쇼의 양면성

"쇼를 하라, 쇼를"

어느 회사의 광고 카피다. 원래 "쇼를 한다"는 말은 한국어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이다. 실상을 감추고 거짓으로 보여주거나 눈속임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생쇼를 한다"는 표현은 이보다도 훨씬 부정적이다. 하지만 역발상이 유행하는 요즘에는 이 말이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기도 한다. "쇼를 한다"는 것이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하이테크를 활용할 줄 안다는 말과 동의어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특정회사의 광고를 할 의도는 전혀 없음.)

사실 한국에서 "쇼를 한다"는 것이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요즘같이 사회가 투명한 세상에서는,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고 마케팅을 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쇼"를 해서 상대방을 속이고 이용하는 이익보다는 자신의 실상이 공개되고 추후 설명 책임성이 따라 붙는 위험이 더욱 크다. 즉 만천하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공개되고, 그 이후 사람들이 나를 추적하고, 검증하고, 제대로 못하면 비난하거나 매장시키는 것이 투명성과 설명책임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래서 쇼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8월 28일에 열리기로 남북 간에 합의되었다. 7월 초에 시작하여 약 한달 만에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과 이제 약 3주도 안 되는 시간에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하는 무리함, 그리고 정권 말기의 노무현 정부와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것,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를 뽑는 경선 직후에 날짜가 잡힌 것 등을 놓고 많은 사람이 "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북한이 레임덕으로 가고 있는 노무현 정부에서 얻어낼 것이 많지 않을 것 같고 북미간의 협상을 최우선으로 하는 북한에게 남한이 얻어낼 것도 역시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쇼"라는 표현이 상당히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런데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쇼"인 것이 과연 전적으로 나쁜 것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 2차 남북정상회담: 북한은 뭘 보여줄 것인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저간의 흐름을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의 전략적 결정에 의해서 결정되었고, 북한이 대상으로 설정한 주요 청중(audience)은 미국과 국제사회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남한을 통하여 미국으로 가려는 이른바 통남통미(通南通美)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시각으로 보는 것보다 북미관계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주문과 시도는 벌써 7년이 지났다. 그 동안 계속 불발로 그친 남북정상회담이 지금 이 시점에서 열린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비교적 포용적인 접근을 하는 정부이고, 남남갈등은 상수와 같이 한국사회에서 구조화되어 있었는데 지금 2.13프로세스의 한가운데라는 이 시점에서 정상회담에 북한이 응한 것은 결국 남북관계의 변수보다는 2.13합의와 이행과정의 연속성이라는 변수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리라고 생각된다.

오랜 침묵을 깨고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세상에 나와 전 세계의 시청자가 보는 TV에서 직접 비중있는 발언을 하고자, 즉 "쇼를 하고자" 결단하게 된 것은 아마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김정일의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그 판단의 배경에는 전 세계와 역사상에서 가장 강경한 대북정책을 취했던 미국 부시 행정부의 정책변화를 김정일이 직접 체감하고 있는 것이 주요한 이유라고 보인다. (아마도 미국과 중국 간의 수교가 공산당에 강경한 공화당 정부에서 가능했었던 역사적 교훈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2.13합의 이후의 약 6개월 간의 기간이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2.13합의는 북한이 미국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미국의 협상의지, 관계정상화 의지를 테스트하는 선결조건이 붙어 있었다. 마치 미국이 한미 FTA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한국의 협상 의지와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4대 선결조건을 제시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북한이 내건 선결조건은 BDA문제의 해결이다. 즉 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을 미국이 풀어줄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보고 본격적인 협상에 응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상당히 많은 전문가들이 BDA문제가 2.13 프로세스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지만 필자는 BDA문제가 오래 걸려서 어렵게 풀리는 것이 오히려 2.13프로세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해 왔다. 그 이유는 미국이 BDA문제의 해결을 통하여 북한에 최대한의 성의와 협상 의지 그리고 적대정책 포기의 단서를 상당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BDA문제는 예상대로 어렵게 진행되었다. 해결되기까지 약4개월의 기간이 소요되었고, 그 동안 매우 다양한 방법이 고안되었으며,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보수 강경세력의 온갖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동분서주하며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 내었다. 물론 힐 차관보의 행보 뒤에 미 국무부와 백악관의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면 BDA문제의 해결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BDA 문제해결을 통해 북한에게 협상을 통하여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메시지를 충분히 성의 있게 보여주었다. 즉 북한의 붕괴나 정권교체가 아닌 방법으로 핵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정책전환이 단순히 레토릭이나 속임수가 아니라는 것을 백악관의 힘이 실린 힐 차관보의 입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북한이 내건 선결조건을 미국이 풀어내면서 2.13 프로세스는 빠르게 진전하였다. 북한은 영변의 핵시설 가동을 중단(shut down)하고, IAEA 검증단을 평양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핵시설 가동 중단은 대북 중유공급분 1차분이 도착함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북한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서 2.13 프로세스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미국의 행동이 실제로 들어오고 있음을 보고 미국의 대북정책의 변화를 체감하고 확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와 동시에 북한은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미 국무부 라인, 한국의 고위급 라인 등을 통하여 미국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재삼, 재사 확인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미국의 의도와 의지를 어느 정도 확인한 북한은 이제 분위기와 환경이 가장 우호적일 때 이러한 프로세스를 가속화시킬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북한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부시정권이 이제 북한과 관계정상화까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우호적인 상황이 앞으로 다시 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끝나기 전에 북미 관계정상화의 프로세스를 확고히 묶어둘 필요가 있다. 6자회담국 중 일본만을 제외한다면 지금이 최상의 상황이다. 일본도 가장 보수적인 아베정권이 흔들리고 있고, 일본은 미국이 가면 어차피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은 또한 8월 정상회담 이후에 열리는 APEC 정상회담, UN총회의 정상회동, 그리고 한미 정상회담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될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보고 듣고 느낀 것 등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정상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만일 북한이 이러한 후속 정상회담의 의미를 신경쓰고 있지 않는다면 이는 북한 외교당국의 총체적 부실이 아닐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이 한국을 통하여 미국과 국제사회에 접근하려는 통남통미(通南通美)의 전략인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중요한 "쇼"가 될 것이다. 2.13 프로세스의 매우 중요한 시기에 전 세계의 미디어 앞에서 북한의 최정상이 자신을 드러내고, 다양한 언행을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의 쇼는 매우 의미있고 모험적인 쇼가 될 것이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전 세계의 시청자 앞에서 북핵문제 해결, 정상적인 일원으로 국제사회 진입, 그리고 개혁 개방을 통한 경제개발의 의지를 성의 있고 진지하게 천명한다면,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환경은 대북 적대정책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대북 적대정책이 사라진다면 북한은 평소에 주장해 왔듯이 북핵문제에 관하여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선순환의 구조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는 "쇼"에 있다. 그리고 그 "쇼"는 실질적인 성과보다는 단순히 "메시지"를 보내는 쇼가 되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것이 단기적인 실질적 성과를 거두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그리고 큰 그림에서 훨씬 중요하고 의의가 있다.

한국의 과제: 진실 게임

정리해 보면 2.13 이후는 북한과 미국이 상호간에 신뢰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과정이었다. 상호주의(reciprocity)와 관련한 이론에서 보더라도 우호적인 행위가 반복적으로 교환되면 미래의 혜택에 관한 학습이 일어나면서 행위자는 신뢰와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게 되는 것인데, 지금 이미 미국과 북한은 그러한 프로세스의 초기에 들어온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 이러한 프로세스를 분위기와 환경이 좋을 때 더 늦기 전에 딱 묶어 두는 것 (lock-in)이 필요한 시점이다. 묶어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관련된 최고위급 지도자들이 "쇼를 하여", 즉 세상에 자신을 공개하고 설명책임성의 칼을 자신의 목에 들이대게 하는 것이다. 이들 중 누가 한 말을 지키고, 누가 안 지키는지를 국제사회가 검증하게 하고, 그 검증의 매듭을 여러 개로 묶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보다 많은 정상들이 서로에게 선언적인 약속을 하고 누가 "양치기 소년"인지를 세상과 정상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은 그 첫 출발을 남북정상회담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정상들과 만나 이러한 메시지 전달과 검증의 게임을 풀어나가야 한다. 정권 말기의 대통령이지만 게임의 성격 상 이러한 게임은 레임덕과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게임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신뢰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보여 주고, 누가 보더라도 무리한 언행과 약속을 피해야 한다. 특히 행동 대 행동의 정밀한 교환구조로 디자인 된 2.13 프로세스가 좌초되지 않도록 대북지원의 약속을 2.13 프로세스 구조 안에서 해야 한다.

사실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북미관계의 파행에 있고, 북미관계 파행의 가장 큰 이유가 현재로서는 북핵문제에 있으므로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진전되기 위해서는 북핵문제를 풀어내는 2.13 프로세스를 확고하게 살려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북한도 2.13 프로세스에서 상당한 학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남북정상회담이 2.13 프로세스보다 빨리 가려고 성급하게 나가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는 북한이 투명한 전 세계의 미디어를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김정일 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출연하는 "진실 게임"이다. 한국의 역할과 과제는 "진실 게임"이 "거짓말 게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의 개혁ㆍ개방불가론'에 대하여: 사회과학 이론적 취약성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으려면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과 개혁 개방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이 개혁 개방을 추진한 사회주의 국가의 예를 들면서 사회주의 권력의 당사자가 개혁 개방을 추진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동구, 소련 등 개혁 개방은 지도자가 바뀐 후에 가능했거나 아니면 기존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사례가 있기 때문에 매우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사회과학적으로 이러한 주장이 항상 성립하는 법칙이 되려면 이론적인 체계와 가설의 수립, 그리고 정밀한 검증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이론과 가설이 아직 정밀하게 수립되지 않았고 초보적으로 수립된 이론도 매우 소수의 사례로 증명되고 있다.

사회과학 이론의 통계학적 검증이 이렇게 작은 숫자의 사례로 검증이 완료되었다고 주장된 바는 없다. 그리고 사회과학의 세상과 현실의 세상은 창조적 세상이므로 새로운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은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으며, 개혁 개방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만고의 진리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주장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북한과의 협상은 무의미하고 관계정상화도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외교부에서 북핵담당 부서는 모두 폐쇄하고, 통일부의 남북관계 진전을 담당하는 부서도 모두 폐쇄해야 한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사회과학자와 현실 정치인, 정책담당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어려운 여정에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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