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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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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5>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한편, *앤드류 매킨토시는 눈먼 딸의 방에서 전화벨이 울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히로구치와 함께 나누려는 그 희소식을 전해 줄 전화벨이었다. 그는 맨해튼 섬에 있는 자기 사무실들에 연락을 취하고 유창한 스페인어로 에콰도르의 금융업자들이며 관리들과 통화하느라 오후 내내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딸이 듣고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그녀의 방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부녀간이 보통 가까운 게 아니었다. 셀레나는 엄마라고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가 죽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셀레나는 그 쓸모없는 눈 때문에 자연의 실험 대상이었다. 그녀의 맹안은 타고난 것이어서 대물림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야킬에 있을 당시 가장 출산력이 왕성한 시기를 목전에 둔 열여덟이었다.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 메리 헵번이 그녀에게 선장의 정자를 이용한 무허가 실험에 참여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도 그녀는 겨우 스물여덟이었다. 셀레나는 거절한다. 물론 눈이 멀어 유리한 점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녀도 그 장점을 물려주기 위해 실험에 동참했을 것이다.

과야킬에서 병적으로 반사회적인 아버지가 전화에 대고 장사 수완을 부리고 있을 때 어린 셀레나는 자신이 저쪽 방의 히사코와 함께 그녀의 털북숭이 아이를 기르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과야킬에서 그녀는 지구의 임자라도 되는 듯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짝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그녀의 큰 뇌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강인한 성격이 만들어 낸 일종의 전자기(電磁氣) 기포 속에서 그녀가 안전하고도 즐겁게 생을 마감하리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그러니까 그가 내세로 가는 하늘색 터널 속으로 들어간 후에도 그 기포가 그녀를 계속 보호해 줄 것이라고도 했다.

잊기 전에 말해 두겠다.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 셀레나는 눈이 어두운 덕에 다른 어떤 정착자들도 누리지 못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눈이 먼 덕에 꼬마 아키코의 털 감촉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자체는 그녀에게 큰 기쁨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다음 세대에 전할 가치가 있는 장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앤드류 매킨토시는 에콰도르의 내로라하는 금융업자들에게 장담하기를, 어느 수탁자에게라도 아직도 금과 다름없는 미화 5천만 달러를 즉시 넘겨줄 준비가 되어 있노라고 했다. 그 시점에 미국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재산은 대부분이 순전히 가상의 것이 되어 있었으므로, 정말이지 무게도 실체도 없는 것이 되어 있었으므로, 액수가 얼마가 되었건 에콰도르든 어디든 유선으로나 무선으로 서면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이기만 하면 즉시 송금할 수 있었다.

*매킨토시는 키토로부터 그런 돈을 받고 자기네 재산을 곧바로 자신과 딸과 히로구치 부부 명의로 이전할 에콰도르인들이 나섰다는 소식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 돈은 쓰지도 않을 터였다. 액수가 얼마가 되었든, 체이스 맨해튼 은행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도록 조치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은행은 그가 쓰겠다면 어디서 마련하든 그의 요구대로 내놓았다.

거래가 성사되면, 에콰도르는 그 신기루를 유선이나 무선을 통해 비옥한 나라들에 보내고 대신 유형의 식량을 받을 수 있었다.

에콰도르 국민이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나면, 식량은 단지 배설물과 추억으로만 남으리라. 그러고 나면 약소국 에콰도르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매킨토시가 기다리는 전화는 정확히 다섯 시 반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아직 30분은 더 기다려야 했으므로 그는 연한 소 등심에 온갖 진기한 것들을 다 곁들인 필레미뇽 두 접시를 룸서비스에 주문했다. 호텔 엘도라도에는 ‘세기의 자연 유람’에 참가할 고객들, 특히 오나시스 여사에게 대접할 산해진미가 아직도 가득 쌓여 있었다. 그 시각 군인들은 호텔을 중심으로 한 블럭 밖에 가시 철망을 둘러치고 있었다. 그 음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일이 부두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바이아 데 다윈호 주위에도 가시 철망이 쳐졌다. 과야킬 사람들이 다 아는 대로, 그 배에서는 끼니마다 다른 하루 세 끼의 미식을 내리 열나흘 동안 1백 명의 손님들에게 제공할 예정이었다. 셈에 밝은 사람이 그 아름다운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지 모른다.

“나도 그렇고 처자식들도 그렇고 어머니 아버지도 그렇고…… 우리는 다 배가 등에 달라붙었는데, 저 배에는 산해진미가 4,200가지나 쌓여 있다니.”

셀레나의 방에 필레미뇽 요리를 가져온 종업원 역시 호텔의 식료품 저장고에 쌓여 있는 음식 목록을 자신의 큰 뇌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호텔 직원들은 여전히 식사를 제공받고 있었으므로, 그도 아직은 배를 곯지 않았다. 임신한 아내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고아가 되어 그의 집에 들어와 있는 조카로 구성된 그의 가족―에콰도르의 기준으로 이 정도는 소가족이었다―도 그때까지는 잘 먹고 지냈다. 다른 모든 종업원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가족을 위해 호텔에서 먹을 것들을 훔쳐내고 있었다.

이 종업원은 예수 오르티즈였다. 아까 아래층에서 제임스 웨이트의 시중을 들던 젊은 잉카족 바텐더 말이다. 지배인 *지그프리드 폰 클라이스트가 직접 바텐더 노릇을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룸서비스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호텔은 갑자기 손이 달렸다. 평소 룸서비스를 맡았던 웨이터 둘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들이 사라져 버렸다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손님이 별로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들은 어디론가 가 버렸거나 어디 조용한 곳에서 자고 있을 터였다.

해서, 오르티즈의 뇌는 처음엔 주방에서, 다음엔 엘리베이터에서, 그 다음엔 셀레나의 방 앞에서 그 등심 스테이크에 대해 생각했다. 호텔 직원들은 그렇게 귀한 음식은 먹지도 훔치지도 않았다. 그들은 대체로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좋은 음식은 소위 ‘세뇨라 케네디’를 위해 따로 남겨 두었다. ‘세뇨라 케네디’라는 호칭은 원래 오나시스 여사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여기서는 그들이 아직도 꼭 올 것으로 믿고 있는 유명하고 부유하고 권세 높은 손님들 모두를 가리키는 은어로 쓰였다.

오르티즈의 뇌는 아주 커서 그의 머릿속에 그와 식솔들이 백만장자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여 줄 수 있었다. 소년이나 다름없는 이 사내는 얼마나 순진하던지, 자기는 나쁜 버릇도 없고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 먼저 백만장자가 돼 있는 사람들에게서 성공의 비결을 몇 가지만 들을 수 있다면 그 꿈은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썩 만족스런 상대는 아니지만 아래층의 제임스 웨이트에게서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려 애썼다. 공손히 그의 시중을 들다가 우스꽝스러우리만치 멋대가리 없는 이 사내의 지갑에 신용카드와 20달러짜리 미국 지폐가 꽉 차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셀레나의 방을 노크할 때도 그는 그 스테이크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이 방 손님들은 이걸 먹을 자격이 있다. 백만장자가 되면 나도 그럴 것이다.’

이 사내는 굉장히 지적이고 진취적인 젊은이기도 했다. 그는 열 살 때부터 과야킬의 여러 호텔에서 근무하면서 6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되었는데, 그건 제임스 웨이트나 메리 헵번이 알고 있는 언어 수의 여섯 배요, 히로구치 부부가 알고 있는 언어 수의 세 배였다. 그는 또한 훌륭한 요리사요 제빵사였으며, 야간 학교에서 회계 과정과 상법 과정까지 이수했다.

아무튼 그의 마음은 셀레나의 방에서 보고 들을 모든 것을 좋아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이미 그녀의 푸른 눈이 맹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깜박 속았을 것이다. 그녀는 전혀 맹인이 아닌 듯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또 무척 아름다웠다. 그의 커다란 뇌는 그로 하여금 그녀에게 푹 빠져 버리게 만들었다.

*앤드류 매킨토시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전체가 유리창으로 된 벽 앞에 서서, 늪지대와 슬럼가 너머로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자기나 셀레나나 히로구치 부부 앞으로 소유권이 넘어올 바이아 데 다윈호를 보고 있었다. 키토의 유력 금융업자들로 구성된 긴급 컨소시엄의 대표로 다섯 시 반에 그에게 전화하기로 한 사람은 에콰도르 최대 은행의 대표이사이자 그의 형인 빌헬름과 함께 호텔 엘도라도와 바이아 데 다윈호의 공동 소유자인 고트프리트 폰 클라이스트였다.

오르티즈가 필레미뇽 요리를 들고 막 들어섰을 때, *매킨토시는 머릿속에서 고트프리트 폰 클라이스트에게 할 말을 스페인어로 연습하고 있었다.

“동업자 선생, 나머지 희소식을 전해 주시기 전에 본인이 선생의 호텔 맨 위층에서 본인 소유의 배를 바라보고 있노라고 축하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매킨토시는 맨발에 카키색 반바지 차림이었는데, 속옷을 입지 않은 터에 지퍼가 열려 있으니 그의 음경이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게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제 잠시 숨을 돌리고, 그가 노출증적 성욕과 지구상의 생명 유지 수단에 대한 광적인 소유욕에도 불구하고 재생산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생물학적 성공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한번 놀라 보기로 하자.

당시 생존 수단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던 명사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소수의 자녀만 낳았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그러나 이 예외적인 사람들은, 후손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으려 했는지는 몰라도, 일반적으로 자식들을 심리적 불구자로 만들었다. 그들의 상속자들은 대개 좀비족이었고, 인간이라는 동물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많이, 너무나 많이 상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시 저희 조상들만큼이나 탐욕스런 사람들에게 쉽사리 빼앗기고 말았다.

*앤드류 매킨토시는 그 자신이 죽고 사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카이다이빙이나 자동차 경주 같은 것에 광적으로 빠져든 데서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당시 인간의 두뇌는 목숨을 걸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해 내는 너무나 무책임한 기계가 되어 버려서, 미래 세대를 형성하기 위한 행위를 포커, 폴로, 증권 투자, 과학 소설의 저술 같은 것들처럼 편집적 게임광이 즐기는 게임 정도로나 보이게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앤드류 매킨토시만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는 일을 하나의 총체적인 짜증거리로 여기게 되었다. 그보다는 테니스공을 쳐 대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맹인 안내견 카자크는 셀레나의 킹사이즈 침대 발치에 놓인 그물시렁 옆에 앉아 있었다. 이 독일산 셰퍼드 암컷은 혼자 있을 때가 편하고 자유로웠다. 그 순간만큼은 재갈과 목걸이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자크의 작은 뇌는 그 개로 하여금 고기 냄새를 맡기만 하면 커다란 갈색 눈으로 몹시 간절하게 오르티즈를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냄새를 분간하는 능력은 개들이 사람들보다 월등했다. 다윈의 ‘자연 선택의 법칙’ 덕에 오늘날의 모든 인간들은 이제 카자크만큼이나 예민한 후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면에서는 개들보다 뛰어나기까지 하다. 인간은 이제 물속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개들은 여전히 수영을 하지 못한다. 배우기 시작한 지 1백만 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모양이다. 개들은 늘 그래 왔듯 빈둥거리며 싸돌아다닐 뿐, 아직도 물고기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한다. 나는 동물 세계의 모든 종이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생존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간만이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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