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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급변사태 말하고 다녀서 전략적 가치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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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급변사태 말하고 다녀서 전략적 가치 없어졌다"

백종천 前청와대 안보실장 "대북정책은 경제정책"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실장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싼 흥미로운 뒷얘기들을 풀어 놨다.

백 전 실장은 25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경실련 통일협회 주최 포럼에서 노무현 정부가 정상회담을 늦게 한 이유는 핵 문제 때문이었고, 정상회담을 했던 최우선 이유도 핵 폐기 과정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백 전 실장은 정상회담 현장에서 느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핵 폐기 의지, 종전선언과 관련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철저히 '이념적'이라고 비판하며 남북문제를 국내정치 논리로 다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육사를 졸업한 군 출신 학자로 세종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그는 2006년 12월부터 노무현 정부 끝까지 청와대 안보실장을 지냈다. 처음 알려진 사실을 중심으로 백 전 실장의 주요 발언을 발표문과 실제 발언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 "2007년 초까지 정상회담의 '정'자도 안 나와"

▲ 청와대 안보실장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는 백종천 전 실장 ⓒ연합뉴스
노무현 정부가 핵 문제는 등한시하고 남북 정상회담만 하려고 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정반대의 얘기다. 내가 2006년 12월 청와대 안보실장이 됐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 생각을 전혀 안 했다. 정상회담의 '정'자도 안 나왔다. 핵 문제가 풀려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동결된 북한 자금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다. 중국은행(Bank of China)을 통해 동결 해제된 북한 자금을 송금하려고 했는데 중국이 신용 문제 때문에 못한다고 했다. 우리도 한국 경제 망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못했다. 결국 러시아의 작은 은행이 해결해 줘서 매우 고마웠다.

2007년 5월 BDA 문제가 풀리니까 핵 폐기 3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말이 그때야 나왔다. 그래서 내가 6월 초에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역시도 핵 폐기를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상회담의 가장 큰 목표가 핵문제였던 것이고, 실제 회담에서도 핵 관련 얘기를 상당히 많이 했고, 10.4 선언에도 들어갔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채널'을 물었다. 다는 과거 사기나 당했던 비선, 실세들로는 안 된다고 판단해 국정원을 통한 공식 라인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추진했다.

■ "노무현 대통령께 선물 하나 드리겠다"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가 6자회담에서 나온 10.3 합의였는데, 거기에는 북한이 핵 불능화와 신고를 2007년 12월 31일까지 하기로 날짜가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상응조치로 미국이 해주기로 한 '테러지원국 해제 과정 시작'과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는 날짜가 없다.

그런데 원래는 미국의 상응조치도 12월 31일까지 한다고 날짜가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이 9월 말 날짜가 들어간 합의문을 들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강경파들로부터 굉장한 공격을 받았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 다급하게 북한에 연락을 취해서 미국의 행동에 대한 날짜는 빼달라고 요구했다.

그 와중에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김정일 위원장이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불러 10.3 합의에 대해 설명하게 했는데, 김 부상이 와서 했던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가 남북 정상회담도 하니까 노무현 대통령한테 선물을 하나 드리기로 했다. 미국의 상응조치 시한을 빼달라는 힐 차관보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

10.3 합의는 9월 말에 합의를 보고 각국에 돌아가서 승인을 받고 발표하기로 했는데, 최초 원문에서 달라진 것 하나가 바로 미국의 상응조치 날짜를 뺀 것이다. 북한이 그 요구를 받는 걸 보고 나는 김정일 위원장도 핵 폐기를 할 의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 北,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 용어 고집…"위원장 말이니까"

10.4 선언에는 '남과 북이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자'는 구절이 있다. 평화체제가 선행돼야 핵 폐기가 가능하다는 북한의 입장과 평화협정 체결은 핵 폐기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미국의 상반된 입장을 감안해서 '입구'를 같이 만들자는 게 종전선언의 취지였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과정에서 있는 일종의 신사협정이다. 참여정부는 정상들의 정치적 의지를 담은 종전선언을 통해 미국은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 의지를 표명하고 북한은 핵 폐기 의지를 밝힘으로써 핵 폐기 협상, 평화협정 논의, 북미관계 정상화 노력 등을 앞당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종전선언은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제안해 달라고 노 대통령에게 당부한 것을 전하자 김 위원장이 "나도 관심 많다"고 하면서 합의문에 들어가게 됐다.

'3자 또는 4자'라는 애매한 표현이 들어가게 된 사연이 있다. 우리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직접 관련된 당사자"라는 표현을 원안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회담중에 '나와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 3자도 좋고, 또 4자도 좋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자 북한 사람들이 합의문을 만들면서 "3자 또는 4자"란 말을 고집했다. 우리가 '그렇게 합의해서 가져가면 남쪽에서 별 소리가 다 나올 것'이라고 북측을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답변은 간단했다. "위원장이 한 말이니까."

그래서 결국 고집을 못 꺾었는데 내가 볼 때 실질적으로 3자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분명 4자가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일부에서는 그 '3자'에 한국이 빠지고 북한, 중국, 미국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는데, 아니 당사자가 빠지는 협상을 어떻게 합의하나.

■ "이명박 정부는 이념정부…10.4 선언 읽어보기나 했나"

대북정책은 경제정책이라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이념이었다. 그래서 10.4 선언은 굉장히 실용적인 합의였다. 그러나 현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과연 10.4 선언문을 읽어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철저한 이념정부다. 대북정책에 대해 한 말이 너무 세서 앞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할 때 어떤 논리로 할지 궁금하다. 너무 세게 나가다 보니까 방향 전환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북한 급변사태 준비를 한다고 하는데, 그거 20년 전부터 이미 다 있던 것이다.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건 말하지 않을 때 전략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공개적으로 다 말하고 다닌다. 남북문제가 국내정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진전시키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고, 미국과 북한도 소극적이다. 선거 등 국내문제가 걸림돌이다.

북한이 제안한 평화협정 문제에서는 국내 반응이 대부분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보수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합리적 보수층의 이해가 중요하다.

얼마 안 되는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국 보수층의 견해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숫자는 적지만 이들이 미 행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고, 때로는 결정적이기 때문에 대미 민간외교가 필요하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선거 기간 보여주었던 이상주의적 대외정책으로부터 점점 '현실주의적' '실용주의적' '대대적 변화보다 점진적 변화'에 적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로비스트들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 외교는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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