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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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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기획자의 말**

"그의 얘기가 진심으로 한 것임을 사람들이 알았다면 그를 목매달아 죽였을 것이다."

누군가가 마크 트웨인을 평한 말이다. 사회의 특정요소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경쾌한 위트로 포장한 마크 트웨인의 겉으로는 가벼운 것 같으면서 실제로는 한없이 무거운 작품스타일을 지적한 것이다.

'20세기의 마크 트웨인'으로 알려진 커트 보네거트(1922- )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평이다. 1950년에 전업작가로 나서 아직도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보네거트는 유려한 문장, 통통 튀는 재미와 기발한 플롯, 그리고 특히 넓은 시야와 깊은 문제의식, 여러 면에서 마크 트웨인을 빼박은 작가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내용이 충실한 그의 작품세계가 한국 독자들에게 아직도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며 또한 무척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프레시안 독자들이 보네거트의 작품을 살펴볼 기회를 한 차례 만든다. 감성보다 이성에 주로 호소하는 보네거트의 소설은 이곳 다수 독자들의 취향에도 맞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선 '갈라파고스'를 내놓는다. 1985년 발표된 이 소설은 보네거트 팬들 사이에서 엇갈린 평을 받는다. 보네거트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높은 평가가 있는가 하면 보네거트의 세련된 맛이 떨어진다는 낮은 평가도 있다.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한 저자의 문제의식을 비교적 직설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보네거트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바로 그 점에서 권할 만한 작품이다.

프레시안 연재를 허락해 준 역자 박웅희 선생과 아이필드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김기협/본지 편집위원>

아마추어 자연연구가
힐리스 호위(1902∼82) 아저씨를 추억하며

1938년 여름
나와 내 다정한 친구 벤 히츠 등
인디애나폴리스의 소년들에게
서부 구경을 시켜 준 마음씨 착한 아저씨.

호위 아저씨는 우리를 진짜 인디언들과 인사시켜 주고
매일 야영을 시키며
우리가 싼 똥도 우리 손으로 파묻게 했다.
우린 그때 말 타는 법이며
여러 동식물의 이름을 배우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대를 잇는지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우리가 자는 캠프 코앞에서 살쾡이가 울었다.
아저씨 장난인 줄도 모르고
우린 혼비백산했다.
그런데 진짜 살쾡이가 큰 소리로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믿어.
사람들 속마음은 사실 착한 거라고.
― 안네 프랑크(1929∼44)

***1.**

그러니까 아주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1백만 년 전인 AD 1986년, 과야킬은 안데스 산맥의 고지 키토에 수도를 둔 남미의 작은 민주 국가 에콰도르의 큰 해항이었다. 이 나라의 이름은 적도가 지난다 해서 붙여진 것인데, 과야킬은 지구를 반으로 가르는 이 가상의 허리띠에서 2도 이남에 위치했다. 이 곳은 항상 무덥고 습기가 많았다. 일대가 무풍지대인데다, 도시가 건설된 곳이 산맥의 배수로 구실을 하는 강 몇 줄기가 합류하는 늪지대이기 때문이었다.

이 해항은 내륙으로 수 킬로미터나 파고든 내해에 면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잡목이며 갖가지 풀들이 뗏목을 이루어 걸쭉한 물에 떠다니다가 말뚝 구조물이나 닻줄에 걸리고는 했다.

당시 인간의 뇌는 오늘날보다 훨씬 컸으며, 그 때문에 이런저런 불가사의한 문제에 골몰하기가 쉬웠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그 많은 짐승들이 헤엄도 능숙치 않은데 과야킬에서 똑바로 서쪽에 있는 그 화산섬들까지 어떻게 건너갔을까 하는 의문도 그런 문제의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갈라파고스 제도까지는 1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깊디깊은 대양이 가로막고 있는데다 남극의 차디찬 얼음물까지 그 바다로 흘러들었던 것이다. 인간이 이 섬들을 발견했을 때, 거기엔 이미 도마뱀붙이와 이구아나, 쌀쥐와 화산도마뱀, 거미와 개미, 딱정벌레와 메뚜기, 진드기와 흡혈파리들이며 거대한 육지거북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 동물들이 대체 무엇을 타고 거기까지 갔단 말인가?

많은 인간들이 오랜 기간 이 문제를 붙들고 씨름한 끝에 자기네 커다란 뇌를 만족시킬 수 있었던 대답은 이랬다. "그들은 '자연 뗏목'을 타고 거기까지 가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뗏목은 이내 물에 절고 썩어 해체되기 때문에 이제까지 그런 것이 육지의 시계(視界)를 벗어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어떤 동물이 용케 통나무를 타더라도 갈라파고스와 본토 사이를 흐르는 해류 때문에 서쪽이 아닌 북쪽으로 밀려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러면서 바다 생활이야 손방인 그 모든 동물이 자연의 다리를 통해 바닷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그냥 걸어서 건너거나 징검돌 구실을 하는 땅덩이들을 이용해 헤엄쳐 건넜던 것인데, 뒤에 그런 다리나 징검돌들이 파도 밑으로 사라져 버렸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986년 당시 커다란 두뇌와 정교한 도구를 사용하는 과학자들이 작성한 대양저 지도가 이미 나와 있었다. 그 지도를 보면, 그 어떤 땅덩이가 이 일에 간여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커다란 두뇌와 환상적 사고가 지배하던 그 시대에, 또 어떤 사람들은 갈라파고스의 섬들이 한때는 대륙의 일부였다가 모종의 지각 변동을 겪고 떨어져 나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섬들이 어딘가에 붙어 있다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섬들은 분명 바로 그 자리에서 형성된 신생 화산섬들이었다. 그 중 여럿은 갓 태어난 터라 언제고 다시 폭발할 가능성마저 있었다. 1986년 당시에는 이 섬들 주위에 아직 산호조차 많이 자라지 않았으니, 많은 인간들이 이상적인 내세의 모습으로 생각했던 푸른 초호(礁湖)와 하얀 백사장 등의 쾌적한 환경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로부터 백만 년이 지난 지금은, 섬마다 하얀 백사장과 푸른 초호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시작될 당시에는, 갈라파고스는 아직도 마모되기 쉬운 용암으로 이루어진 울퉁불퉁한 화산섬들이었다. 갈라진 틈과 구덩이와 골짜기에는 기름진 표토나 맛좋은 담수는 없고 뽀얗게 말라빠진 화산재만 가득했다.

당시 제기되었던 또 한 가지 가설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탐험가들이 발견한 바로 그 자리에다가 그 모든 동물을 창조해 놓으셨으므로 그들이 바다를 건너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같은 계열이지만 조금 다른 주장도 있었다. 그 동물들이 한 쌍씩 해변에 내려졌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의 발판을 통해서.

그러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노아의 방주'라는 게 정말로 있었다면, 나는 이 이야기의 제목을 '제2의 노아의 방주'라고 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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