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시스 여사가 ‘세기의 자연 유람’에 참가하겠노라고 발표하자, 너도 나도 참가를 희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선(水線) 아래 보잘것없는 선실을 예약한 로이와 메리 헵번은 거의 완전히 잊혀졌다. 3월 말까지 킹은 오나시스 여사를 필두로 하여 헨리 키신저, 믹 재거, 팔로마 피카소, 윌리암 F. 버클리 2세, *앤드류 매킨토시, 루돌프 뉴레예프, 월터 크론카이트 등 거의 그녀만큼이나 대단한 이름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승객 명단을 발표할 수 있었다. *젠지 히로구치는 젠지 겐자부로라는 이름으로 여행하고 있었는데, 발표문에는 세계적인 수의사로 소개되어 있었다. 다른 승객들과 다소나마 균형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누구냐는 곤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도록, 승객 두 사람의 이름은 교묘하게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은 실제로 완전한 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선 아래 보잘것없는 작은 선실을 예약한 헵번 부부였다.
하지만 그때는 꼬리 부분이 잘린 이 명단이 공식 명단이었다. 그 바람에, 5월에 에콰토리아나 항공이 승객들에게 바이아 데 다윈 호가 출항하기 전날 밤 뉴욕으로 오는 손님들에게는 특별 심야 비행편이 제공될 것이라는 전보를 보냈지만 메리 헵번은 통보 대상에 들지 못했다. 전문대로라면 공항 리무진들이 시내 곳곳을 돌면서 그들을 공항까지 실어 나르게 되어 있었다. 비행기 좌석은 침대로 바꿀 수 있었고, 일반석은 언제든지 카바레식 테이블과 춤 무대로 바꿀 수 있었다. 거기서 에콰도르 민속무용단이 칸카보노들의 불춤을 포함한 여러 원주민 종족의 전통 춤을 공연하는 가운데, 최고급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와인과 함께 각종 미식(美食)이 제공될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무료였으나, 헵번 부부는 이 소식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6월에도 그들은 다른 승객들이 다 받은 편지를 받지 못했다. 편지는 에콰도르 대통령 호세 세풀베다 데 라 마드리드 박사가 보낸 초청장이었는데, 호텔 엘도라도에서 열리는 국빈 조찬에 이어 호텔에서 승선 장소인 부두까지 펼쳐지는 꽃마차 퍼레이드에 그들을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메리는 킹이 11월 1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보낸 전보도 받지 못했다. 경제의 지평선에 드리운 폭풍 구름이 참으로 우려스럽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전보였다. 에콰도르의 경제는 그러나 여전히 견실했고, 따라서 바이아 데 다윈 호가 예정대로 출항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다만 킹 자신만 알고 전보에서는 밝히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과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로부터 예약 취소가 잇따라 승객 명단이 근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아직도 여행 의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뉴욕발 특별 항공편에 탑승할 것이었다.
지금 그의 사무실에 들어온 비서가 킹에게 이제 막 라디오에서 들었다며 국무성에서 미국인들에게 당분간 에콰도르 여행을 자제해 줄 것을 권고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킹이 기획한 일생일대의 걸작인 이번 관광 상품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조선학(造船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면서도 배 하나를 훨씬 더 매력적인 배로 만들어 놓은 바 있었다. 배 주인들이 배의 이름을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라고 붙이려는 순간 바아이 데 다윈으로 바꾸도록 설득한 사람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하마터면 두 주간의 그렇고 그런 섬 여행이 될 뻔한 항해를 ‘세기의 자연 유람’으로 부각시킨 사람도 그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 그런 신통술을 부릴 수 있었는가?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 여행을 다름 아닌 ‘세기의 자연 유람’으로 명명한 것이 전부였다.
킹의 생각으로도, 바이아 데 다윈 호가 다음날 정오에 ‘세기의 자연 유람’에 나설 수 없을 게 뻔했지만, 그렇더라도 그가 한 홍보의 부수적 효과는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이었다. 그는 각종 광고를 통해 오나시스 여사와 키신저 박사와 믹 재거 같은 명사들이 그 항해에서 어떤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보여 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연사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친 셈이었다. 그는 두 명의 명사를 창조해 내기도 했다. 한 사람은 요리사 로베르 페팡이었는데, 킹은 그를 ‘세기의 자연 유람’에 주방장으로 고용하면서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라고 선전했다. 또 한 사람은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선장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였는데, 그는 그 큰 코에 어떤 사적인 비밀을 혼자 감추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와 일급 코미디언으로 부각되었다.
킹의 서류철에는 자니 카슨이 진행하는 투나잇 쇼에서 선장이 연기할 대본이 들어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그랬지만 선장은 그 프로그램에도 황금 줄이 번쩍거리는 하얀 제복을 입고 나왔다. 대본 내용은 이랬다.
카슨: ‘폰 클라이스트’라면 어쩐지 남미쪽 성이 아닌 것 같군요.
선장: 잉캅니다. 사실 가장 흔한 잉카족 성이죠. 영어의 ‘스미스’나 ‘존스’처럼 말입니다. 지나치게 비기독교적이라 해서 잉카 제국을 파괴해 버렸다는 스페인 탐험대의 보고서를 읽으신 적이 있습니까?
카슨: 아 예, 그 보고서는……
선장: 읽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카슨: 그건 제 침실 탁자 위에 있습니다만…… 헤디 라마의 자서전 ꡔ엑스터시와 나ꡕ와 함께요.
선장: 그럼 그들이 이단이라 해서 태워 죽인 인디언들이 세 명에 한 명 꼴로 성이 폰 클라이스트였다는 사실을 아시겠군요.
카슨: 에콰도르 해군의 규모는 어느 정돕니까?
선장: 잠수함 네 댑니다. 항상 바닷속에 있죠. 결코 부상하는 법이 없습니다.
카슨: 결코 부상하지 않는다고요?
선장: 몇 년이고 부상하지 않습니다.
카슨: 하지만 무선 연락은 되겠죠?
선장: 아뇨. 두절 상태로 있는 걸 좋아해요. 그건 그들의 발상이죠. 우리야 그들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기쁘겠지만, 그들은 무선 두절 상태로 있는 걸 좋아해요.
카슨: 그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수중에 있습니까?
선장: 그 문제라면 그들에게 물어 보셔야죠. 에콰도르는 민주국갑니다, 아시겠지만. 해군에 있는 우리라 해도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범위는 그 폭이 아주 넓습니다.
카슨: 어떤 사람들은 히틀러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남미에 말이죠. 가능한 이야기라고 보십니까?
선장: 에콰도르에는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카슨: 나치 동조자들이군요.
선장: 그 점에 대해선 모르겠습니다.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카슨: 그 사람들이 히틀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어한다면……
선장: 그렇다면 그들은 식인종이 틀림없습니다. 칸카보노들 말이죠. 그들은 저녁 식사로 거의 모든 사람을 즐겨 먹지요.(have Hitler for dinner는 “저녁 식사로 히틀러를 먹다”로도 새길 수 있고 “저녁 식사에 히틀러를 초대하다”로도 새길 수 있으므로, 선장은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영어로 뭐라더라, 말이 혀끝에서만 뱅뱅 도는군요.
카슨: 그냥 넘어갔으면 합니다만.
선장: 그들은…… 그들은…… 칸카보노들은……
카슨: 천천히 생각하십시오.
선장: 아!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겁니다. ‘정치적 무관심’이라면 그야 단연 칸카보노죠.
카슨: 하지만 그들도 에콰도르 국민이 아닙니까?
선장: 예, 물론입니다. 에콰도르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민주 국갑니다. 식인종 한 명에 투표권도 하나에요.
카슨: 이건 어떤 여성분들이 선장께 물어 봐 달라고 부탁한 질문인데요, 너무 사적인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선장: 저 정도의 외모와 매력을 갖춘 남자치고 누가 결혼의 기쁨을 맛보길 거부하겠습니까?
카슨: 그 문제라면 저도 경험이 좀 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선장: 그건 여성들에게 온당한 처사가 아닙니다.
카슨: 화제가 너무 사적인 데로 흘러가고 있군요. 푸른발부비새 이야기나 하죠. 이제 선장께서 갖고 나온 필름을 보여 줄 시간이 된 것 같군요.
선장: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혼인 서약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정말이지 기꺼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한 여성과 결혼한다는 것은 옳지 못해요. 잠수함에서 언제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거든요.
카슨: 더구나 한번 잠수해서는 다시는 올라오지 않는……
선장: 그것이 전통입니다.
킹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승객 명단이 책상에 놓여 있었는데, 이름들은 거의 절반이 가위표를 달고 있었다. 멕시코인들과 아르헨티나인들과 이탈리아인들과 필리핀인들 등 어리석게시리 재산을 자기 나라 통화로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밖의 사람들은 이미 과야킬에 가 있는 여섯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뉴욕 시내에 있어서 전화로 쉽게 연락이 되었다.
“전화 몇 통 해야겠어.”
킹이 비서에게 말했다.
비서가 대신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사양했다. 속 편히 남을 시킬 일이 아니었다. 이 모든 명사들에게 항해 참가를 설득하면서 그 가운데 당연 뉴스거리가 될 만한 유력 인사들에게는 마치 애인처럼 졸라대기까지 한 그였다. 이제 그는 그들에게 나쁜 소식도 직접 전해야 할 터였다. 충실한 애인이 그래야 하듯이. 다행히 그들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보잘것없는 배우자나 동행자까지 포함해서 마흔두 명인 그들은 그날 가십란에 보도된 대로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두세 군데서 만찬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과야킬까지 열 시간이 걸리는 에콰토리아나 항공 특별기가 대기하고 있는 케네디 국제공항까지 자기들을 모셔다 줄 공항 리무진들이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그들에게 환불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다행이었다. 그들은 이 여행에는 한 푼도 쓰지 않았고, 더구나 이미 무료로 화장용품이나 세면용품이 든 가방과 파나마모자까지 받았지 않은가.
울적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킹은 박제한 바다이구아나를 가지고 장난을 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마치 전화라도 되는 듯이 얼굴에 갖다대고 말했다.
“오나시스 여사님? 유감입니다만 좀 실망스런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푸른발부비새의 구애춤은 결국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킹의 사과 전화는 의례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아직도 그날 밤 열 시에 비행기를 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밤 열 시까지, *앤드류 매킨토시와 *젠지 히로구치와 선장의 동생 *지그프리드는 모두 죽게 되며, 모두가 하늘색 터널을 통해 저승으로 가는 짧은 여행을 완료하게 된다.
킹이 통화한 예비 승객들은 벌써들 두 주를 보낼 새 계획까지 짜 두었다. 많은 사람들은 항해를 포기하고 미국 국경선 내에서 안전하게 스키를 타기로 했다. 여섯 사람이 참석한 만찬장에서는 헬스클럽과 테니스장 등을 두루 갖춘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어느 스포츠센터에 가기로 결정했다.
킹이 사무실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전화의 수신자는 지난 열 달 동안에 절친한 친구가 되어 버린 사람이었다. 키토 출신의 시인 겸 의사로 현직 유엔 주재 에콰도르 대사인 테오도로 도노소 박사가 그였다. 그는 하버드에서 학위를 취득했는데, 몇 안 되나마 킹이 교제하는 에콰도르인은 모두 미국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바이아 데 다윈 호 선장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는 애나폴리스의 미국 해군사관학교 출신이었고, 선장의 동생 *지그프리드는 뉴욕 주 이타카의 코넬 호텔 학교를 졸업했다.
대사관에서는 흥청대는 파티라도 열렸는지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더니, 도노소 박사가 문을 닫자 조용해졌다.
“그 사람들, 뭘 축하하고 있는 겁니까?”
킹이 물었다.
“민속무용단입니다. 칸카보노 불춤을 연습하고 있는 겁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여행이 취소된 걸 모른답니까?”
킹이 물었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홍보 과정에서 바비 킹이 유명하게 만들어 놓은 칸카보노 불춤을 나이트클럽과 극장에서 공연하여 고향의 가족들에게 달러를 보내기 위해 미국에 체류할 예정이었다.
“단원 중에 진짜 칸카보노도 있습니까?”
킹이 다시 물었다.
“진짜 칸카보노야 이런 데 있겠습니까?”
대사가 되물었다.
대사는 사실 ‘마지막 칸카보노’라는 26행의 시를 쓴 바 있었다. 에콰도르의 다우림에 살던 작은 부족의 절멸을 다룬 시였다. 초반부에는 열한 명의 칸카보노가 나왔다. 마지막에는 단 한 명이 나오는데, 그나마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 시는 그러나, 순전히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그 시인 역시 대다수 에콰도르인들과 마찬가지로 진짜 칸카보노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부족이 단 열네 명으로 줄어들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문명의 침투로 인한 그들의 최종적 절멸은 불가피해 보였다.
그는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폰 클라이스트와 히로구치의 아이를 시발로 해서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거의 다 칸카보노 혈통이 되리라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이 놀라운 사태 변화는 크게는 ‘세기의 자연 유람’의 원래의 승객 명단에 올라 있던 단 두 명의 하찮은 사람 중 한 사람이 일으키게 된다. 메리 헵번, 그녀였다. 또 한 명의 하찮은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자신이 사멸할 사태에 직면해서 수선 아래 그 값싼 선실을 예약함으로써 그 역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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