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제임스 웨이트라는 이름 앞에 별표를 달 것이다. 약 한 시간 반이 지나면 *지그프리드 폰 클라이스트가 먼저 하늘색 터널로 들어가고, 약 열네 시간이 지나면 *웨이트가 그 뒤를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죽기에 앞서 *웨이트는 순조롭게 항해하는 바이아 데 다윈 호 상갑판에서 메리 헵번과 결혼을 한다.
먼 옛날, 만다락스 가라사대:
끝이 좋으면 다 좋다.
― 존 헤이우드(1497?∼1580?)
*제임스 웨이트의 경우가 확실히 그랬다. 생각컨대, 그는 이 세상에 악마의 자식으로 태어나, 나오자마자 날개짓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이제 종말을 눈앞에 두고 칸카보노 소녀들에게 음식을 먹이는 기쁨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소녀들은 무척 고마워했지만, 호텔 라운지에 간단한 식사류와 찬거리와 양념류가 충분히 비축되어 있었으므로 굶주린 아이들 몇 명쯤 돕는 일이야 아주 쉬웠다.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이전에는 결코 한번도 없었으나, 지금은 그런 기회였고 그는 그것을 좋아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웨이트는 생명수 그 자체였다.
바로 그때, 그가 오후 내 바라던 대로 과부 헵번이 나타났다. 따라서 애써 그녀의 신뢰를 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그에게 금방 호감을 느꼈고, 전날 오후 과야킬 국제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는 길에 굶주린 아이들을 무척이나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훌륭하십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그녀는 이때 이 사내가 아이들을 밖에서 발견해 음식을 먹이기 위해 데리고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이 생각은 한번도 바뀌지 않는다.
“저는 왜 당신처럼 못하죠?”
메리가 말을 이었다.
“당신처럼 여기 내려와 뭐든 우리에게 있는 것을 저기 바깥에 있는 모든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어야 하는데, 전 위층에서 그저 낙심만 하고 있었지 뭐예요? 당신은 절 아주 부끄럽게 만드는군요. 그렇지만 요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에요. 가끔 머리가 전혀 돌아가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그녀는 아이들에게 영어로, 그러니까 아이들이 앞으로도 결코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그거 맛있니?”, “너희들 엄마 아빠는 어디 계셔?” 등 이것저것을 물었다.
오늘날 어린 소녀들은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는 칸카보노 말이 이미 다수인의 언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세기 반 사이에 그것은 대다수 인류의 언어가 되며, 또 그 42년 후에는 인류의 유일한 언어가 된다.
메리는 소녀들에게 더 좋은 음식을 가져다주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판매대 안쪽에 얼마든지 있는 땅콩과 오렌지면 소녀들의 식사로 부족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버찌, 녹색 올리브, 작은 양파 등 입에 맞지 않으면 뭐든 뱉어냈다. 아이들은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잘도 먹었다.
해서, 메리와 *웨이트는 그저 한가롭게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는 동안 금세 친해졌다.
*웨이트는 인간은 남을 돕기 위해 세상에 보내지는 것이 아니겠냐며, 그래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이는 중이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야말로 세계의 미래이며, 따라서 지구의 가장 큰 자원이라고도 했다.
“절 소개하지요. 저는 서스캐처원의 무스조에서 온 윌러드 플레밍입니다.”
메리도 전직 교사요 과부라고 신원을 밝혔다.
그러자 *웨이트는 자기가 얼마나 선생님들을 존경하는지 모른다고, 어릴 적 선생님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아니었더라면 전 결코 MIT에 들어가지 못했을 겁니다. 도대체 대학이라곤 가지도 않았을 거예요. 아마 아버지처럼 자동차 정비공이 되었겠죠.”
“그래서 무엇이 되셨나요?”
그녀가 물었다.
“지금은 엉망진창이죠. 아내가 암으로 죽은 뒤론 말입니다.”
“저런! 정말 죄송해요!”
“뭘요, 댁의 잘못도 아닌데.”
“그렇긴 하지만.”
“전에는 풍차 기사였습니다.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 주변에는 풍력처럼 깨끗한 에너지가 얼마든지 있다고요. 아주 엉뚱하지요?”
“멋진 생각인데요. 남편과 저도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답니다.”
“전력 회사들이 절 미워했습니다. 석유 재벌이며 석탄 재벌들, 원자력 재벌들도 그랬고요.”
“왜 아니었겠어요?”
“그 사람들, 이젠 저 때문에 골치 아프지 않아도 되겠죠. 아내가 죽고는 하던 공장을 때려치우고, 이렇게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찾을 만한 것이라도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고요.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죠.”
“당신은 세상에 베풀 게 많아요!”
“제가 혹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오늘날 많은 남자들이 원하는 예쁘고 순진한 아가씨와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전 이미 망가진 사람입니다.”
“무슨 말씀을…… 당신은 사랑할 자격이 있어요.”
“저는 가끔 제 자신에게 자문해 봅니다. ‘이제 돈이 다 무슨 소용이지?’ 하고 말입니다. 아내는 착한 여자였어요. 댁의 남편께서도 틀림없이……”
“그이는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런 남편도 없을 거예요.”
“그렇담 댁에서도 같은 한탄을 하시겠군요. ‘이젠 혼자인데, 돈이 다 무슨 소용이지?’ 하는……”
그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댁에게 백만 달러가 있다면……”
“세상에! 전 그런 거금은 생각조차 못해요.”
“그럼, 한 십만 달러……”
“그런 정도라면 현실적이군요.”
“그래 봤자 이젠 쓰레기겠죠? 그것으로 무슨 행복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육체적 안락에는 다소 도움이 되겠죠.”
“댁은 집도 좋겠군요?”
“아주 좋은 집이죠.”
“차도 한 대 있을 거구, 아니 어쩌면 두세 대?”
“한 대뿐이에요.”
“벤츠? 맞죠?”
“지프예요.”
“아마 주식과 채권도 있겠죠? 저도 그렇습니다만.”
“남편 회사에서는 보너스로 주식을 주었어요.”
“아, 그랬겠죠. 거기에 보험이다, 연금이다……”
“우린 둘 다 일을 했어요. 맞벌이 부부였죠.”
“아내가 일하는 여성이 아니었으면 전 결혼하지 않았을 겁니다. 전화 회사에 다녔습니다. 아내가 죽은 뒤, 생명 보험이다 뭐다 해서 다 합치니까 상당히 되더군요. 하지만 그것들을 생각하면 미칠 지경입니다. 제 삶이 얼마나 공허하게 되어 버렸는지, 그런 것을 상기시켜 주는 자극제의 수만 늘어난 거죠. 아내의 작은 보석함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해 주었던 반지며 브로치며 목걸이며,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려 줄 자식도 없는데……”
“우리도 아이가 없었어요.”
“우린 서로 비슷한 게 많은 것 같군요. 그럼 댁의 보석들은 누구에게 물려 줄 생각입니까?”
“오, 그리 많지 않아요. 값나가는 것이라야 시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진주 목걸이 하나가 고작이에요. 저는 별로 보석을 달고 다니지 않아서 바로 이 순간까지도 그 진주 목걸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답니다.”
“물론, 보험엔 들어 두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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