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인 윌슨은 젊은 시절 <신곡>을 처음 읽었을 때를 떠올리며 <신곡> 읽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후 그는 아마추어 단테 연구자가 되어 이탈리아와 중세 문학, 단테 연구자들의 저서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여전히 단테가 살던 시대를 배경으로 단테의 삶을 조명하는 책, <신곡>을 위한 입문서가 될 수 있는 책, 그리고 역사, 문화에 대한 필수적인 배경 지식을 제공하는 책을 찾고 있다."(30쪽)
오랜 탐색의 과정을 거쳐, 윌슨은 그 책을 자신이 직접 씀으로써 찾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사랑에 빠진 단테>다. 그런 면에서 "책을 구입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자신이 직접 그 책을 쓰는 일"이라고 말한 벤야민의 말은 옳다(('나의 서재 공개', <발터 벤야민의 문예 이론>(발터 벤야민 지음, 반성완 옮김, 민음사 펴냄), 32쪽).
윌슨의 말을 경청할 때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째, 단테의 삶을 조명하는데 왜 그가 살던 시대의 역사, 문화에 대한 배경 지식을 알아야 하는가. 둘째, 작가와 작가의 창작물은 서로 별개인데, 굳이 <신곡>을 이해하는데 작가의 삶까지 알아야 하는가.
먼저 첫째 질문에 답해보자. 평전은 한 역사적 인물의 특별한 삶을 대상으로 하여 전기 작가에 의해 구성된 글이다. 이럴 때 대상 인물은 역사와 전통의 자장 안에서 규정되며, 그의 내면은 그를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압력과의 거리를 통해 생성된다. 그러므로 대상 인물의 특별한 내면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그를 둘러싼, 그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영향을 미친 시대적 배경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안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밖을 봐야 하는 것이다. 저자 윌슨은 인간 단테의 모순과 내면의 복잡함이 그를 둘러싼 시대와의 끊임없는 거리두기를 통해 형성된 것임을 흥미 있게 풀어낸다.
▲ <사랑에 빠진 단테>(A. N. 윌슨 지음, 정해영 옮김, 이순 펴냄). ⓒ이순 |
윌슨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단테가 태어나던 13세기 무렵은 급속한 기술 발전과 강력한 종교 부흥의 시대다. 이 시기에 단추와 안경, 물레와 풍차가 발명되고, 최초의 기계식 시계가 등장한다. 종교적으로는 그리스정교가 서방 교회로부터 분리되고, 이슬람교도들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된다.
단테가 태어난 피렌체는 이단인 카타리 파의 중심지였고, 그로 인해 종교 재판이 성행했다. 경제적으로 피렌체는 이탈리아 상업의 중심지로 직접 금화를 발행할 만큼 현금이 풍부한 도시였고, 이를 바탕으로 부를 획득한 신흥 상업 계층과 길드가 도시의 권력을 서서히 이양 받았다.
정치적으로 피렌체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파인 기벨린과 교황을 지지하는 당파인 구엘프 사이에 적대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단테의 가문은 구엘프 파에 속했다. 단테는 같은 구엘프 가문의 세력인 도나티 가(家)와 결혼한다.
문화적으로 피렌체는 문학 서클의 중심지였고, 단테는 이 문학 서클을 통해서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한다. 정리하자면 단테는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투쟁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작과 정치 활동, 추방 등 일련의 사건을 겪었고, 그가 지니게 된 욕망, 좌절, 분노 등의 내면들은 모두 그를 둘러싼 것들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형성되었다.
윌슨은 단테 시대의 핵심을 역설로 읽어낸다. 교회는 12세기 내내 카타리 파 이단을 박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고, 13세기 초에 들어서면 이단 탄압을 위한 종교 재판이 정착된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이단자들에게는 화형을 당하기 전에 교수형을 당할 축복마저 금지된다.
그러나 적대자에게 무자비했던 교회가 금욕적 수도원 제도를 형성하는데 있어 전적으로 자신들이 적대한 이단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점은 역설이다. 또 부유한 귀족과 은행가들이 거룩한 가난에 대한 헌신을 증명하기 위하여 호화롭게 장식된 숭배의 장소를 지으려고 경쟁하는 모습 역시 하나의 역설이다.
교황이 면죄부를 팔아 돈을 긁어모으는 모습을 보아온 단테가 부(富)의 증가가 부패를 가져오고 있다고 개탄하고, 그러한 그의 내면이 <신곡>에서 고리대금 비판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스러워지려 할수록 더욱 야만적이어야 하고, 거룩함에 대한 헌신이 고리대금에 의해 유지되는 모순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단테가 살았음을 전제할 때, 그의 모순과 내면의 복잡함이 이해될 여지가 생긴다.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답해보자. 단테의 삶과 내면은 그의 작품 <신곡>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어째서 그것이 가능한가. 윌슨의 말을 들어보자.
"단테의 작품 대부분은 어떤 의미에서 자서전이다." (81쪽)
"<신곡>은 어떤 면에서 알레고리화된 자서전이다." (108쪽)
"자서전이 소설의 한 형식임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330쪽)
자서전이 소설의 한 형식이라는 윌슨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조금 단순하게 접근하자면, 자서전의 좌표는 '과거-현재'의 x축과 '자료-서사'의 y축 어딘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자서전은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소환하는 글쓰기고, 이때 소환된 '나'의 이야기는 '자료'에 근거를 두되 현재 '나'의 입장에서 구성된다. 즉 '자료'에 밀착하는 자서전은 '연표'에 접근하고, '서사'에 밀착하는 자서전은 '소설'에 접근한다.
물론 자료와 서사는 서로 긴장 관계에 있으며, 전적으로 어느 하나에만 의지하는 자서전은 없다. 자서전이 소설의 한 형식이란 말은 자서전이 인물, 사건 등을 선택하거나 관계 맺는 서사적 구성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예를 들어 단테는 고리대금업과 그것을 바탕으로 부를 챙긴 가문들을 비판하고, <신곡>에서 그들을 모두 지옥에 넣어 고통 받게 했지만, 정작 고리대금으로 부를 축적한 자신의 아버지를 <신곡>에서 묘사하지는 않았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자서전 역시 하나의 에크리튀르(écriture)라는 점이다. 자서전은 하나의 유형화된 글쓰기 양식이며, 이전 자서전 양식의 전통과 압력의 영향 아래에서 쓰인다. 단테의 <신곡>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의 영향을 받은, 중세 자서전의 전통 아래 쓰였다.
중세 자서전은 '자기 인식의 독방'에서 나온 종교적 장르이고, 독자들이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이상적 이야기의 제시를 목적으로 한 글이다. 즉 <신곡>이 묘사하는 지옥, 연옥, 천국의 모습과 단테가 절대자를 만나는 여정의 서사는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독자에게 전달되며, 자서전의 저자는 이 목적을 위해 자신의 삶을 자료로 서사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단테의 삶과 <신곡>을 상호 이해의 근거로 삼는 윌슨의 서술 전략은 수긍할 만하다. 단테의 삶과 <신곡>의 내용이 서로 조응하는 장면을 보자. 단테가 브루네토 라티니에게 철학 교육을 처음 받았을 가능성은 크지만, 실제로 브루네토가 단테의 개인 교사였다는 자료는 없다. 윌슨은 단테가 브루네토를 스승이라 여기고, 그를 자애롭고 친절한 아버지 상으로 생각했음을 '지옥편'(15곡 83~84행)을 통해 유추해 낸다. 그 반대로 윌슨은 단테가 직접 체험한 매 부리기와 사냥개의 관찰을 통해 '지옥편'에 등장하는 매와 개의 이미지를 유추하기도 한다.
단테는 도시의 권력이 길드 또는 시민으로 넘어오는 변화된 상황으로 인해 정치에 입문했으나 정작 그 자신은 극단적 보수주의자였다. 또 그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구엘프에서 기벨린, 황제 숭배로 정치적 입장을 바꾸곤 했다. 윌슨은 단테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가득 찬 <신곡>에서 동성애 때문에 지옥에서 고통 받는 브루네토, 간음한 연인들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에 대해 공감과 연민을 감추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윌슨는 단테가 "언제나 철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법이 없"(326쪽)었음을 인정한다. 단테가 보여주는 모순과 비일관성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한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고, 그에 대한 평가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우리가 단테를 어떤 단일한 중세 시인이나 정치가 등으로 규정해 버린다면 이는 한 인간에 대한 너무도 손쉬운 이해이고, 정작은 오해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좋은 독자는 평전의 대상 인물을 만난다기보다는 그 대상 앞에서 머뭇거리는 자기 자신을 만난다. 어쩌면 단테의 모순과 내면의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래서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일지 모른다.
평전은 오늘을 사는 자가 어제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글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평전은 현재적인 의미를 지닌다. 가브리엘레 로세티는 단테를 자신처럼 "자유사상적인 19세기 초기의 프리메이슨"(458쪽)으로 읽었고, 존 러스킨은 단테를 "비인간화된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본질적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몽상가"(465쪽)로 읽었다. 그들은 단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비춰보거나 자기 시대의 정신을 일깨웠다.
단테가 살았던 시대는 결정론이 지배하던 때였다. "중세 피렌체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뜻"(67쪽)했고, 단테는 "삶 자체가 피할 수 없는 실패"(441쪽)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정론 안에서 절대자를 향한 자유 의지를 찾았고, <신곡>을 통해 그 자신이 알레고리의 주인공이 됨으로써, 다른 인간들 역시 절대자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단테에게 '사랑'은 이러한 삶의 과정을 이르는 말이었고, 그는 온전히 그 '사랑'에 빠졌다. 윌슨이 오늘 단테를 소환한 현재적 의미는, 아마도 '사랑'에 빠지길 주저하는 이들에 대한 결단의 촉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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