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헵번이 운 나쁘게 과야킬까지 간 여섯 사람 중에 끼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비 킹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듣기에 그들은 정말이지 떼놓을 수 없는 부부 같았으므로, 그는 로이도 아마 그녀와 함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의 이름이 빠진 것은 호텔 엘도라도 지배인의 실수일 터였다. 지배인의 교신은 시시각각 바빠지고 있었다.
킹은 이름까지는 아니라도,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는 바이아 데 다윈 호가 건조되는 동안 노동자 하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배에 유령이 있다고 믿게 될까 봐 그 정보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것은 마치 폰 클라이스트 집안이 그 구성원 하나가 헌팅턴 무도병으로 입원해 있으며 그 구성원 두 명이 그 보인자일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는 것과 같았다.
선장은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 메리 헵번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녀에게 자신이 헌팅턴 무도병의 보인자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밝혔는가? 그는 그들이 섬에 고립된 지 10년이 지나서야, 그러니까 그녀가 자신의 정자를 가지고 괴이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고 난 후에야 그 끔찍한 비밀을 털어놓았다.
호텔 엘도라도의 여섯 손님 중에서 킹이 잘 아는 사람이라곤 둘, 즉 *앤드류 매킨토시와 그의 앞 못 보는 딸 셀레나뿐이었다. 물론 셀레나의 개 카자크도 알고 있었다. 카자크는 시술과 조련 탓에 사실상 개의 개성을 잃었지만, 그 부녀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개도 알고 있었다. 부녀는 킹이 상대하던 몇몇 레스토랑의 단골이었으며, 개와 딸은 그렇지 않았지만 *앤드류 매킨토시는 자신의 일부 고객과 함께 토크쇼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킹은 그 토크쇼들을 셀레나와 카자크와 함께 앉아 무대 뒤의 모니터를 통해 보았다. 그는 그녀가 아버지 곁에 꼭 붙어 있지 않을 때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거의 잃어버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는 카자크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아 보였고, 그 개보다 사람다울 게 없는 듯했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는 온통 아버지 이야기뿐이었다.
*앤드류 매킨토시는 확실히 토크쇼에 나가길 좋아했다. 그는 그런 쇼에서 상당히 알아주는 출연자였다. 아주 엉뚱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쓸 돈이 무제한으로 있을 경우 어떻게 인생을 즐길 것인가에 대해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딱하게 여기고 경멸했다. 대개가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산타 로살리아 섬의 가혹한 환경 덕분에, 셀레나는 하늘색 터널을 지나 내세로 가기 전에 아버지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개성을 발전시키게 된다. 일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커다란 뇌들의 시대에는, 사람의 일대기가 어떻게 끝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나의 일대기를 보시라.
헵번 부부 다음으로는, 매킨토시 부녀와 히로구치 부부가 ‘세기의 자연 유람’의 승객 명단에 올랐다. 때는 2월이었다. *매킨토시의 초청을 받은 히로구치 부부는 *젠지 히로구치의 고용주들이 그가 *매킨토시와 합작 사업을 벌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고 가명으로 여행한다.
킹과 *지그프리드 폰 클라이스트를 포함해 그 항해에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히로구치 부부는 겐자부로 부부였고, *젠지는 수의사였다.
그러고 보니 호텔 엘도라도의 손님들은 그 절반이 알려진 것과는 다른 사람들인 셈이었다. 커다란 뇌들이 부리는 이 모든 기만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지만, 전시 잉여물자인 메리 헵번의 행군용 전투복에는 왼쪽 가슴에 아직도 카플란이라는 전 소유자의 성이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칵테일 라운지에서 마침내 그녀를 만났을 때, 제임스 웨이트는 자기의 가명을 가르쳐 주고 그녀는 자신의 본명을 가르쳐 주지만, 그는 그녀를 한사코 ‘카플란 여사’라 부르며 유대인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들은 나중에 선장을 주례로 모시고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상갑판에서 결혼하게 되는데, 그때 그녀는 자신이 ‘윌러드 플레밍’의 아내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는 자신이 ‘메리 카플란’의 남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의 혼동은 오늘날이라면 불가능하다. 이젠 아무도 남에게 들려 줄 이름이나 직업 혹은 살아온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평(世評)이라는 견지에서 그나마 각자가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 체취가 고작일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실제의 그 사람이고, 그것이 전부다. 이 점에 관한 한, ‘자연 선택의 법칙’이 인간을 절대적으로 정직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모두가 다 어김없이 겉에 드러나 있는 그대로다.
*앤드류 매킨토시가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처녀항해에 특실 셋을 예약했을 때, 바비 킹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가용 요트 가 있는 *매킨토시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요트는 거의 순양함만 했고, 따라서 저 혼자서도 갈라파고스 제도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공연히 모르는 사람들과 가까이 접촉하지 않아도 되었고, ‘세기의 자연 유람’에 부과되는 훈련을 굳이 받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승객들은 예컨대 맘대로 뭍에 오를 수도 없고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매번 관광 안내인들의 호위와 통제를 받게 되어 있었는데, 안내인들은 모두 다 산타 크루즈 섬의 다윈연구소에서 훈련을 받았고, 모두 다 자연과학 분야의 학사 학위를 소지자들이었다.
킹은 어느 날 저녁 레스토랑과 클럽을 돌아보던 중, 명사들의 출입이 잦은 ‘엘레인’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매킨토시네 가족이 다른 두 남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테이블에 다가가 그들의 항해 참가를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인사했다. 그는 그들의 참가 이유를 무척이나 알고 싶었다. 다른 명사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호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킹은 매킨토시 부녀에게 인사를 마친 다음에야 다른 동석자들을 알아보았다. 두 사람 모두 그가 말을 걸 정도의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자는 지구에서 가장 숭배 받는 여성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 여사였고, 그날 밤 그녀의 동행자는 위대한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였다.
누레예프는 러시아 시민이었다가 영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았다. 그때는 나도 아직 살아 있었고, 스웨덴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미국 시민이었다.
우리는 둘 다 춤추길 좋아했다.
*매킨토시에게 그의 자가용 요트를 상기시켜 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킹은 그에게 도대체 바아이 데 다윈 호의 어느 구석이 그렇게 맘에 들더냐고 물었다. 그러자 머리 좋고 아는 것 많은 *매킨토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기적이고 무지한 인간들이 통제 없이 상륙하면서 갈라파고스 제도에 어떠한 손상을 끼쳤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모두 다 과학 전문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기사를 그럴 듯하게 편집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 잡지를 매달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있었다. 이 잡지는 지적하기를, 사람들이 갈라파고스에 상륙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막으려면 에콰도르에 세계 연합 함대 규모의 해군이 필요하며, 따라서 그 취약한 서식지는 개개인이 자제력을 발휘하도록 교육받았을 때라야 보호될 수 있다고 했다. 그 기사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었다.
“선량한 지구 시민이라면 잘 훈련된 안내자의 동반이 없이는 상륙하지 말아야 한다.”
메리 헵번과 선장과 히사코와 히로구치와 셀레나 매킨토시와 그 나머지 사람들이 산타 로살리아 섬에 갇혔을 때는 훈련된 안내자가 따라붙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아, 그들은 그 취약한 서식지를 완벽한 지옥으로 만든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들은 자기들이 파괴시키고 있는 곳이 바로 자기들의 서식지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들이 그저 한번 왔다 가는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엘레인 레스토랑에서, *매킨토시는 인간의 발길이 이구아나의 감추어진 둥지를 짓밟는 이야기라든지 탐욕스런 손길이 부비새의 알을 훔치는 이야기 등으로 자신의 일장 연설에 푹 빠진 청중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제껏 그가 들려 준 매우 감동적인 잔혹담은, 그러나, 역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기사를 윤색한 것으로, 순전히 사진을 찍기 위해 털북숭이 바다표범 새끼들을 어린 아이처럼 안고 어르는 사람들을 다룬 기사였다. 그는 새끼 바다표범을 제 어미에게 되돌려 주었을 때 새끼는 심하게 짖었고, 어미는 그놈 냄새가 변했다 해서 더 이상 돌보려 하지 않았다며 몹시 분개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랑스런 새끼 표범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금방까지 관대한 자연 애호가 품에 안겨 귀염을 받던 그 새끼 표범 말입니다.”
*매킨토시는 그렇게 물어 놓고 스스로 답을 했다.
“그놈은 굶어 죽었습니다. 모두가 그 알량한 사진 탓이죠.”
따라서 바비 킹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자기가 ‘세기의 자연 유람’에 참가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따랐으면 하는 좋은 모범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런 자가 열렬한 자연보호운동가 행세를 하다니 세상이 웃을 일이었다. 그가 중역으로 재직하거나 자신이 대주주인 많은 회사들은 수질이나 토양이나 대기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었다.
하지만 *매킨토시의 표정은 엄숙했다.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그 무엇에 대해서든 별 관심이 없었던 그였다. 이 결점을 감추기 위해, 그는 대단한 연기자가 되어, 마치 모든 일에 열정적인 관심이 있는 양 자기 자신까지 속였다.
그러나 자기 딸에게는 갈라파고스에 가는 데 왜 오무 호 대신 바이아 데 다윈 호를 타고 가는지에 대해, 이 레스토랑에서 보여 준 것과 똑같은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미리 완전히 다른 설명을 해 두었다. 히로구치 부부는 매킨토시 부녀밖에는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오무 호를 탄다면 함정에 빠졌다는 느낌을 받을지 몰랐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라면 지레 겁을 집어먹을지도 몰랐고, *젠지가 더 이상 대화를 거부하고 비행기로 귀국하겠다며 가장 가까운 항구에 내려 달라고 요구할지도 몰랐다.
백만 년 전 힘센 지위를 자랑하던 그 많은 병적 인격체들이 그랬듯, 그 역시 거의 무슨 일이든 별 생각 없이 충동에 따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는 한가하게 고안 되어 나중에야 설명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커다란 뇌들의 시대에 횡행한 그런 행동거지는 내가 영예스레 참전했던 전쟁의 역사, 즉 베트남 전사(戰史)의 축소판쯤으로 이해하시라.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