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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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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15>

어디 가나 듣는 소리 “일본인입니까”

***8월 22일**

최근 들어 자꾸 일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 어디에 가나 대한민국 땅만 벗어나면 듣게 되는 "일본인입니까?" 소리에 우리는 거의 신경질적으로 "한국인이라니까요!"하고 대답을 하죠.

가끔 가다 “다께시마가 일본 땅 아니냐”고 하는 녀석들을 만나면, “그건 '독도'라고 부르는 섬이며 우리 땅”이라고 한참 설명해주고, “한국에서는 일본말 쓰냐”고 묻는 정신나간 녀석에게는 “그럼 독일에서는 불어 쓰고, 프랑스에서는 영어 쓰냐”고 성내며 되묻고...

무척이나 '일본'이라는 말 한마디에 감정적이 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특징입니다. 이건 뭐랄까, 기독교인들 앞에서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 혹은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마냥 뉴욕 한복판에서 “나는 검둥이가 싫어요”라는 간판을 몸에 붙이고 다니는 것과 맞먹는 '금기'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었다는 혹독한 식민통치를 35년간이나 당한 나라 국민들에게 일본이 좋아 보일 수는 없는 것이죠.

하지만 서로 미워하고 사는 게 좋은 것이라고 볼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 화해를 이야기하긴 해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에서 일본과의 화해를 이야기하는 인간들의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있습니다.
"그 어렵던 시절에 친일하지 않을 수 있던 사람이 어디 있냐?"
"그 오랜 과거를 들춰서 뭐 하냐, 중요한 건 현재와 미래다."

사나나 구스마오가 최근 들어 가장 역점을 두고 벌이는 활동이 과거 민병대 활동을 벌였던 사람들의 동티모르로의 귀환과 그들에 대한 '사면'을 보장해 주는 활동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친일파들의 주장과 굉장히 비슷해 보였어요.

"그 어렵던 시절, 누구나 약간씩은 인도네시아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죽어 가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를 거스른다는 건 삶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지금 독립을 맞은 동티모르에 중요한 것은 발전을 위해 모든 동티모르인들이 화합하는 것이고, 국가 발전을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쏟는 것이다."

비슷해 보이는 말이지만, 배경은 다릅니다. 우리네 친일파들은 독립 이후에도 요직에 올라 부와 권력을 장악했지만, 동티모르에서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은 독립운동을 벌이던 게릴라 조직 프레틸린입니다.

게다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전후 폐허 상황에서 우리 친일파들은 끊임없이 독립투사들의 자손들에게까지 불이익을 줘가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은폐했지만, 이 작은 나라에서는 인구 넷 중 한 명이 인도네시아 손에 죽어갔으면서도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부와 권력을 자신들의 부모형제를 죽였던 사람들에게 나눠주고자 하고 있죠.

용서라는 것은, 화해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진 사람들이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던 이들에게 한 번 더 뉘우칠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용서이고 화해가 될 겁니다.

하지만 잘못을 저질렀던 이들이 끊임없이 떳떳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과거에 먹칠을 하고 불이익을 주면서 탄압 받는 이들이 그 사실에 항의하려고 들 때,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기만한다면 그건 용서도 화해도 아닌 악행일 뿐일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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