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제로
'9.11 테러'라고 하면 누구나 두 대의 비행기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일명 '쌍둥이 빌딩'으로 날아드는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이 공격으로 쌍둥이 빌딩은 무너졌다. 빌딩이 서있던 뉴욕시 리버티 스트리트 120번지는 이날 이후 WTC라는 이름보다 '그라운드 제로'로 더 자주 불리게 됐다.
납치된 비행기는 모두 4대
그러나 WTC에 충돌한 아메리카항공 11편과 유나이티드항공 175편 외에도 이날 납치된 비행기는 두 대가 더 있었다.
세계 최강 미군의 지휘부가 위치한 미 국방부 청사 건물도 공격받았다. 국방부는 5각형으로 지어져 통칭 '펜타곤'(펜타Penta는 5를 의미하는 접두사)으로 불린다. 5각형의 한 변이 무너져내렸다.
댈러스 공항에서 출발해 LA로 향하던 아메리카항공 77편이 미 국방부 청사 건물에 충돌했다. 이 비행기에는 시어도어 올슨 미 법무부 차관보의 아내 바바라도 탑승해 있었다. 바바라는 남편에게 휴대전화로 상황을 알렸지만 누구도 손을 쓸 수는 없었다.
같은 공항에서 이륙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던 유나이티드항공 93편도 납치됐다.
납치된 항공기들 중 이 비행기만이 어딘가와 충돌하지 않았다. 하지만 펜실바니아주 생크빌 인근의 숲속에 추락했다.
비행기는 당초 워싱턴 D.C.에 위치한 백악관이나 의회 의사당을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필요시 이 비행기를 격추시켜도 좋다고 명령했다.
그러나 승객들이 비행기 납치범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한 테러범은 자신과 승객 44명이 탑승한 이 항공기를 지면과 충돌시켰다.
생존자는 없었다.
지난 2006년 개봉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플라이트 93>은 바로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분노, 혼란, 또다른 희생자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부시 대통령은 복수를 선언했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했고 10년 간의 '테러와의 전쟁'이 막을 올렸다.
사건 직후 정당한 방향을 찾지 못한 분노는 테러범들의 종교로 알려진 이슬람교로 향하기도 했다. 뉴욕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발비르 싱은 9.11 테러 직후 미국을 휩쓴 이슬람 공포증의 희생자다. 무슬림에 대한 공격이 빈번하던 그때 싱은 총에 맞아 숨졌다.
| ▲ 발비르 싱의 아들 수킨더가 아버지의 묘에 꽃을 바치고 있다. ⓒAP=연합뉴스 |
새로 지어지는 WTC
9.11 테러는 실제적인 피해 못지않게 미국인들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미국은 세계무역센터를 다시 짓는다. 새로 올려지는 WTC 밑부분에는 9.11 기념관도 조성된다.
| ▲ 그라운드 제로를 밝히는 쌍둥이 불빛. ⓒAP=연합뉴스 |
| ▲ 새로 지어지는 WTC. 사진 중앙 하단의 정사각형 모양 구조물이 9.11 기념관이다. ⓒAP=연합뉴스 |
9.11 테러로 3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벌어진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수십만 명이 죽었다. 9.11의 여파는 아직도 중동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 ▲ 그라운드 제로를 찾은 관광객.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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