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일어날 리 만무한 이런 금융 위기는 전적으로 인간의 커다란 뇌에서 비롯한 20세기의 갖가지 대재앙 가운데 최후의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행성에서 온 방문자가 지구인들이 자기 자신과 서로에게는 물론 다른 모든 생명체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면, 환경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연이 자기들을 몰살하려 해서 사람들이 그토록 격앙되어 있는 것이라고 짐작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백만 년 전의 지구도 물과 양분은 오늘날에 못지않았다. 그 점에서는 은하계 전체에서 단연 독보적이었다. 달라진 것이라곤 이 행성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뿐이다.
옛 인류가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일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자기네 뇌가 무책임하고 믿을 수 없으며 소름끼치도록 위험하고 현실 감각이 전혀 없다는, 한마디로 완전히 엉터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호텔 엘도라도라는 소우주만 보더라도, 모든 식사를 자기 방에서 하고 있던 미망인 메리는 자살하라는 뇌의 충고를 탓하며 혼잣말로 자기 뇌를 저주하고 있었다.
“너는 내 원수야. 이런 끔찍한 물건을 뭣 때문에 그리 애지중지 모시고 살았던고?”
그녀는 사반세기 동안 뉴욕 주 일리엄 시에서 지금은 없는 한 공립 고등학교의 생물 선생으로 재직했으므로, 당시에는 멸종된 어떤 동물의 진화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 큰뿔사슴(Irish elk. 폭 4미터에 이르는 큰 뿔이 있는 유라시아 플라이오세(世), 플라이스토세의 사슴. 현재는 멸종)이라 부르던 동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중앙신경계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너 같은 뇌하고 큰뿔사슴의 뿔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난 뿔을 택하겠어.”
끈뿔사슴의 뿔은 무도회장의 샹들리에만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큰뿔사슴은 진화가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자연이 얼마나 관대한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본보기라고 말하곤 했다. 이 짐승은 그 뿔이 싸움이나 자기 방어에 쓰기에는 너무나 거추장스럽고 밀림이나 무성한 덤불에서 먹이를 찾는 데도 방해만 되었는데도 250만 년 동안이나 생존했던 것이다.
메리는 인간의 두뇌는 지금까지 진화가 낳은 가장 훌륭한 생존 장치라고도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 바로 그 뇌가 자기더러 그곳 과야킬의 옷장 안에 빨간 이브닝드레스를 싸둔 폴리에틸렌 덮개를 벗겨내어 머리에 둘러씀으로써 세포들에게서 산소를 박탈하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잘난 뇌는 가져왔더라면 그 호텔에 어울렸을 화장 도구며 옷가지들이 든 가방을 공항에서 도둑맞고 말았다. 키토에서 과야킬에 올 때 비행기에 들고 탄 수하물이었다. 그나마 손수 들지 않고 항공사에 맡긴 옷가방은 아직 남아 있었다.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선상 파티에 입고 나갈 이브닝드레스도 그 옷가방에 들어 있다가 지금은 옷장 속에 들어 있었다. 잠수용 방수복이며 오리발이며 마스크 일체, 수영복 두 벌, 튼튼한 하이킹 부츠 한 켤레, 그리고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미 해병대의 해안 행군용 전투복 한 벌도 아직 그녀의 것이었다.
키토에서 올 때 비행기 안에서 입고 있던 정장은 그녀의 커다란 뇌가 호텔 세탁부에 보내도록 했다. 뇌는 또 눈이 슬퍼 보이는 호텔 지배인이 아침 식사 전까진 틀림없이 되돌려 주겠노라고 말했을 때는 그의 말을 믿도록 종용했다. 그러나 그 옷 역시 사라져 버려 지배인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살 권유를 제외하고 뇌가 그녀에게 저지른 가장 터무니없는 짓은, 세계적 금융 위기를 알리는 뉴스를 듣고도,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정원까지 예약이 끝나 있던 ‘세기의 자연 유람’이 승객 부족으로 취소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더러 과야킬에 가라고 강권한 일이었다.
그 대단한 사고 기계는 아주 소심할 때도 있었다. 뇌는 호텔에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그런 우스운 차림으로 내려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 거라며 전투복을 입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한사코 말렸다. 뇌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들은 등 뒤에서 널 비웃으며, 네가 미쳐버려 가엾다고, 네 인생도 다 됐다고 생각할 거야. 남편도 교사직도 다 잃었고 바라고 살 애들도 없으니, 옷덮개를 써서 간단하게 불행에서 벗어나라구. 그보다 쉬운 일이 어딨어? 그보다 고통 없는 일이 어딨어? 그보다 의미 있는 일이 또 어딨냐구?”
아무리 그렇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1986년이 정말이지 그렇게까지 무서운 해가 되어 버린 것은 전적으로 뇌의 탓은 아니었다. 그 해도 시작은 아주 희망찼다. 메리의 남편 로이는 겉보기로는 아주 건강했고, 일리엄 시의 경제를 주도하는 게프코 사의 기계 설치 기술자로서 직업적 안정을 누리고 있었다. 그녀 또한 25년 동안의 탁월한 가르침을 인정받아 키와니스 클럽(도의 향상을 목표로 한 미국과 캐나다의 실업가들의 봉사 단체)이 마련한 연회에서 기념패를 받았으며, 학생들의 인기 투표에서는 내리 열두 해째 일등으로 뽑혔다.
1986년, 신년 벽두에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오, 로이. 우리는 감사할 게 너무나 많아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우린 얼마나 운이 좋아요? 행복에 겨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인 걸요.”
“그래, 실컷 울어.”
그는 두 팔로 그녀를 포옹하며 말했다. 그녀는 쉰한 살이었고 그는 쉰아홉 살이었으나, 하이킹이며 스키, 등산, 카누 타기, 조깅,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옥외 활동을 좋아했으므로 둘 다 늘씬하고 젊었다. 술 담배는 안 했고, 신선한 과일과 야채에 더러 작은 생선을 곁들여 먹기도 했다.
부부는 돈 관리도 잘해서, 자기들이 지키는 현명한 섭식과 운동법을 저축에도 적용했다.
나중에 제임스 웨이트를 만났을 때, 메리는 자기 부부의 재테크 솜씨를 들먹이는데, 웨이트에게 그건 분명 스릴 넘치는 이야기였다.
아닌 게 아니라, 과부 등쳐먹기 전문가 웨이트는 아직 그녀를 만나거나 그녀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면서, 호텔 엘도라도의 칵테일 라운지에 앉았을 때는 벌써 메리 헵번을 우려먹을 묘수를 짜내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는 호텔 숙박자 명부에서 그녀의 이름을 보고서 젊은 지배인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다.
웨이트는 지배인이 일러 주는 하찮은 사실에도 기꺼워했다. 그가 파악한 사실을 종합하건대, 위층의 이 숫기 없고 외로운 여선생은 지금까지 그가 망쳐 놓은 어느 아내보다 젊긴 했지만, 사냥감으로는 제격이었다. 그는 ‘세기의 자연 유람’에 참여하는 동안 서두르지 않고 은밀히 접근할 요량이었다.
괜찮다면 이 대목에서 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살아 있었을 때 나는 종종 나의 커다란 뇌에게서 내 자신의 생존에 관하여 그리고 인류의 생존에 관하여 조언을 들었다. 예를 들어, 나의 뇌는 나더러 미 해병대에 들어가 베트남에 가서 싸우도록 했다.
끔찍이도 고맙구나, 큰 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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