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조종사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적기가 아니다. 자신의 비행착각이다. 흔히 버티고(Vertigo: 현기증)라 하는데, 정확한 용어로는 공간정위상실(Spatial Disorientation)이다. 야간이나 악천후에 오래 비행하거나 배면비행 수직회전을 많이 하다 보면, 위 아래, 하늘과 바다가 헛갈리는 현상이 종종 벌어진다. 고기잡이 불빛을 밤하늘의 별빛인 양 믿게 된다.
어느 순간 하늘을 향해 고도를 올리려고 조종간을 급히 잡아당기면, 기체는 바다로 급강하한다. 그 동안 특별한 사유 없이 추락-실종된 전투기들 중 대부분은 이런 비행착각현상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비행착각현상을 불행한 결말로 이끄는 결정적 고리는 자기 과신이다. 계기판의 눈금은 고도가 급강하하고 있음을 가리켜도 "계기 고장"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육감과 판단에만 의존해 시계비행을 하다 처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다. 노련한 조종사일수록 스스로를 더욱 경계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복좌기의 경우 옆에 탄 부조종사가 이를 알아채고 경고함으로써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주조종사가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왕왕 벌어진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부조종사가 강제로 조종간을 바로잡으려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이른바 거인장 효과(Giant Hand Effect) 때문이다. 비행착각현상에 빠진 주조종사가 자신의 판단만이 절대 옳다는 신념 하에 자신과 동료의 생명 그리고 기체를 지키기 위해 조종간을 단단히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감까지 더해져 평소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조종간을 고수하는 것이다.
바로 이명박 정부의 현재 모습이다.
타국과의 협상장에서 한국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우리 농민과 노동자 상공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기본 임무다. 국제기준이 인정하는 정(正)방향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대규모 축산기업들과 부시 정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말았다. 착각도 유분수지, 너무나 우매한 방향착각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 국민들의 깊은 우려와 거센 반대, 연일 계속되는 촛불집회의 분노와 함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강행하고 있다. 오로지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과신하며, 제반 연구조사 결과와 전문가들의 경고, 그리고 여론이라는 계기판의 위험신호를 무시한 채 외눈 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여론의 계기판도 무시하며 착각 속 외눈 비행
비단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다. 대운하사업, 교육정책, 건강보험 민영화, 수돗물 및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등… 대다수 국민들의 우려와 반대를 간단히 무시하고 과거 중동 토목공사현장에서 돌관작업하듯 밀어부치고 있다. 국정수행 지지도라는 고도계의 눈금이 20%대로 급강하해 침몰 직전상태임을 알리고 있는데도, 이 정권은 곧 바닥을 치고 하늘로 비상할 것이라 믿고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정위(正位) 상실, 방향착각 현상은 근거 없는 자기과신 그리고 여론이란 계기판에 대한 불신과 맞물려 있기에 대단히 위험한 상태다. 조종사가 비행착각에 빠지면 계기판을 보며 경고를 해주는 부조종사라도 옆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두 집단착각에 빠져 있는지 제 역할을 하는 동승자가 안 보인다. 그러면 언론이라도 여론의 계기판 역할을 하며 경고신호를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정부 수뇌부가 주로 의지하는 소위 메이저 신문들은 "괴담" "배후세력" "선동" 등등의 흘러간 레파토리를 복창하거나 "청와대와 공무원이 앞장서서 美쇠고기 시식" 같은 봉창 뜯는 소리나 하며 옆에서 비행착각을 부추기고 있으니 설상가상인 형국이다.
비행착각에 빠진 줄도 모른 채 자기 과신 속에 시계비행을 계속하면 종말은 뻔하다. 남은 문제라면, 얼마나 더 가서 어디에다 곤두박질치느냐 하는 정도일 뿐……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비상탈출해 목숨만은 건질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걱정스러운 것은, 어찌 되건 그로 인한 피해가 우리 국민들, 그중에서도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단지 지난해 12월 어느 하루 '한나라당 이명박'이란 글자 옆에 붓두껍을 누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았었다는 오로지 그 이유 하나로 이 모든 것을 감수하기엔 피해가 너무 크고 심각할 것이란 게 문제다. 당장 자신과 가족, 친구와 이웃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생계가 불안해지고, 모두 함께 몸담고 살아가야 할 이 산하와 사회가 망가지고 어지럽혀지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나서서 촛불을 들고 외쳐왔다. 그런데도 비행착각에 빠진 조종사는 좀처럼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미안한데, 착각에 빠진 것은 내가 아닌 당신들이야!" 하면서. 어떻게든 조종간을 바로 돌려놓으려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힘 센 게 대통령이고 장관인데, 상황이 안 좋아지자 혹시나 조종간 뺏길세라 더욱 꽉 틀어쥐고 가던 길로 돌진하고 있다.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얼마나 많은 촛불이 거리와 광장을 메우고, 얼마나 더 성난 함성이 하늘로 울려퍼져야 하나? 얼마나 많은 피눈물과 한숨이 쌓이고, 또 얼마나 많은 아픈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인가? 정녕 바람만이 그 답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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