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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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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7>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맨해튼 섬에서는 중년의 한 미국인 이벤트업자가 자신이 기획한 ‘세기의 자연 유람’이라는 걸작이 파탄 난 사태를 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바로 얼마 전에 크라이슬러 빌딩의 돔형 꼭대기층에 새 사무실을 얻어 입주했는데, 이 사무실 역시 파산한 어느 하프 회사의 전시실로 쓰이던 곳이었다. 그의 이름은 바비 킹이었다.

그는 과야킬과 같은 표준시간대에 있었으므로, 그의 이마의 깊은 주름으로부터 정남(正南) 방향으로 똑바로 적도 아래까지 선 하나를 드리우면 과야킬에 있는 *앤드류 매킨토시의 훨씬 더 깊은 이마 주름에 연결될 것이었다. *매킨토시는 먹통이 된 전화를 붙들고 구명을 청하려 소리치고 있었다. *매킨토시는 다급하게 “여보세요! 여보세요!”를 외치고 있었는데, 그러느니 그의 상자형 머리에 박제한 바다이구아나를 두르고 있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바비 킹의 책상 위에는 박제한 갈라파고스 바다이구아나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전화로 착각한 듯이 머리에 갖다대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여 내방객을 웃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는 갈라파고스를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찰스 다윈만큼이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처녀항해가 진정 ‘세기의 자연 유람’이 될 것임을 지구 전역의 수백만 사람들에게 납득시킨 열 달 동안의 홍보 활동도 그 일환이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그는 가마우지, 푸른발부비새, 도둑질군함조 등 섬 짐승들을 내세운 기념품도 만들었다.

그에게 이 일을 맡긴 고객은 에콰도르 관광 장관과, *지그프리드와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의 숙부이자 에콰토리아나 항공, 호텔 엘도라도, 바이아 데 다윈 호의 공동 소유주인 고트프리트와 빌헬름 폰 클라이스트 형제였다. 사실 호텔 지배인과 선장은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살았지만, 그럼에도 늘 바빠야 한다고 생각했다.

킹은,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이번 일이 아무 성과도 없으리라고, ‘세기의 자연 유람’은 이제 다 글렀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박제 바다이구아나로 말하면, 그는 그 파충류를 ‘세기의 자연 유람’의 토템 동물로 삼아 뱃머리 양측에 그 그림을 그리게 했고, 또 로고로 만들어 모든 광고와 홍보물의 맨 앞에 내세웠다.

실물을 보면, 바다이구아나는 길이가 1미터도 더 되고 중국의 용처럼 무섭게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초를 제외하고는 어떤 생명체에게도 위험하지 않았다.

현재 살고 있는 이구아나의 모습도 백만 년 전 모습 그대로다. 녀석은 아무런 적도 없으므로 배가 고플 때까지는 먹이 같은 걸 노릴 생각도 않고 태평스럽게 한 곳에 앉아 있다. 배가 고프면 그제서야 뒤뚱거리며 바다로 내려가서는 천천히, 그것도 조금은 서투르게 해안에서 몇 미터 밖으로 헤엄을 친다. 그러고는 잠수함처럼 잠수해서 해초들로 배를 채우는데, 해초는 그 당장엔 소화가 되지 않는다. 해초를 소화시키려면 먼저 요리를 해야 한다.그 때문에 바다이구아나는 수면으로 솟구쳐서 해안으로 헤엄쳐와, 다시 햇볕이 내리쬐는 화산암에 앉는다. 그러니까 자신의 배를 냄비로 이용하는 셈인데, 화산암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으면 뱃속의 해초가 점점 덥혀져 요리되는 것이다. 녀석이 먹이감을 노리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지만, 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제 그들은 간간이 전보다 뜨거워진 바닷물을 뱉어 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제도에서 지낸 요 1백만 년 동안, ‘자연 선택의 법칙’은 이 특이한 생물체를 향상시키는 방법도 퇴보시키는 방법도 전혀 찾지 못했다.

킹은 실제로 여섯 사람이 과야킬에 도착했으며, 바로 그 순간에는 호텔 엘도라도에 있으면서 아직도 ‘세기의 자연 유람’을 즐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그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거기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나오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여행을 포기하리라고만 생각하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여섯 사람의 명단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윌러드 플레밍’이라는 캐나다인이었다. 그 사람이 실은 제임스 웨이트였음은 물론이다. 킹은 메리 헵번이나 일본인 수의사 부부를 제외하면 다들 뉴스를 몰고 다니는 왕성한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승객 명단에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올라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메리 헵번의 이름은 보이는데 그녀의 남편 이름이 없다는 점도 킹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는 로이가 죽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비록 두 사람이 승객 명단의 명사록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기억에도 생생했다. 바로 ‘세기의 자연 유람’을 맨 처음 신청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신청한 사실은 안 순간은 진짜 유명 인사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생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헵번 부부가 참가 신청을 했을 때, 킹은 사실 그들을 토크쇼나 신문 인터뷰 같은 것에 등장시켜서 하다못해 준(準) 명사로라도 만들어 볼까 하고 머리를 굴린 적이 있었다. 그는 그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게 되지만, 메리 헵번과는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헵번 부부가 비록 전국 최고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는 단조로운 산업 도시에서 흔하디흔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혹시 그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이라도 없나 하는 가망 없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로이나 메리에게 유명한 조상이나 친척이 있을지도 몰랐고, 로이가 혹 전쟁 영웅일 수도 있었으며, 그들이 복권에 당첨된 적이 있을 수도 있었고, 최근에 큰 불행을 당했을 수도 있었고, 그도 아니면…….

1월에 있었던 킹과 메리의 전화 대화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글쎄요, 다니엘 분(Daniel Boone(1734~1820). 미국 개척기의 전설적인 영웅. 컴벌랜드 협곡, 애팔래치아 산맥 등에 통행로를 열었다고 한다)이 먼 친척이긴 해요. 아버지 성이 분이었고, 태어나긴 켄터키에서 났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한 5대조쯤 되겠네요?”

“그렇게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 같아요. 그 문젠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아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습니다만.”

“하지만 아버님의 성이 분이었잖습니까?”

“그래요. 하지만 그건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이에요. 아버진 다니엘 분과 아무 관계도 아니었어요. 다니엘 분과는, 오히려 제 어머니쪽으로 친척이 됩니다.”

“아버님 성이 분이고 켄터키 출신이시라면, 당연히 아버님쪽으로 친척일 것 같은데, 그렇잖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왜냐면 아버님의 아버님은 미클로스 굄뵈스라는 헝가리 출신의 말 조련사였는데, 그 할아버지께서 아버지 이름을 마이클 분으로 고쳐 주셨거든요.”

이리하여 대화의 주제는 메리나 로이가 받았을지 모르는 상이나 훈장으로 넘어갔는데, 그녀는 남편이 게프코 사에서 수행한 훌륭한 업적을 놓고 보면 그런 것들을 타고도 남겠지만, 그 회사는 주요 간부가 아니면 그런 일을 전혀 인정해 주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군대 훈장도 없고…… 그 비슷한 것도 없군요.”

“그이는 해군에 있긴 했지만 전투에 참가하진 않았어요.”

물론 석 달 후에 로이와 통화를 했더라면, 그는 태평양에서 핵폭탄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로이가 세운 비극적 공훈에 대해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것이다.

“자제분은 몇이나 두셨습니까?”

“일반적인 의미에선 없어요. 하지만, 전 모든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있고, 스카우트 활동에 열심인 남편도 분대원들을 모두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있죠.”

“정말 바람직한 태도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두 분께 좋은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학기 중이라 교장 선생님께 3주간 쉬고 싶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어려운 일이 남아 있어요.”

“돌아오실 땐, 학생들에게 들려 줄 멋진 이야기가 많으실 겁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기꺼이 허락하실 거예요.”

사실 킹은 갈라파고스 제도를 직접 가 본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메리 헵번과 마찬가지로 그도 그곳을 사진으로만 보아 온 사람이었다.

그가 막 전화를 끊으려는데 메리가 물었다.

“참! 훈포장이나 상 같은 것을 물으셨죠?”

“그랬지요.”

“저도 순전히 우연히 알게 된 건데요. 올해 상급반 아이들이 저희 동기생 연보를 제게 헌정하겠다는 거예요. 그 애들이 헌정사에서 제 별명을 하나 붙여 준답니다. 인쇄소에서 한 친구에게 전할 생일 축하 인사를 고르다가 그걸 우연히 보게 됐어요. 그 친군 쌍둥이가 있는데요……. 하난 아들, 하난 딸이죠.”

“그래요?”

“그 사랑스런 어린 친구들이 내게 붙여 줄 별명이 뭔 줄 아세요?”

“글쎄요.”

“‘어머니 자연의 화신’이랍니다.”

이제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무덤이 없다. 바다가 제 용도에 쓰기 위해 시체를 전부 가져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메리 헵번의 묘비가 있다면, ‘어머니 자연의 화신’보다 더 어울릴 묘비명은 없을 것이다. 과연 어떤 점이 ‘어머니 자연’다웠는가? 산타 로살리아 섬의 극한적인 절망에 처해서도, 그녀는 그곳에 인간의 아이들이 태어나길 바랐다. 그녀는 인간의 삶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 무엇도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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