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헌,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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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손병권: 개헌론 배경을 살펴보면, 지난 2007년 초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 특별담화와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 총선과 대선의 동조화 등의 내용으로 개헌하자는 뜻을 밝혔고 논란을 거듭하다 5개 정당이 18대 국회 초반에 개헌문제를 다루기로 합의하는 것으로 일단락 맺었다. 이후 대통령선거와 18대 총선 이후 개헌논의가 다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개헌이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A. 하세헌: 기본적으로는 개헌에 대해 소극적이지만 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우리 정치상황이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민주주의 발전이 지체되고 있는 원인의 하나는 권력구조 문제, 특히 대통령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제에 개헌 논의가 있을 때 손질을 해야 한다. 지방의 균형발전 문제 역시 개헌이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보충이 되어야 한다. 개헌을 약속했던 정치권의 책임문제도 있다. 이번 기회에 개헌에 대해 솔직하고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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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강로: 이 시점에서 개헌논의는 불필요하다고 본다. 작년 노대통령의 개헌제안이 각 정파 간에 합의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1987년 10월 개헌 이후 잘 작동해왔고 국민들에게 익숙한 제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헌의 이유로 제도의 결함을 이야기 하는데 지난 20년 간의 정치적 실패는 제도보다는 운영하는 주체의 문제였다. 또 책임총리제 도입 등 대통령제 자체의 진화과정을 고려할 때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중임제 도입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고려하여야 할 바는, 현재 미국에서 "permanent campaign(끊임없는 선거)"에 대한 비판론이다. 즉 대통령의 임기가 중임제로 바뀔 경우 모든 통치 행위가 국리민복보다는 재선에 초점이 맞춰지는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현행 헌법이 최근의 다양한 사회 변화를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헌법의 여러 조항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운영의 묘를 살릴 때다.
Q. 손병권: 대통령 4년 중임제, 선거 동조화를 골자로 한 원 포인트 개헌안이 나왔을 때 근본 논리는 여소야대 상황을 방지하여 대통령의 국정운영능력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현재 이명박 행정부의 국정운영 난맥상을 두고 여대야소의 단점정부인데 중간에 선거가 없어서 정부에 대한 견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렇게 보면 2007년 당시의 개헌논리는 약간 퇴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A. 하세헌: 개헌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기한 분점정부 문제 해소를 위한 대통령선거와 총선거의 동시실시 또는 소위 허니문 선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점정부가 되면 통치력 강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통령이 소속한 정파가 여당이 되는 시스템이 구조화되면 오히려 의회가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한다. 의회가 대통령의 장악 하에 거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근본적인 측면에서 헌법구조를 구조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 개헌의 내용: 권력구조
Q. 손병권: 논의의 전개상 개헌의 시기와 개헌발의 주체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고, 권력구조 이야기를 먼저 이야기 해보자. 개헌을 한다고 할 경우 권력의 구조, 분권화 문제, 통일대비 규정, 국민의 권리 등의 내용이 검토되어야 할 것 같은데.
A. 하세헌: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짚어봐야 한다. 87년 이후 우리 정치의 두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지역주의 심화, 다른 하나는 대통령과 의회의 격심한 충돌이다. 지역주의 문제는 총선보다는 대선과정에서 더 심화되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선거 제도는 승자독식 구조다. 한 표라도 더 많이 받는 후보가 모든 것을 거머쥔다. 따라서 후보는 어떻게든 당선되는 것이 지상목표가 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지역주의를 방조 또는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87년 이후 정치 상황을 보면 대통령과 의회의 충돌현상이 두드러진다. 문제는 단점정부보다는 분점정부 즉 여소야대 상황이다. 17·18대 선거를 제외하고 민주화 이후 역대 선거에서는 구조적인 여소야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지금(9일 현재) 여대야소 하에서도 개원도 못하고 있다. 미국처럼 타협과 실용적 정치문화가 아닌 지역과 이념, 세대 간의 분열이 강한 우리상황에서 의회와 대통령간의 충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면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가 더 맞는 것 같다.
A. 이강로: 대통령제가 한국정치문제의 원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달리 생각한다. 대통령제는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려왔다. 지역주의 심화는 대통령제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지역주의는 지난 20년 동안 상당히 완화되어 온 게 사실이다. 지역주의가 대통령제 때문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각제로 가자는 논리는 인과관계 성립이 어렵다고 본다. 대통령제 하에서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양당제 하 내각제 - 다당제 하 내각제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 역시 승자독식 구조다.
오히려 의원내각제가 될 경우 집권을 위해 지역주의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 분점정부가 갈등을 야기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정한 견제와 균형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정치가 진행되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는 실제적인 단점정부라고 할 수 있으나 촛불시위로 인해 정치적 이니셔티브 상실로 앞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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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세헌: 정서적 측면의 지역주의는 어느 나라나 다 있다.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드러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역주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1971년 제7대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가 영남표를 결집시키면서부터이며, 특히 3김 등장 이후 지역주의가 고질화되었다. 지역주의는 그 지역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개인이나 정당에게 무조건적으로 투표하는 것을 일컫는다. 여기서 후보의 출신이 어디냐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의원내각제는 제도적인 우월성이 있다. 많은 학자들의 견해와 각국의 정치현상을 볼 때 아시아, 아프리카 등 쿠데타와 같은 분규가 발생하는 나라는 대부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럽 등 선진국은 대부분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헌의회에서 만든 제헌헌법의 초안에는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이승만의 거부로 대통령제로 뒤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부터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임기가 4년이 넘게 남았는데, 현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여지가 별로 없는 듯하다. 내각제의 경우, 지지율 하락 시 재신임이나 내각해산 등으로 혼란스런 정국을 빨리 수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A. 이강로: 대통령제가 미국에서만 성공했고 다른 나라에서는 실패하였다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과는 다른 형태이긴 하나 프랑스의 대통령제는 50년간 비교적 성공해왔다. 근래 브라질도 성공케이스이다. 여기서 왜 서구에서 의원내각제가 채택되고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당시 유럽은 대부분 군주제여서 대통령제가 아닌 내각제가 채택된 것이다. 대통령제 하에서 지지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교체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지적은 국정운영 과정에서 지지율 반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대통령제가 점차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새로운 제도 채택보다는 낫다고 본다. 현재 우리 정당 구조 하에서 무엇이 더 좋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A. 하세헌: 정당정치가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각제가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는가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다. 하지만 따져 보면 과거 정당간의 이합집산, 의원 빼가기 모두 대통령제와 관련이 있다. 3당 합당, DJ의 새정치국민회의 결성과 DJP 연합, 신한국당과 꼬마민주당의 통합을 통한 한나라당 결성 등 모두가 대통령의 통치력을 강화하거나 대선에서 특정 인물을 당선시키기 위해 벌어진 현상이다. 정당정치가 무원칙하고 제도화되지 못한 것의 근본 이유가 대통령제에 있다. 만일 의원내각제가 된다면 소수 정당이라도 정부구성 협상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어 정당정치가 제도화로 진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
A. 이강로: 이합집산은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의 근거로 한나라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야당을 하면서도 분열되지 않았고,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도 근본적으로 분열되지 않았다. 우리 정치가 정당차원에서도 안정화될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오히려 이념이 분명한 진보정치 진영에서도 분당은 일어나고 있다. 즉 대통령제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 속에서 다른 요인 때문에 분당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Q. 손병권: 중간 정리를 해보자. 지금까지 논의는 개헌론의 배경과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구체적으로 권력구조 문제까지를 다루고 있다. 의원내각제 이야기가 나왔으니, 현 정부의 실정으로 일각에서는 의원내각제 도입 논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제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광장의 정치가 계속되면 그때마다 매번 내각을 새로 구성되어야 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A. 임지봉: 우선 이번 헌법개정 논의가 국민적 지지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세력의 정국돌파용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국민적 지지가 있어서 개헌으로 간다면 정부형태(권력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국리민복을 위한 기본권 규정에 대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
다른 기본권조항에 대한 개정과 함께 정부형태를 논의하게 된다면,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쪽에 약간 더 무게를 두는 입장이다. 내각제는 거대한 정치실험이 될 것이다. 내각제는 의회가 국정 운영의 중심에 서는 것이고 정당정치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우리 정당 내 민주주의 수준이나 지역주의 등을 고려하면 내각제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제 하에서 여당은 행정부의 들러리가 되기 쉽고 야당 역시 장외투쟁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회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내각제가 일정하게 정당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A. 하세헌: 내각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대통령제의 결함을 몇 가지 지적하고 싶다. 먼저 후보의 검증가능성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대통령제에서는 반짝 스타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 시대에 특히 가능성이 높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정치지도자들이 장기적인 정치인생 과정에서 검증을 받는다. 당, 국회, 정부 내 주요 포스트에서 경험을 쌓으며 상호 경쟁 가운데서 살아남은 사람만이 수상이 된다. 일본의 경우 보통 10선 이상, 20-30년 이상 의원생활을 한 사람이 수상에 오르게 된다. 따라서 의원내각제에서는 국민 통합, 비전제시 등 정치적 기술이 더 높은 사람이 수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3. 개헌의 내용: 분권화
Q. 손병권: 분권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분권화 체계를 헌법에 명시하자고 제안한 바 있는데.
A. 이강로: 김진선 지사 이전에 이회창 씨가 대통령 후보시절 연방제를 주장한 적 있다. 본인은 현행 체제를 유지하면서 보완해 나가자는 입장이다. 헌법 117조 외에도 122조, 123조 등 이미 내용적으로 지방분권에 관한 조항들이 있다. 즉 헌법을 바꾸지 않아도 보다 의미 있는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제주도특별자치법 같은 실제 사례가 있지 않은가. 문제는 지방자치 실시 이후에도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헌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권의 의지가 약한 것이 문제이다.
Q. 손병권: 분권화 논의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수도권 규제 완화, 혁신도시 재검토의 흐름에서 이런 문제가 제기 되고 있는 것 같다.
A. 하세헌: 지방자치와 관련한 헌법 내용을 보면 선언적, 추상적이다. '2할 자치'라는 말이 있다. 권한이나 재정의 대부분은 아직도 중앙정부가 장악하고 있으며 교부금이나 보조금의 형태로 지방자치단체를 통제·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말만 지방자치이지 실제로는 중앙에 예속되어 있다. 분권화를 대통령의 의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명문화가 필요하다. 명문화 하지 않으면 누가 권한을 내놓으려고 할 것인가. 대통령뿐만 아니라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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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임지봉: 지방자치와 관련해서는 헌법 제8장 지방자치 하의 117조와 118조가 핵심조항이다. 지방자치는 지방의회가 조례를 제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규칙을 제정하여 행정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조례나 규칙의 제정과 관련하여 117장 1항에 의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즉 중앙정부의 국회가 만드는 법률, 중앙정부의 행정부가 만드는 명령에 어긋나는 자치법규는 탄생할 수 없다. 지방자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헌법에 어떤 조항을 넣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통령의 의지 못지않게 국회의 의지도 중요하다. 국회가 만든 지방자치법에 근간을 두고 지방자치제도가 운영되고 있는데, 법률에 지방자치를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중요하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지방분권과 관련해서 헌법 개정의 사안이라기보다는, 국회나 대통령의 분권화 의지가 중요하다. 만약 헌법을 통해 지방자치를 강화하겠다면 연방제 도입과 같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통일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도 연방제 도입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연방제와 같은 혁신적 지방자치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면, 현행 헌법으로 충분하며 법률이나 명령을 얼마나 다듬어 가느냐가 관건이다.
A. 이강로: 현재와 같이 수도권에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이 집중된 상태에서 형식적인 분권화가 이루어지면 지역적 소외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분권 문제를 통일문제와 연관하여 고려하자는 의견에는 유보적 입장이다. 현재 상황에서 연방제를 도입하는 것은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것보다 더 큰 충격과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장기적 과제로 놓고 심사숙고해야 한다. 현 제도 하에서 지방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A. 하세헌: 지방에 관련된 사항도 대부분 중앙의 법령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므로 지방의회가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할 여지가 매우 적다. 다시 말해 자치사무의 영역이 매우 좁다. 교육자치, 경찰자치와 같은 최소한의 권한에 대해서 만이라도 헌법적인 규정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이 국회나 중앙적 시각에서만 이루어짐으로써 지방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책결정과정에 지방이 참여하는 것이 절실하다. 헌법을 개정해서 양원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원은 현행대로 국민대표 방식을 취하고, 상원은 지역의 대표들이 참여하여 국가 정책결정단계에서 지역의 이익을 반영시키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A. 임지봉: 앞서 언급한 연방제와 관련하여 미국식의 강한 연방제 아니라, 독일식의 느슨한 연방주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전제는 많은 국민들이 지방분권 혁신을 위한 연방제 도입을 지지할 때 그렇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필요 없다. 그러나 만일 연방제로 간다면 양원제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연방제 국가들이 대부분 양원제를 도입하고 있다. 상원은 지역을 대표하고, 하원은 국민(주민)을 대표한다. 상원은 하원과 행정부의 대립을 조정하고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회와 행정부의 대립을 중재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헌법재판소가 있지만 역사가 오래지 않은 조직이라 현재 수준에서 그러한 역할을 요청하기는 어렵다.
A. 이강로: 개헌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헌법은 기본적으로 선언적 내용밖에 기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하위 법령에서 강제할 수밖에 없고, 지방자치를 위한 개헌은 그 자체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둘째, 현재의 제도나 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 운영하고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4. 개헌의 시점과 주체
Q. 손병권: 만약 개헌논의가 시작돼서 개헌을 한다고 할 때, 개헌의 시점과 주체는 어떻게 될 것인지 말씀해 달라.
A. 하세헌: 개헌을 한다면 정치적 부담이 적은 시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2010년 이후에는 선거가 잇달아 있고, 대통령의 임기 후반부이므로 올해나 내년이 적기이다. 선거 전에 추진해야 냉정하고 차분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발의 주체는 대통령이나 국회 모두 할 수 있지만,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더 적절치 않을까 생각한다. 국회 산하에 전문가 집단을 구성해서 폭넓고 신중하게 논의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좀 다르긴 하지만 일본의 개헌논의는 5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장기적 시각에서 시간을 두고 폭넓게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A. 이강로: 개헌이 된다면 국회가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개헌논의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권력구조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비롯하여 최근 시민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환경권, 평화권 등 여러 논의들이 한꺼번에 수렴되기 어렵다.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이 짧은 시간 내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결국 오랜 시간과 에너지의 소모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개헌을 굳이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A. 임지봉: 개헌의 발의주체는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개헌의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투표다. 개헌은 국민이 원하면 하는 것이지 정치권이 자신들의 정치일정에 맞춰서 언제까지 하자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개헌 시기는 국민들이 원할 때가 정답이다. 개헌논의의 주도 역시 국민과 시민사회세력이 해야 한다. 지금까지 9차에 걸친 헌법 개정 과정에서 국민들은 모두 소외되어 있었다. 물론 발의는 법에 정한대로 해야 할 것이다.
A. 하세헌: 국민과 시민사회가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만, 대표성이 불명확하다는 문제가 있다. 시민사회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가? 국민의 대표기관은 국회이다.
A. 이강로: 두 분의 의견을 통합하고 싶다. 개헌 논의에 대한 실제적인 논의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국회가 주도하되 시민사회를 아울러서 가야 할 것이다.
A. 임지봉: 시민사회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시청 앞에서 매일 보고 있지 않은가.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이고 논의를 리드하는 역할은 분명이 필요하다. 국회가 사회자나 진행자 역할을 하는데, 국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훨씬 더 많이 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 발언의 취지이다. 자기들끼리 몇 사람 모여 논의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주장하는 공청회 운영방식은 문제가 있다.
5. 정리
Q. 손병권: 브라질의 경우 헌법에 온갖 내용을 다 넣다보니 개정이 잦다고 한다. 헌법에 얼마나 구체적인 내용을 넣어야 하는가.
A. 임지봉: 원칙은 없다. 입헌주의가 잘되고 있다는 미국도 헌법조항이 34개 조항뿐이다. 우리는 130여개 조항으로 국제 평균 이상이다. 48년 건국헌법이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틀을 갖게 되었는데, 이러한 틀 자체를 바꾼다면 헌법의 개정을 넘어선 혁명, 새로운 국가의 건립 내지 새로운 헌법의 탄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우리 헌법을 받아들이면서 이 틀 안에서 어떻게 내실 있게 다듬어 가느냐가 관건이다.
Q. 손병권: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A. 임지봉: 헌법이란 통치구조와 국민기본권 보장에 대한 최고 규정이다. 통치규정 역시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로 보장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국민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의 이해관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국민기본권 규정을 중심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기본권 주체를 '모든 국민'에서 '인간'의 권리로 바꿀 필요가 있다. 또 정보화시대에 걸맞은 정보인권 문제도 언급해야 한다. 난민권 문제도 있다. 특히 우리 헌법에서는 가운데 선언적인 부분을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위 법률이나 법원의 판례에 너무 맡기고 있어 헌법 자체가 선언적 규정, 실효성 없는 규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기본권에 관한 규정 중 기본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 제34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다. 여기에 "국회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재원확보의 의무를 진다"는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선언적 조항에 머물러 있는 사회적 기본권에 관한 조항들을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다.
A. 이강로: 향후 20년 정도는 헌법에 손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나라 헌법에서 기본적인 규범들이 선언적 규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현하는 것은 정치과정의 문제이다. 헌법 자체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문제가 많다. 현행 헌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해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논의하자. 지금 개헌논의가 펼쳐지면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상 권력구조의 문제로 귀결될 가능성 높다. 정치권 중심의 개헌논의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성과가 나올지 의문이다.
Q. 손병권: 전체적으로 세 분 패널 모두 개헌에 대해 적극적 찬성입장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정리해 보면 개헌에 대한 국민의 여론 수렴이 중요하다고 보인다. 개헌의 내용은 물론이고 개헌 필요성 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야 할 것이다. 개헌을 한다고 할 경우 특히 정부권력구조 뿐만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까지 신중하고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될 것이다. 오늘 귀한 말씀 해주신 세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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