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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만든 밥, '명품백'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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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만든 밥, '명품백' 안 부럽다!

[어린이책은 성장이다] <열두 달 토끼 밥상>

어린이날 발행되는 '프레시안 books' 89호는 어린이 책 특집으로 꾸렸습니다. 열두 명의 필자가 어린이 책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마음껏 펼쳤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의 어린이 책은 무엇입니까? <편집자>

'프레시안 books'에서 어린이 책 특집호를 꾸린다며 책을 한 권 추천하란다. 가만 생각하니 우리 큰애가 낸 어린이 책을 추천하지 않을 수 없어 쓰기 어렵다고 했더니, 괜찮다며 팔불출 노릇을 하란다. 기왕 판을 깔아주었으니 자랑질을 좀 해야겠다. 맹물의 <열두 달 토끼 밥상>(김정현 지음, 구지현 그림, 보리 펴냄)을.

과연 남들은 어찌 보는가? 인터넷 서점에 올라있는 서평을 먼저 조금 따와 보자.

"초등생 딸아이도 쉽게 덤벼볼(?) 만큼 쉽고 간단한 레시피와 재미난 그림까지 담겨 있어 어느새 아이들에게 요리가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 맹물이 아이들의 마음을 갖고 있는 큰언니여서가 아닐까싶다. 어린이를 위한 진짜 요리책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추천하고픈 책이다~"



▲ <열두 달 토끼 밥상>(김정현 지음, 구지현 그림, 보리 펴냄). ⓒ보리
서평처럼 이 책은 단편 만화들로 구성된 어린이 요리책이다. 이야기 만화가 있고, 그림으로 된 요리 레시피가 있는. 이 책이 특히 귀한 건 이 책의 필자 때문이다. 이 책을 쓸 당시 그의 분신인 만화의 주인공 맹물의 나이는 열여덟. 예전 같으면 시집가서 살림을 꾸렸을 나이지만, 요즘 세상에 열여덟이면 라면, 달걀 프라이 정도 할 줄 알면 다행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열여덟 언니 맹물이 일곱 살 아래인 열한 살 동생 맹랑이와 할 수 있는 요리를 모았다. 보통 요리책이 어른용이고, 어쩌다 어린이 요리책이 있다 해도 어른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그런데 어른이 아닌 열여덟 언니, 누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떨까?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이 들려준 수학 시간이 떠오른다. 이 선생님은 수학 문제를 풀기 어려워하는 아이들한테 가장 좋은 선생님이 이 문제를 풀 줄 아는 친구라는 걸 알고 아이들끼리 문제 풀이를 도와주도록 하신단다. 아이들한테는 어른의 말보다 한두 살 위 언니 형의 말이 더 설득력 있다.

하긴 나 역시 첫애를 낳았을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이는 백일이나 돌배기 아이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순간만이 가지는 어려움을 가장 잘 알고 나보다 한발 앞서 풀어낸 노하우는 어떤 전문가의 도움말보다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면 맹물은 요리 학교를 다니거나, 뭐 대단한 요리 교습을 받았을까? 아니다. 그냥 평범한 그 나이 아이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 있으니 시간이 많다는 정도. 그런 아이한테 이런 글을 쓰게 한 건, 출판사 편집자의 용기였다. 당시 보리 출판사는 어린이 잡지를 창간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새로운 잡지에 이 기획을 넣었다.

그렇게 해서 월간 <개똥이네 놀이터> 창간호부터 맹물의 '토끼 밥상'이 실리기 시작했다. 열여덟 살 아이가 어찌어찌 한 달 한 달 내용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갈까? 연재는 꼬박 3년 이어져 요리 만화가 서른여섯 꼭지 쌓였고, 연재가 끝나자마자 바로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어린이 혼자서도 척척 만드는 제철 요리'라는 부제를 달고.

이 책에 들어 있는 히트 레시피를 하나 소개하면 김치국물볶음밥. 김치국물볶음밥은 우리가 보통 하는 김치볶음밥과 달리 찬밥에 김치 국물만 넣어 볶는 간단한 볶음밥으로 아이들이 쉽게 해 먹을 수 있어 인기다.

어쩌다 이야기하다 우리 애가 책을 냈다고 하면 어떤 이는 슬며시 묻는다. "얼마나 들었어요?" 나는 든 것도 받은 것도 없다. 다달이 나오는 원고료는 당연히 큰애 통장으로 들어왔고, 그걸 확인하자마자 큰애는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손전화를 마련했다. 정기 수입이 생겼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용돈을 준 적이 없고, 받은 건 있다. 단행본 인세가 들어오니 그동안 고마웠다고 백화점에 가서 가방을 하나 사주더라.

사람들이 묻는다. '요리 전문가가 될 거지요?' 글쎄, 그 뒤로 몇 년이 흘렀지만 그런 계획을 가진 적이 없다. 그저 밥 해 먹고 사는데 충실할 뿐, 요리를 전문으로 할 생각은 없다. 아이들 자라는 걸 보면 한동안 뭔가에 빠져서 지내다가 거기서 단물 웬만큼 빨아먹었다고 느끼거나 또는 자기도 나름 한계를 느끼면 슬며시 새로운 문을 연다. 요리에 빠졌다가 음악으로 돌아서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그림으로.

다만 3년에 걸친 요리 연재가 끝나고 나니 우리 집 아이들이 하루 한 끼 밥 당번을 하고 있다. 하루 한 끼, 그러니까 하루 한 가지 반찬을 날마다 만드는 거다. 이건 우리가 잠자고 밥 먹듯 그렇게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일상이 되었다. 밥 하는 일. 나는 이게 내 몸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귀찮다고 사 먹으면 그때는 모르지만 이게 1년 10년 쌓이면 우리 몸이 뭐가 되겠는가. 내가 먹으려, 우리 식구가 먹으려 하는 요리와 돈벌이로 하는 요리가 같을 수는 없지 않겠나.

밥 하고 치우는 게 그저 일상이 되어 몸이 익어 우리 아이들은 외식보다 집밥을 좋아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도시락을 즐겨 싸가고, 누구한테 선물을 해도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한 끼 밥 해 주는 걸로 한다.

그 덕에 나 역시 잘 얻어먹고 산다. 우리 집은 하루 두 끼를 먹으니, 하루 한 끼는 내가 해 주고, 한 끼는 얻어먹고. 자식 키워 나중에 하는 호강이 안 부럽다. 지금 덕을 날마다 보고 있으니까.

아, 참고로 이 책은 아토피가 있는 어린이가 먹어도 될 요리로 구성되어 있다. 또 제목이 '토끼 밥상'인 걸로 알 수 있듯이 채소 먹는 방법과 철따라 먹는 제철 음식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양념 하나도 천연 양념으로 소개한다. 어린이를 위해 틈틈이 건강 요리법과 요리할 때 조심해야 할 점들도 찬찬히 설명하고 있다.

이번 어린이날에 나는 홈스쿨러를 위한 모임을 할 예정이다. 그 모임에서 어린이날 기념으로 뭘 할까 궁리하다가 어른 아이 모두가 둘러앉아 주먹밥을 만들어 먹을까 생각한다. 어린이날이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 주어야 하는 날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인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날이니까.

장영란 선생님은 <프레시안>에 2004년 12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산골 아이들'을 연재했던 바로 그 분입니다.

무주에서 온 가족이 농사를 짓고 공부를 하며 사는 모습은 당시 <프레시안>의 많은 독자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연재는 <아이들은 자연이다>(돌베개 펴냄)라는 책으로도 묶여서 나왔고요. 그 연재 속 주인공 '탱이'와 '상상이'가 바로 <열두 달 토끼 밥상>의 '맹물'과 '맹랑이'입니다.

장영란 선생님은 5월 18일부터 대안교육연대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교육을 하려는 '홈스쿨러 부모를 위한 기획 강좌'를 준비 중입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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