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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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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26>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조상, 운 좋은 폰 클라이스트는 몸이 호리호리하고 입은 독수리 부리 같았다. 그의 커다란 곱슬머리는 한때는 금발이었지만 이제 백발로 변해 있었다. 그는 운항과 관련한 실무를 그의 일등 항해사가 도맡을 것으로 알고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선장직을 맡았다. *지그프리드가 호텔 엘도라도의 지배인 노릇을 맡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키토에 있는 그의 숙부들이 한사코 친척만 찾았던 것이다.

선장과 동생은 둘 다 차가운 안개가 드리운 키토에 집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시는 자기네 집을 보지 못하게 된다. 두 사람은 살해당한 어머니와 양쪽 조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 상당했고, 그것도 거의 한 푼어치 가치도 없는 수크레로 표시되는 재산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재산은 거의 모두 뉴욕의 체이스 맨해튼 은행에 맡겨 둔 덕에 미국 달러와 일본 엔으로 표시되었다.

거기 샤워실에서 흥얼거리며 춤을 추면서, 선장은 자기가 걱정할 골치 아픈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에르난도 크루즈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었다.

그의 커다란 뇌는 몸을 말린 후 크루즈에게 전해 줄, 자신이 생각해도 기가 막힌 묘책을 하나 내놓았다. 그 묘책이란 선원들이 탈주할 낌새가 보이면, 크루즈가 나서서 선원들에게 바이아 데 다윈 호가 법적으로는 군함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탈주하면 군법에 의해 엄한 처벌을 받을 것임을 의미했다.

이는 악법이었지만, 그 배가 서류상 에콰도르 해군에 속한다는 그의 생각은 옳았다. 배가 여름에 말뫼에서 당도했을 때, 선장 자신이 해군 제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배를 기꺼이 군에 등록했다. 그때는 갑판에 아직 카페트가 깔리지 않았으므로, 그 맨 철판에는 전쟁이라도 터질 경우 기관총과 로켓 발사대와 폭뢰 안치대 등을 앉힐 수 있도록 뚫어 둔 구멍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러니까 선장이 투나잇 쇼에서 말했듯, 유사시 바이아 데 다윈 호는 “100명의 승객 한 사람 당 돔페리뇽 열 병과 비데 하나를 갖춘” 무장 군함이 될 것이었다.

선장은 샤워룸에서 몇 가지 다른 묘안도 생각해 냈지만, 그것들은 죄다 에르난도 크루즈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예컨대, 거의 그러기가 십상인데, 만약 항해가 취소된다면 그땐 크루즈와 몇몇 선원들이 약탈을 피해 멀찌감치 늪지대 어딘가에 배를 정박해 둔다는 대책 같은 것이었다. 크루즈가 그런 조치를 취할 때 선장은 뒷짐을 지고 구경만 하면 될 것이었다.

만약 모두가 탈주해 버리고 그 도시 근처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어 보이면, 그때 크루즈는 갈라파고스의 발트라 섬에 있는 해군 기지까지 배를 끌고 갈 계획이었다. 이 경우에도 역시 선장은 그저 구경만 하면 될 것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만약 뉴욕에서 오는 명사들이 예정대로 이튿날 아침 도착할 경우엔 선장이 탑승해서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크루즈가 우선 바이아 데 다윈 호를 콜롬비아 화물선 산 마테오 호처럼 앞바다에 정박시켜 두었다가, 명사들이 승선 준비를 갖추고 부두에 나왔을 때 얼른 배를 부두에 댄다. 그러고는 그들을 재빨리 태워 바다로 나가 있다가 뉴스를 들어 안전을 확인한 다음 약속한 섬 여행에 나선다.

하지만 그보다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은 그들을 과야킬보다 좀 더 안전한 항구로 피신시키는 경우인데, 그럴 경우라도 페루나 칠레나 콜롬비아, 그러니까 남미의 서해안에 있는 항구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 지역 시민들 역시 최소한 에콰도르 시민들만큼은 처지가 비참했다.

파나마는 괜찮았다.

에르난도 크루즈는 필요하면 명사들을 곧장 미국 서해안의 샌디에이고 항구까지 데려갈 작정이었다. 실제로 바이아 데 다윈 호에는 그 정도 거리를 항해하는 데 필요한 식량과 연료와 물이 충분히 있었다. 명사들은 도중에 친지들에게 전화해서, 들리는 소식들이 제아무리 험악해도 자기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사를 누리고 있노라고 전할 수도 있었다.

샤워실의 선장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오로지 메리 헵번의 도움에 의지한 채 자신이 전적으로 바이아 데 다윈 호를 책임진다는 것, 그리하여 이 배를 전 인류의 요람이 될 산타 로살리아 섬에 좌초시킨다는 것이었다.

여기 만다락스가 잘 알고 있는 명언이 있다.

작은 태만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못 하나가 없으면 편자를 잃고, 편자가 없으면 말을 잃으며, 말이 없으면 기수를 잃는다.
― 벤자민 프랭클린(1706∼90)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작은 태만이 희소식을 낳을 수도 있으니, 바이아 데 다윈 호에 에르난도 크루즈가 없었기에 인류는 구제되었다. 크루즈가 있었다면 배가 섬에 좌초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지금 그는 트렁크에다 ‘세기의 자연 유람’ 때에 제공할 예정이었던 산해진미를 가득 싣고는 자신의 캐딜락 ‘엘도라도’를 몰고 부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족에게 갖다 주기 위해 그가 그날 새벽 훔쳐서 챙겨 놓은 음식들이었다. 군대와 굶주린 폭도가 닥치기 한참 전이었다.

바이아 데 다윈 호가 출항 준비를 하면서 항해 물자를 조달할 때 은근슬쩍 사게 된 그의 캐딜락은 호텔과 이름이 같았다. ‘엘도라도’란 본래 전설에 나오는 황금의 도시였다. 그의 스페인인 조상들은 그 도시를 찾기 위해 원주민들을 고문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오늘날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고문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지느러미 몇 개와 주둥이 하나로 고문 상대를 어떻게 붙잡는단 말인가? 그토록 빨리 헤엄치고 그토록 오랫동안 물 속에 머무를 수 있는 인간을 어떻게 사냥한단 말인가? 당신이 뒤쫓는 상대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구분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제아무리 깊은 곳이라도 찾아 내려가 꼭꼭 숨어 버릴 것이다.

에르난도 크루즈는 인류를 위해 제 본분을 다했다.

페루 공군도 곧 그 본분을 다하게 되지만, 그건 그날 저녁 여섯 시가 넘어서야, 그러니까 *앤드류 매킨토시와 *젠지 히로구치가 죽은 다음에야 벌어지는 일이다. 그 시각, 페루가 에콰도르에 선전 포고를 했던 것이다. 페루는 에콰도르보다 열나흘 앞서 파산했고, 그런 만큼 기아 상태가 한층 심각했다. 육군은 무기를 갖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쓸만한 군대는 소규모의 공군밖에 없었으므로, 군부는 공군에게 아직 주변에 남아 있는 최상의 양식을 제공함으로써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군이 그렇게 높은 사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는 외상으로 구입하기로 한 최신예 장비를 파산 전에 인수한 것이었다. 그 중에는 프랑스제 신형 전폭기 여덟 대도 있었는데, 각 전폭기에는 일제 전자두뇌를 갖춘 미제 공대지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어서 조종사가 레이다 전파나 엔진의 열을 추적해 그 미사일을 항진시킬 수 있었다. 조종사는 다시 지상의 사령부나 그의 조종석에 있는 컴퓨터들의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미사일의 탄두 하나에 장전된 이스라엘제 최신 폭약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히사코 히로구치의 어머니에게 떨어뜨렸던 원자탄의 20퍼센트에 상당하는 파괴력을 자랑했다.

이 새로운 폭약을 개발할 당시 군사 과학자들의 커다란 뇌는 자기들이 무슨 커다란 선심이라도 쓰는 듯이 행세했다.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로 사람들을 죽이는 한, 그들은 인도주의적 정치가로 추앙받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세계 도처에서 온갖 살육이 자행되어 왔지만, 그런 사태를 ‘제 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페루 군사 정권은 개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응당 페루의 영토이므로, 페루는 그것을 되돌려 받고자 한다.”

오늘날은 아무리 영리한 사람이라도 백만 년 전에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보유했던 무기조차 만들지 못한다. 백만 년 전 당시에는 무기들이 늘상 불을 뿜고 있었다. 내 살아생전에, 지구 어디에선가 전쟁이 세 건 이상 진행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자연 선택의 법칙’은 그런 새 기술에 대응하기에는 힘이 달렸다. 어떤 종(種)의 암컷도, 혹 코뿔소라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방화(防火), 방폭(防爆), 방탄(防彈) 능력을 갖춘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으니까.

내 살던 시대에 ‘자연 선택의 법칙’이 내놓은 최상의 대응책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널려 있음에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나는 베트남에 있을 때 그런 사람을 몇 알고 지냈다. 그런 사귐의 깊이야 뻔했지만 말이다. 바로 그런 부류의 하나가 *앤드류 매킨토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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