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아침부터 필리핀 연락반의 오중령님(오마르 중령을 이렇게 호칭하기로 완전히 합의를 봤습니다)이 시내에 나가보자고 하더군요. 주민들이 모이고 있는 게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소요로 번질 것 같다는 겁니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밖에 나갈 때 권총을 차고 나갔어요. 하도 수상한 상황이 지속되어서 유엔에서도 전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위수단을 강구해서 다니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여기 동부사령부 사령관도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엘 세트가 제안해서 오늘 열리기로 한 대주민 설명회를 취소하려고 부랴부랴 엘 세트를 찾았죠.
시내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모일 법한 곳에는 모두 경찰과 군이 함께 경계를 서고 있고, 각종 유엔 관공서들과 경찰 건물 주위는 살벌함마저 감돌 정도로 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밤에 비케케에서의 소요가 크게 확산되어 갱들간의 폭력사태로 번졌고, 그 와중에서 수십 채의 민가가 불타고 두 명이 소요 도중 사망했다는군요.
바우카우에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모두들 분주히 긴장하며 경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행히 소요는 일어나지 않고, 엘 세트도 예정대로 차분히 대주민 설명회를 진행하고자 하여 마을 체육관에 모여서 조용히 설명회가 열린 상태에서 오늘 하루 상황은 끝났습니다.
처음 권총을 받을 때, 군수과장이 실탄 아홉 발을 탄창에 넣어 주면서 이야기하더군요.
"여기는 한국하고 달라. 네 자의로 판단해서 총을 쏴야 하겠다 생각되면 지체없이 쏴도 된다."
말은 그렇게 들었지만, 총을 막상 차면서 절대 총집에서 총을 빼는 일은 없겠지 생각해 왔습니다. 무슨 사태가 생겨도 내가 총을 뺄 일이 설마 생기랴 생각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전에 얘기한 그 필리핀 소령이 계속 저만 보면 놀려 대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어디 돌아다닐 때 왠만하면 저희는 총을 안 들고 다니거나 일행 중 한 명만 들거든요. 저보고 "자네는 왜 권총을 안 차나" 묻더군요. 나는 총을 쏘고 싶지도 않고, 총집에서 뽑아 들기도 싫고, 내가 직업군인도 아닌데 괜히 군에 있는 동안 권총으로 사람 겨누는 경험 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그러면 총은 왜 받았냐고 그러는 겁니다. 여기서 그런 생각 하면 어쩌냐, 총쏘는걸 그렇게 겁내면 안 된다···.
뭐라고 하겠어요. 늘상 이 사람에게 저는 평화로운 나라에서 온 군인이라기보다는 민간인 대학생 애송이이고, 여전히 아직도 군인이 되기엔 멀고 먼 유약한 인간으로 보이나봅니다. 뭐, 솔직히 이 사람처럼 무용담만 늘어놓는 군인보다는 그런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3월 15일**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동티모르 전역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드렸죠? 사태의 원만한 해결과 재발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오늘은 여기 바우카우로 동티모르 내의 책임자들은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사진> 불타버린 바우카우 회교사원에서 회교도 대표들과 만나고 있는 동티모르 지도자들의 모습. 왼쪽부터 유엔 사무총장 특사 드 멜로,사나나 구스마오,회교지도자 두 명과 통역,맨 오른쪽이 방위군 사령관 마탄 루악 준장.
형식적으로는 동티모르 최고위직인 유엔 사무총장 특사 드 멜로, 한국 사람들에게도 나름대로 이미 유명해진 동티모르 레지스탕스 지도자이자 현재 이 곳 제일 정당인 동티모르 저항의회의 의장 사나나 구스마오, 게릴라에서 정규군으로 전환중인 동티모르 방위군 사령관 마탄 루악, 그 외 평화유지군 최고사령관, 민간경찰 총 책임자, 유엔 과도행정부 수석 보좌관 등등. 유명한 사람들이 와서 그런지 포르투갈 외신도 찾아와 취재해 가고 경호도 삼엄하고 하루 종일 분주했습니다.
구스마오를 직접 보니 사진보다 훨씬 미남이더군요. 혹 그 사람이 한가해지면 찾아가서 “한겨레 21에 기고한 자서전 잘 읽었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하고 말 좀 붙여보고 싶었는데 유명 인사라 그런지 잠시의 틈도 나질 않아서 결국 실패했습니다.
여기 유엔 군 감시단(UNMO) 중 파키스탄에서 온 타히르 소령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저보고 구스마오와 기념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더니 자기가 찍은 후 저도 찍어주겠다고 옆에 서 있으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바쁜 구스마오를 붙들고 사진 한 장 간신히 포즈를 취했더니만, 거 참, 이 사람이 바보같이 2단 셔터라는 걸 모르고는 셔터를 반만 눌러서 사진이 안 찍힌 겁니다. 그래서 타히르 소령이 이메일로 자기 사진 보내달라고 했는데도 전 투덜거리며 자꾸 미루고 있는 중이지요. 구스마오가 무슨 동물원 원숭이나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도 아니니까 꼭 배경으로 집어넣어 함께 서있는 사진을 찍어가야 할 의무야 없지만 그래도 뭔가 기대에 어긋나니까 좀 아쉽네요.
여기 와서 처음으로 회의가 재미있었습니다. 구스마오라는 사람이 여기에서 가지는 권위랄까 카리스마라 할까 하여간 그런 게 있더군요. 저는 그 모습을 싸워서 독립을 얻은 나라의 지도자가 가지는 당당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승만이 대한민국 독립 당시 미군들 앞에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요?
이 곳 동티모르의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금 구스마오가 아니라 유엔의 사무총장 특사 드 멜로라는 브라질인인데도 드 멜로는 말을 맺을 때마다, 자신의 유감표명과 함께 재발방지 약속을 해가며 연거푸 "동티모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단체의 의장인 미스터 사나나와 상의해서", "미스터 사나나의 협조를 얻어서", "여러분과 제가 믿고 있는 미스터 사나나도 이미 이런 생각을 지지했듯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더군요.
미군 신탁통치기간 총 책임자였던 하지 준장이 이승만더러 "내 친구 미스터 리"이라고 불렀다던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미스터 리의 협조를 얻어", "미스터 리도 이 정책을 지지했으며" 따위의 말을 했다는 기록은 본 적이 없어요.
극심한 정치불안으로 고생하기는 미스터 리나, 미스터 구스마오나 마찬가지고, 조그맣고 지도에서 뵈지도 않는 나라이기는 당시 대한민국이나 지금 동티모르나 별다를 바 없는데도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노 정객이 국제사회에 “당신들이 양심이 있다면 지금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라”고 일갈해서 얻어낸 평화와, 준비도 되지 못한 상황에서 초강대국의 군대가 무작정 진주하여 강제한 평화의 차이란 이런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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