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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을 돕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니까!

[프레시안 books] 마이클 토마셀로의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

인간은 왜 남을 돕고, 타인과 협력하는가?

이 주제는 진부하리라 생각될 만큼 많은 이들에 의해서 이야기되어 왔지만, 여전히 흥미로우며 여전히 중요하고, 아직도 완전한 해답을 찾지 못한 주제이다. 우리가 서로 돕고 타인과 협력할 줄 아는 존재라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 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희망의 메시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타인을 돕고 타인과 협력하는 현상은 비단 인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이며,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물을 때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어떤 성향을 갖는가라는 질문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문·사회과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혹은 본성이냐 양육이냐 등 인류 지식사에서 제기된 굵직굵직한 질문들 또한 바로 이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협동은 다른 종들에서의 그것과 달리 훨씬 더 대규모 집단을 기초로 나타나곤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규범, 제도, 문화 등과 맞물리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한 층 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간주되곤 한다.

▲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마이클 토마셀로 지음, 허준석 옮김, 이음 펴냄). ⓒ이음
토마셀로는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허준석 옮김, 이음 펴냄)을 통해 다른 종들과 비교했을 때 인간만의 독특한 형태의 이타성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상부상조적 협업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에서 토마셀로는 그 동안 자신이 아이들을 상대로 실행했던 실험 결과에 기초하여 자신의 주장을 펴나가고 있다. 그 동안 이타성, 공감 능력, 그리고 공정함에 대한 태도 등을 둘러싸고 인간과 유인원 및 영장류 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연구 성과들이 주로 소개되어 온 반면, 토마셀로는 이 책을 통해 양자간의 '분기'와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색다른 시각을 던져준다.

토마셀로는 인간과 유인원(및 영장류) 사이에 유사성을 보여주는 많은 기존 실험 결과들을 좀 더 정교한 실험들을 통해 재검증하여 표면적 유사성 속에 숨겨 있는 차이점들을 하나하나 드러내주고 있는데, 이를 위해 진행된 실험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실험 연구의 모범 사례로 간주될 만하다.

이 책의 1부에서 토마셀로는 아이들을 상대로 자신이 수행했던 다양한 실험의 결과들을 토대로 다음을 주장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타성을 지니는데,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이타성은 어른들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성장 과정 초기에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나타나던 이 이타성은 아이가 자라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상대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상호성의 형태를 띠게 되며, 이 사회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관한 사회적 규범을 내재화하기 시작한다(이것이 '초년기 스펠키와 후년기 드웩' 가설의 내용이다).

토마셀로에 따르면, 초년기 아이들(즉 사회화 과정을 거치기 이전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이타성은 유인원들 및 영장류들에게서 나타나는 이타성과 비교했을 때 그것이 돕기 행동에서뿐 아니라 정보 공유나 혹은 음식 나누기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는 점에서 단지 양적으로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또 아이들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타인을 돕는 성향은 사회적 규범과 결합하면서 한층 복잡한 양태를 띠게 되는데 이러한 사회화 과정은 다른 유인원들이나 영장류들에게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초년기 아이들이 거치는 사회화 과정이란 자신의 행동에 가해지는 처벌과 보상이라는 피드백 즉 직접적 경험을 통해 규범을 따르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아니라,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공적인 목표를 인식하고 이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아내는 과정이다. 즉 인간에게 사회화란, 토마셀로에 따르면, '우리'라는 관념이 형성되고, 그 관념 하에서 '우리'의 이익('나'만의 이익이 아니라)을 위해 요구되는 행동 양식에의 순응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우리'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에 대한 배척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타성과 사회화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무엇이 인간을 유인원으로부터 구별되도록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토마셀로가 모든 문제에 열쇠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상호 부조적 협동, 즉 협력이다. 상호 부조적 협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이득이야말로 사람들 사이에서의 '공유된 의도성'(shared intentionality, 역서는 "공동 목적"으로 번역을 했는데 적절한 번역어를 선택한 것 같다)을 진화하도록 해주며,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사회화의 기초가 된다고 보고 있다. 즉 토마셀로에 따르면 협력을 통한 '공유된 의도성'의 진화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어떻게 집단적인 협동이 등장하게 되고, 이것이 우리 인간을 다른 종들로부터 본격적으로 분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는지를 2부에서의 토마셀로의 주장을 통해 다시 재구성해보자. 토마셀로는 우리 조상이 직면했던 상호 작용의 구조는 죄수의 딜레마라기보다 사슴 사냥 게임의 구조였다고 본다(이 책의 역자 해제에 이 두 게임의 구조가 아주 잘 설명되어 있다).

사슴 사냥 게임은 기본적으로 상대가 협조를 안 하면 자신도 협조를 안 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상대방이 협조하면 자신도 협조하는 것이 유리한 보수 구조를 갖는다. 이 게임에서는 협조라는 행동을 공동으로 취하면 참가자 모두가 이득을 보기 때문에(즉 무임승차의 유인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협조에 무임승차를 할 것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상대방이 협조로 나올 것인지에 대한 예상, 그리고 나의 행동에 대한 상대방의 예상 그리고 그 예상에 대한 나의 예상 등, 서로의 예상의 맞물림이 중요해진다(그리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의사소통이 중요해졌을 것이다).

사슴 사냥 게임의 구조로 특징이 지워지는 상호 작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냄을 통해서 우리의 조상들은 공동의 목표와 다양한 역할 간의 조화로운 노동 분업을 구현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공유된 의도성'을 진화시킬 수 있었다. 공동 목적을 갖고 협업에 참가함으로써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상호의존성을 자각하게 되고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협업에 참가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합리적임을 깨닫게 되면서 공동 목적 하에서의 협업에의 참가라는 사회적 규범이 형성된다.

토마셀로는 상호 부조적 협동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유인원들 및 영장류로부터 분기시켜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상호 부조적 협동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이 이타성 및 사회성이라는 인간의 독특함의 진화적 원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인간의 상호 부조적 협동이 모든 문제를 풀어내는 열쇠가 되는지의 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고 일단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그의 주장을 완성시키려면 왜 다른 유인원들은(그리고 영장류들은) 상호 부조적 협동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인간만의 고유한 문화나 언어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겠지만 토마셀로가 이 입장에 동의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토마셀로에게는 인간의 고유한 문화나 언어는 상호 부조적 협동을 가능케 하는 '원인'으로서가 아니라 상호 부조적 협동으로부터 얻어지는 '결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드러난 토마셀로의 주장을 재구성해보면 인간만이 상호 부조적 협동을 이루어낼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인간만이 협동의 성과를 공정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면 토마셀로의 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왜 다른 종들과 달리 인간만이 공평성이라는 잣대를 갖게 되는지 그리고 그 잣대를 성과의 배분에 적용함으로써 성과물을 둘러싼 분배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토마셀로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고 있는데, 그 지점에서 인간과 다른 유인원 간의 분기의 진화적 이유는 여전히 열려 있는 문제로 남아 있다.

둘째 토마셀로는 상호 부조적 협업을 인간의 생래적 이타성과 사회성의 퍼즐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로 제시하면서 "이타성은 조연일 뿐이며, 주연은 상호 부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협동을 둘러싼 문제가 언제나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갈등하지 않는 '사슴 게임 사냥'의 형태로 전개되는지(그렇다면 토마셀로가 옳다) 아니면 개인과 집단의 이익이 갈등하는 '죄수의 딜레마'의 형태로 전개되는지(그렇다면 토마셀로는 문제를 빗겨나가고 있는 셈이다)는 좀 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야기하자면 성공적인 협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 공동의 목적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됨을 확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개인의 이익이 집단의 이익과 어긋날 때 개인의 이익을 억제할 수 있는 성향을 배워나가는 것인지의 문제이다. 더 나아가 상호 부조의 이득을 통해 협조적 성향을 지니게 된 인간이 죄수의 딜레마의 상황 하에서도 협조적 성향을 띠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타성의 진화라는 퍼즐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연구들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구조를 사슴 사냥 게임의 구조로 변화시키는 요인에 주목해왔다. 악셀로드의 '게임의 반복'이라는 해법이 그 대표적인 시도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게임이 충분히 오래 반복되면 매회 상대방의 협조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더라도 무임승차를 해서 다음 회 상대방의 맞대응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계속 협조로 나아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이득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의 협조에 대해서는 나도 협조로 대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면, 이렇게 충분히 오래 반복되는 전체 상호 작용은 죄수의 딜레마가 아니라 사슴 사냥 게임의 구조로 변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에서 진화하게 되는 협조 전략은 '이타적' 협조 전략이 아니라 '상호 부조적' 성격을 띤 협조 전략인 셈이다. 그렇다면, 상대방과 충분히 오랜 상호 작용이 기대되는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협조 행위가 나타난다면(즉 진정한 '이타적' 협조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성향의 진화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된다.

나는 우리가 공감이라는 감정을 갖고 타인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 이것이 우리의 행동의 방향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제목처럼 "왜 우리는 협력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상호 부조적 협동이 낳는 이득에서 찾아질 수 있다는 토마셀로의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가 왜 협력하는가라는 질문은 '공동 협력으로부터 이탈했을 때 이득이 되는 상황에서조차도 왜 협력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던져질 때에만 유의미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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