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아 데 다윈 호 역시 파멸의 운명이 정해져 있었으나, 그 이름 앞에 별표를 달기에는 아직 이르다. 배의 엔진들이 영원히 멈추기까지는 다섯 번의 일몰이 더 남아 있었으며, 대양의 바닥에 가라앉으려면 10년이 더 남아 있었다. 바이아 데 다윈 호가 과야킬에 선적을 둔 배 가운데 가장 빠르고 가장 호화로운 최신 최대의 유람선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갈라파고스 관광 사업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유일한 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용골(龍骨)을 붙인 순간부터 이 배의 목적은 오로지 스크루를 돌려 갈라파고스를 오가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 배는 스웨덴 말뫼에서 건조되었는데, 나 역시 그곳에서 배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배를 말뫼에서 과야킬로 몰고 오는 도중 북대서양 해상에서 폭풍우를 만났던 스웨덴인, 에콰도르인 기간(基幹) 선원들의 말로는, 이 배가 그런 거친 바다, 그런 강추위를 만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들 했다.
바이아 데 다윈 호는 1백 명의 승객을 싣고 떠다니는 식당이요, 강의실이요, 나이트클럽이요, 호텔이었다. 배에는 레이다와 수중 음파탐지기, 그리고 현재 위치를 정확히 알려 주는 전자 장치가 갖추어져 있었다. 배는 또 완전히 자동화되어 있어서 기관실이나 갑판에 아무도 없어도 브리지에 있는 사람이 혼자서 시동을 걸고 닻을 올리고 기어를 넣어 자가용 승용차처럼 몰 수 있었다. 수세식화장실은 85칸, 비데는 12개였고, 특등실과 브리지에는 위성을 통해 세계 어느 곳과도 연결할 수 있는 전화도 있었다.
물론, 텔레비전도 있어서, 승객과 승무원들은 그날그날의 뉴스를 바로바로 접할 수 있었다.
선주인 키토의 독일인 노(老) 형제는 자기네 배가 한 순간도 세계와 연락이 끊기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배의 길이는 70미터였다.
찰스 다윈이 무보수 자연사 연구가로 타고 있었던 비글 호는 28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말뫼에서 바이아 데 다윈 호를 진수했을 때는, 바닷물 1100톤이 갈 곳을 찾아야 했다. 그때 나는 이미 죽은 뒤였다.
영국의 팰머스에서 비글 호를 진수했을 때는, 250톤만 갈 곳을 찾으면 되었다.
바이아 데 다윈 호는 금속제 동력선이었다.
비글 호는 목제 범선이었고, 해적들과 야만인들을 격퇴하기 위해 대포 10문을 싣고 있었다.
바이아 데 다윈 호와 경쟁을 벌이게 되어 있던 낡은 배 두 척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퇴역했다. 그 배들도 몇 달 동안 정원이 다 예약되어 있었지만, 당시의 금융 위기 탓에 예약 취소 홍수를 겪어야 했다. 두 배는 이제 도로나 주거 지역에서는 멀리 떨어져 도시에서는 보이지 않는 소택지의 후미진 곳에 처박혀 있었다. 선주들은 배에서 전자식 전동 장치 등 값나가는 장비들을 철거해 버렸다.
사실, 에콰도르는 갈라파고스 제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용암과 화산재로 뒤덮여 있어서 9백만에 달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 처지에 재정마저 파산 상태라 표토(表土)가 풍부한 다른 나라들에게서 식량을 사들여 올 수도 없었으니, 과야킬 항은 놀고 있었고, 사람들은 굶어죽기 시작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이웃 나라 페루와 콜롬비아도 파산한 상태였다. 바이아 데 다윈 호 외에 과야킬 부두에 정박해 있는 선박은 식량과 연료를 살 길이 없어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낡아빠진 콜롬비아 화물선 산마테오 호 한 척뿐이었다. 그 배는 해안에서 좀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도록 거기 있었던지 닻줄에 걸린 나뭇가지며 풀들이 거대한 뗏목을 이루었다. 그 정도로 큰 뗏목이라면 새끼 코끼리 정도는 갈라파고스 제도까지 실어갈 수 있었으리라.
멕시코와 칠레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역시 파산한 상태였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과 파키스탄과 인도와 타이와 이탈리아와 아일랜드와 벨기에와 터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나라가 갑작스레 산마테오 호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자기네 지폐와 주화 혹은 차후에 지불하겠노라는 서면 약속으로는 소소한 생활필수품조차 살 수 없었다. 생필품 소유자들은 상대가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가진 물건을 돈과 교환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부(富)를 대표하는 종이쪽지들밖에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게 별안간 안면을 바꾸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정신 차려, 이 얼간이들아! 그깟 종이쪽지가 뭐 그리 대단하다는 거야!”
지구상의 인류에게는 여전히 막대한 양의 식량과 연료가 남아 있는데도 한쪽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 중 가장 건강한 사람이라도 음식을 먹지 못하면 기껏 40여 일을 버틸 수 있을 뿐, 그 다음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근은 베토벤 9번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과대한 뇌의 산물이었다.
모든 것이 사람들의 머리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은 그저 종이로 된 재산에 대한 견해를 바꾼 것에 불과했지만, 그 실제적 귀결은 지구가 룩셈부르크만한 운석에 부딪쳐 궤도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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