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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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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3>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젠지 히로구치는 1백만 5년 전에 고쿠비를 낳았다. 이 젊은 천재는 그로부터 5년 후인 1백만 년 전에 다시 만다락스를 낳았는데, 이때는 그의 아내도 첫아기를 임신한 만삭의 몸이었다.

당시 엄마 히사코가 태아에게 전달할 유전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을 때 히사코의 어머니가 방사능에 피폭되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도쿄에 있을 때 혹 아이에게 비정상 인자라도 있는지 보기 위해 히사코의 양수를 검사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염도가 뒷날 바이아 데 다윈 호를 집어삼키게 되는 바다와 똑같았다.

검사 결과 태아는 정상 판정을 받았다.

검사 결과 태아의 성별도 밝혀졌다. 태아는 여자애로,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여성으로 세상에 나올 것이었다.

하지만 검사는 태아의 경미한 결함까지는 잡아내지 못했다. 메리 헵번만큼이나 음치가 될지 모르는 결함이나(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피부 대신 비단결처럼 고운 털가죽을 갖게 될지 모르는 결함(실제로 이 경우가 될 것이었다) 같은 것들 말이다.

*젠지 히로구치가 낳는 유일한 인간은 그가 한번도 보지 못할, 사랑스러우나 털북숭이인 딸이었다.

그 아이는 갈라파고스 제도 최북단의 섬 산타 로살리아에서 태어난다. 이름은 아키코.

아키코가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 성인이 되었을 때, 그녀의 내부는 어머니와 아주 흡사했지만, 그 내부를 둘러싸고 있는 피부는 전혀 딴판이었다. 고쿠비에서 만다락스로 진화하는 과정은 정반대였다. 내용물은 근본적으로 향상되었으나 포장은 이렇다할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아키코는 털가죽 덕분에 햇볕에 화상을 입지 않았고, 수영할 때는 냉기 때문에 해를 입지도 않았으며, 앉거나 눕고 싶을 때는 화산암에 찰과상을 입지 않아도 되었다. 반면, 어머니의 맨 살갗은 섬 생활의 이러한 일상적 위험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고쿠비와 만다락스를 싸고 있는 세로 12, 가로 8, 두께 2센티미터의 고강도 흑색 플라스틱 외장은 그 내부와는 달리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아키코와 히사코는 제아무리 바보라도 알아볼 수 있었으나, 고쿠비와 만다락스는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할 수 없었다.

고쿠비와 만다락스는 둘 다 뒷면에 케이스 면과 평평하게 가압감지 버튼이 있어서, 사람들은 내부에 장착된 통역기에 상관없이 그 버튼을 통해 기계와 대화할 수 있었다. 둘 다 앞면에는 영상을 띄울 수 있는 똑같은 화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쿠비와 만다락스에 역시 똑같이 들어 있는 작은 건전지들을 충전하는 태양 전지 구실도 했다.

화면 오른쪽 위 귀퉁이에는 둘 다 못대가리만한 마이크가 달려 있었다. 고쿠비와 만다락스는 바로 그것을 통해 구두 언어를 알아듣고는, 버튼을 통해 전달되는 지시에 따라 그 말을 통역해 화면에 올렸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두 사람이 고쿠비나 만다락스를 이용해 그런 대로 자연스런 대화를 나누려면, 사용자는 마술사만큼이나 잽싸고 맵시 있게 손을 놀려야 했다. 예컨대 영어를 사용하는 내가 포르투갈인과 대화를 나눈다면, 나는 그 기계를 포르투갈인의 입에 갖다댔다가 화면에서 그 번역문을 읽기 위해 얼른 내 눈 앞으로 당겨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그 기계가 내 말을 알아듣도록 내 입으로 가져왔다가 상대가 화면을 통해 내 말의 번역문을 읽을 수 있도록 다시 그의 눈 앞에 디밀고, 이런 식으로 재빨리 바꿈질을 해 대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어떤 인간에게도 고쿠비나 만다락스를 조작할 만큼 민첩한 손이나 커다란 뇌가 없다. 바늘에 실을 꿰거나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런 손으로는 자기 코를 잡기도 어렵다.

고쿠비가 통역할 수 있는 언어는 열 가지뿐이었으나, 만다락스가 통역하는 언어는 1천 개였다. 고쿠비는 통역할 언어가 어느 나라 말인지 알려 주어야 했으나, 만다락스는 몇 마디만 듣고도 스스로 그 1천 가지 언어들 중 하나를 식별해 내어 조작자의 언어로 번역한다.

둘 다 극히 정확한 시계요 영구적인 달력이기도 했다. *젠지 히로구치의 만다락스에 내장된 시계는 그가 호텔 엘도라도에 투숙한 시각과 31년 후 메리 헵번과 그 기계가 커다란 백상어에게 먹힌 시각 사이에 단 82초 늦어졌을 뿐이었다.

고쿠비는 시간은 똑같이 정확하게 맞춰갈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제 자식인 만다락스의 성능에 훨씬 못 미쳤다. 만다락스는 제 아비보다 1백배나 더 많은 언어를 통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대다수 의사들보다 더 많은 질병을 정확히 진단해 낼 수 있었다. 명령만 내리면, 어느 해가 되었든 그 해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죽 나열할 수도 있었다. 예컨대 기계 뒷면에 찰스 다윈이 태어났던 1802년을 타자하면 만다락스는 바로 그 해에 알렉산더 뒤마와 빅토르 위고가 태어났고, 프랑스가 산토 도밍고의 흑인 반란을 진압했으며, 베토벤이 2번 교향곡을 완성했고, 고트프리드 트레베라누스가 ‘생물학’이라는 말을 만들었으며, 영국에서는 ‘도제의 건강과 도덕에 관한 법’이 발효되었다는 등의 사실을 말해 주었다. 그 해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해이기도 하다.

만다락스는 200가지 게임의 규칙을 알고 있었고, 거장들이 정리한 쉰 가지 각기 다른 기예의 기본 원리를 열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만다락스는 명령만 있으면 2만 개의 유명한 문학상의 명문들을 불러낼 수도 있었다. 해서, 만약 당신이 뒷면에 예를 들어 ‘해질녘’라고 타자하면, 다음과 같은 격조 높은 글귀가 화면에 뜰 것이다.

해넘이와 저녁 별,
그리고 날 부르는 맑은 목소리 하나!
모래톱의 탄식일랑 없기를,
나 바다로 떠날 때.
― 알프레드 테니슨(1809∼92)

*젠지 히로구치의 만다락스는 이제 곧 그의 임신한 아내와 메리 헵번과 앞 못 보는 셀레나 매킨토시와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 선장 그리고 여섯 명의 다른 여성과 함께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 서른한 해 동안 유폐에 처해진다. 하지만 만다락스는 정작 그런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리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만다락스가 보유한 그 모든 지식이 다 무용하다는 생각에 울화가 치민 선장은 기계를 바다에 던져 버리겠다고 을러댔다. 그가 여든여섯이 되고 메리가 여든하나 되는 해 그의 생애 마지막 날에, 그는 실제로 그 위협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새로운 아담으로서 그가 취한 마지막 행동은 그 ‘지혜의 사과’를 깊고 푸른 바다에 내동댕이쳐 버리는 것이었다.

산타 로살리아 섬 특유의 환경에서, 만다락스의 의학적 권고는 비웃음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히사코 히로구치가 이후 죽을 때까지 지속될, 그러니까 근 30년 동안이나 계속될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었을 때, 만다락스는 취미를 개발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가능하면 직업도 바꾸고 리튬염(조울병 치료제)을 복용하라고 권했다. 셀레나 매킨토시가 아직 서른여덟의 나이에 신장 장애를 겪을 때는, 이식에 거부 반응이 없는 기증자를 되도록 빨리 찾으라고 권했다. 히사코의 털북숭이 딸 아키코가 여섯 살 때 제일 친한 친구인 물개에게서 옮은 것이 분명한 폐병에 걸렸을 때도 만다락스는 항생제 처방을 내렸다. 그때 히사코와 앞 못 보는 셀레나는 그때 함께 살면서 아키코를 키우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영락없는 부부였다.

산타 로살리아 섬의 화산재 더미 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기념할 만한 명문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때도, 기계는 거의 매번 쓸모없는 것들만 쏟아냈다. 다음은, 아키코가 나이 스물에 자신의 털북숭이 딸이자 그 섬에 태어날 제 2세대 인류의 첫 구성원을 낳았을 때 만다락스가 내놓은 명문들이다.

만약 제가 가장 높은 언덕에 목 매어 걸린다면,
나의 어머니, 오 나의 어머니!
저는 압니다, 누구의 사랑이 그때도 나를 따를지,
나의 어머니, 오 나의 어머니!
― 러드야드 키플링(1865∼1936)

내가 시작된 어둔 자궁 속에서
내 어머니 생명이 나를 만들었네.
인간이 탄생을 준비하는 그 모든 달에
당신의 아름다움이 함께 나눈 내 육신을 살찌웠네.
나는 볼 수도, 숨쉴 수도, 요동칠 수도 없네,
당신 일부분의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 존 메이스필드(1878∼1967)

유익한 노고와 세심한 보살핌을
인류를 위해 정해 놓으신 주님!
우리는 주님께 감사드리나이다,
어머니와 어머니가 낳는 아이를 이어주는 유대에 대해.
― 윌리엄 컬런 브라이언트(1794∼1874)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 성경

아키코의 딸의 아버지는 선장의 맏아들 격인 가미가제였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열세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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