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폰 클라이스트 선장이 자신이 전 인류의 조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과야킬 국제공항에서 바이아 데 다윈 호까지 택시를 타고 갈 때, 나는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인류가 곧 운 좋게도, 하나의 작은 점으로 줄어들었다가 역시 운 좋게도, 다시 팽창할 수 있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사방팔방으로 싸다니며 재생산을 하고 또 하는 수십억의 대뇌 인간이 일으키는 혼돈이 끝도 없이 계속되리라고 믿었다. 그런 어지러운 소동 속에서 한 개인은 중요할 것 같아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내가 탈것으로 선장의 머리를 택한 것은 대형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에 동전을 집어넣고 곧바로 잭포트를 터트린 것에나 비할 수 있는 기가 막힌 결정이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것은 그의 제복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황금빛 줄무늬가 쳐진 하얀 예비역 제독 복장이었다. 내 자신은 이등병 출신인지라, 장성 출신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가 늘 궁금하던 터였다.
나는 그의 커다란 뇌가 운석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어리둥절했다. 당시 그런 체험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특별히 흥미를 끄는 상황에서는 어떤 사람의 머리에 들어가곤 했는데, 그럴 때 그의 커다란 뇌는 당면 문제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장이 운석에 관심을 갖게 된 내력은 이랬다.
그는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면서 교수들의 말을 귓등으로 들어 넘겼으므로, 맨 꼴찌로 간신히 졸업했다. 한번은 항공기 비행 시험에서 부정 행위를 저지르다 발각되어 하마터면 퇴학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외교 경로를 통해 손을 쓰지 않았더라면 실제로 퇴학당했을 것이다. 그런 그였지만 어느 강의 때 들은 운석 이야기에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교수는 지구의 역사를 생각할 때 외계에서 호박돌들이 쏟아지는 것은 극히 흔한 일이었고, 그 충격은 너무나 엄청나서 공룡을 포함한 여러 생명체의 절멸을 초래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구상의 인간도 언제든 그런 재앙을 만날 수 있으므로, 적의 미사일과 운석을 식별할 장치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지 않으면 외계에서 야기된 극히 무의미한 분노 때문에 제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종말론적 경고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헌팅턴 무도병이 도지기 전인데도 선장의 두뇌 배선에 어찌나 잘 들어맞았던지, 그는 이후 인류가 절멸한다면 그 원인은 운석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굳게 믿었다.
선장에게 그것은 인간이 죽는 방법으로는 3차 대전에 비해 훨씬 명예롭고 시적이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의 큰 뇌를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배고픈 군중을 계엄령으로 통제하고 있는 과야킬을 내다보면서 운석에 대해 걱정하는 데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과야킬 사람들에겐, 운석 소나기가 쏟아지지 않았는데도 세계가 끝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어떤 의미에서, 이 사내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을 때 이미 운석을 맞은 셈이었다. 사실, 인생이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지켜보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는 무의미한 악몽이라는 그의 생각은 내겐 정말 익숙한 것이었다.
베트남에서 한 노파에게 총질을 한 후 내가 느낀 감정이 그랬다. 메리 헵번의 말년 모습처럼 이가 다 빠지고 허리가 굽은 노파였다. 노파는 수류탄 한 방으로 우리 소대 안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대원과 내가 가장 미워했던 대원을 죽였고, 그래서 나는 노파를 쏘았던 것이다.
이 사건은 내게 살아 있음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때 나는 돌들이 부러웠다. 내 차라리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한 개 돌이라면 좋을 것을!
선장은 공항에서 동생을 만나러 호텔에 들르지 않고 곧장 바이아 데 다윈 호로 갔다. 뉴욕에서 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줄곧 샴페인을 들이킨 탓에 골머리가 쑤셨다.
우리가 바이아 데 다윈 호에 올랐을 때, 선장이라는 그의 역할은 예비역 해군 제독이라는 역할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의례적인 것이었다. 그가 저명한 승객들과 교제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조타와 기관 운전과 선원 교육 같은 일들을 맡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박 운행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고, 알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대해 아는 것도 피상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역에 있을 때 발트라 섬의 해군 기지와 산타크루즈 섬의 다윈연구소에 몇 차례 의례적인 방문을 했는데, 그때도 역시 명목상으로는 배의 지휘자였지만 실제로는 배에 탄 한 사람의 귀빈에 불과했다. 아무튼 갈라파고스의 나머지 모든 섬들은 지금도 그에게 ‘미지의 세계’일 뿐이었다. 그는 오히려 스위스의 스키장이나 몬테카를로의 카지노 혹은 팜비치의 폴로 경기장에서였다면 안내인 구실을 훌륭히 해냈을 것이다.
선장은 이번에도 귀빈 노릇을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안 될 일이 뭐가 있는가? ‘세기의 자연 유람’에는 다윈연구소에서 교육 받은 학사 학위 소지자들이 안내인으로 동승할 터였다. 선장은 이 기회에 다른 승객들과 함께 그들의 설명을 귀담아 들으며 갈라파고스 제도에 대해 제대로 배울 작정이었다.
선장의 두개골에 들어가 최고 지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진심으로 알고 싶었던 나였다. 그러나 나는 대신 사교계의 멋쟁이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바이아 데 다윈 호의 트랩에 올랐을 때, 우리는 온갖 군대 예법이 총동원된 듯한 영접을 받았다. 하지만 일단 승선하고 나자 고급 선원이든 일반 선원이든, 오나시스 여사를 포함한 승객들을 맞을 마무리 준비를 하면서 누구 하나 우리에게 지시 같은 걸 받으러 오지 않았다.
선장이 알고 있는 한, 그 배는 여전히 다음 날 출항할 예정이었다. 그는 다른 지시를 받은 바 없었다. 한 시간 전에야 에콰도르에 도착한 그의 뱃속에는 아직도 뉴욕의 고급 요리가 가득 들어 있었고 샴페인 탓에 생긴 두통으로 골머리마저 쑤셨으므로, 그는 자신과 자신의 배가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연 선택의 법칙’이 아직 치유하지 못한 인간의 결함이 또 하나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배가 부르면, 백만 년 전의 조상들과 똑 같다. 자기들에게 곧 닥칠 무서운 곤경을 인식하는 속도가 아주 느려지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그들이 백상어와 범고래들에 대한 예민한 경계를 늦추기 쉬운 때다.
백만 년 전, 이는 특히 비극적인 결함이었다. 예컨대 *앤드류 매킨토시처럼, 지구의 상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그리고 진행 중인 그 모든 낭비와 파괴의 속도를 늦추기에 충분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먹는 게 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들 눈에 모든 것이 항상 아주 양호해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 모든 컴퓨터들이며 측정 도구들이며 언론인들이며 기억 장치들이며 도서관들이며 이런저런 전문가들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령 산성비에 의한 북미와 유럽의 삼림 파괴와 같은 문제들이 실제로 얼마나 화급한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그들의 귀멀고 눈먼 배였다.
여기, 부른 배가 해 주었고 지금도 해 주는 충고가 있다.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일등 항해사 에르난도 크루즈가 안내인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의 소식도 못 들었으며 선원의 3분의 1은 가족을 돌봐야겠다며 아주 멀리 달아나 버렸다고 말했을 때, 선장의 부른 배는 그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조바심 내지 말라. 자신감을 갖고 미소를 지으라. 다 잘 돼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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