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메리 헵번이 자살을 궁리하는 대신 옆방에서 속삭이는 이야기를 엿들을 기분이었다면, 그녀는 옷장 뒷벽에 귀만 대면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옆방 손님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어제 저녁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손님이라곤 아무도 없었고, 그녀는 그때 이래 한번도 밖엘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속삭이는 소리의 주인은 컴퓨터 천재 *젠지 히로구치와 그의 임신한 아내인 꽃꽂이 강사 히사코였다.
반대편 옆방에는 *앤드류 매킨토시의 딸인 눈 먼 십대 소녀 셀레나와 암컷 인도견 카자크가 들어 있었다. 메리는 개 짖는 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했는데, 그것은 카자크가 짖지 못하는 개이기 때문이었다.
카자크는 짖지만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개들과 까불며 놀거나 킁킁거리며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제 조상들이 즐겨 먹던 짐승들을 쫓아다니지도 않았다. 강아지적에 카자크가 행여 그런 짓을 할라치면 커다란 뇌를 가진 인간들은 어김없이 증오를 드러내며 먹이를 주지 않았던 걸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은 처음부터 카자크로 하여금 제가 딛고 있는 곳이 그런 행성이며, 따라서 그 같은 개의 습성은 그들의 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톡톡히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카자크가 성적 충동으로 산만해지는 일이 없도록 성기까지 제거했다. 나의 이 이야기는 결국 한 남성과 암캐 한 마리를 포함한 몇몇 여성의 이야기로 좁혀지게 된다. 그러나 성기 제거 시술을 받은 카자크는 실은 더는 여성도 아니었다. 메리 헵번과 마찬가지로, 카자크 역시 진화의 게임에서 벗어나 있었다. 카자크는 자신의 유전자를 누구에게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셀레나와 카자크의 방 건너편에는 탐욕스런 금융업자에 투기꾼인 셀레나의 아버지 *앤드류 매킨토시의 방이 있었다. 부녀의 방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홀아비였다. 과부 메리 헵번과는 의기가 썩 잘 투합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만큼 야외 활동의 열렬한 애호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만나지 않는다. 이미 말한 대로, *앤드류 매킨토시와 *젠지 히로구치는 해가 지기 전에 죽게 되니까.
덧붙이자면, 제임스 웨이트는 다른 다섯 손님과는 달리 2층 방을 배정받아 외따로 놀았다. 그의 큰 뇌는 자신이 순진한 사람으로 보이게 되었다며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오판이었다. 호텔 지배인이 일찌감치 그에게서 사기꾼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지배인의 이름은 *지그프리드 폰 클라이스트였다. 성공한 노인층이 주류인 에콰도르의 독일인 사회에서 그는 중간 연배에 속했다. 그는 호텔 엘도라도와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소유주인 키토의 두 분 삼촌의 부탁을 받고 ‘세기의 자연 유람’ 참가자들의 영접을 감독해 달라는 삼촌들의 부탁으로 호텔을 두 주 동안만 맡기로 한 터였다.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백수로 지내기를 좋아했지만, 이번 가족 사업에서만은 ‘제 몫’을 좀 해보라는 삼촌들의 면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는 결혼한 적이 없는 노총각인데다 재생산 경험도 없었으므로 진화의 관점에서는 중요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역시 메리 헵번의 결혼상대로 고려될 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죽을 운명이었다. *지그프리드 폰 클라이스트는 일몰 때까지 살아남지만, 그 세 시간 후에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고 만다.
오후 네 시가 되었다. 물기 많은 푸른 눈에 수염이 축 늘어진 이 독일계 에콰도르인은 사실 그 날 밤 죽을 것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도 미래에 대해서는 나 정도로밖에 알지 못했다. 그날 오후 우리 둘은 지구가 지축을 중심으로 기우뚱거리고 있어 무슨 일이든 곧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있었다.
*젠지 히로구치와 *앤드류 매킨토시는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지그프리드 폰 클라이스트야 내 이야기에서 그다지 중요할 게 없지만, 세 살 손위로 역시 노총각인 그의 유일한 혈육 형 아돌프는 확실히 중요 인물이다.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선장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는 그로부터 1백만 년이 지난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되기 때문이다.
메리 헵번의 도움으로 그는 말하자면 ‘제2의 아담’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리엄의 생물 선생은 이미 배란이 중단된 상태였으므로 그의 이브가 될 수도 없었고 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는 오히려 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셈이다.
한편, 중요할 게 없는 호텔 지배인의 이 지극히 중요한 형은 그 시각에 거의 텅 빈 뉴욕발 여객기를 타고 과야킬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세기의 자연 유람’ 홍보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메리는 설령 옷장 벽을 통해 히로구치 부부의 말을 엿들었더라도, 그들이 고민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속삭이는 말은 그들이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 곧 일본어였던 것이다. *젠지는 영어와 러시아어를 조금 알았고, 히사코는 중국어를 조금 알았다. 그러나 에콰도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들, 곧 스페인어, 케추아어(안데스 고원에 사는 부족들의 언어로 옛 잉카 제국의 말), 독일어, 포르투갈어에는 둘 다 생판이었다.
실은, 두 사람도 그토록 대단하다는 뇌가 자기들에게 저지른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악몽에 빠지도록 무얼 하고 있었는지 생각하면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정말이지 진저리가 났다. *젠지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수재가 아니던가. 더구나 그들이 정력적인 *앤드류 매킨토시에게 사실상의 포로 신세가 된 것은 그의 잘못이었지 그녀 탓은 아니었다.
일의 경위는 이랬다.
1년 전쯤 눈 먼 딸과 카자크를 데리고 일본을 방문한 *매킨토시는 마쓰모토 사의 월급쟁이로 있던 *젠지를 만나 그의 신기한 연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기술적 견지에서, *젠지는 스물아홉의 나이에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일찍이 각국 언어를 즉시 통역할 수 있는 포켓용 컴퓨터 ‘고쿠비’를 발명한 바 있었고, *매킨토시가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차세대 동시 통역기인 ‘만다락스’ 시제품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앤드류는 젊은 *젠지를 조용히 불러내서는 월급쟁이로 썩고 있다니 당신은 참 바보다, 당신이 직접 회사를 차린다면 앉은 자리에서 수십억 달러, 엔화로 쳐 수조 엔의 갑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그렇게 되도록 돕겠다고 제의했다.
*젠지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이 의사를 타진한 곳은 도쿄의 초밥집이었다. 초밥이란 쌀밥을 생선회로 만 음식으로, 백만 년 전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상상 속에서라도 머잖아 좋은 날이 오면 모든 사람이 오로지 생선회만 먹고 살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이 혈색 좋고 원기 왕성한 미국인 기업가와 숫기 없고 인형처럼 얌전한 일본인 발명가는 고쿠비를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둘 다 상대방의 언어를 썩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십만 대의 고쿠비가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었으나, 만다락스는 그렇지 못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작동하는 만다락스 시제품은 엄중한 경비 아래 마쓰모토 사 *젠지의 방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젠지의 커다란 뇌는 자기도 일본 최고의 갑부 천황에 못지않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몇 달 후, 그러니까 메리와 로이가 자기네 부부는 감사할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한 바로 그 이듬해 1월에, *젠지는 *매킨토시에게서 10개월 후 멕시코 유카탄 주의 메리다 시 교외에 있는 그의 농장을 방문해 달라는, 그래서 에콰도르의 호화 유람선 바이아 데 다윈 호를 함께 타자는 편지를 받았다. *매킨토시는 이 유람선에도 투자하고 있었다.
*매킨토시는 영어로 된, 따라서 *젠지에게는 번역이 필요한 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로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잘하면 유카탄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엔 ‘세기의 자연 유람’ 도중에 그가 *젠지에게서 얻어내려 한 것은 신설 회사의 사장직을 수락하는 *젠지의 서명이었다. 자금 문제는 물론 *매킨토시가 맡을 것이었다.
제임스 웨이트처럼, *매킨토시 역시 닳고 닳은 낚시꾼이었다. 그는 셔츠의 가격표가 아니라 일본인 컴퓨터 천재를 미끼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속셈이었다.
그런데, 내가 해야 하는 이 백만 년에 걸친 이야기엔 시종 별다른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각자의 뇌 크기와 상관없이 낚시꾼으로 그리고 있지 않은가.
이제 11월, 히로구치 부부는 과야킬에 와 있었다. 마쓰모토 사의 경영진에게는 *매킨토시의 조언대로 거짓말을 둘러댔다. 그는 만다락스를 설계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그래 나와 아내는 일일랑은 깨끗이 잊고서 연락도 완전히 끊은 채 두 달 정도 둘이서만 보내고 싶다고 했다. 결국, *젠지는 다음과 같은 거짓 정보가 경영진의 커다란 뇌에 입력시켰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멕시코의 한 항구에서 카리브 해의 섬들을 도는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범선을 탈 예정이다.”
그리하여 ‘세기의 자연 유람’ 참가자 명단이 대대적으로 공개되었을 때도, 마쓰모토사 경영진은 자기네 회사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피고용자 부부가 거기 끼어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들도 제임스 웨이트처럼 가짜 신분증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제임스 웨이트처럼 순식간에 종적을 감춰 버렸다!
그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그를 찾지 못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뇌도 어느 대륙에서부터 뒤져야 좋을지조차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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