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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에 철퇴! 희망의 불씨가 나올 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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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에 철퇴! 희망의 불씨가 나올 강은?

[2011 가을, 강맑실의 선택] 츠쯔&#51288;의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이른 아침 풀밭에 서니 차가운 풀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밤새 굳어버린 근육과 관절을 두드리고 늘리니 서서히 몸이 깨어난다. 이제 몸과 마음이 자연의 기운과 호흡을 주고받을 차례이다. 들녘 출판사에 예닐곱 사람이 모여 태극권을 시작한 지 2년 가까이 되었다. 태극권은 권법이라기보다 자아를 버리는 버림의 동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학산 자락의 도도록한 숲을 바라보며 들녘 출판사 앞 풀밭에서 태극권을 하다보면, 때가 낀 내 안의 원초가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듯도 하다. 자연이 파괴되면 그만큼 인간 내면의 자연도 똑같이 파괴될 터인데, 자아를 버릴 때에만 우리 마음 속 원초는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문명의 탈을 쓴 폭압적 개발에 항거하는 연대의 힘도 어쩌면 내 안의 이 원초를 일상적으로 깨우는 일에서부터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김윤진 옮김, 들녘 펴냄). ⓒ들녘
태극권을 하러 들녘 출판사를 오가다가 표지 그림에 마음이 끌려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 츠쯔졘의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김윤진 옮김, 들녘 펴냄)이다. 책을 집어든 그날, 마지막 쪽까지 다 읽은 늦은 밤에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에 이토록 푹 빠져 본 적이 얼마만이던가. 열흘 째 비가 내리던 여름날이었다.

어원커라는 소수 민족의 마지막 추장의 아내였던 여인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하는 날도 비가 내린다. 새벽. 보름이 넘도록 작열하는 태양에 강물이 비쩍 말랐는데 우리렁(부락 단위) 사람들이 숲에 여인과 손자 안차오얼만 남기고 중국 정부가 만들어준 집단 이주지 부쑤라는 읍으로 모두 떠나자마자 비가 내린다.

여인은 뾰족한 천장 위에 생긴 구멍을 통해 캄캄한 밤에도 별을 볼 수 있는 우산처럼 생긴 시렁주가 아니라 한밤중에 잠에서 깨었을 때 칠흑 같은 지붕이라면 눈이 멀고 말 것 같아서, 순록들이 감옥 같은 철조망 안에 웅크리고 앉아 물 흐르듯 울리는 방울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면 귀머거리가 될 것 같아서, 부쑤의 불은 부싯돌로 피우는 불이 아니라 태양빛도 달빛도 없어 인간의 마음과 눈을 밝게 비춰줄 수 없을 것 같아서 산에 남았다.

이 책은 이 여인이 들려주는 다싱안링(대흥안령) 산맥과 어얼구나 강(흑룡강의 지류인 아르곤 강)에 둘러싸인 다싱안링 지구에서 겪은 4대에 걸친 가족사와 누가 사냥을 하건 함께 나누어 먹는 이웃들의 삶이 담긴 20세기, 100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무릇 한 세기를 담은 이야기가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삶과 죽음, 사랑, 번뇌과 고통, 애증, 질투, 증오, 침략, 항거 같은 삶의 모든 주제가 빠짐없이 들어 있다.

그리고 가족과 같은 순록(이들은 순록 없이는 한 순간도 삶을 이어갈 수 없다)의 먹이를 찾아 겨울이면 이삼 일, 길어야 여름에 보름 정도 머물다 떠나야 하는 유목민의 삶이 문명과 제도의 굴레 속에서 어떻게 망가져가는지가 처절하게 그려져 있다. 오늘날 지구상의 어느 나라, 어느 마을 이야기를 끄집어낸들 비슷하지 않으랴마는.

이 소설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야 셀 수 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이야기하련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없다. 등장하는 수십 명의 삶 하나하나가 제각기 펄떡이고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들의 삶에 간섭하게 된다. 심지어 그들과 함께 살았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중국 최고의 문학상 '마오둔 문학상'과 '루쉰 문학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작가 츠쯔졘의 역량 때문이리라.

화자의 엄마 다마라는 사랑하는 남편 린커가 벼락을 맞고 죽은 후 평생 다마라만을 사랑하며 기다린 린커의 형 니두 무당의 사랑을 씨족의 법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러자 남편이 죽은 그 날처럼 천둥 치고 비 내리는 날이면 니두 무당이 손수 지어준 깃털치마를 입고 숲으로 뛰어들어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미쳐간다.

화자의 동생 루니의 아내 니하오는 니두 무당을 이어 무당이 된다. 굿을 해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때마다 자신의 아이가 대신 죽어가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무당의 길을 접지 못하던 그녀도 마음의 상처로 늙고 병들어 힘을 잃어간다. 하지만 큰 산불이 온 야영지를 삼키려 할 때 마지막 힘을 쏟아 굿을 해서 비를 내리게 한 후 쓰러진다.

1968년에 태어나 중국에서 이미 유명한 화가로 활동하던 화자의 손녀 이례나는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어원커의 근원적 원초성에 압도당해, 세상의 모든 영예와 허울을 벗어던지고 2년 동안 산에 틀어박혀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한 후 어얼구나 강에 붓을 씻으러 간다.

아, 화자의 고모 심술쟁이이자 이야기꾼 이례나도, 요리 솜씨 좋은 입 삐뚤이 제푸린나도, 러시아 여인을 아내로 맞았던 대장장이 이란도, 자신의 굴곡진 삶의 자락을 끌며 지금 나에게 저벅저벅 걸어온다.

이 책은 문명에 세뇌당한 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자꾸 들여다보게 한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과 융화하며 살았던 내 과거를 끝없이 그리워하는 지금의 나를 어원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속으로 확 끌어당긴다. 츠쯔졘은 자신의 주장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고 등장인물이 일본과 소련 침략, 중국의 벌목과 소수 민족 정책 등 시대와 역사를 맞으며 변해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이 점이 나에게는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1950년대 토지 개혁이 이루어져 지주 계급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는 바깥소식을 전해 듣자 이푸린은 이렇게 말한다.

"잘했어. 우리도 소련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한테 그렇게 해야 돼. 우리가 놈들한테 뺏긴 물건을 찾아와야 한다고."

일본군으로부터 훈련을 받던 대장장이 이란은 사나운 셰퍼드로 하여금 어눌한 동료를 공격하게 한 일본인 장교 앞에서 셰퍼드의 꼬리를 잡고 빙빙 돌려 꼬리가 빠지자 그 꼬리를 장교 얼굴에 던진다. 하지만 1930년대 말 처음으로 일본군 훈련에 소집된 날의 풍경은 이랬다.

"그들은 야영지를 떠나며 숲에서 흰나비가 군무를 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찬란한 태양 아래 흰나비 무리에 묻혀 그들은 마치 눈밭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여름에 흰나비가 많으면 겨울에 눈이 많이 왔다. 라지다가 손을 뻗어 나비 한 마리를 잡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당신한테 눈꽃 한 송이를 선물하리다, 하고 말했다. 그가 웃으며 손을 펼치자 그 흰나비는 과연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남자들을 배웅하는 여자들 모두가 그 모습에 즐겁게 웃었다. 야영지에 남게 된 우리 여자들은 처음에는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순록의 뿔을 자른 후 함께 모여 차도 마시고, 음식도 먹고, 일도 했다. (…)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사슴고기도 먹고, 술도 마셨다. 이푸린은 울고 니하오는 노래를 불렀다. 울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융화된 그 아름다운 밤 우리는 모닥불이 사그라질 때까지 앉아 있다가 시렁주로 돌아왔다."

화자의 두 번째 남편이자 부족의 마지막 추장이었던 와뤄쟈는 중국어를 배워서 책 읽기를 좋아하고 시를 즐겨 짓는다. 여인은 이런 와뤄쟈와 교육 문제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

"산에서 각종 식물과 동물을 알고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바람과 비, 눈과 서리의 변화와 징조를 읽는 것이 학습이라고 여겼다. 나는 책에서 광명한 세계와 행복한 세계를 배울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았지만, 와뤄쟈는 지식이 있는 사람은 비로소 눈을 뜨고 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광명은 강변의 암벽화 위에, 나무들 위에, 꽃봉오리에 맺힌 이슬 위에, 시렁주 꼭대기의 별빛에, 순록의 뿔 위에 있다고 느꼈다. 만약 이러한 광명이, 광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광명이란 말인가!"

뭐니뭐니 해도 내가 이 책에 압도당한 건 자연과의 합일된 삶과 습속과 전통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 책의 묘사력이다. 인물의 삶과 역사적 사건과 저자의 관점이 뼈라면 그것들을 잇고 채워가는 묘사는 살이다. 때론 숨 막힐 정도로 벅찬 묘사에 잠시 책읽기를 멈추게도 된다. 작가가 다싱안링 지구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 때까지 그곳에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아버지 린커가 번개를 맞고 죽은 후 비오는 날 우르릉 쾅쾅하는 천둥소리가 좋아졌다. 마치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천둥과 번개 속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영혼이 나에게 말을 걸고 빛줄기를 발사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마당질하던 흙곰을 만났다. 곰은 자신 앞에서 유방을 내보이는 여인은 해치지 않는다는 고모 이푸린의 말이 생각났다. 얼른 상의를 벗고 나는 나무, 유방 두 개는 싱싱하게 자란 노루궁뎅이버섯이라고 주문을 외웠다."

"청진기, 그 차갑고 둥그런 쇠붙이가 어떻게 우리의 병을 알 수 있을까. 바람이, 흐르는 물이, 달빛이 내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들을 수 있었다. 병은 내 가슴에 숨어 있는 비밀의 꽃이었다. 우울하고 답답하면 바람 속에 잠시 서 있었다. 그러면 바람이 내 가슴에 쌓인 우울을 불어 흩날려주었다. 고민에 휩싸이면 강변에 서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빛나는 묘사는 어느 쪽을 들춰봐도 수두룩한데 더 인용을 해 무엇 하리.

이름도 밝히지 않은 아흔 살 여인이 새벽에 시작한 이 이야기는 해질녘에야 끝난다. 벌목꾼들을 위로하기 위해 숲속에 들어온 영화 상영단이 틀어준 영화 속 사람들을 위해 순록 젖을 세 주전자나 끓인 순진한 안차오얼, 그러나 누구보다도 일하기를 즐거워하는 손자 안차오얼과 여인, 단둘이 숲에 남았다.

다른 사람들은 예의범절이 넘치는 문명 사회주의의 새로운 수렵 민족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산 아래 이주지로 떠났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벌목으로 숲 속 곳곳에는 철도와 트럭 길들이 이어지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급기야 다싱안링 산맥에 대규모 개발이 시작된다.

여인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물려준 불씨, 비록 나이는 많지만 여전히 생기발랄한 청춘인 화롯불을 바라보고 있다가 시렁주 밖으로 나온다. 그때 안차오얼이 소리친다.

"하모니카가 돌아왔어요."

하모니카는 산 아래 이주 마을로 내려갔던 새끼 순록이다. 과연 이 땅에서 자연과 문명의 화해는 가능한가, 희망의 불씨가 될 하모니카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이 책은 나에게 숙제로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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