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은 지금 ‘역사드라마 천하’를 맞이하고 있다. 방송 3사 4채널에서 동시에 역사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은 SBS의 개국 이후 처음이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이 ‘국민 만들기’(nation building)로서 민족사관 정립극을 강요했을 때에도 역사드라마가 지금처럼 독점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역사드라마는 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까? IMF 경제위기는 역사드라마의 부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IMF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는 가족공동체를 강조하는 <육남매>와 같은 가족 홈드라마와 영웅이 등장하는 역사드라마로 양분되었다. 전자가 흔들리는 가족관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면, 후자는 경제위기로 잃어버린 남성권력에 대한 심리치료 기능을 수행했다. 결국 가정 내 가장의 지위가 흔들리고, 남성이 왜소화되면서 남성 시청자들은 역사로부터 초월적인 권력을 꿈꾸게 되고, 역사드라마는 이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
트랜디 드라마의 몰락도 역사드라마 인기를 부추겼다. 트랜디 드라마는 199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압도했었다. 1990년대 초반 신세대의 등장과 함께 신세대 의식과 감성에 맞는 빠르고 가벼운 전개의 트랜디 드라마는 1990년대 후반에 와서 지배력을 상실했다. 왜냐하면 진부한 선악구도, 왜곡된 가족관계, 특정 스타의 의존성이 드라마의 현실성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똑같은 스타일로 제작되는 트랜디 드라마는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새로운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더욱이 <용의 눈물>(1996~98), <허준>(1999~2000), <왕과 비>(1999~2000) 등의 성공은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용의 눈물>은 섬세한 고증을 통한 극적 완성도, 다중적인 갈등구조와 대선 정국과 맞물린 현실환기 효과를 통해서 시청자를 끌어당겼다. <허준> 역시 멜로드라마 요소를 결합시키고 빠른 전개와 화려한 의상 등을 통해서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추었다. 이들 드라마들은 과거 역사드라마를 선호하지 않았던 젊은 층과 여성 시청자를 흡수했다. 역사드라마가 인기의 보증수표로 자리잡자 방송사들은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적 상상력인가, 개인적 공상력인가?**
역사드라마의 논점은 ‘역사적 사실성’과 ‘작가적 상상력’ 사이에 놓여 있다. 역사가 파편화된 사실(史實)의 집합이라면, 드라마는 그것들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에 지나치게 얽매일 때 극적 재미는 낮아질 수 있는 반면, 상상력에만 의존할 때 역사적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사실이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보다 중요하며, 역사 드라마에서 사실고증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드라마는 사실에 기초하지만,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우선한다. 역사드라마는 역사소설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소재로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과 해석능력이 보다 중요시되는 대중예술의 ‘작품’이지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역사드라마의 문제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처럼 드라마들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인지 아닌지 혹은 윤원형이 문정왕후의 오빠가 아니라 동생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적 사실의 측면에서 본다면, 허준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몇 줄 되지 않는다. <태조왕건>에서 중요인물로 부각되었던 종간의 기록도 1~2줄에 불과하며, <여인천하>의 정난정에 대한 정사(正史)의 기록도 별반 없다. 이런 점에서 역사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성보다 작가적 상상력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작가의 어떤 역사적 상상력인가 하는 점이다.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는 작가가 드라마의 구성상 허구적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을 포함시킨다하더라도 그 당시 총체적 맥락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구성상 인물이나 사건들은 역사적 개연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태조왕건>을 제외하면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은 총체적 부실에 빠져있다. <여인천하>에서 경빈은 지나치게 극의 중심에 서 있고, <명성황후>의 장상궁(혹은 장귀인)도 마찬가지이다. <여인천하>에서 문정왕후의 회임 사건으로 이야기를 끈 것 등은 역사적 맥락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이것은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 공상력에 의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은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두껍게 묘사하는가와 인물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냈는가를 의미한다. <허준>에서 허준이 내의원에 근무해서 민초들을 돌볼 수 없었다 하더라도, 민초에 대한 허준의 헌신은 사실을 넘어 오늘의 진실을 묻게 만들었다. <태조왕건>에서 궁예의 경우,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하는 초반 모습과 당당한 죽음을 맞이하는 종말이 역사기록과 다르다하더라도 충분한 극적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여인천하>에서 문정왕후에 대한 인물해석은 ‘해석’이라기보다 ‘억지’이고, <명성황후>에서도 명성황후를 앞세움으로써 고종의 역할과 고민을 표현하지 못했다. 즉 일본과 우리 근대사적 시각에서 명성황후를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 인물의 형상화가 빈약함으로써 이야기 구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아니라 허구적 공상력이 극단으로 나타난 역사드라마는 <홍국영>(2000)이었다. <홍국영>은 멜로드라마, 코미디, 무협영화의 요소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역사없는 무협극으로 끝을 맺었다. 특히 마지막 회 궁궐에서 칼싸움으로 끝을 맺는 장면은 지나쳐도 한참이나 지나쳤다.
***사극 과소비, 방송환경에 악영향**
역사드라마는 열정적으로 제작되고 있지만 새롭게 발전되기보다 퇴행적 길을 걷고 있다. 역사드라마의 경쟁이 가속화될수록 이와 같은 경향은 증폭될 것이다. 이런 징후들이 지금 <여인천하>, <명성황후>, <상도> 등에서 극명하게 표출되고 있다. 더욱이 한 회당 1억 5천만 원 가량이 투입되는 제작비도 방송사를 부담스럽게 만든다.
<용의 눈물>이나 <태조왕건>에서 보듯 역사드라마 제작에 1백50억 원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텔레비전 환경에서 과소비이다. 프로그램 제작비가 특정 장르의 드라마에 집중 투입됨으로써 다른 드라마 장르의 제작이 약화되고, 어린이나 교양 프로그램의 제작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내년에도 역사드라마 경쟁이 멈출 것 같지 않다. KBS는 <태조왕건> 이후 고려사를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드라마를 제작기획하고 있고, <상도>는 장기전으로 들어갔으며, <여인천하>도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 역사드라마에서 ‘역사’와 ‘드라마’의 문제를 곱씹어야 하며, 동시에 역사드라마의 경제적 효율성을 냉정하게 짚어보아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고 현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트랜디 드라마가 붕괴된 것처럼 오래지 않아 역사드라마도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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