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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문화예술 즐길 준비가 됐다. 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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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문화예술 즐길 준비가 됐다. 대통령은?

<프레시안-문화예술단체 공동기획> 2002 대선후보 문화정책평가 <3>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등 21개 문화단체들은 지난 11월 4일 2002년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에게 <문화정책에 관한 공개 질의서>를 발송하였다. 이 질의서는 20개의 질문들로 이뤄져 있다. 이 기사는 이 질문들 중 '문화향수권 확대'와 '표현의 자유 보장 등 창작여건 개선'에 관한 각 후보자들의 답변을 비교 분석한 것이다. 편집자.

***'또 다른 20세기'에서 바라보는 21세기**

우리는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보유하고 있다. 일에 파묻혀 기나긴 경제성장 제일주의의 터널을 헤쳐왔던 지난 반세기. 과연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꼼꼼히 따져 물을 여유조차 없이 새로운 세기를 맞았다.

그렇게 맞은 21세기의 화두는 단연 '문화'였다. 오로지 성장을 위해 혹사해 왔던 지친 몸에 여유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문화. 물질문명이 갈퀴처럼 남기고 간 상처를 아물게 하는 정신적 해방, 이성/감성, 장애/정상, 남/녀, 남/북, 흑/백으로 나뉘어 벌였던 처절한 생존투쟁의 연옥을 뒤돌아보게 하는 상호공존의 다양성, 새로운 가치 증식의 원천으로 추앙받는 창조적 상상력. 이런 것들이 문화를 새로운 세기의 으뜸화두로 올려놓은 특질들이다.

그러나, 서기 2000년은 그레고리우스력의 단순한 전환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새로운 세기의 경제적 성장을 위한 수단적 가치로 전락하면서 문화에 거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전히 우리는 서구적 근대주의에 입각한 물신주의적 경제성장 제일주의 논리가 맹위를 떨치는 또 다른 20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2년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 '또 다른 20세기'를 경험하는 이러한 자괴감은 좀더 무겁게 다가온다.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해 마련된 무대 위의 주인공들이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문명사적 패러다임 대전환'이라는 시대적 요청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예술을 즐길 준비가 됐다. 대통령은?**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거대 야당의 이회창 후보와 "적극 검토"하겠다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 사이에서 "문화예술 향수를 위한 세제혜택"은 아직 설자리가 비좁아 보인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녹이는 노래 한 곡에도 아직도 사치세가 포함돼 있는 현실이 더 막막해지는 느낌이다.

권영길 후보를 포함한 몇몇 후보들의 "도입하겠다"는 답변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힘이 없다. 그나마 조금 구체적으로 세제혜택 범위와 수치를 제시해 준 후보도 노무현 후보 하나 뿐. 얼마나 어떻게 확대하겠다는 것인지는 보이지 않고, 적극적 의지만 보이고 있거나(권영길, 김영규), "문화향수권 신장을 실천하겠다"는 말만 무성하다.

문화예술 교육 문제에서도 이런 막막함은 가시지 않는다. 특히 이회창 후보의 경우에는 문화예술 교육을 통한 교육개혁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교육목표 및 교육과정은 매우 포괄적입니다." '교육목표 및 교육과정 개편 의향'을 묻는 질문에 대한 이 후보의 답변이다. 누구나 아는 상식적 답변.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없다.

"문화예술 교육을 위해 문화부-교육부-지자체 등 부처간 유기적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이번에는 "부처간 협력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합니다"라고 답변한다. 이것이 여론조사에서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지목된 후보의 답변이다. 그러니 막막할 수밖에. 여기에서 권영길 후보가 "공교육 실현과 멀티미디어 매체교육 및 연행교육 실시"를 확약해 막막함을 조금 걷어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예민한 감성적 영역을 어루만지고 자극함으로써 획득되는 문화예술 감수성. 이러한 특성이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가 된다. 그래서 문화예술 교육이 정규 교과과정에 절대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고, 외국처럼 멀티미디어 교육, 교육연극, 역할놀이, 자연생태 학습을 통한 창조적 체험능력 함양과정 등을 교과과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문화예술단체가 위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불성실한 답변이라니…

교육과정 개편을 하지 않고, 어떻게 초중고 교과과정에 전통문화와 예술분야를 많이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인지, 사족으로 덧붙인 말까지 도대체 불가해한 답변뿐이다.

***표현의 자유, "이런 경우엔 제한하겠다"**

"국가안위, 사회질서 파괴 행위에 있어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 지수'를 이 말처럼 잘 드러내 주는 것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안위와 사회질서란 무엇일까? 그것을 적용하는 잣대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만들며,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 걸까?

이러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지난 50년.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국가안위와 사회질서 파괴 행위를 단죄하려는 행위에 의해 파괴되거나 압수됐다. 대개의 경우 국가안위와 사회질서 파괴 행위를 명명백백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없었다. 예술작품이 담고 있는 사상적 거처와 이념을 문제삼았을 뿐이다. 그리하여 대중들로부터 미학적 판단을 받기 전에, 재판대에 올려져 사법적 판단을 먼저 받아야 하는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수많은 예술가, 예술작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떠한 가치도 없이 명명백백하게 오로지 사회질서나 국가안위 파괴에만 목적을 두고 있지 않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헌법에 합치되는 정신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표현의 자유 보장에 관한 견해를 후보들에게 물었다.

"국가안위, 사회질서 파괴행위에 있어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이 답변은 이 질문에 대한 이회창 후보의 답변이다. 국가보안법에 관해서는 "탄력적 적용이 문제다. 따라서 당장 개정할 의향은 없으며, 사회적 합의가 모아진다면 신중히 고려해 보겠다"는 답변을 했다. 답변한 후보들 여섯 명 가운데 장세동 후보와 함께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밖에 대부분의 후보들은 국가보안법, 청소년보호법, 형법 등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고 지적되는 각종 법률의 개정 및 폐지에 공감했다. 물론, 그 수위는 달랐다. 권영길, 김영규 후보는 국가보안법 및 청소년보호법 철폐를, 노무현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 후 대체입법화를 각각 주장했으며, 이한동 후보는 개정만 언급했다.

***죽어라 일만 해온 우리, 남은 것은?**

새로운 세기, 말로만 무성하던 문화의 세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에서 문화는 아직 아스라이 멀다.

여기에 문화가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전에 그들의 눈높이가 문화에 맞춰져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웃기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문화는 무색무취의 유기적 생명체지만 눈을 달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 그래서 눈치볼 새 없이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왕성한 생명력을 옮아갈 뿐이라는 사실. 그 사실 앞에서 아직도 죽어라 일만 하는 순박한 우리 국민이 있고, 문화를 애써 외면하는 대신 표심에 눈먼 후보들이 있다.

어찌 걱정스럽지 않으랴만, 그래도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절대 우위가 아니라 비교 우위가 될 것이다. 그 대상이 누구이던 간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접근하는 문화대통령 자질을 조금 더, 그리고 비교적 많이 갖췄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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