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은 17일 발간된 <격동의 시대 : 새로운 세계에서의 도전>이라는 회고록에서 한국의 IMF 사태발생 및 대처과정에 대해 언급하며 이같이 밝혔다.
당시 외환위기를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한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을 수혈받는 대가로 살인적인 고금리, 실업자를 양산한 구조조정, 국영기업 헐값 해외매각 등 가혹한 조건을 수용해야 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수많은 가정이 생활고를 못이겨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한 비극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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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돈놀이한 외환보유고, 악성부채로 변질"
IMF가 위기를 이용해 한국을 수탈하는 정책자금을 지원한 탓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정부의 무능으로 시작된 비극은 현재도 우리 사회의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그린스펀은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 규모에 대해서 "외환보유고 250억 달러는 아시아의 금융위기에 맞서기에 충분한 규모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몰랐고, 곧 밝혀졌던 사실은 한국이 외환보유고를 갖고 돈놀이(playing games)을 했다는 것이었다"면서 "한국은행은 보유한 외환 대부분을 몰래 팔거나 시중 은행들에 빌려줬고, 이것이 악성 부채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린스펀에 따르면, 당시 연준의 국제 이코노미스트로 그린스펀의 1급 보좌관이었던 찰리 지그만은 한국은행에 전화를 걸어 "외환보유고를 왜 풀지 않느냐"고 묻자 한은 측은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은 그린스펀도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이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겼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그해 여름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져 동남아 각국에 번졌으나, 그린스펀도 처음에는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다고 생각해, 한국도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를 경시했기 때문이었다.
"아시아 성장의 상징인 한국에 디폴트 허용할 수는 없었다"
그가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당시 일본은행 고위관계자가 "일본은행은 한국에 대출한 수백억 달러의 차관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음은 한국 차례"라고 그린스펀에게 전화했고, 다른 직원도 '(한국에서) 댐이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를 해온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위태로워진 11월 들어서야, 아시아의 눈부신 성장의 상징이자 11대 경제대국의 급작스러운 위기에 큰 충격을 받아 깊숙이 개입했다"고 말했다.
그 후 대책 마련에 나선 그린스펀은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의 역할에 대해 "한국 경제를 회생시킨 루빈은 전세계 재무장관들의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하다"고 극찬했다.
그는 "우리는 루빈이 이끄는 태스크포스를 가동해 유례없는 대규모인 550억 달러의 융자 패키지를 마련하느라 몇 주가 걸렸다" 면서 "더 어려운 문제는 전 세계 수십 개 대형 은행에 '한국에서 부채를 회수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는 당시 전세계 재무장관, 은행장들의 잠을 일시에 깨우는 기록을 만들었다"면서 "만약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디폴트'를 허용했었다면 그 결과는 훨씬 더 나빴을 것이며, 한국과 같은 규모의 국가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은 분명히 전세계 시장을 뒤흔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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