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2일부터 4회에 걸쳐 주요 대선 후보들의 문화정책을 비교, 검증하는 시리즈를 게재한다.
이 시리즈는 프레시안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등 21개 문화단체들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작업으로 문화단체들은 지난 달 4일 대선후보들에게 ‘문화정책에 관한 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응답 자료를 바탕으로 ‘2002 대선후보 문화정책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검증 대상이 된 대선 후보들은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 사회당 김영규, 무소속 장세동 후보 등 6명이다. 편집자
***문화, 반복되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
드디어 출전 선수가 결정되었다. 대회의 일정은 이미 5년 전에 결정되어 있었지만, 대회를 불과 20여일 남기고 출전 선수의 명단이 최종 확정된 셈이다. 어떤 선수는 5년 전의 실패 이후 가다듬어 온 "안정감"과 "보수주의"가 주특기이고, 어떤 선수는 극적인 선수 선발 과정을 통한 "바람몰이"와 "개혁성향"이 주특기라 한다. 또한 우승권에서는 다소 멀어져 보이지만 "진보"와 "민중"을 주특기로 최근 선전하고 있는 선수, "사회주의"와 "청년"이라는 주특기를 보유한 선수, 과거 "군대"와 "독재"를 주특기로 전성기를 누리다 최근 복귀한 선수, 그리고 매번 대회 시기가 되면 참가에 의의를 두고 출전해 온 선수 등이 이번 대회의 선수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한편 이번 대회의 경기 종목 중에는 "문화"라는 것이 있다. 문화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대회의 정식 종목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문화는 정치, 경제 등과는 대조적으로 언제나 비인기 종목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대회에서 모든 출전 선수들은 문화야말로 자신의 "주종목"이라고 강조해왔지만, 언제나 대회의 "뚜껑을 열어 보면" 문화는 선수의 능력도, 시합 내용도, 관중의 관심도 그저 그런 시시한 종목에 불과했다. 그 사회적 중요성이 무색할 정도로.
문화라는 종목이 "대통령 선거"라는 대회에서 언제나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어야만 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문화란 정치, 경제 등의 인기 종목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열심히 하면 그저 또는 마냥 좋은 것'이라는 수준의 사회적 인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 노동, 환경 등과 같이 실질적인 이해 당사자가 존재하는 종목과는 달리 득점에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되어 선수들로부터 외면당해 왔다. 따라서 선수들은 언제나 구체적인 준비 없이 대회 기간 내내 시종일관 '정말 열심히 하겠다'만을 반복해왔으며, 이는 선수들의 전문성 결여와 관중의 무관심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더욱이 이번 대회의 출전 선수들 역시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모두들 "문화의 세기", "문화대통령"임을 자임하며,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과 준비를 했다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지만, 대부분의 출전 선수들이 문화라는 종목에 있어서는 함량미달과 하향 평준화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선수들간의 실력에 있어 차별성은 발견하기 힘들고, 대부분이 "예스맨"이거나 "두리뭉실 전략"에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이번 대회에서 누가 우승컵을 차지하던지 간에, 우리 사회에서 문화는 향후 5년간 "정치, 경제 다음의"라는 전통적 비운을, 시대착오적인 반문화적 후진성을 탈피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후보들, 문화적 후진성이라는 동질감**
사실 "정책없는 선거", "정치적 야합, 금권, 그리고 세 몰이"야 말로 우리 사회 대통령 선거의 가장 오래된 습관임에 분명하지만, 문화 분야에 있어 이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한 편이다. 그리고 이는 21개 문화예술단체가 진행한 "2002년 대통련 선거 후보자 문화정책 평가"에서도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났다. 너무나 다양한 후보자들의 정치적 지향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후보가 문화 분야에 있어서만은 "문화정책의 철학 부재, 정책 실행의 구체성 결여"라는 강력한 동질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정책과 관련하여 후보자들간의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정책 질의에 대해 "예스"로 일관하여 실질적인 평가가 무의미해져버린 장세동 후보는 논외로 할지라도,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와 사회당의 김영규 후보의 경우 문화정책에 있어 높은 개혁성, 공공성과 타 분야 공약과의 정책적 일관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유력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의 경우 상대적으로 정책의 구체성과 현실 가능성에 있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후보자들은 문화정책과 관련하여 문화 자체에 대한 철학과 이념이 타 정책 범주에 비해 매우 빈곤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사회 변화에 따른 문화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매우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모든 후보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 "문화가 새로운 국가정책의 중심 매개"라는 큰 흐름에는 동의하였으나, 이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과 준비는 매우 소홀한 채 선심성, 인기유지용 대응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또한 후보자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문화정책에 대한 구체성, 전문성, 차별성 등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문화에 대한 자기 철학과 이념, 사회 변화에 대한 둔감함 등은 문화정책의 구체성, 전문성, 실현가능성 등의 부족함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후보자들은 대부분 문화정책 질의에 대해 단순 답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특히 구체적인 문화정책에 대한 질의의 경우 질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매우 원칙적인 수준에서의 답변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후보자들은 제시된 공약의 구체적인 실행과정, 실행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반드시", "잘 하겠다" 등의 일반적인 당위성만을 또 다시 반복했다.
***문화정책을 국정의 지도원리로 삼는 "문화대통령"이 필요한 때**
문화는 인간적 삶의 방식이요, 한 사회의 정체성, 가치, 창조성, 규범 등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사회의 층위이다. 문화가 없으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며, 문화적 실천이 없으면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없고, 나아가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도 없다. 따라서 문화를 가꾸지 않고 외면한 채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 문화정책을 수립할 때 바로 이 점, 즉 문화의 의의(意義)와 그것의 사회적 중요성을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대통령 선거에 있어 문화는 '문화의 세기'라는 구호와는 달리 그 의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사실 '문화의 세기'라는 말에는 문화적 관점보다는 경제적 관점이 지배하고 있다. 오늘 문화를 중시하자고 하는 것은 문화예술의 창조성이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문화정책을 문화의 사회적 중요성만큼 비중 있게 다루어 사회정책의 핵심분야로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 문화는 정치, 경제와 함께 사회의 3대 층위에 속한다.
더욱이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문화대통령의 출현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발전이 이제 21세기 우리 사회의 발전에 원동력임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문화대통령의 출현 없이는, 그나마 오랜 전통에서 배태된 문화적 무의식과 일부 창조적 문화예술인들의 실천에 힘입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해온 우리 문화의 정체성, 다양성, 창의성이 급변하는 세계 체제 속에서 위기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일반 시민들은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넘어 일상의 문화적 권리에 대한 매우 높은 이해와 요구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많은 후보자들이 문화와 문화정책의 사회적 중요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사회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번 선거에 임해 줄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