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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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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31>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당시엔 사람들이 얼마나 말이 많았던지! 모두가 온종일 떠벌떠벌 계속 떠들어댔다. 심지어 잠을 자면서까지 떠벌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주무시면서도 참 많이도 중얼대셨다. 어머니가 우릴 두고 떠나신 후로 특히 더했다. 나는 가끔 소파에서 잤는데, 밤이 깊어지면 우리 말고는 집에 아무도 없는데도 침실에서 중얼대는 소리가 흘러나오곤 했다.

내가 해병대에 있을 때나 뒤에 스웨덴에서 일할 때도, 더러 누군가가 나를 깨우며 잠꼬대 좀 그만하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럴 때는 내가 뭐라더냐고 물었는데, 내가 했다는 말은 늘 처음 듣는 소리였다. 밤낮 떠벌거리는 말들이란 대개가 우리네 터무니없이 커다란 뇌에서 쏟아져 나오는 쓸모없고 불필요한 신호들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었겠는가?

막을 길이 없었다! 할 일이 있든 없든, 그 떠벌거림들은 쉼 없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그 소리들은 또 얼마나 시끄럽던지!

내가 아직 살아 있었을 때, 미국 도시 지역에서는 젊은이들이 휴대용 카세트라디오를 들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음악을 틀어댔다. 그리고 그 성능이 천둥소리도 무색해질 정도라 게토 지역을 폭발시키는 놈이라 해서 ‘게토 블래스터’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백만 년 전 우리의 머릿속은 이미 게토 블래스터가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양이 차지 않았다!

이렇게 죽어서까지도 아직 나는, 백만 년 전의 그 잘난 두뇌들처럼 방자하고 부적절하며 파괴적인 것이 진화할 수 있도록 허용한 자연의 질서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만약 그 잘난 두뇌들이 진실을 말할 줄 알았더라면,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뇌가 있다는 점에 대해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요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거짓말을 했다! 지금 메리 헵번에게 수작을 걸고 있는 저 *제임스 웨이트를 보시라!

이때 젠지 히로구치와 앤드류 매킨토시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을 목격한 *지그프리드 폰 클라이스트가 칵테일 라운지로 돌아왔다. 만약 그의 커다란 뇌가 제대로 된 기계였더라면, 그는 당장 메리와 *웨이트에게 자신이 지금 정신병 발작의 초기 단계에 있으며, 호텔 손님 두 사람이 방금 전 총에 맞았으며, 바깥 군중들에 대한 저지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며, 호텔 전화가 이미 외부 세계와 두절되어 있다는 등 그들이 당연히 들어야 할 정보, 그들의 생존에 아주 긴요한 정보를 알려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행동했다. 남아 있는 손님 넷이 겁에 질리는 걸 바라지 않아서였다. 결국, 그들은 젠지 히로구치와 앤드류 매킨토시가 어떻게 되었는지 영원히 모르게 된다.

이 점에서는 선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약 한 시간 후 페루가 에콰도르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뉴스도 듣지 못한다. 페루의 로켓들이 과야킬 일대의 목표물들을 강타했을 때, 선장은 자기 뇌가 사실로 믿는 바를 말했을 뿐이었고,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승객들은 지금 운석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다는 선장의 설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하여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 누군가 왜 저희 선조들이 거기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으면―이런 호기심도 점차 사라져 한 3,000년만 지나면 완전히 소멸된다―그가 듣게 되는 설명은 “선조들은 빗발치는 운석들을 피해 본토를 떠나 왔다”는 것이었다.
먼 옛날, 만다락스 가라사대:

역사가 없는 민족은 행복하다.
― 베카리아(1738∼94)

하여, 선장의 동생 *지그프리드는 더없이 침착한 목소리로 *웨이트더러 위층에 가서 셀레나 매킨토시와 히사코 히로구치를 내려오도록 하고 그들의 짐을 좀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분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해 주십시오. 모든 게 순조롭다고만 말씀해 주세요. 여러분들을 절대로 안전하게 공항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과야킬 국제공항은 페루의 로켓들이 파괴할 첫 번째 목표물이었다.

그는 만다락스를 *웨이트에게 넘겨주었다. *웨이트가 히사코와 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기계는 그가 젠지의 시체 곁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두 구의 시체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약탈당한 그 기념품점으로 옮겨졌다. *지그프리드는 그 시체들에 손수 침대 시트를 덮어 주었는데, 그 시트에는 라운지의 판매대 뒤쪽에 걸려 있는 것과 똑같은 찰스 다윈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해서, *지그프리드 폰 클라이스트의 인솔 하에 메리 헵번과 히사코 히로구치와 *제임스 웨이트와 셀레나 매킨토시와 그녀의 개 *카자크는 요란하게 치장한 채 호텔 앞에 주차해 있는 버스로 가게 되었다. 뉴욕에서 오는 명사들을 환영하기 위해 악사들과 무용수들을 싣고 공항으로 나가게 되어 있던 버스였다. 칸카보노 소녀 여섯도 그들 뒤를을 바싹 따라갔다. *카자크의 이름 앞에 별표를 단 것은 이 아이들이 곧 그 개를 잡아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들이 살 세상이 아니었다.

셀레나는 아버지의 행방을 알고 싶어했고, 히사코는 남편의 행방을 알고 싶어했다. *지그프리드는 그들이 먼저 공항으로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의 계획은 여객기든 전세기든 군용기든 무사히 에콰도르를 빠져나갈 비행기만 있으면 어떻게든 그들을 태우자는 것이었다. 앤드류 매킨토시와 젠지 히로구치에 관한 진실은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에야 말해 줄 셈이었다. 그때라면 그들이 제아무리 비탄에 잠긴다 할지라도 최소한 살아남을 수는 있을 테니까. 그는 메리의 간청에 못이겨 여섯 소녀를 함께 데려가는 데 동의했다. 아이들의 말은 만다락스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녀들이 쓰는 말은 만다락스도 기껏해야 스무 낱말 중 하나 꼴로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들의 말은 잉카 제국의 공통어라 할 수 있는 퀘추아나어와 아주 가까웠다. 만다락스는 간간히 저 옛날 아프리카 노예상들의 공통어였던, 어딘지 아랍어 비슷한 말도 들은 것 같았다.

인간 노예! 나는 최근에는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저 커다란 뇌들의 발상이었다. 지느러미발과 입밖에 없는 무슨 수로 누가 누구를 속박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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