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시대라는 호칭이 가능한 것은 바로 그 리더의 삶과 정치에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체현돼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산업화라는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정치가라면,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정치가다. 특히 김대중은 산업화 시대부터 박정희의 정치적 경쟁자였으며, 박정희 사후에도 그 후예들과 맞서서 민주화에 헌신하고 그 발전을 이루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김대중을 생각한다>(삼인 펴냄)는 정치가 김대중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게 한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프레시안>의 '김대중을 생각한다'라는 기획에 연재된 글과 인터뷰이다. 프레시안 대표 박인규가 '머리말'에서 지적하듯이, 이 기획은 지난해 <김대중 자서전>이 출간된 후 김대중의 삶과 사상 그리고 정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 <김대중을 생각한다>(프레시안 기획, 강원택 외 지음, 삼인 펴냄). ⓒ삼인 |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흥미롭기도 하고, 정치가 김대중과 김대중 시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했다. 더욱이 몇몇 필자들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통독한 내 소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 책은 인간 김대중, 정치가 김대중, 김대중 정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다. 민주화에 대한 그의 기여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면서도 보수적 자유주의자로서의 한계와 제왕적 정치가로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이뤄지고 있다. 어떤 인물, 어떤 시대라 하더라도 빛과 그늘이 공존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정치가 김대중과 김대중 시대에 대해, 비록 전문적인 연구서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다시 생각해 볼 만한 사건과 쟁점에 대한 다채로운 논의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인간 김대중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것은 라종일이 쓴 글이다. 인연과 일화를 중심으로 쓴 이 글은 '선생님'으로서의 김대중의 삶과 사상, 정치의 특징을 담담하지만 애틋하게 회고하고 있다. 라종일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어 '이성적으로'가 아닌 '정서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다소의 감정이입이 있었겠지만, 그의 글은 인간 김대중과 그의 정치에 대한 온당한 평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글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박인규도 '머리말'에서 이에 대해 언급했지만, 우리 문화에서 인물에 대한, 특히 정치가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를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정치라는 행위 안에 담길 수밖에 없는 가치 지향을 생각할 때, 균형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적당히 절충할 위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점에서 이 책에 대해 갖는 아쉬움은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치 사회학 연구자로서 보기에 김대중 시대는 일종의 '역설의 시대'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지만 외환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던 시대, 신자유주의가 절정을 이룬 역사적 구속 아래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내고 확장해야 했던 이 역설의 시대에 정치가 김대중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정치를 모색했고 추구했다. 1970년대 이후 민주화 세력이 헌신해 온 '민주와 평화'라는 가치가 김대중 정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여성부·국가인권위원회 설치 그리고 남북 정상 회담 개최 등으로 현실화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대중 시대의 한계는 우리 사회 민주화 세력의 한계다. 사회 양극화 해소 등 김대중 정부가 남긴 유산은 우리 민주화 세력이 앞으로 풀어가야 할 중대한 과제다. 역사에서 비약은 없다. 민주화 세력이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면, 그 출발은 당연히 김대중 시대의 성취와 한계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 김대중과 정치가 김대중 그리고 민주화 시대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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