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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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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19>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대부분의 병적 인격체들과 마찬가지로, *앤드류 매킨토시 역시 자기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별반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그 때문에 엄청난 설득력을 지녔다. 과부 오나시스와 루돌프 누레예프는 그의 말에 얼마나 감동했던지 그 자리에서 바비 킹에게 ‘세기의 자연 유람’에 대해 더 상세한 정보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고, 킹은 이튿날 자세한 안내서를 인편으로 보내 주었다.

일이 되려고 그랬던지, 그날 밤 텔레비전의 교양 프로그램에 갈라파고스 제도의 푸른발부비새들의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예정이었고, 그래서 킹은 그걸 한번 보십사는 내용의 서신을 동봉했다. 이 새들은 나중에 산타 로살리아 섬의 작은 인간 정착지의 생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그 새들이 그토록 미련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인간들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눈치 챘더라면, 그 첫 정착자들은 굶어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큐멘터리의 절정은, 일리엄 고교에서 메리 헵번이 늘상 하던 갈라파고스 강의에서처럼, 푸른발부비새들의 구애춤이 나오는 대목이었다. 춤은 이랬다.

화산암 위에 커다란 바다새 두 마리가 서성이고 있다. 그들은 얼추 날지 못하는 가마우지만한 몸집에 둘 다 목이 뱀처럼 길고 부리는 작살 모양이었다. 하지만 비행을 단념한 건 아니어서, 날개가 크고 강했다. 다리와 물갈퀴 발은 밝은 청색의 고무질이었다. 부비새들은 공중에서 내리 덮치며 물고기를 잡는다.

피쉬! 피쉬! 피쉬!

하나는 수컷이고 다른 하나는 암컷인데, 생김새는 비슷하다. 둘은 별개의 사명을 띠고 있어서 서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벌레나 알곡을 먹고 있지도 않으므로, 그 화산암 위에서 둘 다 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도 말이다. 집 지을 재료를 찾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집짓기 놀이를 하기엔 철이 너무 이르니까.

수컷이 바삐 하던 그 아무것도 아닌 행동을 멈춘다. 그는 암컷을 바라본다. 암컷에게서 눈을 돌렸다가 다시 본다. 가만히 서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로. 둘 다 소리를 낼 줄 알지만, 춤추는 동안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암컷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용케 수컷과 시선이 마주친다. 둘 사이의 거리는 5∼6미터 정도.

메리는 학생들에게 이 기록 영화를 보여 줄 때면 바로 이 대목에서 그 암컷을 대변이나 하는 듯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 낯선 양반이 대체 내게 뭘 바란담?”

그때 수컷이 밝은 청색 발을 한쪽 들더니 그것을 종이부채처럼 공중에 펼친다.

세계의 진기한 것들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쯤 되는 것 같다. 메리 헵번은, 역시 암컷 역을 맡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런, 묘하기도 해라! 자기가 뭐 「세계의 불가사의」에라도 출연하고 있는 줄 아나봐. 이 섬에서 자기 발만 푸르다고 생각하는 걸까?”

수컷이 그 발을 내리고 다른 쪽 발을 들자, 암컷에게로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수컷은 암컷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처음 발을 다시 보여 주고, 또 다시 다른 쪽 발을 보여 준다.

메리가 암컷을 대신해 말했다.

“여기서 떠날 거에요.”

하지만 암컷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수컷이 저한테 두 발을 번갈아 보여 주면서 줄곧 다가오고 있는데도 그 화산암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듯 꼼짝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암컷이 제 푸른 발 한 쪽을 드는데, 그럴 때 메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발이 그렇게나 아름답다구요? 진짜 아름다운 발을 보여 드리죠. 자, 이쪽 발두요.”

암컷이 한쪽 발을 내리고 다른 쪽 발을 들자, 둘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진다.

메리는 여기서 입을 다물었다. 의인법을 동원한 우스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쇼를 진행하는 것은 이제 그 새들의 일이었다. 어느 새도 속도를 높이거나 늦추지 않고 똑같이 근엄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서로에게 다가가서는, 마침내 가슴과 가슴, 발끝과 발끝을 맞댄다.

일리엄 고교생들이 새들의 교미 장면까지 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헵번 선생이 5월 초 봄철 교육 행사 때마다 강당에서 그 필름을 틀어 주었으므로, 그 장면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쯤은 학생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그 새들이 취한 자세는 줄곧 지극히 에로틱한 것이었다. 이미 가슴과 가슴, 발끝과 발끝을 맞대고 있는 그들은 굽이진 목을 깃대처럼 꼿꼿이 쳐들었다. 머리는 한껏 뒤로 젖혔다. 긴 목과 턱 아랫부분을 대고 서로 밀었다. 그들은 둘이 한 몸이 되어 네 발 위에 놓인 뾰족탑을 이루었다.

그렇게, 일종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거기에는 증인도 없었고, 그들이 정말 멋진 부부라거나 정말이지 춤을 잘 추더라며 축하해 줄 다른 부비새들도 없었다. 메리 헵번이 일리엄 고교에서 보여 주던 영화는 오나시스 여사와 루돌프 누레예프가 교육 방송에서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작품이었으므로, 교미 장면을 본 것은 커다란 뇌를 가진 카메라팀 대원들뿐이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하늘 찌르기’였는데, 머리통이 커다란 과학자들이 두 새의 부리가 중력의 작용 방향과는 정반대로 뾰족탑을 이루는 모습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오나시스 여사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다음날 아침 비서를 시켜 바비 킹에게 전화를 했다. 주갑판의 특실 둘을 예약하려는데 늦지 않았느냐고 문의하는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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