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헵번은 선장이 투나잇 쇼와 굿모닝 아메리카에 나와 보여 준 코믹한 연기에 탄복한 바 있었다. 그런 만큼, 그녀는 자신의 커다란 뇌가 자신을 과야킬에 데려오기 전부터 그와 안면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장은 로이가 죽은 지 두 주 후에 투나잇 쇼에 나와 그 슬픈 사건 이후 그녀를 웃긴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때 이웃집들은 이사를 가거나 매물로 내놓아 모두 텅 비어 있었는데, 그녀는 그 한가운데 있는 자신의 작은 집 거실에 혼자 앉아 한번 잠수하면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다는 그 웃기는 에콰도르 잠수함대 이야기에 깔깔대었다.
그녀는 폰 클라이스트가 자연과 기계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로이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떻게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선장으로 선택되었겠는가?
그녀의 두뇌는 그녀로 하여금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브라운관에 나온 선장의 영상을 향해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게 하여 그녀의 영혼을 적이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혹시 저와 결혼할 생각 없으세요?”
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선장은 기계에 대해 그녀보다 더 몰랐다. 로이와 함께 산 덕택에 기계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던 그녀는 로이가 죽은 후 잔디 깎는 기계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을 때에도 점화 플러그를 바꿔 끼워 작동시킬 수 있었는데, 이런 것은 선장은 죽었다 깨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갈라파고스에 대해서도 그녀가 선장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귀양살이를 하게 될 섬을 제대로 알아본 것도 메리였다. 선장은 그의 뇌가 큰 실수를 저지른 후 더는 자존심과 권위를 잃지 않으려고 그곳이 라비다 섬에 틀림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그 섬은 분명 라비다가 아니었고, 그로서는 꿈에도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메리가 산타 로살리아 섬을 알아본 것은 그곳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여러 종의 되새들 덕분이었다. 이 황갈색의 작은 새들은 관광객들과 메리의 학생들에겐 아무런 흥미도 없는 것들이었지만, 젊은 다윈에게는 육지거북이나 부비새나 바다이구아나 등 그곳의 어떤 동물보다 흥미로웠다. 되새들은 다 비슷비슷해 보였지만 실은 열세 종으로 분류되었으며, 종마다 먹이가 다르고 먹이를 구하는 방법도 달랐다.
그 중에 남미 본토를 포함한 세계 어느 곳에 가까운 친척을 두고 있는 종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선조 역시 ‘노아의 방주’나 ‘자연의 뗏목’을 타고 왔을지 몰랐다. 망망한 대양 위로 1천 킬로미터를 비행한다는 것은 되새들의 특성으로 보아 전혀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갈라파고스에는 딱따구리라고는 한 마리도 없었지만, 딱따구리와 식성이 흡사한 되새는 있었다. 그러나 그 되새는 나무를 쫄 수 없는 탓에 무디고 작은 부리로 선인장의 잔가지나 가시를 떼어내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또 다른 종은 흡혈 조류였다. 이 종은 부주의한 부비새의 긴 목을 작은 핏방울들이 솟을 때까지 쪼아대고는 그 완벽한 영양식을 배가 찰 때까지 찔끔찔끔 마심으로써 생존했는데, 인간들은 이 새를 게오스피자 디피실리스라고 불렀다.
이 기이한 되새들이 주로 둥지를 트는 곳, 그러니까 되새들의 에덴동산이 바로 산타 로살리아 섬이었다. 그 섬은 갈라파고스의 다른 섬들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찾는 사람이 좀체 없었으므로, 게오스피자 디피실리스가 아니었으면 그녀도 필경 산타 로살리아 섬이라는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또 적으나마 학생들에게 이 흡혈 되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더라면, 그녀는 분명 산타 로살리아 섬에 대해 그렇게 많은 강의를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워낙 훌륭한 선생인 그녀는 그 새를 ‘드라큘라 백작의 훌륭한 애완동물’로 묘사함으로써 학생들의 흥미를 돋우곤 했다. 학생들에게는 순전히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이 허구 속의 인물이 오히려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보다도 중요했다.
학생들이 드라큘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기도 해서, 메리는 드라큘라는 낮에 잠을 자지만 게오스피자 디피실리스는 반대로 밤에 자므로 백작이 그 애완 동물을 데리고 다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우스개를 늘어놓을 수 있었다.
그럴 때 그녀는 짐짓 슬픈 듯이 이렇게 이야기를 맺었다.
“아무튼 드라큘라 백작이 총애하던 이 애완동물은 지금도 데스모돈티대 가(家)의 일원으로 남아 있답니다. 이 가문을 과학 용어로는 ‘뱀파이어 박쥐’라고 부르지요.”
우스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다.
“여러분이 만약 산타 로살리아 섬에 가서 게오스피자 디피실리스를 한 마리 잡았다고 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 그놈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그놈을 십자로에다 묻어야 함은 물론, 심장에 작은 막대기를 박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젊은 찰스 다윈의 상상력을 자극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모든 종류의 갈라파고스 되새들이 대륙의 훨씬 더 전문화된 새들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앙심 깊은 그로서는 여전히 이치에 닿기만 한다면, 자신이 온 세상을 돌면서 발견한 그 모든 동물들을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했다고 믿을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커다란 뇌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조물주께서 갈라파고스 제도에 딱따구리처럼 행동하는 새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도대체 왜 진짜 딱따구리를 창조해 놓지 않았을까? 만약 조물주께서 흡혈 동물이 멋진 발상이라고 생각했다면, 도대체 왜 드라큘라도 없는 그곳에다가 흡혈 되새를 창조해 놓았을까?
메리도 학생들에게 그 지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강의를 매듭지었다.
“여러분의 의견을 말해 보세요.”
바이아 데 다윈 호가 좌초한 검은색 섬에 처음으로 상륙할 때, 메리는 그만 발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오른손 손가락에 찰과상을 입고 말았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녀는 상처를 건성으로 살펴보았다. 벗겨진 부위에서 피가 몽글몽글 솟고 있었다.
그때 되새 한 마리가 두려운 기색도 없이 그녀의 손가락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되새들이 사람들의 머리며 손이나 컵 같은 데에 내려앉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섬에 온 손님에 대한 이런 식의 환영을 즐기기로 맘먹고서, 새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넌 열세 가지 되새 중 어떤 종이지?”
그녀의 질문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새는 곧 그녀의 손가락에서 핏방울들을 홀짝거림으로써 정체를 밝혔다.
그때 그녀는 이 흡혈 되새들에게 수천 끼니를 제공하면서 거기서 여생을 보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섬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그녀가 이제 아무런 존경도 가지 않는 선장에게 따졌다.
“이곳이 라비다 섬이라고요?”
“그렇소. 확실하오.”
“글쎄요, 끝난 일을 놓고 이런 소릴 하고 싶진 않지만, 선장님은 이번에도 틀렸어요. 이곳은 산타 로살리아 섬이 분명해요.”
“어찌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소?”
“이 작은 새가 방금 알려 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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