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나 매킨토시는 아버지가 죽은 사실을 내세로 통하는 하늘색 터널 저쪽 끝에 가서야 확실히 알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버지가 호텔 엘도라도의 자기 방을 나가 복도에서 *젠지 히로구치와 몇 마디 나눴다는 사실이 고작이었다. 그때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함께 내려갔다. 그 후로는 두 사람 다 감감 무소식이었다.
셀레나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녀가 맹인으로 태어난 연유를 밝혀두겠다.
그녀는 색소성 망막염을 앓았는데, 이는 여성쪽의 유전자를 통해 유전되는 결함이었다. 그녀는 그 병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눈이 완벽하게 잘 보였던 어머니는 자신이 보인자라는 사실을 남편에게 숨겼다.
색소성 망막염은 만다락스가 잘 알고 있는 병이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1천 가지 주요 질병 가운데 상위에 속했기 때문이다.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 메리가 이 병에 대해 검색했을 때, 만다락스는 셀레나는 배냇봉사이기 때문에 상태가 중하다고 단정했다. 고쿠비의 아들 만다락스는 색소성 망막염은 제 숙주인 인간에게 30년 동안이나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고 말했다. 만다락스는 셀레나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확인해 주었다. 그녀가 아이를 낳을 경우, 그 아이가 봉사일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봉사이든 아니든 그 아이가 여자애라면, 그리고 자라서 재생산을 한다면, 그 아이의 아이가 봉사일 가능성이 또 반반일 것이었다.
비교적 드문 두 가지 유전적 결함, 즉 색소성 망막염과 헌팅턴 무도병이 산타 로살리아 섬 최초의 인간 정착자들에게 근심의 원천이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정착자는 모두 열 명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내 이미 말했듯이, 선장은 운 좋게도 보인자가 아님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셀레나는 확실한 보인자였다. 내 생각엔, 그녀가 재생산을 했더라도, 그래도 역시 인류는 색소성 망막염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다. ‘자연 선택의 법칙’과 백상어들과 범고래들이 있잖은가.
셀레나와 그녀의 개 카자크가 바깥 군중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있는 사이 그녀의 아버지와 *젠지 히로구치가 죽게 된 내력도 내쳐 밝혀 두겠다.
그들은 뒤통수에 총을 맞았고, 따라서 무엇에 맞았는지도 몰랐다. 그들을 쏜 병사는 백만 년 후까지 뚜렷한 영향을 미칠 작으나마 중요한 일을 한 공로를 인정해 줘야 할 또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총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호텔 엘도라도에 면한 기념품점에 난입한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확실히 말할 수 있거니와, 만약 그가 그 기념품점을 약탈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지구에는 인간이라곤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말이다. 오늘날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이 병사의 미친 짓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는 제랄도 델가도 이병으로, 구급약통과 수통과 단검과 소총 그리고 수류탄 두 발과 탄창 몇 개를 가지고 부대를 뛰쳐나온 탈영병이었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인 그는 편집성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실탄을 지급해서는 절대 안 될 위험인물이었던 것이다.
그의 큰 뇌는 그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무용수라는 둥 프랭크 시내트라의 아들이라는 둥 그의 춤 실력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작은 라디오로 그의 머리통을 깨부수려 하고 있다는 둥 그에게 별별 허황된 소리를 다 주워섬기고 있었다. 수많은 과야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사에 직면한 델가도는 자기에게 가장 큰 문제는 라디오를 가지고 있는 적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깨끗이 폐점한 기념품점에 잠입했을 때 그곳이 기념품점으로 보일 리 만무했다.
그에게 그곳은 에콰도르 민속무용단의 본부였고, 따라서 그는 지금 자신이 진정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무용수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거기에 들어간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환각증 환자들, 그러니까 실제 벌어지고 있지도 않은 온갖 일들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태도는 칸카보노들에게 물려받은 유물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제 무기를 잡을 수가 없고, 더구나 헤엄을 쳐서 멀리 달아나기도 쉬운 상대다. 설령 수류탄이니 기관총이니 칼이니 하는 옛 유물을 발견한다 해도 지느러미와 입뿐인 그들이 무슨 수로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어려서 코호스에 살 때, 나는 언젠가 어머니를 따라 올버니로 서커스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그럴 만한 돈도 없었고, 아버지가 서커스를 싫어했는데도 용케 갔다. 거기엔 코에 공을 올려놓고 있다든지 신호에 따라 뿔나팔을 불거나 지느러미를 파닥인다든지 하는 조련된 물개들이며 강치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짐승들은 결코 기관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고, 수류탄에서 안전핀을 뽑는 건 고사하고 목표물 근처에도 던질 수 없었다.
델가도 같은 정신병자가 애당초 어떻게 군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그는 모병관을 면담할 땐 정상으로 보였고 정상적으로 행동했다. 미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나도 그랬다. 아무튼 델가도는 로이 헵번이 죽을 무렵인 지난여름 ‘세기의 자연 유람’을 지원할 병력으로 특별 차출되었다. 그의 부대는 오나시스 여사 일행 앞에서 멋진 장기를 선보일 시범 부대로 정해져 있었다. 델가도의 행진 솜씨며 황동 단추나 구두를 광내는 솜씨는 기막힌 데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단검을 꽂은 소총이며 철모 등 모든 장비가 지급될 것이었지만, 실탄만은 확실히 제외될 것이었다. 하지만 에콰도르는 당시 경제 위기로 몸살을 앓던 때라, 실탄이 병사들에게 유출되었다.
그가 인간이 얼마만큼 순식간에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실례였다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당시엔 군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다. 해병대 신병 훈련을 마친 후 베트남에 파견되어
실탄을 지급받았을 때, 내겐 민간인 시절의 그 허약했던 모습은 한군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델가도보다도 더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다.
델가도가 침입한 기념품점은 호텔 엘도라도에 면한 폐업 상가들이 늘어선 블럭에 있었다. 호텔 둘레에 가시철망을 친 군인들은 그 상가를 방책의 일부로 삼았다. 따라서 한 가게의 뒷문을 부수고 들어가 앞문 자물쇠를 풀고 빼꼼이 바깥을 내다봤을 때, 그는 그 방책에 다른 누군가가 지나다닐 수 있는 구멍을 낸 셈이었다. 이 틈새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그의 공헌이었다.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 곧 그 구멍을 지나 호텔에 당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본 델가도는 적 둘을 발견했다. 그 중 한 놈은 그의 머릿속을 휘저어 놓을 수 있는 작은 라디오를 휘두르고 있었다. 아니 그가 그렇게 생각했다. 실은 라디오가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만다락스였고, 적으로 보인 두 사람은 *젠지 히로구치와 *앤드류 매킨토시였다. 그들은 바리케이드 안쪽을 따라 휘적휘적 걷고 있었다. 호텔 손님이었으므로 그럴 자격이 있었다.
*히로구치는 아직도 열에 받쳐 있었고, *매킨토시는 그가 인생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데 대해 악의 없는 농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이 델가도가 숨어 있는 기념품점 앞을 지나갈 때였다. 델가도가 앞문으로 나와 자기를 방어한답시고 두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젠지 히로구치와 앤드류 매킨토시의 이름 앞에 별표를 달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는 그 두 사람이 호텔 엘도라도의 여섯 손님들 가운데 해가 지기 전에 죽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들은 이제 죽었고, 백만 년 전 수많은 사람들이 적자(適者)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믿은 세계에 해가 지고 있었다.
생존자 델가도는 다시 그 기념품점 안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향했다. 너무 오래 생존한 적들을 거기서 더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기념품점 밖에는 갈색 피부의 조그만 거지 아이들 여섯만이 있었다. 죄다 여자애들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전쟁광이 온갖 살인 장비를 갖춘 채 그 소녀들에게 달려들었을 때, 그 애들은 너무나 배가 고파서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체념하고는 달아날 생각도 못했다.
아이들은 되레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얼마나 배가 고픈지 알리기 위해 두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배를 두드리며 저희들 목구멍을 가리켰다.
당시 전 세계의 아이들이 그랬다. 에콰도르의 어느 뒷골목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델가도는 그 아이들을 그냥 스쳐갔다. 그는 체포되어 처벌받거나 병원에 수용되지 않았다. 그는 군인들로 넘쳐나는 한 도시에서 또 하나의 군인에 불과했으므로 누구 하나 그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피지도 않았다. 철모 그림자 속의 그 얼굴은 다른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위대한 생존자답게, 그는 다음날 한 여성을 강간하고 그리하여 남미 대륙에서 태어날 마지막 1천만 명의 아이들 가운데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여섯 소녀는 음식이나 음식과 바꿀 수 있는 뭐라도 찾아보려고 그 기념품점으로 들어갔다. 이 아이들은 동쪽 산악 지대 너머 에콰도르 다우림에서 온 고아들이었다. 아이들의 부모는 공중에서 살포된 살충제를 맞아 죽었고, 한 부시파일럿(삼림 지대에서 정기 항로가 아닌 항로를 비행하는 비행사)이 그들을 과야킬에 데려다 주었다. 거기서 그들은 거리의 아이들이 되었다.
이 소녀들은 뚜렷이 원주민 혈통이었지만, 흑인의 피도 섞여 있었다. 옛날 다우림 속으로 달아났던 아프리카 노예들의 피였다.
소녀들은 칸카보노였다. 이들은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 성년을 맞고, 거기서 히사코 히로구치와 더불어 현대의 모든 인간의 어머니가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산타 로살리아 섬에 가기 전에 호텔부터 먼저 가야 한다. 하지만 군인들과 바리케이드가 막고 있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제랄도 델가도 이병이 기념품점 문을 열어 놓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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