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색슨의 후예로 말수가 적고 신사적이며 어떤 일에도 객관성을 잃는 법이 없었던 찰스 다윈은 자기 저서들에서 그 예리한 관찰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 찰스 다윈이 정열적인 사람들이 잡다한 언어를 사용하며 북적대는 과야킬에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대대적인 관광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다윈이 아니었더라면, 제임스 웨이트를 맞이해 준 호텔 엘도라도나 바이아 데 다윈 호는 없었을 것이고, 그를 그토록 우스꽝스럽게 치장해 준 부티크 역시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가 놀랍도록 배울 것이 풍부한 곳임을 만천하에 알리지 않았더라면, 과야킬은 그저 무덥고 지저분한 항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에콰도르에 대한 갈라파고스의 가치 역시 스태퍼드셔 도처에 산더미처럼 쌓인 광석 찌꺼기보다 나을 것이 없었으리라.
다윈은 갈라파고스를 변화시킨 게 아니었다. 단지 갈라파고스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저 옛날 위대한 대뇌들의 시대에는 그저 견해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그토록 중시되었던 것이다.
사실 당시에는 그저 견해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마치 확고한 증거처럼 사람들의 행위를 지배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폐기되기 일쑤였다. 그러기에 갈라파고스는 어느 순간엔 지옥이었다가 다음 순간 천국으로 뒤바뀔 수 있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느 순간엔 위대한 정치가였다가 다음 순간 잔인한 도살자로 매도될 수 있었으며, 에콰도르 지폐는 어느 순간엔 의식주와 교환되다가 다음 순간 새장 바닥의 깔개로 추락할 수 있었고, 우주는 어느 순간엔 전능한 신의 창조물이었다가 다음 순간 느닷없는 대폭발의 산물로 돌변할 수 있었다. 이런 예야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러나 백만 년이 지난 오늘날은 두뇌의 힘이 약화된 덕분에 그 도깨비 같은 견해라는 것을 좇느라 생활을 등한히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백인들이 갈라파고스를 처음 발견한 것은 스페인 선박 한 척이 폭풍으로 항로를 이탈해서 그 제도에 다다른 1535년의 일이었다. 거기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으며, 인간이 거주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 불운한 배의 항해 목적은 줄곧 남미 해안을 따라 내려가다가 파나마의 주교를 페루에 내려 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폭풍이 불어 배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무한정 밀려갔다. 당시 사람들의 지배적 견해에 의하면, 그쪽엔 오직 바다만이, 끝없는 대양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폭풍이 그쳤을 때, 스페인 뱃사람들은 자기들이 주교를 정말 악몽 같은 곳으로 모셔갔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정박지도, 대피소도, 식수도, 나무 열매도, 어떤 종류의 인간도 보이지 않는 형편없는 땅덩어리들뿐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니 꼼짝할 수도 없었고, 식수도 식량도 떨어져 가고 있었다. 대양은 거울처럼 잠잠했다. 그들은 구명정을 모선 옆에 내린 다음 자기네 영적 지도자를 태웠다.
그들은 그 섬들을 스페인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지옥을 스페인 땅이라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견해 수정으로 그 제도가 지도에 표시된 후에도 300년이 다 지나도록 그 어떤 나라도 그 제도를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1832년,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약소국의 하나였던 에콰도르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런 견해를 공유하자고 제안했다.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의 영토다.”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그것은 해로울 것이 전혀 없는, 아니 한마디로 웃기는 견해였다. 제국주의적 광기가 도진 나머지 지나가는 불가사리 떼를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격이었으니까.
그랬는데, 불과 3년 후에 다윈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해서 사람들의 견해를 바꿔 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기처럼 보면, 그러니까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갈라파고스 제도는 그곳에서 스스로 생존의 길을 찾은 그 기묘한 동식물들 때문에 대단히 가치 있는 섬들이라는 것이 청년 다윈의 주장이었다.
제도를 가치가 전무한 곳에서 가치가 무한한 곳으로 바꾸어 놓은 그의 솜씨를 적절히 표현할 말은 이 한 마디뿐이리라.
마술이야!
제임스 웨이트가 과야킬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자연사에 관심 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윈이 보았던 것을 보고 다윈이 느꼈던 것을 느끼기 위해 제도에 가는 길에 그 도시에 들렀으므로, 그곳을 모항으로 삼고 있는 유람선만 세 척이나 되었고 그 중 가장 최근에 선보인 것이 바이아 데 다윈 호였다. 현대식 관광 호텔도 몇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최근에 지은 것이 호텔 엘도라도였고, 칼레 디에즈 데 아고스토 호수 주변에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점이며 부티크며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제임스 웨이트가 그곳에 도착할 때쯤, 세계적 규모의 금융 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그러니까 지폐와 주식과 채권 등의 종이 쪼가리들에 대한 인간의 견해가 갑작스레 수정되는 바람에, 에콰도르뿐만 아니라 사실상 전 세계의 관광 사업이 망했다. 따라서 호텔 엘도라도는 과야킬에서 아직 문을 열고 있는 유일한 호텔이었고, 바이아 데 다윈 호는 여전히 항해 준비를 갖춘 유일한 유람선이었다.
호텔 엘도라도는 ‘세기의 자연 유람’에 참가할 사람들의 집결지였다. 바이아 데 다윈 호와 호텔 엘도라도는 둘 다 같은 회사의 소유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항까지 스물네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200명 정원의 호텔에 손님이라곤 제임스 웨이트를 포함해 여섯 명뿐이었다. 나머지 다섯 명의 인적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젠지 히로구치(29세): 일본인 컴퓨터 천재.
히사코 히로구치(26세):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그의 아내. 유명한 일본식 꽃꽂이 ‘이게바나’ 강사.
*앤드류 매킨토시(55세): 거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미국인 금융업자이자 투기꾼. 홀아비.
셀레나 매킨토시(18세): 날 때부터 눈이 먼 그의 딸.
메리 헵번(51세): 뉴욕 일리엄 출신의 과부. 전날 밤 단신으로 도착한 이래 5층 자기 방에 들어박혀 식사도 전부 그곳에서 했으므로 호텔에 있는 사람 중에 그녀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름 앞에 별표(*)가 붙은 두 사람은 해가 지기 전에 죽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별표는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몇 사람의 이름 앞에 계속 붙일 것이다. 이는 그 사람이 곧 그 강인성과 명민성에 대한 다윈식의 궁극적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음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표시다.
나 역시 거기 있었지만, 사람들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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