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만 하더라도, 로이 헵번이 그 항해 여행을 신청하지 말았어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물론, 아직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든가 에콰도르에 기근이 들 것이라는 조짐이 분명히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메리의 직장 문제가 있었다. 자신이 곧 조기 퇴직을 당하리라고는 꿈에도 모르고 있던 그녀는 학기 중인 11월 말과 12월 초에 도의상 어떻게 3주간이나 휴가를 낼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갈라파고스라면 이미 진력이 나 있었다. 그 제도를 다룬 영화며 슬라이드며 서적이며 기사들이 넘쳐나서 수업 시간에도 수없이 써먹었던 터라, 거기에서 무언가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와 로이는 결혼해 사는 동안 한번도 미국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기왕 맘먹고 여행을 떠날 거라면, 그녀는 차라리 아프리카로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야생 생물의 삶이 훨씬 더 스릴 있고 생존 환경도 훨씬 더 위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속속들이 알려져 있는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코뿔소며 하마, 사자, 코끼리, 얼룩말 등에 비하면 참으로 매력 없는 패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그 항해를 얼마나 시답잖게 여겼으면 가까운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했겠는가.
“갑자기 내 생전에 다시는 푸른발부비새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메리는 여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물론, 로이에게 말을 하면 그도 자기 뇌에 경미한 장애가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3월이 되자 로이는 직장을 나왔고, 메리는 자기도 6월에 해직될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 일정 때문에 항해를 못하게 될 가능성은 사라졌다. 점점 기이해지는 로이의 상상 속에 항해는 “우리가 기대할 만한 단 한 가지 좋은 일”로 커다랗게 부풀었다.
그들이 퇴직하게 된 내력은 이랬다.
게프코 사는 일리엄 공장을 현대화하기 위해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을 일시 해고했다. 일본계 회사 ‘마쓰모토’가 그 일을 맡았다. 이 회사는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자동화 사업도 대행하고 있었다. 마쓰모토 사라면, 메리와 같은 시간에 아내와 함께 호텔 엘도라도에 묶게 되는 젊은 컴퓨터 천재 *젠지 히로구치가 다니던 바로 그 회사였다.
컴퓨터와 로봇의 설치가 끝나면, 일리엄 공장은 단 열두 명만으로 가동할 수 있을 터였다. 해서, 아이들을 가질 만큼, 혹은 최소한 장래에 대해 뭔가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젊은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시를 떠났다. 여든한 번째 생일날, 그러니까 커다란 백상어가 그녀를 먹어치우기 두 주 전에 메리 헵번이 말한 바에 따르면, 마치 파이드 파이퍼(로버트 브라우닝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 유명해진 독일 전설 속의 인물. 마을 안의 쥐를 퇴치한 사례금을 받지 못한 앙갚음으로 마을 아이들을 피리로 꾀어내어 산 속에 숨겨버렸다고 한다)라도 시내를 지나간 것 같았다. 별안간 가르칠 학생들이 없어졌고, 시는 세금 낼 사람도 없어 파산했다. 그리하여 일리엄 고등학교는 6월에 마지막 졸업생들을 배출하고는 문을 닫아야 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4월에 로이는 뇌종양 진단을 받았는데, 치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그때부터 ‘세기의 자연 유람’은 그가 살아 있어야 할 유일한 이유가 되어 버렸다.
“11월이니까, 최소한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거야, 안 그래?”
“그럼요.”
“그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구.”
“여보, 몇 년이라도 더 살 수 있어요.”
“그 여행만 갈 수 있게 해 줘. 적도 지방 펭귄만 구경할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어.”
로이는 갈수록 총기가 흐려졌지만, 갈라파고스에도 펭귄이 산다는 사실만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 펭귄들은 말라빠진 몰골에 급사장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저 아래 남극의 부빙(浮氷) 위에 사는 자기네 친척들처럼 지방덩이를 뒤집어쓰고 있었더라면, 알을 낳거나 새끼들을 돌보려고 해변의 용암에 올랐다가 통구이가 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날지 못하는 가마우지’의 조상처럼, 그들의 조상도 비행의 매력을 포기했다. 대신 더 많은 물고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인간은 어땠는가. 자기네 활동을 되도록 많이 기계에게 넘겨주려 했던 백만 년 전의 그 불가사의한 열정은, 결국 그 큰 뇌가 전혀 쓸모없음을 인정하는 인간들의 자백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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