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일 진중권 칼럼의 '삼일절, 친일절이 되다' 를 읽고 평범한 독자로서 한 가지 이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나는 여기서 이명박 정권이나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진 교수가 언급한 그 '제대로 된 어법'을 보고 그렇다면 과연, 좁게는 진 교수가 생각하는, 넓게는 한국 진보세력이 제시하는 대일정책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에, 일단 일본 우익과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뉴라이트의 문제는 접어두고 한국 진보세력의 대일관과 방법론을 논의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때 마침 진중권 교수가 발기인으로 참여한 가칭 진보신당의 창당도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이 새로운 정당의 일본에 대한 전략과 전술이 기존 정당과 어떠한 차별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논의해보고 싶은 것이다.
올바른 어법은 수동적 귀결이 아니라 능동적 추론이다
진 교수의 '제대로 된 어법'을 보면,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를 반성해야' 하고,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으면 함께 미래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것이 올바른 어법이다. 이에 대해 원론적인 이견은 없으나, 만일 이것이 일본과 한국이 함께 미래로 나아갈지 말지는 전적으로 일본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이에 분명히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수동적 태도는 한일수교 이후 지난 50년간 조금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자라나는 우리 젊은 세대의 가슴에 반일 증오심만을 키워버린 어리석음을 범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수동적 논리는 평화와 미래를 위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전제하지 않은 것으로 마치 남한과 북한이 화해와 평화공존으로 나아갈지 말지는 전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보수세력의 대북정책 논리와도 별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 우익세력의 성장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는 해방 이후 남한에서 친일세력이 척결되지 못한 까닭과 그 역사적 배경을 같이 하는 것으로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찾아온 냉전과 분단이라는 국제적 역학관계에서 발생한 것인데, 한국의 진보세력이 결자해지의 원칙만을 고수한 채, 지금껏 별 다른 진보적 행동을 보여준 적도 없고 효율적 대안을 제시한 일도 없으면서 마냥 일본을 비난하며 '세계와 공조하여 일본의 우경화를 막는' 외교전략만을 주창한다면, 대한민국에 일본과의 진보적 미래를 주도할 세력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기실, 한국의 진보세력은 그 동안 어떠한 전략전술도 없이 일본의 망언 한 마디에 발끈하는 '반응체'에 불과하였으며, 그들의 논리에 수동적으로 끌려 다닌 결과, 오히려 일본 우익의 성장을 도와준 꼴이 되어버렸다. 한 마디로 지난 삼일절의 이명박의 연설은 뉴라이트의 또 한번의 승리이며, 별 다른 대안도 없는 한국 진보세력의 장렬한 패배였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미래는 일본의 태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전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론이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은 반드시 일본과 평화를 유지하여야 하며,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증오를 유산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일본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부의 명제가 아니라 지구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변치 않는 무조건적 불변의 결론이다.
여기서 일본이란 일본 정부와 일본 우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일본 시민과 그냥 한국문화와 음식이 좋은 일본도 포함되는 것이며, 배용준을 사랑하는 아줌마 부대 일본과 먹고 사느라 바빠서 일년 내내 한국이라고는 단 1초도 생각해볼 겨를이 없는 일본도 들어있기 때문에, 한국의 진보세력은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반성하든 말든 상관없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줄기차고 끊임없이 평화세력을 확대하고 일본 우익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영민한 전술만 세우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로 나아가려면' 진보세력 스스로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
왜 우리는 반성하지 않는가?
일본이 과거 조선 침략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면, 우리 역시 침략을 허용한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어법'이다. 삼일절과 광복절에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기 위해 열 마디를 해야 한다면, 최소한 그 중에 다섯 마디는 일본 침략의 역사적 사실과 선열의 고통을 언급해야 할 것이고, 나머지 다섯 마디는 그러한 침략에 무기력했던 과거의 역사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지난 삼일절에도 그 간의 광복절에도 뻔뻔하고 잔혹한 일본 놈들에게 당한 우리의 수모만을 들었을 뿐, 그 누구도 어느 신문에서도 진지하게 우리의 실수를 고찰하며 스스로 뉘우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의 침략적 사실만을 강조한 나머지, 순국선열의 고귀한 정신과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되 일본을 증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간과하였고 결국 우리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라.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대환란에 대한 기록의 첫 장에 그보다 200년 전에 사거한 신숙주를 언급하며 진지한 반성부터 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어에 능통하고 일본을 왕래하며 '해동제국기'를 저술한 그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성종이 그에게 마지막 유언을 묻자 "원컨대 우리나라는 일본과 반드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잊지 마소서" 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성종이 감동하여 사신을 파견하였으나 그들이 대마도에 이르러 풍랑이 심하다는 이유로 되돌아온 이후 다시는 사신을 파견하지 않았다고 한다. 징비록의 어디에도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찾아볼 수 없으며, 우리가 침략을 허용한 것은 바로 이웃 국가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통렬하고 뼈저린 반성부터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단재 신채호의 민족주의에 안주하는 것인지 일본에 관한 문제만 나오면 극우세력의 주장과 구분이 가질 않는다. 단재의 민족주의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정당한 발로였지만, 21세기의 오늘날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상적 기반이 결코 될 수 없다. 이미 그의 민족주의는 치우 천황을 숭상하는 극우 국수주의자들의 이론적 기반이 되어 배타적 민족주의와 증오심을 자아내며 평화에 역행하기까지 한다.
또한, 진 교수가 그토록 비판했던 종북주의도 결국 그 근간에는 그러한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이라는 언론에서마저 찬란한 고구려의 역사와 일본에 대한 분노가 판을 치고, 일제의 식민지 사관에 대항하는 진보적이라는 역사학자들마저 전남 일대에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널려있는 고대 일본인들의 유적은 외면한 채 사실관계도 분명치 않은 고대사를 빗대어 일본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을 조장하는 것에는 침묵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고도 당신들이 진보주의자란 말인가? 내 단언하건대, 오늘 우리가 보다 관심을 가지고 아껴야 할 것은 몇 천년 전의 단군도 아니요, 고구려 백제 신라도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우리와 함께 숨쉬며 이웃하는 일본임을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알아야 한다.
왜 일본 우익보다 더 무서운 우리 안의 증오심을 방치하는가?
이명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삼일절이 친일절이 되는 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 날은 변함없이 그 어디서도 주체적인 평화의 의지와 자발적인 거룩한 용서의 노력을 찾아볼 수 없는 미친 반일절이었다. 순국선혈의 고귀한 정신을 계승하고자 그들의 고통을 재현한 고문 퍼포먼스를 보았는가?
한겨레 신문조차 '너무도 기특한' 우리 젊은이들의 그 사진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도대체 당신들이 진정으로 평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진보주의자들이라면 어떻게 그러한 저질 반일 프로파갠다를 용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사회에 반일 증오심이 너무도 팽배한 나머지 진보주의자들의 문제의식마저 마비시켜 버렸다는 생각에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단 한번도 일본인을 보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일장기를 찢어대는 증오심을 보았다면, 일본의 '결자해지'만을 바라보는 우리의 수동적 태도가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데 얼마나 처절하게 실패하고 있으며, 결국 그 피해자가 일본 우익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아이들임을 모르는가?
오선화의 입국 금지 소동을 보자. 제멋대로 입맛에 따라 잣대를 달리하는 출입국관리법의 희생자가 달라이 라마와 유승준에 이어 오선화에게까지 이르렀다. 달라이 라마의 입국 금지 조처에 한껏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도 국내법상 국제법상 본인에게 주어진 법적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여 한국의 병역을 면제받은 한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무차별 공격에는 침묵하였고, 일본 우익의 논리에 동조하는 민족반역자인 그 '나쁜 년'의 입국 금지에는 너무나도 꼬셔서 인권이고 뭐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당신들이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이라면 어떻게 이 명백한 인권유린에 붓을 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스스로 진보주의자라고 말하는 그 누구도 어떠한 언론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도 당신들이 시민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원칙과 소신을 말할 수 있는가? 결국 오선화의 입국 금지 소동은 일본 우익의 승리로 끝났으며, 명분과 주도권을 상실한 한국 진보주의자들의 패배였던 것이다.
올 8월에는 히로시마에 가라
나는 새로이 창당하는 한국의 진보신당이 편협한 민족주의와 수동적인 대응 자세에서 벗어나 굳건한 평화주의에 입각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대일 정책과 전술을 수립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정부의 태도에 따라 변하는 것도 아니며, 교과서 파동 났다고 중단되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증오심을 녹이고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퍼주기'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것을 일본에 대한 햇볕정책이라고 불러도 좋다. 김대중의 대북 햇볕정책이 북한 강경파에 대하여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온건파에게 힘을 실어주고 신뢰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일본에 대한 햇볕정책은 일본 평화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여 일본 우익의 정치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 하겠다.
매년 8월 6일은 일본과 인류 역사의 비극의 날이다. 전투요원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 원자폭탄이라는 대량살상무기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되어 부녀자와 어린 아이를 포함한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날이다. 그 동안 개인자격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반핵연대를 위해, 한국 원폭 피해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참석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올해는 평화기념일에 진보신당의 공식 사절단을 파견하길 바란다.
갈 때 혼자 가지 말고 타 정당의 동료들도 모아서 함께 가라. 그리고 가서 일본 국민을 아픔을 조건 없이 위로하라. 한국과 일본의 비극적 역사 때문에 그 동안 함께 아픔을 나누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슬픔을 함께 하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라. 그러한 노력은 한국 원폭피해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진보주의자의 위대한 진보적 실천이다. 나는 지금 철없이 순진한 평화주의가 아니라 무장봉기의 총칼보다 더욱 전투적인 치열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