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로 건너간다고 다 불가사의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1백만 년 전, 제임스 웨이트라는 서른다섯 살 난 미국인 사내가 개헤엄조차 칠 줄 모르면서 남미 대륙을 떠나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로 건너갈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전혀 황당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운을 하늘에 맡긴 채 잡다한 식물이 뭉쳐서 된 자연 뗏목에 올라타고 갈라파고스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막 자신이 묵고 있는 과야킬 시내의 호텔에서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승선권을 구입한 참이었다. 갓 건조한 이 유람선은 그때 두 주간의 처녀 출항을 앞두고 있었다. 에콰도르 국기를 펄럭이고 있는 이 선박의 첫 갈라파고스 항해를 두고 지난 1년 동안 '세기의 자연 유람'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홍보 활동이 전개되었다.
웨이트는 혼자 여행하고 있었다. 때 이른 대머리에 땅딸보인 그는 혈색은 싸구려 간이식당에서 파는 파이빵처럼 신통찮은데다 안경까지 끼고 있어, 유리하다 싶을 땐 50대로 행세해도 그럴 듯하게 보일만했다. 그는 남들이 자기를 숫기 없이 순진하기만 한 사람으로 봐 주길 바랐다.
지금 호텔 엘도라도의 칵테일 라운지에서 손님은 그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과야킬에 당도하는 대로 칼레 디에즈 데 아고스토 호수에 면한 이 호텔에 방을 잡았다. 나이 스물에 긍지 높은 잉카 귀족의 후손인 예수 오르티즈라는 바텐더는 캐나다인을 자처하는 이 붙임성 없는 외톨이 사내가 모종의 부당한 처사나 느닷없는 비극을 겪은 나머지 크게 상심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에서 아주 착한 사람 축에 드는 예수 오르티즈는 이 외톨이 여행자를 경멸하지 않고 오히려 동정했다. 웨이트는 밀집모자와 로프샌달에 노랑색 반바지와 청색 백색 자색이 어우러진 면 셔츠 차림이었는데, 모두 이 호텔의 부티크에서 사 입은 것이었다.
예수 오르티즈는 웨이트가 내심 바라는 대로 이런 그의 모습을 몹시 안쓰럽게 생각했다. 오르티즈의 눈에, 신사복 차림으로 공항에서 막 도착한 웨이트는 꽤나 위엄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큰 돈을 들여 어릿광대로 변신해 있었다. 열대 지방에 놀러온 북미 관광객의 꼬락서니 그대로였다.
새 셔츠의 옷단에 가격표가 그대로 달려 있는 걸 발견한 오르티즈가 썩 괜찮은 영어로 아주 정중하게 그 사실을 일러 주었다.
"이런!"
웨이트는 이렇게 말했으나, 실은 가격표가 그대로 달려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부터 뗄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그는 짐짓 당혹감을 내비치며 가격표를 서둘러 떼려는 몸짓을 취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애써 벗어나려 애쓰고 있던 쓰라린 고통에라도 휩싸인 듯이, 그런 것일랑은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웨이트는 낚시꾼이었으며, 가격표는 미끼였다. 그것은 남들의 시선을 끌어, 오르티즈처럼 "죄송합니다만, 세뇨르, 보고 모른 채 할 수가 없어서……"라고 말하도록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호텔에 들 때 웨이트는 가짜 캐나다 여권에 적혀 있는 '윌러드 플레밍'이란 이름을 댔다. 그는 견줄 상대가 없을 만큼 솜씨 좋은 사기꾼이었다.
오르티즈에게야 그가 위험할 게 없었지만, 남편을 집에 두고 온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부인네나, 남편도 없고 가임 연령도 지난 과부의 경우라면 분명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지금까지 웨이트는 그런 여자들을 꾀어 열일곱 번이나 결혼했으며, 그때마다 여자의 보석함과 금고와 예금통장을 깨끗이 비우고는 바람처럼 날라 버렸던 것이다.
일을 워낙 완벽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백만장자가 되어 북미 각지의 여러 은행에 갖가지 가명으로 이율 높은 저축 계좌를 개설하고도 한번도 체포된 적이 없는 그였다. 그가 아는 한, 자신을 추적하는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이야 자신을 이름이 제각각인 열일곱 명의 불성실한 남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할 뿐, 진짜 이름이 제임스 웨이트인 동일범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것이었다.
인간이 제임스 웨이트만큼이나 사기 치는 재주가 뛰어났었다니, 오늘날은 쉬이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백만 년 전에는 성인이 된 거의 모든 인간이 3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커다란 두뇌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지나치게 큰 그 사고(思考) 기계는 사악한 계략을 꾸미고 실행하는 면에서도 한계를 몰랐다.
하여 나는, 주위에 답변해 줄 만한 사람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3킬로그램짜리 두뇌란 치명적 결함이 아니었을까?"
"과거 우리가 곳곳에서 보고 들었던 죄악의 원천을 찾는다면, 지나치게 정교화한 우리의 신경 회로 말고 달리 무엇이 있었을까?"
자문자답이 되겠지만, 나의 대답은 이렇다.
"다른 원천은 없었다. 지구는 아주 순결한 행성이었다. 그들 커다란 뇌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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