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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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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4>

“아이들과 함께 성호를 그었지요 ”

***2월 20일**

더운 하루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파키스탄 통신중대 중대장에게 초대를 받아서 파키스탄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맛있더군요. 카레향 나는 야채, 카레향 나는 갈비찜 같은 고기찜, 카레향 나는 만두도 아니고 떡도 아니고 뭔가 오묘한 튀김, 멕시코 또르띠야를 연상시키는 부침.

정말 태국 음식에 진저리를 내다가 간만에 즐겁게 식사를 했어요. 다들 태국 음식이 맛있는데 뭘 모르는 제가 태국 음식을 싫어한다고 이상한 사람 보듯 몰아 부치고 계시는데 날마다 먹어보세요. 저도 처음엔 맛있어 했다고요. 지금은... 윽...

오늘 치안을 전담하는(전에는 군에서 했었는데, 점차 경찰로 기능을 이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계엄 상황이 점차 호전되어 가는 와중이라면 비슷할까요?) 유엔 민간경찰, 즉 유엔 경찰(CIVPOL))을 방문했습니다.

A소령님이 자료 수집하는 동안 바깥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현지인 한 명이 경찰 손에 수갑이 채워져 연행되고 있는 겁니다. 외국인이 현지인을 수갑채워 연행하는 모습이 몹시 어색해서(한국에 살아서 그런 것이겠죠. 마치 주한미군에게 끌려가는 한국인을 보는 듯해서) 옆에 있는 경찰을 붙들고 물어봤습니다. 왜 잡혀가냐고요.

그랬더니, 별 거 아니라고 단순 폭력이라고, 싸움이 붙어서 잠시 유치장에 넣는 거랍니다. 제가 “정말 놀랐다. 현지인 잡혀가는 건 오늘 처음 봤다” 했더니 웃으며 말을 건네더군요.

“자네 여기 언제 왔나?”
“아직 한 달도 안 되었습니다.”
“이런 건 일상이야. 일상. 하루에도 몇 번씩 소매치기에 단순폭행에 잔뜩 잡혀왔다 풀려나.”
“아... 그렇군요. 아직 신참이라서요...”
“그래? 그래, 좋아, 그런데 자네 어디에서 일하나?”
“동부 사령부에서 한국군 연락반으로 있습니다.”

이 사람 아는 척 합니다.
“어? 그래? 와... 자네 행운인데, 난 자네가 로스팔로스 한국군 대대에서 온 줄 알았어. 정말 잘 됐군 그래. 여기는 딜리보다 훨씬 시원한 데다가, 로스팔로스보다 훨씬 커서 할 일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고. 어때, 숙소는 편한가? 태국 음식 먹겠군. 음식은 맛있지?”

저는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이렇게 반가워하는지도 모른 채, “숙소는... 어... 그냥 그럭저럭, 날씨는 좋긴 한데, 뭐, 딜리에서는 건물마다 에어컨 있으니까 비교할 건 아니고, 밥은 정말 최악입니다. 최악” 이라 했죠.

이사람, 갑자기 놀라면서 저를 옆으로 지긋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정면으로 쳐다봅니다. 그 순간 이 사람의 오른쪽 어깨에 펄럭이는 태국 국기... 태국출신 경찰! “그게 무슨 소린가? 밥이 최악이라니? 태국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데?”

나이도 지긋해 보이고 고집도 있어 보이는, 그리고 대령 계급장으로 보아 경찰 내부에서 지위도 꽤 되어 보이는, 이 사람에게 잘못 찍혔다 싶어서(순간 속으로 스치는 생각, “거기 가면 모두 외교관입니다. 언행에 특히 주의하시고 어느 나라 건 무조건 그 나라 칭찬을 하시는 방향으로 생각하십시오”라는 교육기간의 주의사항) 변명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아니고, 맛은 있는데, 그... 뭐랄까... 향료가 너무 독특하고, 저는 그게 생전 처음 먹어보는 거라서요... 지금 적응중이니까... 웅얼웅얼...”
다행히 이 양반 호탕하게 웃고는 알았다며 그냥 또 보자고 인사하고 사라져 줍니다.

살았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소령님, 유엔 경찰(CIVPOL)에 태국 경찰 중에 대령계급장 같은 거 달고 있는 사람 아십니까?”
“아... 그 사람? 여기 경찰서장이야. 동부지역 최고 책임자라고.”
맙소사...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한바탕 웃었습니다.

***3월 25일**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 공항에 도착하던 날 이후로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들어서면서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딜리와 비교하기 좋은 게 항구도시 '묵호' 정도랄까? 하여간 그 정도 규모밖에는 되지 않는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인데도 시골에 두 달 박혀 있던 탓인지 그저 신기하고 즐겁고 좋을 따름이었습니다.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에 잔뜩 익숙해져서 휴가 때 만난 친구들끼리 “야, 정말 고향의 매미 소리보다 고향의 매연 냄새라는 것이 훨씬 정겹지 않냐?”라고 떠들어대는 인간이라서 도시의 복작거림이 시골의 한적함보다 익숙하고 즐겁습니다.

고베 하우스-평화유지군 사령부 군인들의 숙소이자, 각종 유엔 기관에서 사무실로 쓰는 컨테이너인데, 일본에서 고베 지진 때 임시숙소로 사용했던 깡통건물을 '고베'라는 이름을 넣어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기증했다는군요. 동티모르에 일본 중고차도 무상으로 잔뜩 들어와 있는데, 조건은 단 하나예요. '차에 도장되어 있는 일본 글자를 지우지 않는다' 고베 하우스의 음식도 맛있고, 간만에 쐬는 에어컨 바람도 선선하고...

그러나 당초 계획이 수정되어서 이틀을 머무르기로 하자 그 좋던 시설이 짜증나기 시작했습니다. 실외로 한발만 내딛어도 푹푹 찌는 더위가 괴롭히고, 에어컨 바람을 계속 쐬고 있으려니 머리 아프고, 할 일 없이 멍하니 시간 보내려니 지겹기 이루 말할 데 없고... 그래서 어쨌건 바우카우에 돌아 온 지금, 집에 온듯 마냥 편안합니다. 한국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딜리가 관광객을 위한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도네시아 강점기 동안 인도네시아인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예수상은 딜리를 찾는 외국인들이 늘 방문하는 하나의 관광코스가 되어있습니다.

<사진1>

그렇지만 외국인들의 잦은 발길과는 달리 현지인들은 절대 이 곳을 찾을 생각을 안 하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이 곳을 만든 게 인도네시아인들이기 때문이라는군요. 작은 동산 위에 세워놓고 인도네시아 방향(!)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내 품으로 오라'는 듯한 자세를 취한 예수상까지 올라가는 계단 사이사이에는 사진과 같은 브론즈 부조가 제작되어 있답니다.
로마인들로부터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부활까지의 예수의 고난이 묘사되어 있죠.

<사진2>

몇 백 계단을 열대의 더위 속에 헉헉대고 올라가면 드디어 십자가와 함께 부활한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조그맣게 보이지만, 딜리 공항에 내리기 전 비행기에서 육안으로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이 예수상이고, 높이가 20 미터가 넘는 듯 합니다 (안내판도 없고, 누구 설명해주는 가이드도 없어서 그냥 추정치로...). 참고로 예수의 발아래 있는 둥근 받침대는 ... 짐작대로 지구랍니다. 누가 이런 무식한 모양으로 설계했는지.

1991년 인도네시아 군은 '산타크루스 대학살'로 알려진 학살극을 벌입니다. 이 때 벌어진 인도네시아의 잔인 무도한 행위가 외신을 타고 세계로 알려지게 되고, 이후 호르타와 벨로 주교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면서 동티모르의 외로운 싸움이 간신히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물론, 산타크루스의 학살을 포함해 이미 동티모르 인구의 4분의 1이 인도네시아 군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 뒤였죠.

<사진3>

보시면 알겠지만, 1998년 12월에 태어나 99년 7월에 죽은, 그러니까 산타크루스 대학살 뒤에도 눈감고 귀 막고 있던 국제 사회가 살인을 방조한 결과 죽어야 했던 아이의 무덤입니다.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가 주연한 영화 '어 퓨 굿 맨'에 보면 멋진 대사가 나오죠. 살인죄로 기소된 병사가 군 변호사 톰 크루즈의 노력으로 살인죄에서는 누명을 벗지만 직무유기로 유죄가 확정되자 소리칩니다.

“우리가 왜 유죄야! 억울해!”
다른 병사가 조용히 말하죠. “죽은 그 녀석과 같은 약자를 지키지 못한 것이 바로 직무유기야.”

영화 속 미 해병대의 전우애에 감탄하다가도, 동티모르 아이의 무덤 앞에서 갑자기 그 영화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핵 잠수함이 통과할 항로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를 저울질하다가 마지막에 국제사회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비난이 거세어지자 잽싸게 동티모르 편을 드는 미국이나, 끊임없이 인도네시아 손을 들어주다가 박쥐마냥 한순간에 대세를 따라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투사인 양 거들먹대는 호주나 모두 직무유기를 저지르다가 끝에 가서 공을 차지하려는 것 같거든요.

이 아이가 말도 배우기 전 죽어가야 했을 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국제사회 역시 직무유기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아야 마땅할 겁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처럼 주요 무역 대상국인 인도네시아와의 마찰을 무릅쓰고 단지 '평화와 인권'을 위해 국익과는 상관없이 동티모르에 군대를 파병한 나라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 훌륭한 정치적 결단이 나라 바깥에서는 칭찬받고 인정받지만, 나라 안에서의 반대가 심했었죠.

그 탓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고 하여 우리 부대를 가장 후방 지역으로 주둔시키다보니 한국은 국제 사회로부터 칭송받아 마땅할 만큼의 온당한 대접을 못 받는 겁니다. “무역 관계와 전통적 우방국을 무시한 채 인권과 평화 따위만을 이야기하는 순진한 생각” 어쩌고 하면서 극구 파병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그런 근시안적 사고가 얼마만큼 국익을 깎아먹고 국가의 위신에 먹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딜리에 온 촌놈이 여기저기 관광하고 다니던 기록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산타크루스 묘지를 나서려는 데 눈앞으로 아이들이 지나가며 성호를 긋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묘지의 입구를 지날 때마다 성호를 긋고 고개를 숙여주는 아이들의 모습이라는 것이, 그저 가톨릭적 전통에 불과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게 만드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뒤돌아 서서 아이들과 함께 성호를 그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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