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 송년호(71호)는 '2011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독자·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1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예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봤다던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이원기 옮김, 부키 펴냄)을 읽었었다. 누구나 그 책을 읽으면서 유럽의 가치가 우리의 미래가 됐으면 하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책은 유럽의 구체적인 속살을 알기는 좀 부족한 면이 있었다.
평소에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자신을 생각해 왔던 나도 구체적의 유럽 복지의 속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토머스 게이건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는 유럽에서 살게 된 미국인 변호사가 유럽과 미국의 복지를 몸으로 겪어가며 비교한 책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실전 <유러피언 드림>'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최근 쿠바의 의료 서비스 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쿠바 모델을 우리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욕망을 조절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공맹의 가르침처럼 공허하게 다가온다. 또 실제 우리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유럽은 더 값진 것으로 다가온다.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 ⓒ부키 |
"유럽에서는 두세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어딘가 교양 있어 보이는 얼굴 표정을 한 사람들을 보게 되지만 미국에서는 연예인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의 얼굴만 보게 된다."
"프랑스 여자가 좋은 이유는 미국 여자가 남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돈을 얼마나 잘 버는지 확인하는 것인데 반해, 정부에서 가정을 꾸리는 본능을 충족시켜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프랑스 여성은 미래의 남편이 얼마를 버는지 곤두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복지의 차이가 사람의 일상생활과 가치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제 곧 선거철이 되고 정치인은 유권자에게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지 물어볼 것이다. "교육, 의료 보험, 제비꽃이 만발한 도시" 등 공공재를 무료로 향유할 수 있는 국가, 연간 700시간을 덜 일하고 그 시간을 독서 여행 공부에 쓸 수 있는 나라, 학자금 때문에 빚을 지지 않는 나라. 꿈이 아니다. 바로 유럽식의 복지가 답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국내 총생산(GDP)이 미국이 더 높지 않느냐고? 소수의 엄청난 부자가 불러 오는 통계적 착시도 있지만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미국의 사회 기반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의료, 육아, 교육, 교통, 치안 유지 등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또 미국인 긴 노동 시간으로 청소, 요리 등의 가사에 추가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것이 미국의 GDP를 높게 만든다. 물론 투기성 금융 산업도 한몫할 것이다.
그에 반해 유럽은 그런 공공재를 국가가 대량으로 효율적인 방식으로 구매해주기 때문에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을 여유 있게 쓸 수 있다. 유럽 사람이 미국에서 살게 되면 당장 의료 보험, 유급 출산 휴가, 실업 보조금, 학비, 육아 보조, 노령 연금 등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나는 한의사이기에 특히 의료 부분에서 미국은 왜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의료 서비스의 수준이 형편없는가가 궁금했었다. 의료 부분에서 미국인은 낸 세금의 일부분만을 되돌려 받게 된다. 나머지 대부분은 민간 보험 회사, 제약 회사, 병원 경영진의 수중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유럽인이 미국인에 비해 효과적으로 돈을 쓰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살 것인가? 하루 종일 일해서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돈을 자본가에게 보태주는 삶을 살 것인가? 조금 소득이 낮아도 국가가 많은 부분을 보조해 주고 더 여유로운 삶을 살 것인가? 2012년, 유럽식 복지냐 미국식 복지냐를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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