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백으로 나온 1997년 판본에는 셰익스피어에 관한 긴 서문이 첨가되어 있다. 블룸이 말하는 '영향의 불안'을 요약한 것이 이 서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말로에게서 이탈하면서" 그의 영향에서 벗어났으며, 문학사에서 "이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둔 시적 영향은 없다"고 블룸은 주장한다. 그 결과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우리'를 발명한다. '셰익스피어는 단순히 서구의 정전이 아니라 세계의 정전'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셰익스피어에 의해서 마침내 인간이 된 셈이다.
해럴드 블룸이 가장 경멸하는 비평이 문학을 문학 외적인 것(계급, 인종, 젠더)으로 환원하는 사심 가득한 비평이다. 그의 이론을 단순화하자면 문학은 문학 그 자체로 판단해야 한다. 익히 들었던 소리이지 않은가. 1980년대까지 한국 사회에서 '순수문학'을 옹호했던 이론가들이 입만 열었다하면 나왔던 소리였다. 문학의 용도는 '용도 없음'에 있다는 주장 또한 익숙하지 않은가. 이런 주장을 읽다보면 필자는 오히려 사심 가득한 비평을 해보고 싶다는 심술이 발동하게 된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신역사주의, 해체론, 탈구조주의 이론들이 백가쟁명했던 시절을 거쳐 나온 문학이론가가 일관되게 문학의 순수성과 불멸성을 고집한다는 것이 이제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직도 문학텍스트는 텍스트만으로 말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이론가가 얼마나 남아 있겠는가. 바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그는 아카데미에서 천민이 되었다고 토로한다. 문자적으로, 은유적으로 그는 사멸하는 문학 이론가에 해당한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문학의 오염을 막고 문학의 귀족화를 평생 추구한 이론가가 천민으로 전락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 <영향에 대한 불안>(해럴드 블룸 지음, 양석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
동성사회적인 백인 남성 시인의 전통 속에서, 선배 시인을 넘어서려는 후배 시인의 투쟁은 여섯 가지 장치를 통해 이뤄진다. 블룸은 그것을 여섯 개의 수정률이라고 명명한다. 이 여섯 가지 수정률은 고전적인 문학적 수사학적 장치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 여섯 가지 수정률이 서로 제한, 수축, 재현, 확장, 모방하게 됨에 따라, 정전의 전통은 반복과 불연속성을 통해 변화된다.
블룸은 여섯 개의 수정률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이 부분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친절하고 사심 없는 옮긴이의 긴 해설이 도움이 될 것이다).
1) 클리나멘 Clinamen: 이 개념은 루크레티우스에게서 가져왔다. 이는 우주의 격변이 가능해지려면 원자들이 서로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적인 비유로 보자면 아이러니에 해당한다. 선배의 시를 읽고 그의 영향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말로의 영향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스스로를 창조하게 된다.(수사적 장치: 아이러니)
2) 테세라 Tessera: 이 개념은 완성과 대조를 뜻한다. 고대종교 숭배에서 가져온 것으로 도자기의 파편을 뜻한다. 깨어진 파편을 전부 이어 맞추면 완전한 형태가 되는 것처럼 후배의 시가 선배의 시를 완성시킨다.(수사적 장치: 제유)
3) 케노시스 Kenosis: 선배와의 단절을 뜻한다. 이 말은 성 바오로에게서 가져왔는데 이는 예수가 신성한 지위에서 인간적 지위로 추락함으로써 자신을 비우는 것처럼 비움을 의미한다. 후배 시인은 자신을 비움으로써 선배의 상상적 신성 또한 비우도록 만든다.(수사적 장치: 환유)
4) 악마화 Daemonization: 선배가 숭고를 의미한다면 반(反) 숭고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있다면 적그리스도가 있으며, 대 천사장이 있다면 그의 맞수로 루시퍼가 있어서 실낙원은 완성된다.(수사적 장치: 과장법)
5) 아스케시스 Askesis: 고독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자기 정화 운동이다. 이것은 엠페도클레스와 같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샤먼들의 종교적 수행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선배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수정하는 것이다.(수사적 장치: 은유)
6) 아포프라데스 Apophrades: 죽은 자의 귀환이다. 아테네에서 죽은 자들이 살던 집에 다시 거주하기 위해 돌아오는 음울하고 불행한 날이라는 의미로 차용된 개념이다.(수사적 장치: 대체용법(metalepsis))
아포프라데스에 이르면 운명의 수레바퀴는 한 바퀴 돌게 된다. 후배는 자신이 죽은 선배의 유령을 귀환시킴으로써 선배를 불멸로 만들어준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후배는 선배가 미치는 영향의 강물에서 익사하지 않고 살아나와 그를 인용함으로써 후배의 시가 선배의 시를 오히려 불멸로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죽은 시인이 거꾸로 후배 시인을 모방하는 시간의 역전 현상이 초래된다.
여섯 가지 수정률-클리나멘, 테세라, 케노시스, 디모니제이션, 아스케시스, 아포프라데스-은 고전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수사적 장치로 익히 사용해왔던 것들이다. 그것을 이처럼 어려운 언어로 개념화할 필요가 있을까? 조선 시대 양반들이 천민으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한문을 구사했던 것처럼, 이런 개념들은 문학의 귀족화를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영향에 대한 불안>은 시인이 된 남성들 사이에 초래된 불안이다. 그렇다면 영향을 받으려고 해도 받을 전통이 없는 여성들은 어떻게 하는가?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는 블룸을 비판하면서도 그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박오복 옮김, 이후 펴냄)에서 그들은 "위대한 전통이 없음으로써 그런 불안마저 느낄 수 없는 여성들은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남성 시인들이 경험하는 "영향에 대한 불안"은 여성시인에게는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이 된다. 여성들이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분노의 시학으로 명명함으로써, 그들은 페미니스트 시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문학 외적인 감염원을 차단하려는 블룸에게 그녀들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행을 들이민다. "감염된 문장은 새끼를 친다"고. 모든 텍스트가 은유적인 세균 전쟁터이자 감염의 원천이며, 남성 동성사회가 아무리 강고하게 순수 혈통주의를 고집하더라도 감염은 피할 수 없다고 대든다.
블룸은 <서구의 정전>에서 '원한학파'(원래는 '쥐떼들의 무리'라고 하려다 그나마 순치된)를 거론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여섯 가지 이론들이 문학을 망친 장본인이다. 그것이 페미니즘, 마르크시즘, 라캉학파, 신역사주의, 해체론, 기호학이다.
원한학파의 하나에 해당하는 페미니즘은 위대한 예술에 대한 경외감이 없다. 위대한 전통과 유산에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된 자들이 그런 전통을 경외할 이유가 있을까? 그의 비판에 따르자면 불멸의 예술 작품에서 어떻게 하면 사소한 잘못이나마 찾아낼까 혈안이 된 속물 비평이 페미니즘이다. 블룸에게 페미니즘은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무자비한 청교도"이자 "파괴의 천사"이며, 적개심으로 가득 찬 불평 이론이다. 불평과 시샘으로 권위와 전통을 해체하고자 하는, 죽은 백인 남성 시인들의 시체 도굴자들이다.
하지만 블룸 또한 원한비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도리스 레싱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는 삼류 작가도 못되는 "4류 과학소설(SF) 작가에게 수상한 것은" 순전히 정치적 올바름에 기초한 것에 불과하다고 통탄한 바 있다.
어쨌거나 누가 이제 그의 영향을 두려워하겠는가. 우리 시대는 더 이상 문학이 미치는 영향에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블룸에게서 그가 사랑한 늙고 고독한 리어왕의 비애가 느껴진다.
리어왕은 자기 딸들인 고너릴과 리건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그녀 자궁 속에 불임을! / 독사 이빨보다 더 모진 고통은 / 배은망덕한 새끼를 두는 것임을!" 블룸 또한 리어왕처럼 페미니즘에게 저주와 경멸을 퍼부었다. 하지만 늙고 힘없는 그래서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는 고독한 왕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리어왕의 죽음 앞에 바치는 에드가의 말이 기억난다.
이 슬픈 시간의 무게에 우리는 복종해야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말이 아니라 느낌을 말해야 합니다.
나이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견뎠지요. 젊은 우리는
결코 그렇게 많은 것들을 보지도 못했고 그렇게 오래 살지도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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